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일찍 끝났네요.”
일찍 끝난 정도가 아니다.
아마도 터무니없이 일찍 끝났을 거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복귀하시겠습니까?”
신혜선이 물었다.
보통의 파티는 차원 균열 한 개 정도 정리하면 돌아가는 걸로 알고 있다.
“어떻게 할까?”
“이 속도라면 한두 개 정도 더 돌아보죠.”
“이럴 때 아저씨 쩔 받아야지.”
나야 매일 이렇게 그녀들과 함께 균열을 처리할 생각은 없었다.
오늘은 그저 호기심에 나와봤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들에게는 좀처럼 없는 기회다. 그 기대에 부응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다음 차원 균열로 이동해 정리를 할 때였다.
김진아의 클레이모어에서 마력이 피어올랐다.
마력검이었다.
그녀는 강화계 D등급이었다. 그런데 한 단계 랭크가 상승을 한 모양이었다.
진아는 자신의 클레이모어에 피어오른 마력을 홀린 듯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왜 저러지?’
그녀는 그저 기뻐하는 걸로는 보이지 않았다.
“위험해!”
재은이가 멍하니 있는 진아를 향해 달려드는 몬스터를 처리했다.
“아? 죄, 죄송합니다.”
진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재은이와 함께 남아있는 몬스터를 빠르게 정리했다.
남아있는 몬스터 정리하면서도 진아는 뭔가 집중하지 못하는 듯했다.
“진아 씨, 갑자기 멍하니 왜 그래? 등급이 상승한 거 때문에 그래?”
평소와는 다른 진아의 이상함을 느낀 재은이 물었다.
“그, 그게...죄송합니다.”
“C급에 오른 거 같은데, 뭐가 잘못됐나?”
“아? 예? 그, 그렇군요.”
진아는 얼떨떨해하면서도 나사가 빠진 듯한 대답을 하는 게 뭔가 혼란스러운듯했다.
계속 집중하지 못하는 진아를 데리고 더 이상의 균열 처리는 무리라고 생각해 복귀했다.
“죄, 죄송합니다.”
진아는 자신 때문에 차원 균열을 더 처리할 수 있었는데 그냥 돌아왔으니 그게 미안한 모양이었다.
나야 그냥 기분전환으로 나가본 거였고 그다지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그저 등급이 오른 게 기뻐서 그런 거 같지만은 않았는데….’
그녀는 다음 날 평소의 김진아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각성한 능력을 가다듬고 싶어서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균열 처리를 위해 열심히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진아는 재은이가 피곤하다고 쉬는 날에도 혼자서라도 나가서 균열을 처리하고 왔다.
아마도 등급이 올랐으니 뭔가 자극이 된 거 같았다.
나야 나랑 섹스 한 번이라도 더 하는 게 낫다고 생각은 했지만, 어차피 그녀 자신이 깨닫지 않으면 믿기 힘든 일이니 내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첫날 이후의 차원 균열 처리는 참가하지 않았다.
숙소에서 말 그대로 제대로 된 백수 생활을 했다.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고....등등.
그러다 배가 고플 때는 먹고 싶은 걸 미녀 쉐프한테 말하면 못 만드는 거 빼고 다 만들어 줬다.
상당히 고급스러운 폐인 생활이었다.
‘집보다 편한 거 같은데….’
그러다 신혜선으로부터 기다리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
*
*
어두운 밤.
신혜선과 함께 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을 했다.
밤은 섹스의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현자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어두운 황량한 벌판에 덩그러니 있는 거대한 컨테이너가 보였다.
그 앞에는 무장한 인간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곳입니다.”
컨테이너를 지키고 있던 인원들은 우리가 다가가자 조용히 인사를 하고 철수했다.
“저는 이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신혜선이 말했다.
안에 있는 물건이 자신이 봐서는 안 될 물건이라고 생각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그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컨테이너로 접근했다.
문은 쇠사슬과 자물쇠로 튼튼하게 잠겨있었다.
나한테는 별 의미 없는 것이었지만.
-우두둑!
자물쇠와 쇠사슬을 가볍게 부스러뜨리고 문을 열었다.
컨테이너 안에는 새것인 듯 깔끔한 최첨단 박격포와 로켓 런처, 거기에 들어갈 각종 탄과 수류탄 등의 중화기가 잔뜩 실려있었다.
내가 염제 곽상현에게 부탁한 물건이었다.
포탄은 소이탄 위주로 주문했다.
[주변에 특별히 주인님을 관측이 가능한 요소는 없어 보입니다.]
수니의 말을 듣고 안심하고 컨테이너 안의 물건들을 인벤토리로 쓸어 담았다.
‘가볼까.’
로그인 스킬을 사용해 통로를 열었다.
직사각형의 진입문이 생겼다.
자고 아침에 가도 됐지만 생전 처음 다뤄 보는 중화기다. 기분이 업되어서 써보고 싶은 마음에 몸이 근질근질했다.
<접속할 장소를 선택해 주십시오.>
전에 청주에 설치해둔 좀비 세계의 세이브 포인트로 진입했다.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었다.
은은한 햇빛이 들어오는 교회 안의 풍경은 전과 변한 건 없어 보였다.
교회를 빠져나와 거미 괴물들의 거미줄로 덮인 도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운이 좋으면 날로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근두근했다.
‘그런데 이런 화기로 죽여도 경험치가 들어오나?’
뭐 곧 있으면 알게 될 일이었다.
하얗게 거미줄로 덮인 건물들.
전에 왔을 때와 그다지 변한 게 없는 풍경이었다.
‘이 정도면 되려나?’
수니의 지시에 따라 평평한 땅에 인벤토리에서 박격포를 꺼내 설치했다.
군대에서 쓰는 그런 싸구려가 아니라 평평한 바닥에 올려놓으면 편하게 자동으로 지지대 설치가 됐다.
수니의 말에 따르면 마석을 에너지원으로 한 디지털 기술이 적용된 고급 박격포인 거 같았다.
곽상현이 나름 신경을 써서 준비해준 물건인 거 같았다.
인벤토리가 있으니 포탄의 장전도 쉬웠다.
디지털화된 무기라 수니가 간섭하기도 쉬워서, 나야 발사 버튼만 누르면 됐다.
발사하는 것도 수니가 할 수가 있었지만 포탄을 쏘는 건 남자로서 양보할 수 없었다.
박격포가 저절로 각도 조절과 회전을 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수니가 적당한 착탄지점을 고르는 모양이었지만 지금은 그냥 도시 아무 데나 떨어져도 상관이 없었다.
주먹을 움켜쥐고 발사 버튼을 눌렀다.
-펑!
하얀 연기를 동반한 불꽃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백린탄이었다.
거미줄에 불이 잘 붙지 않는다는 건 전에 간소하게 실험은 해봤지만, 소이탄이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싶어 가져왔다.
-펑! 펑!
서로 다른 지점으로 두 발 정도 더 하늘을 향해 날렸다.
대낮부터 하늘에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가능할까?’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드론을 띄웠다.
불꽃이 하얀 연기와 함께 지상에 떨어지며 거미줄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시작은 좋았다.
하지만 갑자기 어디선가 거미 괴물들이 튀어나오더니 진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입에서 하얀 거미줄을 뱉어서 불을 끄고 있는 거 같았다.
“아니....이 새끼들 또 선 넘네….”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진화 작업을 하는 놈들의 위로 네이팜탄을 장전하고 포격을 날렸다.
-펑. 펑.
놈들의 등위로 떨어진 네이팜탄에 의해 불이 붙자 고통스러워하면서 바닥을 뒹굴었다.
“오오, 들어온다. 경험치가!”
<하급 침식체 처치: 2 / 10 >
<하급 침식체 처치: 4 / 10 >
하지만 좋아졌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세, 세 마리?!”
촬영 화면에 옆에 있던 거미 괴물 놈들이 재빨리 거미줄을 뱉어 불붙은 놈들의 불을 꺼주는 게 보였다.
몇 발을 날렸는데 세 마리인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다른 포탄을 써봐야 하나?’
하급 침식체라고는 해도 원래 세계로 따지면 D급 몬스터다.
다른 포탄을 날린다고 해도 직격이 아니면 잡기 힘들어 보였다.
.........역시 날로 먹으려 하면 안 되는 건가?
천생 들어가서 조져야 하나?
그렇다고 해서 지저분한 저곳에 들어가긴 싫었다.
이쪽 세상 꼴을 보니 여기 아니라도 사냥할 데는 많을 거다.
기동성도 어느 정도 확보가 됐으니 이곳에 연연할 필요는 없었다.
‘제주도까지 가서 힘들게 구한 소이탄인데….’
소이탄이 생각한 것만큼 효과가 크지 않아 보이자 실망감이 들었다.
‘.......여기 아니라도 언젠가 쓸 일이 있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자기 위로를 하며 씁쓸하게 주섬주섬 장비를 다시 인벤토리 넣었다.
‘쩝....일단 복귀해서 생각해보자.’
땅을 박차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등 뒤로 거대한 검은 마력의 날개가 펴졌다.
그리고 뒤에서 마력에 의한 추진력이 발생하며 몸이 앞으로 나아갔다.
수니가 초고속으로 이동할 게 아니면 이렇게 날개가 있는 게 에너지 효율이 높다고 했다.
나는 수니가 그렇다니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그렇게 하늘을 날아 세종시 쪽으로 날아가고 있으니 지상에 있는 숲에서 검은 구름 같은 게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저건….’
언젠가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었다.
예전에 대전에서 세종시 가는 길이었던 거 같다.
자세히 보니 그때 본 거대한 뒤틀린 비둘기 떼였다.
놈들이 이쪽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피할까 하다가 휴대용 로켓 런처를 꺼내 들었다.
군에서 쓰고 있는 싸구려 휴대용 로켓포와 격이 달랐다. 고급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냥 봐도 비싸 보였다.
로켓 런처를 어깨에 견착하고 조준했다.
로켓탄은 인벤토리에서 수니가 빠르게 장전해 줬다.
디스플레이에 날아갈 탄의 깔끔한 궤도가 보였다.
놈들이 워낙 똑바로 날아와서 조준하기도 쉬웠다.
-펑!
탄두가 그 무리의 중앙을 향해 날아갔다.
-퍼엉!
화염이 터지며 한 뭉텅이의 비둘기가 불에 타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불타서 떨어지는 모습이 거미 괴물들의 도시에서의 답답함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퀘스트에 반응이 없는 게 하급 침식체조차 아닌 허접한 놈들이었다.
비싼 물건 들고 와서 엄한 곳에 화풀이하고 있었다.
-펑! 펑!
두 번 더 불벼락을 처맞더니 놈들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빠르게 도망을 쳤다.
당연히 쫓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저런 허접들을 상대로는 괜찮은 무기라고....위안으로 삼기에는 역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 아쉬움을 부여안고 그대로 하늘을 날아 세종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