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놈들 영역이었지만….
대충 명분을 지어내 말했다.
《우리는 그곳이 당신의 영역인 줄 몰랐습니다. 사과합니다. 더는 당신의 영역으로 확장하지 않을 겁니다. 이대로 돌아가 주세요.》
-싫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종족의 존속을 걸고 당신과 전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길 수 있을까….
싸운다면 당연히 일대일로 싸워 주지는 않을 거다.
싸워도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다.
설사 이긴다고 해도 놈들의 심상치 않은 세력을 생각하면, 얼마나 오래 싸워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하겠다.
싸움이 장기화해 세종시 생존자들과 나와의 관계를 알아차리기라도 한다면….
‘젠장 10포인트가 눈앞이었는데….’
괜히 여유 부렸나.
저 초거대 여왕벌이 나타나기 전에 빨리 처리했어야 했다.
저런 놈이 있을 거라고 내가 어떻게 예상했겠나.
*
*
*
《그대는 강해졌군.》
결국 괴물 여왕벌과 휴전을 하고 터덜터덜 대전으로 돌아온 나를 향해 산이 말했다.
원래 동물이라 그런지 포식자에 대한 건 본능적으로 민감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눈앞에서 포기한 10포인트는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놈들과 전쟁을 벌이기에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멧돼지 녀석들이 최상급 침식체라면 20포인트....새끼들까지 하면….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우리는 그대의 적이 아니다.》
내 마음을 읽은 건지 아니면 표정에 드러난 건지 산이 말했다.
“.......”
녀석들의 정화자 어쩌고 한 말을 마냥 믿을 수 없지만.....진짜일 수도 있고.
멧돼지의 말이 진실이라면 놈들을 잡아도 포인트는 얻지 못한다.
다음 강화 포인트는 32개.
‘까마득하군….’
일단은 살려두기로 했다.
멧돼지 녀석들이 이번에 꽤 큰 역할을 해준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이 괴물 장수말벌의 여왕이 지하에 있다고 알려주지 않았다면.
여왕벌을 그렇게 쉽게 잡진 못했을 거다.
만약에 멧돼지가 없었고 괴물 장수말벌들이 내가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거주지로 들이닥쳤다면?
생존자 캠프는 물론이고 천부문도 놈들에 의해 대량 학살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괴물 장수말벌의 파수꾼으로 괜찮은 녀석들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일단 비상식량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진짜 급할 때 까먹을 수가 있는.
이곳에 온 목적은 생각보다 빠르게 달성했다.
바로 원래 세계로 돌아갈까도 했지만.
돌아가면 마냥 편할 거 같지 않은 S급 각성자들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온종일 장수말벌들을 잡았더니 정신적 피로감이 상당히 심했다.
일단 이 세계에서 며칠 좀 쉬다 돌아가기로 했다.
*
*
*
잠에서 깨니 넓은 침대에 나 혼자 덩그러니….
아무도 없었다.
‘부지런한 녀석들….’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침대에 걸터앉아 남은 스킬 포인트를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죄수사냥팀은 의외로......쓸모가 없었다.
열흘 동안 겨우 중급 침식체 두 마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죄수 몇이 죽긴 했지만 그건 신경 쓸만한 일은 아니었다.
‘자동사냥의 한계인가….’
그래도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덕분에 모인 여분의 스킬 포인트는 8개.
인벤토리 스킬을 올리면 딱 맞는 포인트였다.
육체 강화를 올리기 위해 모으기에는 이제 너무 까마득하고.
지금 올릴 수 있는 스킬은 두 개인데 그 효용성이 와 닫지 않는 로그인 스킬은 당연히 뒷순위였다.
인벤토리 용량은 크면 클수록 좋다.
<인벤토리 Lv 4 스킬을 강화하시겠습니까?>
결국 깔끔하게 포인트가 딱 떨어지는 인벤토리 스킬을 올렸다.
<인벤토리 스킬이 5레벨을 달성함에 따라 영웅의 안식처가 개방되었습니다.>
“영웅의 안식처?”
<10레벨 확인.>
<영웅의 안식처 개방 확인.>
<차원 상점에 새로운 상품이 추가됩니다.>
〔 영웅 소환권 〕
이번에 10레벨을 달성했을 때 스킬을 얻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조금 했지만, 시스템에 별 반응이 없어 그냥 지나가나 했는데….
스킬 획득에는 그저 기본 레벨만이 아니라 따로 조건이 있는 거 같았다.
【 운호 11레벨 】
【 스킬 】
〔 육체강화 Lv 6 〕
〔 로그인 Lv 2 〕
〔 인벤토리 Lv 5 〕 : 〔영웅의 안식처〕 New
〔 마력변환 Master 〕
〔 차원상점 〕
〚 영웅 소환권 01 〛 New
〚 스킬 포인트 00 〛
항목이 두 개나 생겼다.
한개는 인벤토리에서 파생된 스킬로 보였고.
다른 하나는 인벤토리 스킬을 올림으로써 조건이 충족돼 생긴 영웅소환권.
하나하나 차근차근 살펴보기로 했다.
〔영웅의 안식처〕
<거주 가능자: 마스터. 소환된 영웅.>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마스터가 거주할 때는 시간을 조절하지 못합니다.>
<영웅의 안식처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영웅의 안식처라니 어떤 곳인지 당연히 궁금했다.
익숙한 직사각형의 문이 생겼다.
내가 로그인을 할 때 진입하는 메커니즘과 비슷한 거 같았다.
그곳에 몸을 집어넣었다.
내가 영웅의 안식처로 들어서자 진입 문은 바로 사라졌다.
‘이건….’
처음의 인상은 새하얀 세계였다.
그리고 나는 매끈하고 하얀 별 위에 있었다.
걸어서 30분이면 한 바퀴 돌만 한 크기의 작은 별….
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거창하기는 했다.
신기한 공간이었다.
신기하긴 했지만....볼것도 없었다. 진짜 뭐....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세계였다.
하얀 바닥은 그냥 굴러도 될 정도로 아무것도 없이 깨끗했다.
점프를 해본다.
몸이 빠르게 위로 솟구쳤다.
별이 점점 작아지며 멀어졌다.
그걸 보고 조금 세게 점프했나 싶었다.
‘이대로 날아가 버리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이내 끌리듯 다시 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중력이 있었다.
중력의 강도는 지구와 비슷해 보였다.
“이곳에 물건을 놔도 되는 거 아닌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인벤토리와는 다르게 직접 들어와서 찾으셔야 할 겁니다.]
그냥 평범하지 않은 창고 하나 생긴 느낌이었다.
바닥에 털썩 앉아 새롭게 얻은 다른 항목을 살펴봤다.
〔 영웅 소환권 〕
<멸망한 세계의 영웅을 무작위로 소환합니다.>
<영웅소환권은 차원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경고: 영웅 소환은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모바일 게임을 해본 이라면 알 수 있는 익숙한 그 느낌.
이건......가챠?
영웅소환권이 하나 있었다. 맛만 보라고 하나 넣어준 거 같았다.
<영웅소환권을 사용해 영웅 소환을 하시겠습니까?>
어차피 차원 상점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이라고 했으니 귀한 건 아닐 거다.
<소환 옵션을 선택해 주십시오.>
<암컷. 수컷. 무성. 양성. 자웅동체.>
성별을 선택할 수 있는 거 같았다.
볼 것도 없다.
당연히 암컷이었다.
<영웅을 소환합니다.>
허공에 화려한 빛 덩어리가 춤을 춘다.
하지만 그 화려한 빛은 쪼그라들더니 사라졌다.
-푸쉬쉬….
<소환에 실패했습니다.>
“뭐?”
최소 뭐 허접한 거 하나라도 나와야지….
실패는 아무것도 없다는 건가.
모바일 게임보다 가혹했다.
“확률공개!!”
<..........>
그딴 건 없었다.
“차원 상점 오픈.”
<차원 상점에 새로운 상품이 입고되었습니다.>
〔 영웅의 안식처 꾸미기 상품 〕 New
〔 영웅소환권 〕 New
상점에 요상한 게 들어와 있었다.
“이건 또 뭐야.....안식처 꾸미기?”
대충 훑어보니 안식처의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거 같았다.
밋밋한 하얀 구체가 아닌, 숲 같은 환경으로도 바꿀 수 있는 거 같았다.
‘인공태양?’
그런데 가격이.....너무 비쌌다.
지금 내가 모아 놓은 마석으로 하나도 힘들어 보였다.
여기서 살 것도 아닌데 그 정도로 투자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도 깨끗하고 좋은데 뭐.’
다른 인간을 데려올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설명을 보면 나와 소환된 영웅만 거주가 가능한 거 같았다.
〔영웅소환권 100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