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의 주차 공간도 널찍한 거 같았고 부대시설도 상당히 신경을 쓴 거 같았다.
“마스터, 제, 제가 이렇게 좋은 곳에 묵어도 될지….”
마부에 불과한 마리에게 우리와 비슷한 급의 객실 잡아준 건 상당한 대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는 내 사람이다.
내 여자기도 했으니 신경을 써줄 필요가 있었다.
“오면서 고생했으니 신경 쓰지 마라.”
“감사합니다. 마스터.”
송구스러워하는 마리의 엉덩이를 토닥여 줬다.
호텔 식당에 모여 가볍게 식사를 하며 다음에 할 일을 이야기했다.
“슬러버 미궁에 들어갈 사람은......아일라와 루나는 들어갈 테고 릴리아나 넌 어쩔 거지?”
“글쎄다.....흠....게임은 안에서도 할 수 있으니....나도 슬러버 미궁이라는 곳이 궁금하기는 하군. 한번 구경이나 해볼까?”
“마스터. 저도 들어가면 안 되겠습니까?마리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너도?”
“다른 분들에 비해 부족하지만, 마스터와 떨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짐꾼이라도 괜찮으니 데려가 주십시오.”
이곳에도 미궁을 들락이는 모험가나 용병들이 데리고 다니는 짐꾼이라는 직업이 있는 거 같았다.
몬스터를 사냥하는데 짐꾼이 있으면 당연히 편하다.
게다가 인권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세상이다.
짐꾼 생활이 얼마나 지독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인벤토리가 있다.
짐꾼은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나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하는 마리의 그 모습은 기특했다.
그녀도 내 여자다.저렇게 원하는데 못 데려갈 건 없었다.
어차피 일단 처음은 입구 근처만 가볍게 둘러보고 돌아올 생각이기도 했다.
“오늘은 쉬고 그러면 내일 다 같이 모험가 협회에 가보도록 하지. 듣기로는 그곳에서 미궁 출입증을 발급해 준다더군.”
슬러버 미궁에 들어가려면 준비를 해야 한다.
일단은 미궁 출입증이 있어야 했다.
미궁은 마법사나 기사라는 신분도 소용이 없었다.
그나마 우리는 낫다.
일반인들은 도시로 들어올 때 돈을 내고 미궁 출입도 돈이 필요하다.
이중 과금이었다.
귀족이 그나마 예외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려면 그들도 슬러버의 영주에게 허락받아야 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슬러버 미궁의 출입증 발급은 두 군데서 하고 있었다.
슬러버 미궁 모험가 협회.
그리고 용병 길드.
용병 길드 쪽은 배제했다.
왜냐하면 용병 길드는 허접한 놈들의 모임이기 때문이었다.
이 세계 용병은 그냥 힘 좀 쓸 줄 아는 일반인이다.
이미지도 별로 좋지 않다.
돈만 주면 뭐든지 할 놈들.
그런 이미지다.
실제로 돈 때문에 도적으로 돌변하는 예도 종종 있다고 하니 마냥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용병에는 오러를 다룰 수 있는 용병이나 마법사가 거의 없었다.
찾아보면 없지는 않겠지만….
오러를 다룰 수가 있게 된다는 것.
그건 일반인은 넘볼 수 없는 초인이라는 걸 의미했다.
원래 세계의 각성자와 비슷했다.
신분 상승의 기회이기도 했다.
물론 오러를 다룬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나마 오러에 대한 비전이 있는 기사 가문이라면 조금은 낫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 오러를 다룬다는 건 어지간한 재능이 있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오러를 다룰 수 있는 인간은 어느 영지든지 일정 기간 계약을 대가로 기사 자격을 준다고 한다.기사 자격을 얻는다면 이미 준 귀족이다.
그리고 그저 단순히 오러를 다루는 것을 넘어, 소드 오러까지 쓸 줄 안다면 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계약이 끝난 그다음은 선택이다.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 영지의 기사가 되는 길도 있고.
아니면 자유 기사가 되는 방법도 있다.
그러니 굳이 오러를 다루는 인간이, 기사를 마다하고 용병을 할 이유가 없었다.
기사보다 더 되기 힘들다는 마법사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모험가는 좀 달랐다.
모험가는 원래 그 숫자가 많지 않았다.
보통은 귀족의 지원을 받아 오지나 던전을 탐험해 신기한 물건을 찾는 인간들을 말했다.
실속이 그렇게 좋진 않았다.
귀족의 후원을 받는다는 게 쉽지도 않고.
그런 면에서 엄밀히 말하면 에르푸의 엘프 사냥꾼들도 모험가에 가깝다고 할 수가 있었다.
엘프도 희귀한 물건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병과 비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숫자가 적었다.
하지만 이 슬러버에서만큼은 달랐다.
슬러버 미궁이 생기면서 이곳에 수많은 모험가가 이곳으로 몰렸다.
10년이 넘게 정복되지 않는 미궁.
쏟아지는 마석.
귀족과 모험가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요소였다.
원래는 모험가 협회 같은 건 없었다.
오직 이 슬러버 미궁만을 위한 모험가 파티가 만들어지기도 할 정도로 모험가가 많아지다 보니 생긴 거다.
모험가는 당연히 용병보다 이미지가 나쁘진 않았고.
귀족조차 모험가로 등록하고 활동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귀족들이 관여한 파티는 보통 상당한 능력자들로 구성되어 마법사나 기사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마디로 용병과 비교하면 모험가는 그나마 고급 이미지라는 거다.
*
*
*
다음날.날이 밝자 우리는 모험가 협회로 향했다.
미궁 모험가 협회는 커다란 4층짜리 건물이었다.
건물 앞 작은 광장.
그곳에는 무장을 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모험가들인 거 같았다.
모험가 협회 건물 앞에 마차를 세우고 우리는 하나둘 마차에서 내렸다.
마차에서 내리는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여기까지 오면서 질리도록 느낀 익숙한 일이기에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미궁 모험가 협회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리며 스피커의 볼륨을 줄인 듯 잠깐 조용해졌다가 커졌다.
이쪽도 무장한 인간들이 꽤 보였다.
(저건 또 뭐야.....존나큰데....기사야....마법사야?)
(......뒤에 귀족으로 보이는 여자도 보이고 저 커다란 놈 빼고는 희한하게 죄다 여자군.....귀족 나들이 파티인가?)
(차려입은 건 마법사 같은데 눈빛 한번 살벌하구먼......마법사 맞아?)
-웅성웅성.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으며 미궁 출입증 발급 창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구직원은 젊은 여자였다.
“미궁 출입증이 필요하다.”
“모험가로 등록하시겠습니까? 그러면 1골드의 할인이 가능합니다.”
“모험가?”
“예! 미궁에 관련된 의뢰를 받아 해결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모험가라....굳이 할 필요 있나?
딱히 이 짓으로 먹고살 생각은 없었다.
“그 의뢰라는 건 꼭 받아야 하나?”
“받지 않아도 상관은 없습니다만.....그냥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보다 의뢰와 같이하는 게 이득이지 않을까요?”
들어보니 그건 그랬다.
사냥하며 겸사겸사 의뢰를 수행한다면 일거양득이기는 했다.
미궁 출입증 가격도 깎아주고.
의뢰의 강제성도 없다.
손해 볼 것이 없었다.
“모험가로 등록하시겠습니까?”
“부탁하지.”
창구 여직원은 릴리아나마저 모험가로 등록하자 조금 놀란 듯했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구경하러 온 귀족 후원자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귀족이 모험가로 등록하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누가 봐도 귀족 영애로 보이는 옷차림을 하고 있으니 희귀하게 생각할만했다.
귀족의 기행 정로도 생각하지 않을까.
모험가들의 의뢰라는 것도 살펴봤다.
몬스터 부산물이 주를 이뤘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있었지만, 미궁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들 같았다.
‘이거 헌터랑 비슷한데….’
아직은 뭣도 모르는 상태니 아직 의뢰받을 생각은 없었다.우리는 모험가 등록과 미궁 출입증을 발급받고 바로 슬러버 미궁으로 향했다.
*
*
*
슬러버 미궁은 도시의 중간쯤에 자리 잡고 있었다.
원래는 중간이 아니었지만도시가 미궁을 중심으로 커지면서 그렇게 됐다고 들었다.
마리가 마차를 미궁으로 몰았다.
어엿한 모험가 파티가 되었으니 미궁을 공략할 때였다.
도시 안의 성벽.
생소한 풍경이 나타났다.
그 성벽을 지나자 조금 지반이 낮은 분지의 중앙에 커다란 원형의 건물 하나가 보였다.
성벽은 그 건물을 중심으로 분지를 둘러 세워져 있었다.
‘‘미궁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올 걸 대비한 건가?’
그게 아니라면 굳이 미궁을 둘러싸고 성벽을 세울 이유가 없어 보였다.
건물 입구로 보이는 곳은 인간들이 바글바글했다.
무장을 한 사람들이 입구의 병사에게 출입증을 보여주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도 마차관리소에 마차를 맡기고 건물 입구로 향했다.
출입증을 검사하는 병사가 나와 릴리아나를 볼 때 흠칫하기는 했지만, 전원 무난하게 통과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이 많은 건 둘째치고.
건물 외벽을 따라 각종 상점이 들어서 있어 쇼핑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미궁 1층은 지하에 있습니다. 심층의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실 분들은 건물 2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중앙 데스크의 예쁘장한 안내원이 모험가들에게 길 안내를 하고 있었다.
“오호. 텔레포트 마법진까지 있다니 꽤 공을 들인 거 같구나.”
릴리아나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미궁의 규모가 괴이할 정도로 크다고 하더니 텔레포트 마법진까지 설치한 거 같았다.
첫날이다.
계획대로 가볍게 1층부터 탐방하기로 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수많은 기둥이 세워져 있는 넓은 공간이 나타나고 벽을 따라 수많은 동굴이 뚫려있었다.
지하로 내려온 사냥 파티들이 하나둘 그 동굴 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들어가는 사람들의 장비나 마력 상태를 보면 미궁 1층은 게임으로 치면 초보 사냥터인 거 같았다.
우리도 그중 하나를 골라 거침없이 들어갔다.
빛 하나 없는 어두운 동굴이 우리를 반겼다.
루나가 라이트 마법을 띄웠다.
음침한 동굴을 한동안 걷자.
기분 좋은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떴다.
<어비스 침식 미궁에 진입했습니다.>
<퀘스트 완료.>
<스킬 포인트 10을 획득.>
<파티 생성 스킬 획득.>
<영웅소환 확정권 1장 획득.>
<새로운 퀘스트.>
<퀘스트: 미궁 안의 침식체를 처리하세요.>
<중급 침식체 처리: 스킬포인트 1>
<상급 침식체 처리: 스킬 포인트 5>
<최상급 침식체 처리: 스킬 포인트 10>
<초월체 처리 보상: ??>
<어비스 침식 미궁의 침식체들은 추가 경험치가 있습니다.>
정신없이 길게 늘어지는 메시지.
새로 받은 퀘스트가 좀비 세계랑 비슷하긴 한데....하급 침식체 퀘스트는 어디로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