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저씨의 로그인 생활-118화 (118/259)

생존자 캠프는 이미 어느 정도 보이지 않는 계급 사회가 되어있었다.

각성자와 무각성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 체제를 바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건 원래 세계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세계는 돈 있는 놈과 없는 놈 사이에 각성자가 끼어들었을 뿐이었다.

이쪽은 돈의 가치가 떨어졌으니 좀 더 원시적인 힘이라는 형태로 보이지 않는 계급이 나눠진 거다.

어찌 됐든 적당히 편하게 부려 먹을 수 있는 인간들이 생겼다.

내가 부처나 예수 같은 성인도 아니고.

그저 설화나 임구성이 말한 무고한 이들의 고통이 신경 쓰여 캠프를 관리한다고 한 게 아니었다.

캠프의 녀석들을 부려 먹을게 아니라면 피곤하게 굳이 이놈들의 위에 설 이유가 없다.

덕분에 전에 도저히 귀찮아서 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을 벌여도 괜찮을 거 같았다.

사람도 많고 그렇게 시설이 좋지도 않은 캠프에서 살 생각은 들지 않아 원래 거점에서 필요한 것을 적당히 임구성을 통해 지시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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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자 놈들 아지트에서 내가 구해준 여자들의 대표라고 할 수가 있는 성가연이 천부문주 할배와 찾아왔다.

“저희를 운호 님과 함께 있게 해주세요.”

그녀는 여자들을 천부문에 보내면서 다시 볼 일은 없을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그녀들은 숙소에서 나오질 않는다네.”

문주 할배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을 했다.

“남자들을 보면 상당히 불안함을 느끼는 여자들이 많습니다.”

성가연의 얘기를 들어보면 트라우마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천부문에서 적응을 못 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남자다.

그런데 그녀들을 데려올 땐 생각보다 멀쩡해 보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천부문으로 보냈다.

여자들이 멀쩡해 보였던 건 내가 그녀들을 구해줬기 때문일까.

어찌 됐든 천부문에 가서 그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예상 밖에 일이었다.

그런데 나와 함께 있다고 해서 그게 나아지는 일인가?

그녀들은 알까?

천부문에 있을 때보다 나와 함께 있는 게 훨씬 위험할 수도 있다는걸.

모르긴 몰라도 천부문 남자 놈들 합한 것보다 내 성욕이 더 강할 거다.

‘아니면 이거.....내가 이쪽 세계에서 생각보다 먹히는 얼굴이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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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하는 거야?”

한수지가 단호하게 내 착각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20명이나 되는 여자를 받는 건 나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에는 귀찮음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캠프 하나를 삼키고 수백 명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여자들 20명 정도야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감도 있었다.

그래도 고민이 안 될 수는 없어 일단 성가연을 돌려보내고 원탁회의? 에서 아이들의 의견을 물었다.

원래는 그녀들의 의견은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지만.

이건 나도 갈등이 생기는 상황이라 전적으로 그녀들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녀들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때까지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그분들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도저히 반대할 수가 없네요.”

아이들은 그곳에서 지옥과도 같은 생활을 한 여자들에게 동정심이라도 느끼는 모양이었다.

“나도 찬성. 그리고 아저씨는 괜히 아픈 여자들한테 괜히 찝쩍거리지 말고.”

한수지가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그녀 빼고 이곳에 있는 여자들은 죄다 건드렸으니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긴 했다.

굳이 나도 트라우마가 있는 여자들한테 찝쩍거릴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그녀들은 생각보다 가볍게 찬성표를 던졌다.

그 정도로 이곳에서 지내며 남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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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호는 단 하나의 철문에 가로막힌 단칸방에 감금되어있었다.

그의 능력에 비해 빈약한 철문이었다.

천수호의 능력이면 탈출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지금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철컹.

“면회다.”

간수의 말과 함께 문이 열리고 다섯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익숙한 얼굴.

그들을 본 천수호의 눈빛이 흔들렸다.

“너, 너희들은….”

천수호는 한때 그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제들의 방문에 말문이 막혔다.

“사형 오랜만입니다.”

“어, 어떻게….”

한때 자신과 친형제처럼 지내던 이들이다.

박운호의 야습에 동참했던 사제들이기도 했다.

“사매가 보냈느냐….”

“아닙니다. 사형이 이곳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물론 박운호가 허락했기에 찾아올 수 있었을 거다.

“.....실망했겠구나….”

“우리 사이에 실망이라니요. 그것보다 걱정이 되어 찾아왔습니다. 사형......운호 님에게 용서를 비시지요. 그분은 사형이 생각하는 것만큼 악인이 아닙니다.”

“그분? 그분이라고!?......너희들은......박운호 그놈에게 속고 있는 거다!”

“사형.....그동안 우리가 오해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분은 흑랑에게 위기에 빠진 천부문을 구해줬습니다.”

“흐, 흑랑이라고?!”

“네, 흑랑 그놈은 이곳까지 천부문을 쫓아왔습니다. 운호 님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싸우셨고요. 그리고 흑랑은 운호 님에게 죽었습니다. 그분이 없었다면 우린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

“사형, 사형도 이제 아시겠지요. 그는 천부문의 은인입니다.”

천수호는 사제들의 하소연에 잠깐 흔들릴 뻔한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만이 박운호의 본성을 알고 있다.

모든 것이 오해였다고 백번 양보해도….

자신을 살리기 위해 사매가 그놈의 물건을 빨아야 했던 것을 생생히 기억했다.

박운호가 좋은 놈이었다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

천부문은 놈에게 속고 있을 뿐이었다.

“설사...그렇다 해도.....그것마저 놈의 위선일 것이다.”

“사형...어쩌다 이렇게….”

“사제....너희는 아니 천부문은 그놈에게 속고 있는 거다! 그놈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천수호의 절절한 호소.

하지만 한때 그의 사제였던 이들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

*

높게 솟은 태양 아래 8명의 인간이 서 있었다.

그들의 머리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헝겊 봉투를 씌우고 팔과 다리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서 있었다.

내가 눈짓하자 병사들이 놈들의 목에 두꺼운 금속 목걸이를 채웠다.

그리고 마지막 주인공이 뒤늦게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면 등장했다.

천수호를 그들의 옆에 나란히 세웠다.

“뭐지 드디어 사형집행이라도 하려는 건가?”

간만에 햇빛을 본 천수호가 나를 보고 비아냥거렸다.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눈치가 없는 놈치고는 왜인지 탈출도 하지 않았다.

결국은 개똥도 약에 쓸 때였다.

-철컥!

천수호의 목에도 두꺼운 금속 목걸이를 채웠다.

“이건 뭐지?”

“범죄자에 어울리는 개 목걸이지.”

원래 세계에서 가져온 극악한 빌런용 구속 목걸이였다.

천수호 옆에 있는 놈들의 머리에 있던 헝겊 봉투를 벗겼다.

반항적인 눈빛.

내가 나쁜 놈이요. 하는 험악한 얼굴들이 드러났다.

“이들은 뭐지?”

“뭐긴, 네 동료다.”

“동....료?”

“그래, 사이좋은 범죄자 동료들이지.”

이 험한 세상 약탈자 놈들을 비롯해 흉악한 짓을 저지른 놈들만 모아놨다.

원래는 조인광의 실험재료로 들어갈 놈들이었지만 운이 좋게 그 상황은 면했다.

“하! 우리가 이런 개 목걸이로 겁먹을 줄 알았나?”

흉악범죄자의 가오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중 한 놈이 내게 윽박지르며 똥폼을 잡았다.

-펑.

목걸이가 폭발하고 놈의 머리가 사라졌다.

“겁먹든 말든 상관없어. 네놈들이 다 죽으면 다른 놈들을 데려오면 될 뿐이다.”

-꿀꺽.

범죄자 놈들이 그제야 식은땀을 흘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놈들은 자기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뭔지를 깨달은 거 같았다.

“도망치면 터진다. 부수려고 해도 터진다. 그걸 벗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죽으면 된다.”

그렇게 말하고 그들을 슬쩍 훑어보니 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거 같았다.

“지금부터 할 일을 설명한다. 간단하다. 너희들은 청주로 간다. 가서 거미 괴물을 잡는다. 그리고 괴물들에게서 마석을 캔다. 매일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 못 채운다? 한 놈씩 죽는다. 간단하지?”

“내가 그 말을 들을 거로 생각하는 건가?”

목걸이 따위 두렵지 않다는 듯한 천수호.

“듣지 않아도 상관없어. 나야 설화가 네 죽음을 납득하기만 하면 되니까.”

“뭐....라고?”

내 말에 천수호가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대충 뭔 생각하는지는 알 거 같기도 하지만….

천수호는 설화가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거부했다.

그녀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나는 캠프 관리 대부분을 거의 그녀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임구성이 있지만 당연히 그놈은 완전히 믿지 못한다.

그것은 부수적인 일이고 내가 편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그녀는 나를 제외하면 상당히 강하기도 했다.

나를 대신해 캠프를 관리하기 딱 적당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천수호 따위에 신경을 쓰는 것이 아까운 귀한 인재였다.

이놈들의 관리는 각성자 간부 중 한 놈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너희를 대체할 인간은 많다. 가서 일하기 싫으면 집단자살을 하든 마음대로 해라. 결원이 생기면 보충해줄 테니 걱정하지는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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