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본 세종시는 평화로워 보였다.
그리고 내가 거점으로 삼고 있는 장소가 보였다.
그쪽으로 빠르게 낙하했다.
마력으로 생성된 날개가 흩어지고 가볍게 옥상에 착지했다.
마침 옥상에 있던 설화는 하늘에서 날아온 나를 보고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낭군님.”
“오냐. 무슨 일 없지?”
원래 세계에서 시간을 좀 보내기는 했지만, 이곳에서 자리 비운 시간은 반나절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거다.
그 사이 별일은 없었겠지만.
나야 오랜만이니 그냥 한번 물어봤다.
“네. 이상 없었습니다.”
해가 저무는 게 슬슬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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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에 둘러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스테이크를 꺼내 줬다.
제주도에서 미녀 쉐프 서은지에게 부탁해 인벤토리에 넣어 가져왔다.
“와! 이 빛깔은 고, 고급 스테이크!!”
한수지가 흥분해 포크를 손에 쥐고 스테이크를 노렸다.
뭐, 배달 음식 위주로 먹다가 이런 고급 음식은 처음일 테니 한수지의 저런 조급한 반응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그때 설화가 스테이크로 향하는 한수지의 손을 저지시켰다.
-찰싹!
“뭐, 뭐야?!”
“윗사람이 숟가락을 들기 전에 음식을 먼저 입을 대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까.”
“뭐? 이런 꼰대가?!”
“꼰대가 아닙니다. 기본적인 예의를 알려드리는 겁니다.”
나도 예전에 부모에게 저런 예절을 배운 거 같긴 했다. 하지만 나부터 예의를 밥 말아 먹은 인간이니 그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 먹던 나중에 먹던 상관이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그 말을 꺼내진 않았다.
“머, 먹지.”
설화와 한수지가 머리채 잡기 전에 재빨리 식사를 선포했다.
“마, 맛있어!”
아이들이 맛있게 스테이크를 썰어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 보여 제주도로 돌아가면 서은지 쉐프에게 부탁에 다른 음식도 좀 더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티타임을 가졌다.
“괴물을 사냥하고 싶다고?”
“네.”
채원이 침식체를 사냥해보고 싶다고 건의했다.
그녀는 각성했다.
그리고 힘을 가졌다면 쓰고 싶어 근질근질한 것이 당연했다.
물론 이제 막 각성한 그녀 혼자 침식체의 사냥은 위험했다.
“설화와 함께라면 괜찮을 거 같군.”
설화의 능력은 아마도 이 세계에서 내가 본 능력자 중에 천부문주 노인네와 더불어 최고였다.
꾸준히 나와 관계를 맺은 그녀는 어쩌면 문주 할배를 능가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 세계의 각성자를 얼마 보지는 못했지만, 각성자들이 나타났다고 하는 시기를 봤을 때 설화는 아마도 최상위권의 능력자가 아닐까 생각이 됐다.
아이들의 몬스터 사냥에 설화가 포함된다면 중급 침식체를 만난다고 해도 무난하게 상대가 가능할 테니 안심할만했다.
“천부문은 요즘 어떻지?”
설화에게 발전기를 가져간 천부문의 동향을 물었다.
“요즘 마석을 구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조부님까지 나서서 괴물을 잡고 있습니다.”
마석은 에너지 덩어리다.
환경오염이 없는 청정에너지.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계나 원래 세계나 몬스터는 인류의 가장 큰 위협이지만, 동시에 귀중한 에너지원이기도 했다.
내 예상대로 천부문은 내게 발전기를 사가고, 그전보다 훨씬 열심히 사냥에 열을 올렸다.
무게를 잡던 천부문주 노인네까지 나서서 사냥할 정도였다.
그저 무공을 올리는 수단이 아닌 진정한 가치를 알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전기의 힘은 위대했다.
‘잘하고 있군.’
열심히 사냥한다는 소리에 흐뭇하면서도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천부문주와 자리를 마련해 줬으면 좋겠어.”
“할아버님 말씀이십니까?”
설화는 내 말에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내가 먼저 만자 나고 하는 건 처음이었으니 그런 거 같았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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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를 통해 천부문주 할배와의 자리를 마련했다.
“자네 쪽에서 먼저 부르다니 별일이군.”
“새로운 물건이 들어와서 말이지.”
“......새로운 물건?”
-터억.
테이블 위에 준비한 물건을 올렸다.
“......스마트폰 아닌가….”
문주 할배는 왜 뜬금없이 이런 물건을 내놓느냐는 표정이었다.
“관심 있나?”
“관심이 있으나 마나....쓸 수가 있어야….”
할배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사용이 가능하다면?”
“그, 그게 가능한 것인가?”
천부문을 이용해 무선 통신망을 만들 생각이었다.
수니의 말로는 원래 세계에서 장비만 들여온다면 유선은 힘들겠지만, 무선 통신망을 구축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했다.
게이트에서도 마석으로 작동되는 통신 장비는 종종 활용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앱은 모르겠지만 통화는 잘 될 거다.
무선 통신망의 구축은 나야 귀찮아 포기했지만, 천부문은 다르다.
마석이 들어가는 기지국과 중계기 같은 장비는 그래도 정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물건이다.
내가 관리하기는 귀찮으니 천부문에 떠넘긴다면 좋아서 관리해줄 거 같았다.
“처음 장비는 공짜로 제공해주지. 거기에 들어가는 마석 같은 건 알아서 구하고. 그 후에 원한다면 추가로 기지국과 중계기 같은 필요한 장비도 싸게 공급해주지.”
빠르게 통신망을 구축하기 위해 장비는 원가만 받을 생각이었다.
천부문에 이런 쪽에 기술이 있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매뉴얼만 줘도 충분히 잘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도저히 인재가 없다면 원래 세계에서 괜찮은 교육 영상이나 하나 구해오면 된다.
내가 하면 쓸데없이 귀찮기만 하지만, 천부문에 맡기면 그들이 구축한 통신망을 편하게 이용만 하면 된다.
통신망이 구성된다는 건 나에게도 상당한 이점을 가져다준다.
정확히는 수니였지만.
통신망이 활성화된다면 이곳에서 조금 활용 능력이 떨어지는 수니의 능력이 올라간다.
할배는 천부문으로 돌아가서 의논해보겠다고 했지만 이런 세상에 원거리통신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동안 하지 않았던 세종시의 하급 침식체를 조금씩 다시 잡기 시작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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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문이 미친놈들처럼 괴물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생존자 캠프의 리더 장서원은 부하의 보고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골치가 아프군. 갑자기 이놈들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군.’
설마 괴물 잡는 걸 가지고 트러블이 생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장서원은 원인을 알기 위해 천부문에 침투해 뒀던 있던 첩자에게 정보를 요구했다.
캠프에 있는 가족의 편안한 생활을 대가로 투입한 남자였다.
그 첩자에게서 전해진 이야기는 그냥 흘려들을 수 없었다.
“푸, 푸른 돌로 돌아가는 발전기라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지만, 그거라면 놈들이 미친 듯이 사냥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첩자에게는 조금 더 그 발전기에 대해 파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장서원은 사실확인을 위해 천수호를 불렀다.
낡아서 바랜 개량 한복을 입은 사내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천수호는 무공을 갈고 닦고 괴물을 사냥하면서 생존자 캠프에서 지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은 천수호가 지금 할 건 그거밖에 없기도 했다.
“무슨 일입니까.”
“발전기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
장서원의 말에 천수호는 어리둥절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천부문에 푸른 돌을 이용한 발전기가 있다는 걸요.”
“......제가 있을 땐 그런 물건은 없었습니다.”
천수호의 말에는 거짓이 없어 보였다.
장서원은 얼마 안 가 스파이를 통해 더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그 발전기가 학교 건물에 사는 박운호라는 사내에게서 나왔다는 이야기다.
“푸른 돌의 에너지를 이용한 발전기라니 혁명입니다.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그쪽에 굉장한 공학자가 있는 건 아닐까요?”
50대 정도로 보이는 무테안경을 낀 평범한 인상의 남자가 흥분해 말했다.
집현대학교 생명공학 교수였다는 조인광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그럴듯했다.
‘그가 데리고 있다는 여자 중에 그런 기술자가 있다는 건가?’
그렇다고 해도 그런 물건이 이렇게 뚝딱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그 사내는 천부문에 푸른 돌을 대가로 받고 발전기를 판매하고 있단다.
지속적인 생산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그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일이지?’
생각할수록 미스터리다.
어찌 됐든 그 발전기는 캠프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무조건 확보해야 하는 물건이었다.
“정공법으로 가는 게 어떻습니까?”
조인광 교수가 말했다.
“정공법?”
“우리가 원하는 건 그 발전기입니다. 그는 그걸 푸른 돌을 대가로 판매하고 있고요. 그와 거래하지요.”
생각해보면 그와 악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면식도 조차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이 이따위니 거래라는 단어가 생소하긴 했다.
그렇지만 장서원은 조인광의 의견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