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더러운 뱃속에 어울리지 않는 영롱한 마석을 꺼내 인벤토리에 넣었다.
멧돼지들은 여왕벌 하나로 충분하다고 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대량의 포인트를 벌기로 마음먹었다.
벌레들에게 더러워진 인간이 얼마나 무서워지는지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너희들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
뭐....내가 먼저 건드리긴 했지만.
어찌 됐든 내게 심리적 타격을 준 죄는 컸다.
몸 전체가 놈들의 체액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이제 거리낄 게 없었다.
처음에 확인된 둥지탑만 3개 였다.
둥지 탑마다 하나의 여왕벌이 있다고 가정하면 스킬 포인트 20개는 더 벌 수 있다.
당연히 놈들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킬을 강화해야 한다.
레벨업과 최상급 침식체를 처리하면서 스킬 포인트 22개가 모였다.
포인트는 충분했다.
<육체강화 Lv 5에 16 스킬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육체강화 스킬 레벨이 한단계 상승합니다.>
-둥!
스킬 레벨을 올림과 동시에 마력이 팽창한다.
전과같이 마력으로 덩치가 더 커지지 못하게 단단하게 결속해 육체 자체의 강화에 힘을 쏟았다.
더 팽창하지 못해 갈 곳을 잃은 마력들이 심장에 서서히 뭉치더니 코어를 형성했다.
언제나처럼 육체강화의 스킬 레벨이 상승함과 동시에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이건.....그 무공의 단전 같은 건가….’
아랫배가 아닌 심장에 있는 게 다르긴 하지만.
어떤 용도인지는 곧 알게 될 거다.
이제 내가 싫어하는 벌레를 셀 수 없이 잡게 한 여왕벌들에게 천벌을 내릴 때였다.
지상으로 나오니 여왕을 잃은 괴물 장수말벌들이 우왕좌왕하는 게 느껴졌다.
멧돼지에게 숨 쉴 틈도 없이 붙어있던 놈들도 꽤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그때였다.
먼 산등성이에 있던 두 개의 하얀 둥지 탑에서 검은 구름이 치솟아 올랐다.
괴물 장수말벌 떼였다.
검은 구름은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동족이 죽은 걸 눈치를 챈 건가?’
여왕벌이 죽을 때의 그 단말마.
주변으로 퍼져나가던 정신파와 같은 비명이 생각이 났다.
당시에는 그냥 정신 공격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게 무슨 신호를 보낸 건가?’
《목표는 달성했다. 우리는 물러난다. 그대도 물러나라.》
수풀 멧돼지 산이 말했다.
“너희는 먼저 후퇴해라.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스킬 20포인트를 벌 수 있는 기회가 흔한 것도 아니고.
멧돼지는 이만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벌레 놈들은 지금 마음이 동할 때 처리해야 한다.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겠는가.》
“그래.”
그들의 도움이 없어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육체 강화 스킬을 올린 지금 여왕벌의 공략은 오히려 전보다 더 쉽게 할 수 있을 거다.
더러워지는 건 처음이 힘들지 이미 더러워진 후에는 자포자기 상태가 된다.
지금 내가 딱 그 상태였다.
빠르게 가까운 산등성이 놈들의 둥지 탑을 향해 달렸다.
장수말벌 떼 구름이 방향을 틀어 나를 따라왔다.
나를 가로막는 괴물 장수말벌들이 있었지만, 방해될 순 없었다.
그대로 걸리적거리는 놈들은 대검으로 거침없이 박살 내며 가까운 둥지 탑을 향해 돌진했다.
순식간에 산을 타고 뛰어올라 둥지 탑에 빠르게 접근했다.
들고 있던 대검이 마력에 감싸여 끝을 모르고 늘어났다.
그리고 그 거대해진 대검으로 둥지 탑의 밑동을 베었다.
-으저적!
거대한 검의 일격에 밑동이 박살이 나며 둥지 탑이 쓰러졌다.
-쿠구궁!!
뒤를 급하게 쫓아온 놈들이 빠르게 들이닥쳤다.
괴물 장수말벌 떼를 피해 그대로 다리에 힘을 줘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저놈들은 죽여봐야 의미가 없다.
여왕만 잡으면 된다.
놈들이 나를 필사적으로 따라온다.
하지만 빠르게 생성된 헤일로의 추진력에 의한 폭발적인 가속과 함께 놈들을 뿌리쳤다.
빠르게 상승하는 고도.
심장에 생성된 마력 코어가 주변의 마력을 빨아들인다.
코어가 소모된 마력을 빠르게 채워주고 있었다.
크기는 골프공 정도였지만 성능이 괜찮았다.
‘좋군.’
따라오던 괴물 장수말벌들이 떨어져 나간다.
올라가던 자세를 뒤집었다.
아까와 똑같이 둥지로 파고들어 여왕을 잡을 생각이었다.
낙하.
송곳처럼 끝을 뾰족하게 만들고 그대로 헤일로에서 발생한 폭발적인 추진력과 함께 둥지를 향해 떨어졌다.
하지만 아까와는 양상이 달랐다.
“뭐?”
놈들이 위기를 느낀 건지 내가 낙하하는 경로에 똘똘 뭉쳐서 두꺼운 방벽을 만들었다.
‘아까 다른 둥지의 여왕이 어떻게 당한 건지 알고 있는 건가?’
자기들만의 연락망이라도 있는지 소식이 빨랐다.
내 공격을 육탄공격으로라도 막으려는 거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속도를 더욱 높였다.
인간 로켓과 그걸 막으려는 말벌 덩어리가 충돌했다.
-으저적!!
벌레들이 으깨지는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놈들의 두터운 결사 항전은 허무하게 돌파당해 결국 나는 둥지의 벽에 닿았다.
-꽈앙!
그 충격에 주변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파였다.
하지만.
결국 나는 둥지 벽을 부수지 못하고 멈췄다.
파괴력이 모자랐다.
놈들의 몸으로 공격력을 약화한다는 작전이 나름 주효했다고 할 수 있었다.
괴물 장수말벌 떼들이 돌파를 실패한 내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당연히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대검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마력을 몸 바깥으로 뿜어냈다.
바깥으로 흘러나온 마력이 빠르게 팽창하며 덩치를 키웠다.
10미터...... 20미터.
거대한 검은 거인이 나타났다.
괴물 장수말벌 놈들이 거인에게 득달같이 달라붙는다.
그리고 독침을 거인의 몸에 박고 열심히 쏘아댔다.
데미지는 없었지만, 그 느낌이 생생해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놈들의 저항은 의미가 없다.
거인이 주먹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그대로 주먹을 둥지를 향해 내리쳤다.
-쾅!
주먹에 달라붙어 있던 장수말벌들과 주변에 있던 놈들까지 그 충격파에 떼로 터져나갔다.
‘수류탄 던져.’
내 명령에 수니가 검은 거인에게 틈도 없을 정도로 달라붙은 놈들에게 소이수류탄을 뿌렸다.
-퍼퍼펑!
거인 주위에 소이수류탄이 터지며 놈들의 몸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말벌 놈들은 지독했다.
아니 처절하다고 해야 하나.
불이 붙은 상태에서도 나를 저지하려 악착같이 들러붙었다.
그러다 보니 불에 타오르는 흉측한 괴물 장수말벌 덩어리 거인이 탄생했다.
‘소이수류탄이 효과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죽는 놈들이 있긴 한데....워낙 놈들이 많다 보니 간에 기별도 안 갔다.
놈들의 저항을 무시하고 주먹으로 바닥에 있는 둥지를 연신 두들겼다.
-쾅! 쾅!
불에 휩싸인 거인이 말벌들의 둥지를 두드린다.
벌들을 으깨는 건지 바닥을 두드리는 건지.......모를 지경이었다.
-말벌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나도 모르게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잊지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무아지경으로 둥지 벽을 두드렸다.
-쾅! 쾅!
-으적! 으적!
거인의 주먹에 괴물 장수말벌들이 으깨지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미 놈들에게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나는 거칠 게 없었다.
-쩌적!
결국 거인의 주먹질에 버티다 못한 둥지 벽에 금이 갔다.
《그만!! 그만 해요!!!》
머릿속에 누군가의 메시지가 전해져왔다.
여왕벌이었다.
그 메시지에는 공포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당연히 내가 그만하라고 해서 그만할 리는 없었다.
-쾅! 쾅!
더욱더 열심히 둥지에 주먹질을 했다.
-투툭.
둥지 벽에 금이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여왕벌이 버티는 것도 한계라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만 더 하면 완전히 부서질 거 같았다.
부서지기만 하면 여왕벌은 내 일용한 스킬 포인트가 될 거다.
《아악!!! 어머니!! 살려주세요!!!》
급한지 엄마를 찾고 있었다.
몬스터 주제에...꽤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만 하세요.》
그런데 진짜 엄마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제 연기도 하는 건가?’
순간 그런 생각도 했지만.
어느샌가 거대한 장수말벌 한 마리가 수많은 호위를 대동하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크기가 징그러울 정도로 컸다.
거대 멧돼지 녀석들 정도의 크기였다.
나도 거인인 된 상태라 크기는 꿀리지 않았지만.
‘그나저나......최상급.....이...아닌데?’
여왕벌의 어머니란 뉘앙스였으니 당연히 그보다 위라는 건 예상할 수 있었지만, 그냥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왜 우리 아이들을 죽이는 겁니까….》
그건 포인트를 벌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겠고….
-네놈들이 내 영역을 먼저 침범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