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총 같은 중화기부터 각성자 수십 명의 마력 공격이 거인이 된 내게 쏟아졌다.
크기가 커진 만큼 이보다 맞추기 쉬운 과녁도 없을 거다.
수많은 총알과 폭탄, 화려한 마력 공격이 거인의 몸을 두들겼다.
공격받는다는 느낌만 있을 뿐 고통은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 검은 거인은 그저 무식하게 튼튼하고 두꺼운 거대 갑옷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캠프 녀석들을 겁주기 위한 퍼포먼스의 일환.
비효율적으로 마력을 쏟아 부어 쓸데없이 덩치만 키운 덩어리다.
하지만 저들에게는 결코 뚫을 수 없는 견고한 벽이기도 했다.
내게 쏟아지는 그들의 발악을 무시하며 검은 거인의 손에 거대한 마력검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마력 검은 그 크기를 끊임없이 키워갔다.
검이 커짐에 따라 포화를 쏟아붓는 놈들의 얼굴도 공포에 질려갔다.
대충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예상을 한 거 같았다.
검은 거인이 그 거대한 검을 횡으로 휘두른다.
거검의 베어가는 경로에 있던 방해물들이 뭉개진다.
-드드드득!!
나는 자비로운 인간이다.
놈들이 적당히 피할만한 속도로 느긋하게 휘둘러줬다.
이것도 못 피하고 죽으면 어쩔 수 없다.
“으아악!! 피, 피해!!”
“시발! 밀지 마!”
검이 지나가는 범위에 있던 위병소와 담장, 초소 등의 구조물들이 검은 거인의 거대한 검에 뭉개지며 쓸려나갔다.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휑한 벌판이 나타났다.
무너진 담장 사이로 얼이 빠진 녀석들의 얼굴이 보였다.
-하, 항복해라!! 항복하면 살려주겠다!!
옆에 있던 설화가 빠르게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신기할 정도로 터무니없이 컸다.
[마력을 이용해 소리를 증폭시켰습니다.]
내 궁금증을 풀어주는 수니의 친절한 설명.
무공을 이용해 소리를 키운 거 같았다.
내가 이 거대한 검을 제대로 휘두른다면 말 그대로 학살이나 다름없다.
마음 약한 설화는 혹여나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급한 마음에 그들에게 항복을 종용했다.
다행히 남은 병력의 얼굴을 보면 전투 의욕은 사라진듯했다.
전투는 이미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마력을 풀고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터무니없이 비효율적인 겁주기용 기술이었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박운호!!!”
그때 천수호가 나타났다.
다른 놈들과는 다르게 놈의 얼굴에는 분노와 전투의지가 잔뜩 떠올라있었다.
도대체 저놈은 왜 날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지….
뭐...예상은 갔다.
역시 질투인가?
“사매의 세뇌를 당장 풀어라!!”
뜬금없이 나타나더니 되지도 않는 신선한 개소리를 지껄였다.
질투에 눈이 멀었군.
옆에 있던 설화의 허리를 당겨 끌어안았다.
“아….”
설화가 내 품에 포옥 안겼다.
“이, 이놈!! 무슨 파렴치한 짓이냐!!”
“무슨 짓이긴, 설화는 내 것이다. 네놈이 탐낼 여자가 아니다.”
“뭐라고!? 나는 그저 사매를 구하고 싶을 뿐….”
“지랄.”
설화의 턱을 들고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츕릅. 츕. 츱.
내 혀와 그녀 혀가 음란하게 얽히고설켰다.
서로의 입이 떨어지며 투명한 실이 늘어지다 끊어졌다.
“하아....나, 낭군님...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설화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넘볼 걸 넘봐야지.”
우리 둘의 끈적한 키스를 보고 얼이 빠져있는 천수호를 비웃어줬다.
“네, 네 이놈!!”
천수호가 눈이 뒤집혀 내게 쇄도했다.
-챙!
설화가 검을 뽑아 들고 내게 달려드는 천수호를 막아섰다.
“사, 사매 비켜라!!!”
“사형, 지금이라도 죄를 뉘우치시지요. 낭군님은 자비롭습니다. 어쩌면 용서해 주실지도 모릅니다.”
“박운호, 네 이놈!! 여자 뒤에 숨지 말고 덤벼라!”
뒤에 숨은 게 누군지 모르는 건가. 하여튼 입만 살아 가지고….
설화를 생각해 봐주고 있다는 걸 자신도 알 텐데...질투에 눈이 멀어 사리 분간을 못 한다고 할 수 있었다.
천수호는 설화에게 맡기고 캠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박운호!!! 어디를 가는 거냐!!”
천수호는 내게 달려들려 했지만, 설화가 놔주질 않았다.
역시 그녀는 마음이 약했다.
설화에게 천수호의 처분을 맡기는 것은 조금 가혹한 처사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매, 제발 눈을 떠라!! 넌 저놈에게 속고 있어!”
상대가 설화라 제대로 힘도 못 쓰는 천수호였다.
저따위 정신상태로는 그녀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현실 부정도 정도껏 해야지. 세뇌를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게 코미디군.’
원래 세계에도 세뇌하는 초능력은 없었다.
잠깐 사람의 사고를 흐리멍덩하게 하는 능력은 있다고 들은 거 같은데.
‘아니면 있는데 내가 모르는 것뿐일 수도 있고.’
인벤토리에서 대검을 꺼내 어깨에 걸치고 보스 장서원을 잡으러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부서진 장벽을 넘어 캠프 안으로 진입했지만, 그 누구도 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의 얼굴엔 두려움만이 떠올라있을 뿐이다.
그리고 허탈한 표정의 장서원이 내 앞에 나타났다.
“하하....터무니없는 괴물이었군요…. 발전기를 돌려드릴 테니 그냥 돌아가실 수는 없겠지요?”
“뭐 당연한 소리를.”
다른 놈은 몰라도 장서원은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놈도 그걸 알고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저도 최후의 발악이라는 걸 해보겠습니다. 혹시나 하고 가지고 있었지만, 제가 임상실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장서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자기 품으로 집어넣었다.
그냥 쳐 죽일까 하다가 마지막 유언인 셈 치고 뭐 하는지를 바라봤다.
그리고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검은색에 가까운 약간의 푸른빛을 띤 액체가 담긴 주사기.
그 주사기를 자기 팔뚝에 꽂았다.
그것을 보니 원래 세계에서 한때 유행했던 마석을 정제한 약이 떠올랐다.
‘색깔은 좀 더 진해 보이는 거 같은데….’
마석을 정제해 혈관에 주사하는 약은 원래 세계에서 한때 유행했던 물건이다.
일반인은 육체가 강화된다.
나도 해보고 싶었지만, 그 당시 상당한 고가이기도 해 하지 못했다.
할 수가 있을 정도의 돈이 모였을 때는 이미 그 부작용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뒤였다.
부작용이 있다고는 해도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운이 좋다면 반푼이 각성 효과를 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운.....그게 문제였다.
운이 없으면 부작용으로 괴물이 된다.
몬스터와 같은 괴물이 아니라 그냥 어설픈 기형이 된 인간 괴물.
하지만 인간은 자신은 다를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각성자를 지망하는 일반인이 자신의 운을 믿고 기형 인간 괴물이 되었다.
장서원의 눈에 흰자위가 없어지고 검게 물들었다.
그리고 검붉은 혈관이 얼굴에 도드라지게 솟아올랐다.
그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군복이 타이트하게 당겨진다.
“이, 이건.....후....당신의 그 자신감도 조금은 이해가 되는 기분입니다.”
장서원은 약에 의해 순간적으로 부풀어 오른 힘에 고양감을 느끼는듯했다.
그의 손이 내게 향했다.
-퍼엉!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내게 쏘아졌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시야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게 장서원의 능력인가?
그 공격을 손을 들어서 막았다.
손바닥에 꽤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별다른 속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한 물리력일 뿐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공격이다.
내가 아니었다면 상당히 위협적인 공격일 거 같았다.
-파파팟!
놈의 손에서 수많은 보이지 않는 마력 공격이 쏟아졌다.
대충 피하고 검으로 튕겨내며 그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대검을 휘둘렀다.
놈이 그 공격을 가볍게 고개를 숙여 피하고 내게 보이지 않는 단검을 휘둘러 옆구리를 노렸다.
단검은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내 발달한 감각이 보이는 것처럼 정보를 전달해줬다.
그 손을 향해 무릎을 올려 쳤다.
-우둑!
손목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크윽!”
하지만 손목이 부러졌음에도 장서원은 당황하지 않고 거리를 벌렸다.
특이능력계열 각성자로 보였지만, 신체 능력은 강화계 못지않았다.
마력 발현과 육체 능력 두 개가 다 뛰어난 것은 놀랄만한 일이었다.
어쩌면 약물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특이한 각성자라는 건 분명했다.
“후....이정도일 줄이야...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되면 저도 어쩔 수 없군요.”
장서원은 그러면서 주사기 하나를 더 꺼내더니 팔뚝에 쑤셨다.
“끄어억!!”
그의 부러졌던 손목이 원상태로 회복됐다.
-투둑!
군복이 뜯어지고 맨몸의 상체가 드러났다.
검붉은 혈관이 그대로 보이는 그건...마치….
“그냥 좀비잖아….”
-크어어!!
놈이 괴성을 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전보다 빨라지긴 했다.
하지만 부작용인지 뭔지 그 얼굴에 더 이상 이성은 없었다.
그저 괴물이 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볼 것은 없었다.
무식하게 휘둘러오는 오른팔을 대검으로 잘랐다.
장서원은 그 충격에 몸을 휘청였지만,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 듯 그대로 왼팔을 휘둘러왔다.
-스걱!
크기에 맞지 않게 순간 가속을 한 대검이 장서원의 남은 왼팔을 자르고 이어서 목도 깔끔하게 잘라냈다.
-털썩.
팔과 머리가 없는 장서원의 시체가 쓰러졌다.
허무한 최후였다.
캠프 안의 수많은 인간이 침음성을 삼키며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