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인간은 수명이 짧죠....그때의 이야기는 이미 전설처럼 전해질 정도로 그들에게는 긴 시간이에요.”
난 이쪽 세계의 인간이 아니니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겠지?
"그래서 그걸 확인해 보고 싶다고….”
진지한 눈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들의 입가에는 불고기버거의 갈색 소스가 묻어있었다.
*
*
*
“의뢰를 맡아 주지."
나는 그녀들의 정의감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잠깐 딴 길로 새기로 했다.
나야 원래는 그냥 무시하고 갈 생각이었지만.
촌장에게 생색을 냈다.
“가, 감사합니다."
촌장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현했다.
“마을 동쪽 길을 따라 가면 저택이 하나 나옵니다."
“거기에 마녀가 있다고?"
“네.”
저택에서 사는 마녀라….
우리는 촌장의 말을 듣고 마녀의 저택으로 향했다.
양옆으로 깔끔하게 늘어서 숲과 어이없게도 놀랍게 잘 정돈된 길이 보였다.
바닥은 현대의 보도블록 뺨치게 잘 만들어놨다. 아니, 오히려 이 자연스러운 돌바닥의 모습이 더 나아 보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걸었으면 잘 만들어진 산책로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돌길을 따라 1시간쯤 걸었을까.
촌장이 말한 데로 거대한 저택이 나왔다.
마녀가 산다기에는 지나치게 깨끗하고 커다란 저택이었다. 허름한 마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저택이기도 했다.
깔끔한 돌담.
그리고 그 너머 보이는 아름다운 정원.
그 정원 가운데 맑은 물이 뿜어져 나오는 분수까지...누가 보더라도 평상시 꾸준히 관리하는 정원이었다.
사악한 마녀가 아니라.
그냥 고위 귀족이 살법한 대저택으로 보였다.
“이게.....마녀가 사는 집이라고?"
“마기는 느껴지지 않네요.”
예상을 벗어난 광경에 루나도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그 아름다운 정원을 지나 저택의 거대한 현관문에 섰다.
'촌장 놈 구라친 건가? 아니면 우리가 잘못 온 건가. 다른 길이 있나?'
감각을 열고 저택 안쪽을 살펴봤다.
하지만 무엇인가에 막힌 듯 안쪽의 정보를 감지할 수 없었다.
마치....그 괴물 장수말벌들의 둥지와 같았다.
'수상하긴 하군.'
문을 두드리라고 걸려있는 고리를 잡고 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텅. 텅.
"......"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 무슨 일이지?
어디선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녀치고는 의외로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메시지 마법 같네요.”
루나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데....어디선가 보고 있는 건가?
“이곳이 마녀가 산다는 곳인가?"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음…? 또 애송이 모험가들인가? 마녀라는 말은 놈들이 멋대로 붙인 거지. 난 이 저택의 주인이다. 목숨이 아깝다면 들어오지 마라. 경고는 한 번뿐이다.
“네가 사악한 마법의 재물로 사람들을 잡아가는 마녀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니다.
"아니라고?"
-그 버릇없는 놈들이 멋대로 날 잡는다고 찾아와 잡힌 거지.
아니라고는 했지만, 촌장이 말한 마녀가 그녀라는 것을 증명하는 말과 같았다.
그녀의 말은 촌장 놈의 하소연과 조금 다르긴 했다.
아니면 이 마녀가 거짓말을 하는 건가...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었다.
우리가 확인해 볼 것은 그게 아니었으니….
“너는 흑마법사인가?"
중요한 건 그녀가 흑마법을 사용하는지에 대한 여부였다.
-아니다.
“아니라는데?"
어깨를 으쓱이며 엘프들을 바라봤다.
"확인해봐야 해요."
"맞아. 그냥 그녀의 말만 믿고 그냥 돌아갈 순 없지.”
아일라와 루나는 물러설 기색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는군. 안에 들어가도 되겠나?”
-안돼.
그녀의 대답에는 불쾌함이 섞여 있었다.
마녀는 우리를 저택 안으로 들이는 게 상당히 싫은 모양이었다.
"잠깐만 시간을 내주면 되지 않나? 아니면 네가 나오던가."
-내가 왜? 그런 짓을 해줘야 하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돌아가라.
정의감에 불타는 엘프들이 순순히 마녀의 말을 들을 리는 없었다.
나도 당연히 마녀보다는 애인의 편이었고.
"미안하지만....우리도 이대로 돌아갈 순 없군.”
고급스럽고 그 커다란 문에 손을 대고 밀었다.
예상외로 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우리는 거침없이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그림에 그린 듯한 대저택의 화려한 홀이 우리를 반겼다.
-그래도 예의 있는 놈들이라고 생각했거늘. 기어코 나를 화나게 하는군.
마녀의 그 말과 함께 사위가 어둠에 잠겼다.
*
*
*
나는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위아래, 앞뒤를 봐도 온통 시커먼 어둠뿐이었다.
같이 왔던 아일라와 루나가 보이지 않았다.
저택 안에 들어서자마자 이 꼴이다.
감각을 열고 주변을 살펴봤다.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었다.
그저 어둠 속에 있으니 감각을 차단당한 건지 진짜 아무것도 없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너무 만만하게 봤나?'
가만히 있는 것도 성미에 맞지 않았다.
일단 걸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고 걸리는 것도 없었다.
걷다가 이번에는 빠르게 달렸다.
웬만한 자동차는 엄두도 못 낼 만한 속도였다. 상당한 거리를 달렸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끝이 있는지 없는지.
빙빙 돌고 있는 건 아닌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곤란하군.'
위기감이나 그런 건 느껴지지 않았지만....
나와 떨어진 아일라와 루나가 조금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차원이나 공간 같은 곳에 갇힌 건가?'
이동하는 건 별 의미가 없는 거 같았다.
마력창을 만들어 힘껏 던졌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마력창.
기다려봐도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유일한 반응이 있을 만한 곳을 생각해냈다.
'........이거라면.….?'
인벤토리에서 거대한 해머를 꺼내 들었다.
이 어둠 속에 유일하게 나와 상호작용을 하고 있던 곳이 있다.
해머를 마력으로 감싸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
-쾅!!
굉음이 이 어둠 속에 싸인 공간에 울려 퍼졌다.
바닥은 이 어두운 공간에서 유일하게 두드릴 수 있는 곳이다. 효과가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단 두드려 보기로 했다
어차피 이 짓 말고 할 것도 없다.
-쾅! 쾅!
한동안 바닥을 두드리고 있으니.
“그만해라. 네가 아무리 두들겨봐야 의미 없다.”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이 아무것도 없는 답답한 공간에 마녀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마녀는 어둠 속에서 스르르 모습을 드러냈다.
무표정한 얼굴.
검은색에 가까운 진한 자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눈이 돌아갈 만한 상당한 미녀였다.
그녀는 검은색 일색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넓은 챙에 베일을 두른 검은 모자.
검은 드레스.
이 어두운 곳에 쓸데없어 보이는 신비한 문양이 새겨진 검은 양산.
그 양산을 쥐고 있는 검은 장갑을 낀 손까지….
완벽했다.
"양갓집 규수 같기도 하고.
해외의 고풍스러운 장례식 복장 같기도 했다.
'검은색을 좋아하는 게 마녀답다고 해야 하나?'
<155화>릴리아나
"이상한 존재로군....외형은 인간과 비슷한데....인간이라고 볼 수 없고.....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어."
"네가 마녀인가?"
“마녀라니. 하여간 버릇없는 놈들은....릴리아나 님이라고 불러라.”
그녀가 도도한 얼굴로 말했다.
“크홈, 함부로 집에 들어온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무단 침입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먼저 사과했다.
무엇보다 그녀가 예쁘니까 말이 부드럽게 나왔다.
“이제 와서 늦었다.”
“나와 함께 들어온 여자들은 어디 있지?"
“네 엘프 동료들 말인가? 당연히 잡혔지. 엘프라니 모처럼 좋은 연구 소재가 들어왔어."
"그녀들을 풀어줘라."
"내가 왜?"
“그녀들을 풀어준다면 얌전히 돌아가겠다."
이 공간 때문인지 몇 서클인지도 탐지도 되지 않는다.
인질도 잡혀있으니....
일단 협상을 시도했다.
“어처구니없군....무릎 꿇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그런 당당한 요구라니....무슨 자신감인 줄 모르겠군. 네가 그런 말을 할 처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