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공간 아닌가요?”
“뭐.....그렇지. 마법사 처음 봐?”
거대한 체구와 누가 봐도 전사의 갑옷을 입고 마법사라고 하니 황당하긴 할 테지만, 나는 마법사로 활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생각해보니 어중간한 전사보다 아무래도 마법사가 대우는 좋을 거 같았다.
그리고 내 특이한 능력도 있으니 마법사 쪽이 아무래도 좋은 선택이었다.
“마..법사라고요? 마나의 유동은 느껴지지 않았는데...그리고 보통 그런 잡다한 물건을 넣고 다니지 않는다고요.”
“나만의 독문 마법이라 그래.”
대충 대답해 줬다.
“그.....렇군요….”
수긍하는듯하더니 자기들끼리 모여 수군거린다.
(궤를 달리하는 마법이군요.)
(역시 그렇지요? 저런 전신 갑옷을 입고 마법사라니 수상하군요.)
(아마도 저 갑옷은 마법 아티펙트일 거야.)
(아일라, 그걸 어떻게 알았죠?)
(그, 그건....저, 전에 싸울 때 봐, 봤어.)
아일라가 얼굴을 붉히며 얼버무렸다.
‘다 들리는데 말이지.’
싸울 때가 아니고 아일라는 나한테 처녀를 바칠 때 갑옷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을 봤다.
그래도 여성의 비밀은 지켜줘야 하는 법.
모르는 척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인벤토리에서 버너를 꺼내 불판을 올리고 삼겹살을 구웠다.
원래 귀찮아서 이렇게 해 먹진 않지만 귀여운 이 세계 엘프들에게 K 삼겹살의 맛을 보여줄 때였다.
그녀들이.......고기를 안 먹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나 혼자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다.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특이한 물건들이군요. 요리할 때 쓰는 건가요? 그게 무슨 고기죠?”
고기 냄새에 프리실라가 걸려들었다.
“돼지고기.”
“인간들이 기르는 가축을 말하는 거군요. 먹어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요리해 먹는 건 처음 보네요.”
이곳에도 돼지가 있는 거 같았다.
“특이하네요. 고기를 채소에 싸서 먹는 건가요?”
내가 깻잎에 삼겹살과 쌈장, 파무침을 함께 싸 먹는 걸 보더니 묻는다.
“그렇지. 어때 먹어볼 텐가?”
“네.”
프리실라는 호기심이 많아 보였다.
내가 깻잎에 쌈을 싸서 그녀에게 건네줬다.
그때 아일라가 막았다.
“프리실라 님. 조심성이 없어도 너무 없네. 안에 뭐가 들어있을지 알고 덥석 먹으려는 거야.”
“운호 님이 그럴 분으로 보이진 않아요.”
“그래도 조심해야지. 내가 먼저 먹어볼게. 이상 있으면 바로 저 녀석을 쳐 죽여.”
아일라는 내 앞에서 살벌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리고 내게 손을 내민다.
“쌈을 달라는 건가?”
“그래. 내가 먹어보고 괜찮은지 봐야겠어.”
나는 그녀가 내민 손을 바라보며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뭐야?”
내 그 제스처에 아일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
“하?”
“아~ 해야지….”
“내, 내가 왜!!”
내가 말하는 의도를 깨달은 아일라가 얼굴을 붉힌다. 미친년이라도 얼굴이 이쁘니 귀엽다.
“대신 먹어본다면서.”
“그, 그건....그냥 손으로 주라고!!”
“싫은데?”
내 거절에 아일라가 안절부절못한다.
“아일라, 내가 대신 먹어볼게.”
은발의 엘프 루나가 나섰다.
“아니야! 내, 내가 할게. 아, 아….”
부끄러워하며 입을 벌리는 그녀에게 쌈을 넣어줬다.
-우물. 우물.
맛을 본 그녀의 눈이 커진다.
그것은 입맛에 맞는다는 긍정의 신호였다.
“어, 어때요? 아일라.”
프리실라가 궁금한 듯 물었다.
“마, 맛....크흠...괘, 괜찮은 거 같아. 프리실라 님.”
외국인은 깻잎에 대한 불호가 있는 일도 있다고 했는데..엘프들은 괜찮은 모양이다.
프리실라와 루나의 입에도 쌈을 넣어줬다.
아기 새처럼 내가 싼 쌈을 받아먹는 모습이 귀엽다. 이때 아니면 언제 엘프에게 고기 쌈을 먹여보겠는가.
“나, 난 내가 싸 먹을 수 있다.”
아일라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어지간히 맛있었는지 그래도 안 먹는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마, 맛있어요! 이렇게 먹으니 고기를 먹는데도 상당히 프레쉬해요.”
“요리 방법은 간단한 거 같은데 굉장히 맛있네요.”
두 엘프의 리액션을 찍어서 너튜브에 올리면 백만 조회 수는 가볍게 넘지 않을까.
나는 이 세계에 와서도 이렇게 국격을 올리고 있었다.
나도 당연히 귀찮게 내가 계속 싸 먹여줄 수는 먹고 알아서 집어먹게 했다.
그녀들은 내가 하는 데로 삼겹살에 쌈장과 파채를 올리고 먹는다.
“마, 맛있군요! 이 소스는 뭐죠?”
“우리도 종종 이렇게 얇게 잘라서 구워 채소랑 싸 먹는 것도 좋겠어요.”
식사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설거지는 저희가 하겠어요.”
맛있게 삼겹살을 구워 먹고 개념 없는 아일라와 다르게 프리실라의 입에서 개념 있는 소리가 나왔다.
“이걸 쓰도록.”
“이게 뭐죠?”
“퐁퐁.”
“퐁퐁이요? 이름이 귀엽네요.”
“기름이 묻은 식기를 닦을 때 쓰는 거다.”
“그렇군요.”
“와! 냄새도 좋고 정말 기름이 잘 떨어지네요.”
냇가에서 쪼그리고 앉아 신나서 설거지하는 엘프들이 있었다.
퐁퐁으로 만들어진 하얀 거품들이 하류로 흘러간다.
엘프에게 손수 환경오염을 시키다니….
역시 인간이 문제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티 타임을 가졌다.
“이 차는 또 뭐죠?”
“커피믹스.”
엘프들이 커피믹스를 홀짝이고 있었다.
“향이 좋군요. 달콤하고....운호 님은 신기한 분이시네요. 저도 이곳저곳에서 많은 걸 봐왔다고 생각했는데 운호 님이 보여주시는 물품들은 다 처음 보는 것들이군요.”
나를 바라보는 프리실라와 엘프들의 눈이 의미심장하게 빛난다.
뭘 착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내 입으로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진실을 말해줄 생각도 없었다.
*
*
*
삼겹살을 먹인 이후로 나에 대한 경계가 한층 풀어졌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녀들에 대해 이것저것 알 수 있었다.
엘프는 여자밖에 없다는 사실.
참으로 바람직한 종족이었다.
그래서 인간 놈들이 환장하는 건가….
그녀들은 천년 정도 살고 생명의 나무에서 태어난다는 듯했다.
생명의 나무 위치는 그 누구도 모른다.
엘프조차도.
엘프는 그곳을 떠나면 점차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진다고 한다. 자신이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아련한 기억만이 남는다고.
이 세계에서는 상식인듯한 질문이었기에 그녀들이 날 보는 눈빛은 묘하게 변했다.
“내일이면 도착할 거 같네요.”
프리실라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쉽게도 그녀들과의 동행은 막바지였다.
그녀들과 마지막 야영을 준비했다.
“그동안 너무 받기만 한 거 같은데 이번에는 우리가 대접해 드릴게요.”
루나의 손에서 생성된 불이 장작에 옮겨붙었다.
그녀의 마력 패턴을 보면 나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멀린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괜찮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해 그녀에게 물었다.
“마법사였나?”
“루나는 마검사다.”
아일라가 자랑스레 말했다.
루나에게 물었는데 왜 자기가 자랑스러워하며 말하는지 모르겠지만......저렇게 말하는 거 보니 마검사라는 게 흔치는 않을 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두 개를 다 잘해야 한다는 거니 당연한 일이다.
프리실라는 정령사였고.
아일라는 원래 세계의 강화계 각성자들의 마력 흐름과 비슷했다.
“너는?”
“그, 그냥 레인저다….”
내 물음에 아일라가 조금 부끄러운 듯 목소리가 기어들어 간다. 활하고 단검을 착용한 그녀의 모습은 대충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아일라는 오러 익스퍼트에요.”
루나가 조금 자신감 없어 보이는 친구를 감싼다.
오러 익스퍼트라면 아마도 검기를 다루는 정도의 능력자라는 소리다.
검과 마법 두 개를 다할 수 있는 루나.
희귀한 정령술을 할 수 있는 프리실라.
둘에 비해 평범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마력 발현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강한 능력자다.
프리실라에게 마법서나 정령술에 대한 책을 구할 수 없냐고 했더니 엘프의 마법이나 정령술은 엘프만 배울 수 있단다. 그리고 외부인에게 줄 수는 없다고.
내가 고기를 좋아한다는 걸 배려해 작은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 온 루나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인간이에요.”
“인간!?”
아일라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벌떡 일어났다.
“노예 사냥꾼으로 보여요.”
엘프들 사이에 긴장감이 흐른다.
그러면서 나를 슬쩍 쳐다본다.
왜 나를 보는 거지….
“어떻게 할 거지?”
“죽인다!!”
내가 묻자 갑자기 야만인 모드가 된 아일라.
그녀는 무시하고 프리실라와 루나를 쳐다봤다.
아일라와 다르게 침착하지만, 그녀들의 그 두 눈은 조금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운호 님, 죄송합니다. 그들을 처리해야 할 거 같습니다.”
프리실라의 말은 아일라보다야 이성적이긴 했지만 결국 그들을 죽인다는 건 다를 게 없었다.
“그들 중에 마법사가 있나?”
루나에게 물었다.
“네.”
“따라가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