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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아저씨의 로그인 생활-142화 (142/259)

‘지독한 악몽이었나?’

아일라는 자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익숙한 얼굴이 침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긴 은발과 붉은 눈동자를 가진 엘프.

루나였다.

“루나….”

“아일라. 몸은 괜찮아?”

“어? 어….”

몸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다행이다. 걱정했는데….”

“걱정?”

아일라는 루나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루나가 안심했다는 듯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그 포옹의 의미를 깨달은 아일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서, 설마 그게 꿈이 아니었다고!?”

“아일라….”

현실을 부정하는 아일라의 모습에 루나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 그 인간 놈에게 범해진 게 꿈이 아니었다고!?”

아일라는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이를 갈며 루나에게 물었다.

“그놈은 어딨지!?”

“아일라, 진정해….”

“진정하라고?! 어떻게....내가 그 인간 놈에게 어떤 꼴을 당했는데!!”

“아일라, 그는 인간이 아니야.”

“이, 인간이 아니라고?!”

“인간이 고대 정령의 숲에서 어떻게 그렇게 지낼 수 있겠니?”

“그, 그건….”

확실히 그랬다.

외견은 그럴지 몰라도 나무의 정령들과 그렇게 뒤엉켜 교접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 수가 없었다.

“네가 그를 먼저 공격한 게 사실이니?”

“그, 그건....그놈이 먼저 인간이라고….”

“아일라, 그가 인간이라고 말했다고 그렇게 판단이 흐려지면 어떻게 하니. 그리고 모든 인간이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잖아.“

“아니야!! 인간은 모두 죽어야 해! 그 더러운 쓰레기들은!!”

“.......”

아일라의 인간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는 엘프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그리고 그 사정을 루나는 알고 있었다.

“그, 그놈은?!”

아일라는 루나에게 자신을 범한 사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마을로 돌아왔다 건 그놈에게서 구출됐다는 걸 의미했다.

“.......그는 고대 정령의 숲에 있어......우리는 그에게 부탁해 너를 데려온 거고….”

“부, 부탁했다고?”

루나의 부탁이라는 말에 아일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놈이 나를 내어 달라고 해서 쉽게 내어줄 거 같진 않았는데....놈에게 뭘 주기로 한 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냥 간단한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을 뿐이야.”

“간단한 요구?”

“그래 그는 자신을 숲 바깥으로 데려다주길 원해.”

“..........”

“그가 원한 건 그렇게 어려운 요구가 아니야. 그러니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누가 가지?”

“나하고....프리실라 님.”

“프, 프리실라 님이?”

“원래는 나 혼자 하려고 했는데 프리실라 님이 걱정된다고.....그의 정체가 궁금하신 것도 같고….”

아일라는 자신의 공격을 쉽게 받아내던 그 사내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프리실라는 고위 정령사다. 이 트리아라는 엘프 마을의 최고 전력이기도 했다.

그녀가 같이 간다는 건 그 정도가 아니면 그 사내와 무슨 일이 있을 때 대처가 힘들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강하다고 생각했지만....프리실라 님이 나설 정도라니.’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아일라는 둘에게 맡겨두고 마을에 얌전히 있을 수 없었다.

“.........나도 가겠어.”

“아일라….”

“그렇게 불쌍하게 보지 마. 그까짓 몸 좀 내준 게 뭐라고. 난 아무렇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놈이 인간인지 아닌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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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엘프들이 무개념 금발 엘프를 데리고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들이 찾아왔다.

‘셋이나….’

겨우 길잡이 하는데….

이유야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이해하지만….’

나름 미녀한테는 매너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미덥지 않은 건가.

그리고 의외이면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화려한 금발의 포니테일.

날카로운 눈매.

한동안 열심히 붙들고 허리를 흔들었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떡정이라도 들었는지 그래도 반갑다.

그녀들은 착 달라붙는 경장을 입고 있었다.

그 잘 빠진 몸매가 드러나 보기 좋았다.

역시 금발 엘프의 가슴이 가장 작았다.

작다고 해도 다른 엘프들과 비교해서 그런 거지 평균 크기 정도는 됐다.

“뭐야!! 그 기분 나쁜 시선은!

무개념 금발 엘프가 나를 노려보며 쏘아댔다.

여전히 굉장히 적대적인 시선이다.

그렇게 당했으니 이해는 했다.

그래봐야 나한테는 귀여울 뿐이다.

“왜 내 품이 그리워 다시 찾아왔나?”

“뭐?!”

-챙.

다짜고짜 칼을 뽑았다.

여전히 개념이 없었다.

“아, 아일라 진정해.”

은발의 엘프가 그녀를 말렸다.

“흠.....마음에 안 드는군.”

“예?”

리더로 보이는 푸른 머리카락의 엘프가 되묻는다.

“나를 죽이려 한 여자가 안내인으로 포함되어있다니.”

“뭐?!”

아일라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저거 봐라. 가는 동안 내 목숨이 무서워서 같이 갈 수 있겠나. 엘프들은 원래 이렇게 무신경한 건가….”

“그, 그건….”

프리실라라고 불리는 푸른 머리카락의 엘프가 안절부절못한다.

“네가 나한테 한 짓은 생각하지 않고?!”

“네가 다짜고짜 칼을 휘두르지 않았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지.”

“이, 이익!!”

“후....아일라....마을로 돌아가셔야 할 거 같아요.”

청발의 엘프가 조금 엄한 소리로 말을 하자 아일라가 당황한다.

“큭. 프리실라 님....저놈이 먼저….”

“그래. 돌아가라. 돌아가.”

내가 깐족거리자 아일라가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본다.

“아일라, 돌아가는 좋지 않겠어?”

루나라는 엘프가 아일라가 안쓰러운 듯 타일렀다.

“어, 어떻게 하면….”

“응?”

“어, 어떻게 하면 내가 함께 갈 수 있지!!”

이쯤 되면 더러워서라도 포기하고 돌아갈 만한데 아일라는 포기할 생각이 없는듯했다.

그린라이트?......는 아니겠지.

그래도 넓은 사내의 마음을 보여줄 때다.

“흠...나는 마음이 넓다.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면 못 받아줄 것도 없지.”

내 그 말에 그녀는 욕이 튀어나오려고 한 거 같지만....이를 악물고 참는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 그동안 제 무례한 행동을 사과드립니다….”

사과하는 그녀의 머리를 툭툭 쳐주면서 말했다.

“후.....이렇게 사과하니 마음이 약해지는군. 진작 이렇게 문명인의 모습을 보였으면 서로 좋지 않았나. 잘하자....잘할 수 있지?”

이렇게 쉽게 용서해 주다니....난 미녀에게 마음이 너무 약해서 탈이다.

“........”

“대답은?”

그녀의 머리에 얹은 손에 부들부들 진동이 느껴졌다.

“까득...........아, 알겠습니다.”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지만...그 정도는 너그럽게 봐주기로 했다.

연두와는 또 한 번의 작별 인사를 했다.

“또 올 테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연두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이번에는 그렇게 금방은 아니겠지만….’

전에는 저 아일라라는 금발 엘프 때문에 작별 인사를 하고 바로 돌아가는 바람에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연두야 내가 다시 돌아온 것이 순수하게 마냥 기쁜 기색이었지만.

그 당시 나는 조금 민망했다.

“뭘 봐?”

깡패도 아니고….

아일라가 내 시선을 받고 조금 전의 일을 잊은 건지 그새 싹수없이 입을 놀린다.

한 번 더 찐득하게 눌러줘야 하나.

*

*

*

이동 방향은 남쪽이었다.

“얼마나 걸리지?”

“4일은 걸릴 거예요.”

이동속도는 느리지 않았다.

아니, 평범한 인간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다.

‘그런데 이 속도로 4일이라….’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엘프와 함께하는 시간으로는 짧은 감이 있다.

엘프와의 여행은 판타지의 로망이다.

이번 로망은 변심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앞에 있는 그녀들의 탱탱한 엉덩이가 그 결심을 단단히 굳혔다.

옆에서 무개념 금발...아니 아일라가 도끼눈을 뜬 채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주눅이 들 리는 없고 앞서가는 루나와 프리실라의 엉덩이를 느긋이 감상하며 뒤를 따랐다.

날이 저물었다.

물이 흐르는 냇가에 야영 준비를 했다.

내가 인벤토리에서 텐트와 야영 장비를 꺼내는 모습을 보고 프리실라가 그 하늘빛 눈동자에 이채를 띄었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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