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올리비아가 만찬 준비가 됐다고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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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 파티는 활주로가 보이는 화려한 선상 2층에서 했다.
파티장에 들어서자 오라클이 다가와 우리를 안내해 줬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서빙을 하는 선원들 뿐만이 아니었다.
오라클에게 물어보니 가디언즈 스폰서들이란다.
“이쪽은 이 함선의 선장을 맡은 데이비드 버몬트 씨예요.”
“드래곤 슬레이어 박운호 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시커먼 중년 남자였다.
당연히 내 관심을 끌 수 없었다.
그 외에도 오라클은 나를 안내하며 여러 사람을 소개해줬지만, 미녀도 아니고 대충 흘려들었다.
지루했지만 오라클이 이쁘장하게 생겼기에 참을 만했다.
“이분은 아시죠? 엘라 님이에요.”
드디어 좀 관심이 생기는 인물이 나타났다.
그녀의 뒤로는 여자 수행원이 두 명 서 있었다.
화려한 긴 백금발을 가진 차가운 인상의 미녀.
내가 나타나기 전 최단기간인 2년 만에 S급을 달성한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미국의 히어로.
눈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엘라였다.
깔끔하게 달라붙은 옅은 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상당히 잘 어울렸다.
그녀는 실물이 더 예뻤다.
앨리스 말처럼 엘라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엘라.”
자기소개치고 말이 좀 짧았지만 난 미녀에게는 관대했다.
“박운호.”
서로 너무나도 담백한 통성명.
“........”
“........”
서로의 눈이 한동안 마주쳤다.
유난히 맑은 푸른 눈은 오래 봐도 질리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미녀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가 먼저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상당히 도도해 보였고 수다스러운 스타일은 아닌 거 같았다.
-후욱! 후욱!
어디선가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앨리스였다.
‘괜찮은 건가….’
“저, 저기 사, 사인 좀….”
내 옆에 있던 앨리스가 조심조심 쭈뼛쭈뼛 엘라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엘라의 태도로 봐서는 거절하지 않을까 했지만, 앨리스를 보고 잠깐 흠칫하더니 의외로 쉽게 사인을 해줬다.
“꿀꺽.....사, 사진도 찌...찍을 수 있을까요?”
그때 뒤에 있던 수행원인듯한 여자가 나섰다.
“죄송합니다. 사진은 좀….”
그 말을 듣고 앨리스의 표정이 눈에 띄게 쭈그러들었다.
그때 엘라가 수행원을 저지하고 나섰다.
“엘라 님?”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이례적인 일인 듯 수행원은 꽤 놀란듯했다.
내 동행이라는 건 알 테지만.
내 체면을 봐서....인 거 같지는 않았다.
“허헉! 허락해 주시는 건가요?”
엘라가 우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엘라 님이 사진을 찍어주다니 흔치 않은 경우에요. 저도 이 틈에 같이 사진 좀 찍어야겠어요.”
내 옆에 있던 오라클이 호들갑을 떨면서 앨리스와 엘라가 사진을 찍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히이!! 오라클 님까지!!”
앨리스가 두 사람의 사이에서 굉장히 행복해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예쁜 여자 세 명이 뭉쳐 사진을 찍고 있는 건 흐뭇한 광경이었다.
“저한테 사진 좀 보내줄 수 있죠?”
“무, 물론이죠.”
오라클의 부탁에 앨리스가 환하게 웃으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엘라가 옆의 수행원에게 조용히 뭐라 속삭였다. 그러자 수행원이 말했다.
“엘라 님도 찍은 사진을 보내주시길 원합니다.”
“무, 물론이죠!! 얼마나 잘 나왔는지 보실래요?”
앨리스는 신이 나서 자신이 찍은 사진을 그녀들에게 보여줬다.
“어? 어? 이, 이게 아닌데….”
그런데 왜인지 앨리스가 얼굴이 벌게져 당황하고 있었다.
“어머….”
오라클이 입을 가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걸 보고 있던 엘라와 수행원 여자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순간 예전에 내 빅 사이즈 페니스를 잡고 스마트폰으로 신이 나서 열심히 사진을 찍던 앨리스의 모습이 뇌리에 스쳤다.
열정적으로 귀두에 키스한다거나….
페니스 기둥에 볼을 비비며 사진을 찍던 앨리스.
‘.......홀리....몰리….’
당연히 이럴 땐 당황하는 것보다 모르는 척 무게를 잡는 게 답이었다.
솔직히 누구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사이즈도 아니었다.
난 당당할 자격이 있었다.
하얀 머리 소녀 오라클이 어울리지 않는 능글맞은 미소를 짓더니 내게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며 윙크했다.
반면에 나를 보는 엘라의 표정은 굉장히 혐오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오해 아닌 오해를 받는 거 같은데….
안타깝게도 엘라의 호감도가 상당히 떨어진 거 같았다.
사진을 유출? 한 앨리스는 땀을 뻘뻘 흘리며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앨리스 녀석은 있다가 방에 가서 아주 혼구녕을 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민망하고 냉랭한 공기가 흐르는 와중에 타이밍 좋게 그들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시대착오적인 의상을 입고 입장하는 인간들이 있었다.
2남 1녀였다.
그리고 상당히 튀었다.
‘천부문 같은 놈들이 또 있었군.’
한복이 아니라 중국 복장이었으니 느낌이 더 살았다.
셋의 옷에는 촌스럽게 왕천이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앞에 서 있는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젊은 남자 한 놈은 아는 얼굴이었다.
무신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히어로 왕천.
그는 중국에서 왕천문이라는 문파를 이끌고 있었다.
자기 이름을 붙인 문파라니….
S급 각성자이기도 했으니 누가 촌스럽다고 말도 못 했을 거다.
뒤에 남녀 둘은 자기 문파 수행원인 거 같았다.
‘어?’
그들을 살펴보던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랫배에.......마력이 뭉쳐있었다.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좀비 세계 천부문 녀석들에게서.
‘단전이라고? 이쪽 세계에도 무공 같은 게 있었다고?’
왕천은 곧바로 내게로 다가왔다.
“왕천이다.”
“박운호다.”
서로 가볍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지도 반말을 해놓고 내 말이 거슬렸는지 그 굵은 눈썹을 꿈틀거린다.
어이가 없었다.
나이도 내가 더 많다.
이런 개념 밥 말아 먹은 놈이 있나.
그래도 예쁜 오라클을 생각해 한번 참았다.
“허....근골이.....정말 대단하군. 천상의 무골이야….”
남자 놈이 징그럽게 내 몸을 품평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칭찬인 거 같으니 한 번 더 봐주기로 했다.
반질반질한 얼굴도 그렇고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놈이었다.
하지만 왕천이 이어서 하는 말은 그냥 흘려들을 수 없었다.
“본좌가 웬만하면 이렇게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 어떤가? 본좌의 제자로 들어오는 게. 본좌의 제자로 들어온다면 너는 더욱더 강해질 수 있다. 소국보다는 대국에서 꿈을 펼치는 게 낫지 않겠나.”
난 애국심이 별로 없으니 대국이니 소국이니 하는 건 별로 신경은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제자란다.
어이가 없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야. 너 몇 살이야.”
“......뭐?”
“너 중국인 아냐? 장유유서 몰라? 어린놈의 새끼가....버르장머리 없이.”
난 꼰대가 아니다. 반말 정도는 너그럽게 이해해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기본적인 예의 문제였다.
“허! 설마 그 몸만 믿고 본좌에게 그런 무례한 말을 하는 건가?”
본좌, 본좌라니...왕천 이놈은 천부문보다 더한 완전 무협에 미친 똘아이었다.
“무례? 무례라고? 이 미친놈이........무례한 게 누군지 모르는 건가.”
“어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군. 네가 본 세상은 우물 안에서 본 세상일 뿐이다. 지금이라도 본좌에게 용서를 빌어라. 한 번의 실수는 용서해줄 수 있다.”
나이도 어린놈한테 이런 말을 듣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로그인 스킬로 두 개의 세계를 오가며 본 세상이 두 배는 많았다.
왕천 이놈은 어릴 때부터 천재라고 떠받들어지면서 S급을 찍더니 버르장머리가 없는 거 같았다.
조금이라도 나이 더 먹은 어른으로서 따끔하게 훈계해줄 필요가 있었다.
이런 놈은 세상의 쓴맛을 봐야 정신을 차린다.
“일단 맞자.”
“뭐?”
놈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허!! 어리석은 놈!”
왕천은 가소롭다는 듯 오만한 얼굴로 기묘하게 팔과 손을 움직이며 내 주먹을 막으려 했다.
놈이 뭐 하려고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내가 무공은 배우지 못했어도 한때 헌터가 되기 위해 격투기나 무기술 같은 전투기술은 배웠다.
그리고 육체가 강화되어 한계를 넘어서면서 보이지 않는걸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었다.
왕천의 행동은 천부문주 할배나 백설화와 싸울 때와 비슷했다.
동작은 달랐지만, 그 목적은 명확했다. 작은 힘으로 효율적으로 큰 힘을 감당한다.
왕천 놈은 적은 힘으로 내 공격을 흘리려는 거다.
힘을 흘린다는 건 상당한 테크닉이 필요하다.
그런 기술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고 그걸 해내는 게 고수다.
하지만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
파훼법은 간단했다.
놈이 흘리려는 힘의 방향을 틀면 된다.
천부문주 할배가 괜히 내 공격에 쩔쩔매던 것이 아니다.
물론, 이미 작용한 힘의 방향을 바꾸는 건 힘든 일이다.
하지만 나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면 놈에게 하이 리턴은 없고 하이 리스크만 남는다.
놈의 기묘하게 움직이는 팔의 움직임이 꽤 신선했지만, 그거뿐이었다.
“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