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0화 (170/259)

그리고 초월체라는 생소한 퀘스트가 눈에 띄었다.

보상도 불명.

‘파티 생성 스킬은 또 뭐지?’

자세히 살펴보는 건 돌아가서 하기로 하고 메시지를 시야에서 지웠다.

“호오....공간이 왜곡되어 있구나.”

주변을 둘러보던 릴리아나가 말했다.

“공간이 왜곡됐다고?”

“그래, 이곳은 슬러버의 지하가 아닐 거다.”

게이트랑 비슷한 건가?

게이트 특유의 장막은 보이지 않았다.

폐쇄형 게이트 중에는 이곳과 비슷한 환경이 있긴 있었다.

원래 세계의 폐쇄형 게이트는 거의 다 정리됐다.

정리된 폐쇄형 게이트는 보통 공략한 길드나 국가에서 관리하는 걸로 알고 있다.

비슷한듯하면서도 다른 거 같고.

-키륵. 키륵!

진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몬스터가 나타났다.

작은 체구와 기다란 손톱.

번들거리는 검붉은 피부.

익숙한 모습이었다.

“고블린인가? 좀 다른 거 같은데....기분 나쁘게 생겼네….”

아일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녀가 빠르게 활시위를 당겨 놓자 고블린은 단숨에 화살에 머리를 꿰뚫려 절명했다.

원래 세계의 F급 차원 균열에서 나오는.헌터들이 고블린이라고 불리는 몬스터와 비슷했다.

릴리아나와 루나가 쓰러진 몬스터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몬스터구나.....흥미롭군.”

“확실히 기이한 몬스터군요.”

릴리아나는 그 몬스터를 자신의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해부할 생각인가….

그 후에도 종종 튀어나오는 몬스터를 처리하면서 우리는 점점 깊숙이 들어갔다.

동굴은 마치 개미굴과 비슷했다.

길 잃기 딱 좋은 구조였다.

“이거 되돌아갈 수 있나?”

단순한 길이 아니다.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제없어.”

아일라가 말했다.

머리가 좋은 건지.아니면 엘프 레인저라고 했으니 뭔가 길 찾을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녀를 믿고 더 깊은 곳으로 전진했다.

다른 모험가 파티도 만났다.

다른 동굴과 이어져 있는 건가?

아니면 우리보다 먼저 들어온 파티인 건지.

그들 중 오러나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인간은 없었다.

우리의 행색을 보고, (정확히는 릴리아나의 행색이다.) 괴이한 표정을 짓더니 눈치를 보면서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이 험한 곳에서 검은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인간이 있으니 이상하게 생각할만했다.

깊게 들어갈수록 덤벼드는 몬스터의 숫자는 많아졌다.

그리고 작은 공동에서 몬스터들에게 공격받는 파티를 하나 발견했다.

-딱. 딱.

나도 처음 보는 생소한 몬스터였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안광.

머리가 커서 언뜻 보기엔 어린아이처럼 생겼다.

하지만 입이 괴이할 정도로 쭉 찢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톱날과 같은 날카로운 이빨이 주 무기인 듯했다.

2남 1녀.

원래는 4명이었던 거 같은데….

동료 하나는 이미 바닥에 반쯤 뜯어먹혀 굴러다니는 게 보였다.

남자 두 명은 검과 창을 무기로 몬스터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여자는 로브를 입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것이 마법사 같아 보였다.차분히 뒤로 묶은 검은 머리.

자세히 살펴보니 얼굴도 예쁘고 귀엽게 생긴 3서클 마법사였다.

남자 놈들과 어울리지 않는 고급인재였다.

“크아악!!”

“찰스 형님!!”

찰스라 불린 사내의 허벅지에 몬스터가 달라붙었다.

-서걱.

젊은 남자가 재빨리 찰스의 허벅지에 붙은 몬스터의 목을 쳤다. 목이 잘려 몸은 떨어졌지만, 여전히 몬스터의 머리는 그의 허벅지에 달라붙어 있었다.

“크윽!”

찰스는 힘겹게 달라붙어 있는 몬스터 머리를 떼어냈다. 그 자리엔 살이 한 움큼 파여있었다.

마법사 여자는 그것을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마나를 다 쓴 건가?’

그때 우리를 발견한 젊은 남자가 절실한 눈빛으로 소리쳤다.

“제, 제발 도와주십시오!!”

그 소리에 파티 멤버들이 나를 쳐다본다.

아일라와 루나는 그들이 인간이기에 별 감흥이 없는 거 같았고.마리나 릴리아나도 내 의향을 물어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허접한 놈들이긴 하지만.

남자 놈들은 몰라도 저 여자 마법사는 여기서 죽기에는 아까운 인재였다.

그녀를 도와주기로 했다.

손을 뻗어 주문을 외웠다.

“그래비티.”

내 주문에 열댓 마리 정도 되는 몬스터 놈들이 공중에 떠오른다.

놈들은 공중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버둥거렸다.

주먹을 움켜쥐자 놈들이 한 덩어리로 뭉쳤다.

왼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 끝에 자그마한 마력 구슬이 생성됐다.

밀폐된 동굴이다.

생매장당하고 싶지 않으면 위력을 잘 조절해야 했다

“익스플로전.”

지팡이 끝에서 날아간 작은 익스플로전이 공중에 뭉쳐있는 놈들에게 부딪히더니 터졌다.

-펑!

몬스터들이 한꺼번에 산산조각이 났다.

-후드득!

익스플로전에 터진 몬스터의 피와 살점이 내가 구해준 파티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난데없이 몬스터의 피와 살점을 뒤집어쓴 인간들은 얼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으엑~ 지저분하게 뭐 하는 거야.”

그 모습을 아일라가 핀잔을 줬지만, 나는 그들의 목숨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할 일을 했다. 그들이 더러워지는 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나는 자신의 마법의 위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역시 아이템빨은 중요했다.

전보다 진일보한 마법이 매끄럽게 이어지니 만족스러웠다

“훗.”

“뭐가 ‘훗’이냐. 무식한 염동력을 사용하면서 그래비티라고 하지 않나 온갖 똥폼은 다잡는구나.”

릴리아나의 귀여운 투정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기만 하면 된다.

바닥에 반짝이는 뭔가 보였다.

크기로 보면 F급 마석이다.

그것을 염동력으로 띄워서 가져왔다.

“열댓 마리는 넘게 잡은 거 같은데 운도 없군. 겨우 하나라니.”

“음? 몬스터 몸속에 마정석이 있다더니 그걸 말한 거구나. 신기하긴 하구나.”

마석을 본 릴리아나가 말했다.

내가 구해준 파티의 시선이 마석으로 쏠려있었다.

“설마....이걸 네 녀석들 거라고 주장할 셈인가?”

“아, 아닙니다.”

내가 구해준 젊은 남자가 급하게 부정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갑자기 내게 무릎을 꿇었다.

“저희를 구해주십시오!!”

“응? 구해줬잖아.”

“면목 없지만, 저희는 이제 미궁을 나갈만한 힘이 없습니다. 내버려 두고 가신다면 저희는 결국 몬스터의 밥이 될 겁니다.”

그들을 둘러봤다.

이 젊은 남자와 마법사 여자는 멀쩡해 보였지만, 찰스란 사내는 다리에 상당한 상처를 입었다.

여자 마법사도 마나가 고갈돼 아마도 전투 능력이 없을 거다. 결론은 이 젊은 남자 혼자 둘을 책임지고 미궁 밖으로 나가야 한다.

여자 마법사도 젊은 남자 옆으로 와서 내게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려요.”

그녀의 목 아래쪽 늘어진 로브 사이로 풍만한 가슴이 보였다.

내가 터트린 몬스터 때문에 피로 물들어 있긴 했지만, 얼굴도 예뻤다.

이런 미궁에서 죽기에는 아까운 미모였다.

“......자비를 베풀어주지.”

“가, 감사합니다.”

어차피 허접한 몬스터만 있는 미궁 1층에서 더 볼 건 없었다.

볼 만큼 봤으니 오늘은 슬슬 돌아갈 생각이었다.

*

*

*

“후욱! 후욱! 크흑!!”

사내놈의 기분 나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녀석은 질질 짜고 있었다.

둘 다 듣기 싫은 소리였다.

둘 중 하나만 하라고.

젊은 놈은 자기를 앨버트라고 소개했다.

녀석은 다리를 다친 파티 동료 찰스를 업고 힘겹게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죽은 동료 때문인지 눈물도 질질 짜면서.

덕분에 그들의 분위기는 축 처져있었다.

그렇다고 도와줄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고.

-철푸덕.

시무룩하니 뒤를 따라오던 여자 마법사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아악!”

“에, 에일린! 괜찮아?””

“바, 발목이….”

앨버트가 급히 에일린의 발목 상태를 살펴본다.

“휴. 다행히 부러지진 않은 거 같아. 걸을 수 있겠어?”

“윽! 거, 걸어볼게.”

에일린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것이 영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앨버트도 에일린의 얼굴은 보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당황할만했다.

그 잠깐 사이에 짐 덩어리가 하나 더 생겼으니.

곤란해하는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였다.

“크흠. 곤란한 모양이군. 어떤가. 내가 그녀를 업어주지.”

“괘, 괜찮으시겠습니까?”

“문제없다. 그녀만 동의 한다면.”

“앨버트...나, 난....앨, 앨버트가...”

그녀는 내게 업히는 게 썩 내키지 않는 듯했다.

앨버트에게 업히고 싶은 거 같았다.

하지만 그의 등은 하나다.

설마.....에일린...나한테 냄새나는 사내를 업으라는 소린가?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군.

“뭐.....나도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녀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냥 가지.”

“에일린! 지금 어리광 부릴 때야!? 운호 님이 도와주신다는데!”

내 호의를 거절한 에일린은 앨버트에게 혼쭐이나 찔끔했다.

“운호 님! 죄송합니다! 에일린을 업어주신다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에일린! 어서 운호 님에게 업혀!”

“죄, 죄송합니다.”

앨버트에게 혼난 에일린이 주춤주춤 내게 사과하며 다가왔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기꺼이 등을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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