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저씨의 로그인 생활-113화 (11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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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나체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하악. 하악.”

그녀들의 거친 숨소리만이 실내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의 형체로 볼 수 없는 뭉개진 시체들.

하얀 나체를 피로 적시고 우두커니 서 있는 그녀들의 모습은 공포 영화에서 나오는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했다.

“흐윽….”

한동안의 정적 후 이어서 여자들이 하나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가, 감사합니다.”

훌쩍이는 그녀들을 끌고 왔던 여자가 감사 인사를 했다.

그녀의 몸에도 상당한 피가 튀어 있었다. 두목 놈의 피였다.

“그래.”

대충 정리된 거 같으니 몸을 일으켰다.

돌아가는 길이야 날아가면 금방이었다.

‘저녁은 애들과 같이 먹을 수 있겠군.’

“자, 잠깐만요.”

떠나려는 나를 그녀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그녀를 쳐다봤다.

“어, 어디를?”

“어디긴 할 일도 끝났으니 집에 가야지”

내 말에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 할 말이라도 있나?”

“.........”

뭔가 할 말이 있는듯했지만,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저, 저희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갑자기 어떤 여자가 내 다리를 잡았다.

“.......?”

무슨 소린가 했다.

하지만 그걸 기점으로 여자들이 나에게 들러붙기 시작했다.

“제발 가지 마세요!”

나는 지금이게 무슨 사태인가 싶었다.

원래 세계라면 나름 유명인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해라도 하지, 지금은 얘들이 지금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 뭐든지 할 테니까.”

그러면서 마력 갑옷 위로 내 중심부를 더듬는 은밀한 손을 느꼈다.

내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들이 벌거벗었다고 해도 피범벅이 된 그 상태는 음심이 동할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나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군.”

“저희를 두고 가신다면 우리는 얼마 안 가 전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게 될 거예요.”

“.........”

사람 일이야 알 수는 없다고 하지만 높은 확률로 그렇게 될 가망성이 높을 거다.

보니까 그녀들 중에 각성자는 없었다.

다른 곳으로 가기에도 애매하고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 최선으로 보이긴 했다.

그러다 다른 놈들이 들이닥치기라도 한다면?

그놈들이 괜찮은 인간들일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하기 어렵다.

그러니 뒤진 약탈자 놈들과는 다르게 조금 신사적인 내게 매달리는 것 같았다.

“구해주신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뭔가를 더 요구하는 것이 염치없지만....저희의 절실함도 이해해 주세요.”

남자 놈들이었다면 가차 없었겠지만.

내게 매달리는 절실하고 애절한 여자들의 눈빛에 나도 조금 고민을 해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명이 넘는 인원은 내가 여자에게 환장한 놈이라고 해도 부담스러웠다.

‘그냥 천부문에 넘길까?’

그 호구들은 필요한 물건 몇 개 던져주면 좋다고 받지 않을까.

*

*

*

백설화는 옥상에서 조용히 검을 휘두르며 박운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천부문에 보내놨다.

낭군은 천부문에 가 있으라고 했지만.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혼자라면 몸을 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돌아올 낭군님을 제일 먼저 맞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빠르게 처리한다면 오늘 내로 오실 수도 있다고 하셨으니….’

그때 학교 정문 쪽에 자동차의 엔진소리가 들렸다.

백설화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옥상의 펜스 쪽으로 이동해 아래를 내려다봤다.

3대의 군용차량이 정문 앞에 서더니 사람들이 내렸다.

‘저들은….’

백설화는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전에 발전기를 구하러 낭군을 찾아왔을 때 본 적이 있다.

강 건너 군부대에 자리를 잡은 생존자 집단이었다.

‘하필 낭군님이 없을 때….’

백설화도 발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재차 부탁하기 위해 왔다기에는 절묘한 시기였다.

거침없이 부지로 진입하는 그 행태가 그저 거래를 위해 왔다고 볼 수만은 없는 모습이었다.

장서원이라는 사내의 지시에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학교 안으로 빠르게 침투하기 시작했다.

‘역시, 도적질을 하러 왔군요...본색을 드러냈습니까....설마...그 무뢰배 놈들도 계획된 성동격서였다고 볼 수 있겠군요….’

차에서 내린 사람들의 면면을 살피던 백설화는 얼굴이 차갑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사형?! 사형이 왜 여기에….’

천수호 사형은 파문당하고 천부문을 떠났다.

하지만 도적놈들과 한패가 되어 나타났다.

갑자기 사형이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사매 나다!! 천수호다!

백설화는 천수호가 자신을 찾는 것이 조금 의아했다.

-사매 구하러 왔어!!

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외침은 그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자신을 구하러 왔다니....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적놈들을 혼자 처리할 수도 없어 보여 그저 상황만 보려던 백설화는 사형 천수호의 등장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백설화는 그대로 옥상에서 뛰어 천수호 앞에 착지했다.

“사매!!”

도적질을 하러 온 주제에 어째서인지 사형이 이해되지 않는 환한 미소로 반겼다.

하지만 장서원 뒤에 있던 군인들의 총구는 조심스레 자신을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백설화는 그들을 힐끗 본 후 천수호에게 말했다.

“사형이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이 무뢰배 놈들이랑 한패인 겁니까?!”

“사매 아니다. 너를 구하러 왔다.”

백설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 그대로다. 너를 구하러 왔단 말이다. 나와 함께 가자.”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지금 그냥 물러나신다면 지난 정을 생각해 눈감아 드리겠습니다.”

“사매, 그 파렴치한 놈과의 약속에 네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사형! 사형이라도 제 낭군님을 모욕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나, 낭군? 낭군이라고?!”

천수호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건 백설화를 향한 분노가 아니었다. 박운호를 향한 분노였다.

장서원은 천수호와 백설화의 대화가 뭔가 서로 아귀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녀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천부문주의 손녀다.

괜히 건드렸다가 천부문이라는 적을 더 만들 수는 없었다.

물건만 확보하면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본진 캠프로 돌아간다면 박운호가 돌아온다고 해도 어떻게 하지 못할 거다.

그곳에는 약탈자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무기들과 다수의 초능력자가 포진돼 있었다.

박운호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본진인 캠프에서 쏟아지는 포화를 견딜 수는 없을 거다.

“눈을 떠라! 사매!! 나와 함께 가자!”

“사형 헛소리 좀 작작 하십시오.”

“당신이 말했던 것과는 꽤 상황이 다른거 같습니다만....”

장서원이 떨떠름한 얼굴로 천수호를 추궁했다.

“그, 그놈은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능력을 가지고 사매에게 뭔가 세뇌 같은 것을 한 게 분명합니다!”

“사형, 파문당하더니 정신이라도 이상해지신 겁니까?”

천수호는 답답해 죽을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장서원은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보고에 그런 사형제 간의 답답한 대화를 신경 쓸 겨를이 없어졌다.

“하나?”

학교 안으로 침투한 부하의 무전기로 들려오는 보고에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발견된 발전기가 겨우 하나라는 거다.

그것도 사용 중인 발전기.

천부문에 판매할 정도면 한대가 아니라 여러 대를 가지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쯧. 그거라도 가져오도록.”

그 소리를 들은 백설화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역시 발전기가 목적이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혹시 다른 발전기가 있는 곳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도적놈들에게 그걸 알려줄 거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지금까지의 백설화의 태도를 보면 장서원도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천수호의 말대로라면 순순히 협력해 줄 만했지만, 뭐가 잘못됐는지 그녀의 태도는 예상과는 달랐다.

‘다른 장소에 숨겨둔 건가? 좀 더 시간을 두고 감시해야 했나.’

마음이 급해 빠르게 움직인 게 실책일 수도 있다.

그래도 사용 중인 발전기를 가져갈 테니 박운호도 뭔가 반응이 있을 거였다. 그때 다른 발전기가 있는 곳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찌 된 게 백설화 외에 다른 여자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백설화를 인질로 잡기에는 또 애매했다. 천부문도 걸리고 천수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박운호가 그렇게 선인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와 직접 대면했을 때를 생각해 봐도 자신을 로리콘이라고 다짜고짜 모욕하던 모습을 보면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나 있는 거라도 가져가야 했다.

“있는 거라도 챙겨 가져와.”

무전기에 지시하고 얼마 안 지나 부하들이 꽤 커다란 발전기를 들고 왔다.

어차피 초능력을 가진 인원들로 데려왔으니 무겁더라도 운반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백설화는 그들이 발전기를 트럭에 싣는 모습을 보고도 경거망동을 할 수 없었다.

사형도 사형이지만 장교 군복을 입은 저 사내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낭군이 없는 틈을 탄 계획된 범죄였다.

“낭군님이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군요. “

장서원은 실제로 그가 조치원에 간 것처럼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화를 참지 못하고 캠프로 쳐들어온다면, 그를 붙잡아 심문해 발전기가 어디 있는지 알아낼 수 있을 테니.

“철수하겠습니다.”

장서원이 아직 미련이 남은 듯한 천수호에게 말했다.

“사, 사매....정녕….”

천수호가 애절한 눈빛으로 백설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형, 파문당했다고 하는 짓이 도적질이라니 실망했습니다. 저를 더 화나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백설화는 안 그래도 눈앞에서 도둑질하는 도적놈들을 막지 못하는 것도 화가 나는데 천수호의 말이 좋게 들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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