내가 모르는 시스템만의 산정방식이 있는 것 같았다.
미궁의 끝은 절벽으로 되어있었다.
그 절벽을 따라 남쪽으로 돌면서 탐색했다.
그걸 보면 미궁의 10층이 거대한 공동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나저나...이제 슬슬 돌아갈 때인가? 다음에 와서 찾아야 하나?’
모자란 스킬포인트야 복귀하면서 그럭저럭 채울 거 같았다.
워낙 넓은 곳이다.
진입 통로를 한 번에 찾으려고 하는 건 욕심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역시 일주일이 넘어가니 의지가 약해진다.
진입 통로를 찾아야 할 절실한 이유가 없는 것도 컸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초월체?
보상 불명의 랜덤박스.
아무리 못해도 최상급 침식체의 보상보다는 좋은 걸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마차 때문에 편하게 돌아다닌다고 해도 메이드가 수발을 들어주는 저택보다야 편할 수 없었다.
돌아다닌 시간에 비해 복귀하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을 거다.
아일라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말하기로 요새로 복귀는 이틀도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가 있는 한 왔던 길을 찾는 건 문제 없다고 호언장담했으니, 그녀는 뭔가 비장의 수가 있는 것 같았다
여자의 비밀은 지켜줘야 하는 법......은 아니고 물어보면 가르쳐 주기는 할 거다.
그것이 캐물을 정도로 궁금하지는 않았다.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마리는 드론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재능이 있는지 이제는 걸으면서도 드론을 익숙하게 조종하는 실력을 발휘했다.
“마스터. 수상한 곳을 발견했습니다.”
드론으로 주변을 정찰하던 마리가 말했다. 그녀 옆으로 가서 드론으로 촬영하고 있는 화면을 살펴봤다.
적외선 카메라 특유의 회색으로 물든 화면에 인공적으로 만든 건축물이 보였다.
“저거 목책인가?”
절벽에 붙여 반원으로 만든 목책.
자세히 보니 목책 위에 경계를 서는 사람도 보이는 것 같았다.
“저것도 슬러버 영주가 만든 건가?”
그렇게 착각할 만도 한 게 목책 안쪽으로 사람이 거주할만한 건물도 몇 채 있는 것이 적잖은 인력을 투입해 만든 거 같았다.
“그건.....아닐 겁니다. 영주가 지었다면, 모험가 협회에서도 이야기해 줬을 겁니다.”
그래도 우리보다 세상 물정을 잘 아는 마리다.
그녀의 말은 믿을 만했다.
드론으로 목책 안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봤다.
목책이 둘러싼 절벽 아래 거대한 동굴이 하나 보였다.
어떻게 보면 슬러버 영주가 만든 미궁 요새와 비슷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규모가 훨씬 작았고 오직 절벽에 있는 동굴을 막기 위해 만든 거 같았다.
‘설마 저 동굴이 미궁 11층으로 넘어가는 입구? 그걸 저렇게 막아놓은 건가?’
동굴 쪽에서 나오는 몬스터를 막기 위해서는….
아닌 거 같았다.
경계를 서고 있는 목책 위 병력이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에 뭔가 오는지 감시하는 모습이었다.
‘어허? 설마....이놈들이?’
거대 모험가 길드나 클랜 놈들은 정보를 통제한다.
하지만 그저 정보통제만 한다는 법이 있을까.
.........벌써 안 좋은 쪽으로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
확인해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았다.
목책의 문은 닫혀있었다.
그 위에는 두 명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한 명은 허접한 갑옷의 일반인.
다른 한 명은 잘빠진 갑옷을 입고 있는 오러를 다룰 줄 아는 놈이었다.
역시 모험가인가?
우리가 다가가자 오러를 다룰 줄 아는 놈이 물었다.
“무슨 일이지?”
목책 뒤에 있는 동굴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일단 찔러보기로 했다.
“우린 미궁 11층을 가려고 한다.”
“못 보던 인간들이군. 어디 소속이지?”
“모험가다.”
“모험가? 소속이 어딘지 물었다.”
“소속? 그건 왜 물어보지?”
“왜냐니….”
목책 위에 있던 녀석이 눈을 굴려 우리를 찬찬히 훑어본다. 그리고 내 여자들을 보고 눈에 이채를 띤다.
“알겠다.........관리자에게 물어보지.”
사내는 그리 말하고 옆에 놈에게 고개를 까닥여 지시한다.
지시받은 놈은 서둘러 목책 뒤로 사라졌다.
관리자라는 인간을 부르러 간 모양이었다.
문지기 녀석과의 대화로 어느 정도 확신이 섰다. 목책 뒤의 거대 동굴이 미궁 11층으로 가는 통로란 것을.
-그그극.
슬슬 하품이 나올 때쯤.
목책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10명 정도의 무장병력이 서 있었다.
살펴보니 귀찮은 마법사는 보이지 않았다.
환영 인사를 하러 단체로 나왔다고 보기에는 놈들의 얼굴에 띤 미소가 너무 비릿해 보였다.
(오랜만에 흘러들어온 놈들이군.)
(뭔 여자는 저렇게 많이 데리고 다니는 거야? 덕분에 몸보신하게 생겼군. 후후.)
(생각보다 개념 있는 놈이야. 낄낄.)
맨 앞에 리더로 보이는 고급스러운 갑옷을 입은 남자 놈이 무게를 잡으며 우리를 품평하듯 훑어본다.
“좋군.”
그렇게 말하는 놈의 시선은 내가 아닌 내 뒤쪽에 있었다.
“11층을 가고 싶다고.”
“그렇다.”
놈의 눈썹이 꿈틀한다.
“버릇없는 놈이군.”
저놈이....나이도 별 차이 없어 보이는데.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그게 뭐지?”
“가는 건 너 혼자다. 여자들을 놓고 간다면 보내주지.”
“어처구니없군. 내가 그 말을 들어줄 거로 생각하는 건가?”
“들어주는 게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이다. 이미 결정된 사항이지.”
“.........설마 다른 모험가들도?”
“미안하군. 이게 우리 일이라서.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해라.”
말은 그렇게 하지만.
놈의 얼굴에 미안함은 하나도 없었다.
“여자들은 우리가 잘 보살펴주지. 너는 몸이 튼튼해 보이니 11층에서 귀여움받을 거다.”
그러면 그렇지.
생각해보면 모험가는 많은데 이 긴 시간 동안 여태까지 이놈들 말고 11층에 대한 정보를 가진 이들이 없다는 게 이상했다.
결론은 하나다.
정보를 가진 인간들을 포섭했거나.
아니면 ‘처리’했거나.
지금 상태를 보면 후자 쪽이 가까워 보였다.
내 예상이 맞았다.
역시 이놈들은….
사냥터를 통제하고 있었다.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거대길드의 사냥터 통제에 더러워서 접은 게임이 생각났다.
사냥터를 들어가려면 길드에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길드에 가입했다.
하지만 사냥터에는 갈 수 없었다.
아직 막 들어온 신입은 안 된다나 뭐라나.
게임에서까지 얼굴도 모르는 놈들에게 굽신거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길로 그 게임은 접었다.
그땐 내가 힘이 없어 그냥 게임을 접었지만.
지금 당했으면 바로 현피 갔을 거다.
정보 독점까지야 그러려니 했지만….
사냥터 통제라니 선 넘은 짓이다.
똑같은 돈 내고 이용하는 미궁인데 지들이 뭐라고 통제하는 건지. 쯧쯧
어째 이곳에 들어와서 만나는 모험가 중에 정상인 놈들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
“네놈들 여기 온 모험가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아니,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나!! 같이 모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에일린에게 이미지 메이킹도 할 겸.
그럴듯한 선량한 모험가 흉내를 내본다.
시선이 느껴진다.
제자인 에일린의 똘망똘망한 시선이...
“모험가라.....협회에서 개나 소나 다 해주는 모험가 등록 가지고 같은 급으로 보는 건 기분 나쁘군.”
리더 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풉!!”
“큭큭! 같은 모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닌 가래.”
“저놈 완전 또라이네. 지금 건 좀 웃겼다.”
내 멋진 대사에 놈들이 낄낄대며 비웃는다.
이놈들이 제자 앞에서.......그냥 뒤엎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팟!
내 옆에 있던 이그니스가 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낄낄대며 웃고 있던 놈의 앞에 나타난 그녀가 시원하게 주먹을 날렸다.
-으적!
턱을 맞고 날아간 놈이 바닥을 신나게 굴렀다.
이그니스의 갑작스러운 급발진.
“호, 호크!!”
놀란 동료가 쓰러진 놈에게 뛰어가 살펴본다.
“주, 죽었어!!”
동료의 그 외침을 듣고 양아치 모험가 놈들이 술렁인다.
“이 무뢰배 놈들! 네놈들 따위가 모욕할 분이 아니다. 주군은 이 세상을 구할 분이다. 이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이 그런 주군을 모욕하다니!”
-쿵.
이그니스가 창으로 바닥을 찍으며 호통쳤다.
‘구, 구할 생각 없는데….’
“이년! 호크를!! 죽! 컥!”
친구의 죽음에 울분을 토하던 놈의 머리에 이그니스의 창이 박혔다.
“죽여!!”
그걸 기점으로 놈들이 이그니스에게 달려들었다.
기세 좋게 달려들었지만.
그녀의 일방적인 도륙이 시작됐다.
“뭐, 뭐야! 이 미친년은! 적당히 상대할 년이 아니다! 가, 강해!”
-뿌우!
목책 위에 있던 놈이 이그니스의 신위에 놀라 뿔피리를 불었다.
그러자 목책 안, 건물에서 모험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놈들과 좋게 끝날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런 급전개를 예상하지는 않았다.
이그니스의 충성심은 내 생각보다 높았다.
이그니스가 난리를 치는 통에 놈들의 시선은 그녀에게 쏠려있었다.
그 틈을 타 마차를 꺼냈다.
혹시 모르니 무력이 제일 약한 둘을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에일린, 마리. 마차에 들어가라.”
“알겠습니다. 마스터.”
“스승님. 저도 도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