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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진우가 유나에게 용서를 빌었단 말이지?”
“네.”
앨리스는 내 무릎 위에 앉아 유나에게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떠들고 있었다.
‘요즘은 우리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거 같은데….’
최근 그녀는 우리 집을 마치 자기 집처럼 들락거리고 있었다.
아니....거의 매일 우리 집을 들락거렸다.
유나는 이진우의 사과를 듣고 마음이 약해졌는지 엄마인 김경숙을 만나러 갔다고 한다.
다행히 이진우 놈은 독립을 해서 그곳에 없었다.
‘아니, 쫓겨났다고 해야 하나?’
아직 이진우가 그곳에 있었으면 보내지 않았을 거다.
그도 내가 어떤 존재가 됐는지 알 거다.
‘나한테 처맞을까 봐 미리 사과를 한 건가?’
그나저나 이 수다쟁이….
그래도 칭찬할만한 일이기에 앨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러자 그녀는 신나서 발을 동동 구른다.
“히히...운호 님~ 상주세요.”
앨리스가 은근한 말투로 내게 보상을 요구했다.
첫날밤 그녀의 모습은 그저 작은 일면에 불과했다.
앨리스는 생각보다 터무니없이 음탕한 녀석이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신이 난 그녀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탐욕스럽게 내 입술을 빨아왔다.
“으음..츕. 츄릅.”
그러면서 앨리스는 은근슬쩍 자기 엉덩이로 내 물건을 자극해왔다.
‘참나....내가 이런 취급을.......기특하게!’
-띵동.
그녀가 나를 끌어안고 질척한 키스를 하고 있으니 현관 벨이 울렸다.
아마도 진아일 거다.
아까 온다고 하는 연락을 받았다.
앨리스는 내게서 얼굴을 떼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다.
‘후…. 위험했군. 또 분위기에 휩쓸릴 뻔했어.’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지 몰랐지만, 그녀는 좀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진아는.....뭐였더라....집 문제로 온다고 한 거 같은데….’
“실례합니다.”
집으로 들어온 진아가 내 옆에 있는 앨리스를 보고 흠칫했다.
“안녕하세요. 앨리스 로버라고 해요.”
“아....예....운호 님의 매니저 김진아라고 합니다….”
“아! 운호 님의 매니저님이셨군요!”
서로 자기소개를 했지만 진아는 나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은 내가 아닌 남자였다면 상당히 견디기 힘들 법한 시선이었다.
“유나 친구야.”
“.......그랬습니까?”
내 변명 아닌 변명에 진아의 험악한 시선이 조금은 풀렸다.
앨리스의 성장은 끝났다.
그녀가 체구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차별적인 시선이라니….
나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한국 사회의 뿌리가 깊은 편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여자의 인생을 구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아닌 보통의 인간이라면 진아의 아니, 사회의 시선을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앨리스는 평생 남자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혼자 살아야 했을 거다.
이렇게 음탕한 여자애가 혼자 살아야 한다니….
‘의도치 않았지만 모처럼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군.’
“여자를 늘린 게 뭐가 자랑이라고 그런 얼굴을 하는 겁니까.”
내 생각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진아가 핀잔을 줬다.
“..........크흠. 그래서. 집 문제로 왔다고?”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네. 주변에 배달 맛집이 많고, 회사와 각성자 아카데미에서 가까우면서 한강뷰에 커다란 창고와 전용 주차장, 거기에 보안도 좋은.......그런 집을 구할 바에 차라리 새로 지으면 어떨까 해서 왔습니다.”
나도 억울한 게 그런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모든 것을 따질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조건에 부합하는 집을 찾았을 뿐….
아니....찾으라고 시켰을 뿐이다.
“건물을 새로 짓는다고?”
“네 좋은 조건이 들어와서 찾아왔습니다.”
“좋은 조건?”
“히어로 타운 때문인 거 같습니다.”
히어로 타운이라면 나도 알고 있다. 히어로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관광 명소를 말한다.
S급 각성자라면 자기 이름으로 된 히어로 타운이 하나쯤은 있었다.
“어디에?”
“서초구 쪽 부지를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건설비용도 어느 정도 지원해준다고 합니다.”
차원 균열 때문에 박살 나고 복구가 안 된 황무지를 찾아보면 있긴 할 거다.
그렇다곤 해도 서울이다.
“땅값 비싼데 아닌가? 땅을 그냥 주겠다고? 건설비용까지?”
아니 애초에 내 히어로 타운을 만들겠다니...상품성이 있긴 한 건가?
“그냥이 아닙니다. 운호 님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입니다. 히어로 타운은 그냥 관광 명소가 아닙니다. 운호 님의 거주지는 그 도시의 안전과도 직결이 됩니다.”
깊게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생각해 보니 진아의 이야기가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았다.
“운호 님이 서울에 거주하심으로써 안전도가 올라가니 환영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정부에서도 서울시민들로서도 바라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근처의 땅값도 천정부지로 올라갈 겁니다.”
‘정부도 나름의 이득이 있으니 그런 후한 조건을 내거는 거였다. 신축은 못 참지.....문제는.....시간이 좀 걸린다는 건데….’
그렇다고 해도 서로 이익이 되는 괜찮은 제안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부실 공사하면 각오하라고 해.”
“감히 운호 님의 집을 부실 공사할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때 앨리스가 손을 번쩍 들었다.
“뭐 할 말이라도 있어?”
“운호 님! 저한테 맡겨주세요!!”
“네가?”
“제 아버지가 건설업을 하시거든요.”
“아! 로버가 그 로버였습니까…. 게이트 개척 건설 쪽을 주로 하는 회사로 알고 있습니다. 이쪽 세계에서 평판은 나쁘지 않습니다.”
진아는 앨리스의 집안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거 같았다.
결론은 앨리스는 자신의 아빠가 내 집을 짓는 걸 바라는 거 같았다.
“괜찮은 거야?”
앨리스가 무슨 힘이 있을까 싶었다.
굳이 앨리스의 아빠가 아니더라도 건설회사는 많을 거다.
“당연하죠! 제발 저희 아빠가 맡게 해주세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앨리스는 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아빠? 우리 운호 님의 저택을 만들어 줘야겠어요. 네? 진행하고 있는 일이 있어서 힘들다고요? 장난해요!? 드래곤 슬레이어 운호 님의 집을 만드는 걸 거절하시겠다고요?”
-쉬익! 쉬익!
앨리스가 화가 난 듯 거친 숨을 내쉬었다.
뜬금없는 딸의 전화에 안절부절못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녀는 불타고 있었다.
“가능하죠? 가능하셔야 해요! 그분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라고요! 아시겠어요? 회사의 사활을 걸어야 해요. 그렇게 알고 끊을게요.”
-뚝!
아빠랑 전화할 때와는 다른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운호 님 아빠가 가능하다고 하네요. 부실 공사 같은 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책임을 지고 관리 감독을 하겠어요.”
‘아니, 허락한 거 같진 않았는데...그리고 네가 왜 관리 감독을 하는 건데….’
진아의 말을 들어보면 특별히 하자가 있는 회사도 아닌 거 같고 앨리스의 부탁이니 못 들어 줄 것도 없었다.
하지만 앨리스의 아빠는 곤란한 모양이었으니, 그가 거절한다고 해도 다른 곳을 알아봐도 된다.
그냥 각성자도 아니고 나를 상대로 부실 공사를 할 만한 간이 큰 회사는 없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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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호 님과 연관이 있는 건 계약서라는 종이 쪼가리뿐이에요. 아시겠어요?”
한나는 회사 임원들 앞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계약서라는 종이 쪼가리가 아닌 그가 우리 회사의 지분을 갖는다? 그것만으로 우리 회사의 가치가 몇 배는 상승할 거예요. 조금 더 단단한 연결고리가 생긴다는 거예요.”
한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서 임원분들의 힘이 필요해요. 반대하시는 분 있나요?”
“그, 그건….”
최웅동은 이대로는 안 된다고는 생각했다.
“최웅동 이사님 설마 반대하시는 거예요?”
그를 보는 한나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그녀의 눈빛에 최웅동은 식은땀이 흘렀다.
박운호에게 회사 지분을 양도했으면 한다고?
최웅동은 절대 안 된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한나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박운호가 회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확실히 회사의 가치는 오를 거다.
물론 자신에게도 상당한 이득이 될 거다.
하지만 최웅동은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는 “말이 양도지 둘이서 회사를 해쳐 먹겠다는 거 아니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다.
하지만 의미 없는 말이었다.
박운호가 S급 각성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 이미 자신의 사람들은 한나 쪽으로 줄을 갈아탔다.
“바, 반대는 무슨...허허....회사의 성장을 위해서 그까짓 지분 양도쯤이야.....뭘....못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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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지분을 주겠다고?”
“네.”
바쁜 한나가 집까지 찾아오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리고 찾아와서 내게 하는 말은 또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바라는 건?”
“헤헤. 그냥 저희가 운호 님이 우리 회사 지분을 소유해 주신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언젠가 내가 회사를 떠날지 모른다는 기사를 본 거 같긴 했다.
나야 별 신경을 쓰진 않지만, 회사 쪽에서는 다를 거다.
‘아니면 허접한 계약서 믿고 있기에는 한나 입장에서 불안해서 일수도 있고….’
그래서 내가 일정부분 회사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는 걸 발표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회사로서도 나름의 이득이 있으니 하는 일이긴 한 거 같았다.
나야 내일만 잘 처리해준다면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 일뿐만 아니라 뭔가를 하지 않아도 굴러들어오는 게 참 많았다.
S급이라고 인정받으니 세상 살기 참 쉬워졌다. 이렇게 인생 쉽게 쉽게 살아도 괜찮은 건가 싶기도 했다.
‘뭐, 배불러 터지는 소리긴 하지만….’
준다는데 굳이 손해 볼 것도 없으니 받기로 했다.
뭐 잘못되더라도 내게는 해당이 안 되는 이야기이기도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