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0화 (180/259)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역시 얼굴인가?’

인정하기 싫지만, 때만 잘 벗겨 놓으면 여자 꽤 울릴 거 같은 얼굴이었다.

앨버트 녀석이 혼자 인신매매범 소굴을 소탕했다느니 하는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늘어놓고 있었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걸 귀 기울여 듣는 이는 에일린 뿐이었다.

“후후, 저 아이에게 한 방 먹었구나. 운호. 설마 이제 와서 말을 바꾸진 않겠지?”

릴리아나가 고소하다는 듯 내게 말했다.

기대에 찬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앨버트와 에일린.

둘의 부담스러운 시선이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미 한 말이 있는데 사내가 여기에서 한 입으로 두말하기에는 너무 추했다.

“후.....앨버트...너를.......내 제자로 인정한다.”

나는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말을 결국 내뱉고 말았다.

“아자!!”

앨버트가 두 팔을 높이 들고 환호했다.

그리고 내게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앨버트, 축하해!”

에일린이 내 속도 모르고 앨버트를 축하해 주고 있었다.

*

*

*

다음날.

나는 앨버트를 저택의 뒤뜰로 불렀다.

“스승님. 잘 주무셨습니까.”

나를 본 앨버트가 깍듯이 인사를 하고 군기가 바짝 든 자세로 내 앞에 섰다.

제자가 된 앨버트.녀석은 릴리아나의 호의에 기대 은근슬쩍 저택에서 하루를 묵었다.

앨버트의 얼굴은 밝았다.

잘 먹고 좋은 곳에서 잠을 자서 그런지 얼굴에 기름기가 번들번들했다.

‘마음에 안 드는군.’

녀석은 너무 과분한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괘씸한 건 녀석이 저택에 이대로 눌러살 기세라는 거다.

그런 건 용납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제자 교육이라는 구실로 에일린을 저택으로 데려왔는데, 제자가 되어버린 앨버트를 쫓아내기에는 명분이 약했다.

그렇다고 앨버트 녀석의 분수에 맞지 않는 생활을 놔둘 생각도 없었다.

이제는 앨버트의 행복을 부숴줄 때였다.

“앨버트 첫 수련이다.”

“예! 스승님!”

내가 가르침을 내린다고 생각한 건지 앨버트의 얼굴이 환희로 가득 차오른다.

“편안한 생활은 허접한 검사인 너에게는 독이다! 자신을 채찍질할 필요가 있다.”

독이긴, 나도 한때 운동 좀 했던 놈이다.

원래 운동은 하지 않을 때는 잘 먹고 잘 쉬는 게 답이었다.게다가 환경이 좋으면 운동도 잘된다.

이런 세상에 그런 지식이 있을 턱이 없었으니 스승의 말이 곧 진리였다.

게다가 소드 마스터의 말이다.

메주로 빵을 만든다고 해도 믿을 거다.

“그렇습니까….”

앨버트가 진지한 얼굴로 내 말을 경청했다.

“나는 밤새 너에게 어떤 교육을 할 것인지 고민했다.”

조금 전에 생각한 거지만….

“스, 스승님.”

앨버트의 눈이 촉촉해진다.

그 모습을 보니 어제 먹은 것이 올라올 거 같았다.

“나는 너에게 한 시대를 풍미한 수련 방법을 시킬 생각이다.”

“그, 그것이 무엇입니까?”

앨버트의 얼굴이 기대로 물들었다.

“헝그리 정신이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허, 헝그리 정신?”

“그렇다. 헝그리 정신이다. 저기 보이는 것이 무엇이냐.”

“수, 숲이 보입니다….”

“그렇지. 숲이다.”

저택 뒤쪽은 내 세이브 포인트가 있는 거목 주변만 어느 정도 정리가 돼 있었고, 나머지는 숲이라고 부를 정도로 빽빽한 나무들로 채워져 있었다.

말이 뒤뜰이지 거의 엔간한 공원 수준으로 넓었다.

인벤토리에서 도끼를 하나를 꺼내 앨버트에게 던져줬다.

“이, 이건?”

“도끼다. 그걸로 숲의 나무를 베어 저곳에 집을 만들어 생활해라.”

“지, 집을 말입니까?”

이어 텐트도 하나 던져줬다.

“텐트다. 집을 지을 동안 그곳에서 생활해라.”

텐트는 아깝긴 하지만, 혹시라도 잠은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자야지 하며 저택에 기어들어 오지 못하게 원천 차단을 할 필요가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군대 A형 텐트를 주고 싶었지만, 내가 그런 불편한 걸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 세계에 오기 전에 하나 챙길 걸 그랬다.

“이런 화려한 저택의 생활은 아직 성장할 것이 많은 너 같은 검사를 나태하게 한다. 헝그리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다. 소드 마스터도 되지 못한 애송이는 평소에도 언제나 자신을 더욱 혹독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나는 그럴듯하게 장황히 지껄였다.

“스승님. 이것도 수련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예상대로 앨버트는 굳은 의지를 가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그래, 잘 알아듣는구나. 명심해라. 이제부터 너의 모든 수련은 헝그리 정신으로 시작해 헝그리 정신으로 끝날 것이다.”

“예! 스승님! 헝그리 정신! 명심하겠습니다!”

*

*

*

점심 식사 시간.

앨버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준 도끼로 열심히 집을 만들고 있는듯했다.

생각보다 의욕적이었다.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교육 방법이었는데 효과가 좋았다.

어제 앨버트가 데려온 메이드들이 주방에서 음식을 날라 테이블 위로 올렸다.

메이드를 들임으로써 좀 더 쾌적한 저택 생활이 됐다.

음식 맛도 꽤 괜찮았다.

하루 만에 이런 음식을 내놓다니 그녀들은 생각보다 더 유능했다.그리고 예뻤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그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바로 복장이다.

그녀들은 시골 처녀 같은 수수한 옷을 입고 있었다.

메이드는 그에 어울리는 복장을 해야 하는 법.

“마리, 너를 메이드 장으로 임명한다. 메이드들에게 입을 옷 좀 사다 입혀라. 검은색과 흰색으로 조합된 예쁜 메이드 복으로.”

메이드 복은 역시 검은색과 흰색의 조합이다.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스승님 앨버트에게 식사를 가져다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내 옆에서 식사하고 있던 에일린이 내 눈치를 보면서 물었다.

앨버트가 식사를 거르고 열심히 집을 짓는 것이 걱정되는 듯했다.

“흠….”

주기 싫었다.

하지만 줘야 했다.

에일린 앞에서 쪼잔한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그때 궁하면 통한다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개똥을 약에 쓸 때였다.

개똥을 약에 쓰면 안 되지만….

어차피 내가 먹을 건 아니었다.

“릴리아나.”

“왜 부르느냐?”

“너 그거 가지고 있지?”

“그거?”

“밥 대신 먹는 그 알약.”

릴리아나가 전에 자랑한 간편 알약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쓸모가 생겼다.

“그래, 가지고 있다.”

“그게 필요하다. 그동안 내게 얻어먹은 게 있는데 안 된다고는 하지 않겠지?”

“주는 거야 어렵지 않다만....음? 설마? 그대.......정말 이런 쪽으로는 사악하게 머리가 돌아가는구나.”

“빨리 줘라. 헝그리 정신을 추구하는 수련에 이런 고급 음식은 그 녀석에게 독이나 마찬가지다. 배고프다고 들어오면 어쩌려고. 이게 다~ 앨버트의 수련을 위한 거다.”

“참나….”

릴리아나가 어처구니없어하면서 알약 주머니를 띄워 내게 건네줬다.

그걸 나는 다시 에일린에게 건네줬다.

“스승님. 이, 이건?”

“음식 대신 먹는 알약이다. 한 알이면 하루는 거뜬하지. 앨버트에게 가져다줘라. 그 정도면 한 달은 거뜬할 거다.”

“하, 한 달이어요?”

“그래, 대마법사가 만든 회심의 역작이다. 겨우 그 정도 양으로 한 달을 먹을 수가 있다니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 알겠지? 하루에 한 알만 먹으라고 꼭 전달하고.”

“예….”

귀한 물건이라는 건 거짓이 아니다.

원래 세계로 가져가면 불티나게 팔릴 거다.

밥 먹는 시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나, 군용으로도 상당히 유용하게 쓰일만한 물건이었다.

미운 녀석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은 이런 게 아닐까.

*

*

*

나는 저택의 집무실에 앉아있었다.

집무실이라기보다 그냥 저택에 서재처럼 만들어진 방이었다.

릴리아나가 자신의 연구실 빼고는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했으니, 마음대로 쓰고 있었다.

전에 미궁에 갔을 때 심층 텔레포트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을 이용해 모험가들이 뚫어놓은 미궁 최하층에 가볼 생각이었다.

중요한 건 파티 스킬이었다.

미궁에 가서 파티 스킬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그니스의 성능? 확인도 하고.

“마리 정보 상인의 위치를 알고 있나?”

-쮸읍. 쯉.

“푸하....예.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책상 아래에서 들렸다.

마리는 책상 아래 무릎을 꿇고 앉아.

왼손은 내 불알을 부드럽게 주무르면서, 오른손으로 내 육봉을 잡아 흔들고 있었다.

-챱챱.

질문에 대답한 마리는 내 물건을 다시 입을 벌리고 집어삼켰다.

-쯉. 쯉.

“으음....여태까지 공략된 미궁 최심층의 정보를 사 왔으면 좋겠군.”

“푸하......미궁에 대한 정보라면 모험가 협회 쪽이 나을 겁니다.”

“그럼 그쪽으로. 마리 네게 맡기마.”

마리에게 지시하고, 느긋하게 푹신한 서재 의자에 앉아 그녀가 주는 쾌감을 즐겼다.

“운호, 여기 있나요?”

그때 밖에서 루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음…?! 그, 그래 여기 있다.”

은발의 미녀가 서재로 들어왔다.

마리는 루나가 들어왔음에도 펠라치오를 멈추지 않고 들키지 않게 천천히 내 물건에 자극을 줬다.

“으음....루나, 무슨 일이지?”

“미궁은 언제 들어갈 생각이죠?”

루나는 미궁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하긴...그것 때문에 나를 따라왔으니.’

미궁의 이상한 몬스터도 봤고 좀 더 조사해 보고 싶은 것 같았다.

“미궁? 내일쯤으로 생각하고 있어. 오늘 대충 정보를 좀 수집하고 들어갈 생각이다.”

“그런가요? 알았어요. 저도 준비해야겠군요.”

그렇게 서재를 나가려던 루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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