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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가 찾아왔다.
한나에게 미리 이야기는 대충 들었다.
“정부 쪽에서 사람이 찾아왔다고?”
전에 대통령이 보내서 왔다고 하도 뻐기길래 좀 두들겨줬더니 회사 쪽으로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만나고 싶다고? 언제?”
“운호 님이 원하시면 언제라도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플레임 길드 마스터인 염제 곽상현 님도 운호 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그 사람은 왜?”
“아마 제주도의 일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제주도 공략은 잠정 중단됐다.
플레임 길드는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열심히 해명했다.
그들이 뭔가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영상도 공개했다.
알이 깨지면서 몬스터가 나타나고 그대로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이었다.
특이하게 알에서 부화한 놈이었다.
그 와중에 다행인 건 A등급 차원 균열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거다.
원래 깨어날 놈이 깨어난 건지.
아니면 플레임 길드가 접근하면서 깨어난 건지 알 수 없지만.
그저 때가 되어서 부화한 게 사실이라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니 플레임 길드도 억울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 참사에 이미 그들은 죄인처럼 되어있었다.
쓸데없이 제주도 공략 같은 걸 해서 몬스터가 튀어나온 거라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그렇다고 그 비판의 강도가 생각보다 강하지는 않았다.
일단 플레임 길드 마스터가 우리나라에 단 4명뿐인 A급 각성자라는 게 컸다.
괜히 세게 때려서 다른 나라로라도 간다면 크나큰 타격이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막대한 복구자금을 투척한 것도 어느 정도 좋게 작용했다.
역시 연예인과 각성자 걱정은 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왜 나를 보자고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는 염제 곽상현이 싼 똥을 내가 치운 격이 됐으니 뭐 감사 인사라도 하려는 건가?
‘그냥 돈만 슬쩍 찔러줘도 나는 만족하는데 말이지.’
안 그래도 요즘 주변이 시끄러워 귀찮아 죽겠다.
예쁜 여자도 아닌 나이 든 아저씨를 별로 만나고 싶진 않았다.
“만나야 하나?”
“염제 곽상현은 몰라도 비서실장은 한 번쯤 만나는 게 좋을 겁니다.”
하긴 빌런 짓 할 게 아니라면 정부에서 챙길 건 챙기는 게 좋았다.
그렇다면 얼굴은 한 번 보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다.
“언제 만나자는데?”
“원하는 때에 부르신다면 온다고 했습니다.”
“아무 때나?”
“네. 운호 님이 원하신다면 이곳으로 부르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이 프라이빗한 공간에 모르는 아저씨를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지금 한나랑 같이 보지.”
나 혼자 처리하기에는 신경도 많이 쓰이고 피곤할 게 뻔했다.
마침 적당히 도와줄 사람이 있었다.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주고 한나한테 맡길 생각이었다.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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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로 가자 한나가 환하게 웃으면서 극진히 환대해 줬다.
“이런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어서 오세요.”
그리고 접객실에 있는 금테안경의 말끔한 중년 아저씨를 볼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은 임재원입니다.”
이 아저씨가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박운호다.”
나는 시간을 길게 끌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없는 살림도 아니고 굳이 아득바득 뜯어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받는 게 많을수록 할 일은 많아진다.
혜택을 받는다면 S급 각성자라고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놀 수만은 없었다.
그게 싫다면 혜택을 받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 혜택이 너무나 컸다.
특히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포기할 수 없었다.
시간 끌 거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로 했다.
“세금 면제되지?”
“예?”
면세는 다른 나라 S급 히어로들에게 전부 주고 있는 혜택이었다.
“왜. 안돼?”
“아, 아닙니다. 예. 가능합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돌직구에 비서실장은 얼떨떨해했지만, 긍정의 대답이 돌아왔다.
다른 혜택도 있겠지만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많이 버는 사람한테 이것만큼 큰 혜택이 있을까 싶었다.
특히 이번에 잡은 A급 몬스터 사체는 돈이 어마어마할 거다.
버는 돈이 많으면 뜯어가는 세금이 상당하다.
그러니 다른 건 몰라도 면세만큼은 챙기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을 최대한 줄이고 싶었다.
“봐서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내가 웬만하면 처리해 주지.”
“아…. 예.”
이건 어느 나라도 기본이었다.
국가의 위기를 보호해준다는 약속이 없으면 힘들게 S급 각성자를 혜택을 줘가면서 붙들어둘 이유가 없다.
그런 위기가 밥 먹듯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일 년에 한 번도 많은 거다.
그 외에는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의 사냥효율이 너무 떨어지니 의욕이 떨어지는 것도 있었다.
“나머지는 한나 대표랑 이야기하도록 해.”
“예?”
한나한테는 미리 이야기를 해뒀다.
자질구레한 것까지 시간을 들여 중년의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어느 정도 한나에게 협상의 권한을 준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얼굴을 비춘 것도 있었다.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과 이렇게 직접 말해주는 건 그 느낌이 다르다.
“아, 섭섭하지만 않게 하면 나도 떠날 생각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애국심은 없지만 그래도 익숙한 곳에 사는 게 편하긴 했다.
비서실장은 내게 한마디도 못 붙이고 멍하니 있었다.
뭘 기대하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중년 아저씨의 얼굴을 보면 길게 이야기를 끌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럼 나는 이만 일어나지. 한나 대표 잘 부탁해.”
“네. 뒤는 맡겨주세요.”
“자, 잠깐.”
뒤에서 비서실장이 붙잡는 듯했지만 무시했다.
그렇게 나는 내 할 말만 이야기하고 한나에게 뒤를 맡기고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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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내어준 고급세단의 뒤에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운전은 김진아가 하고 있었다.
석양이 진다….
그녀와는 할 이야기도 없어 조용히 그저 멍하니 스쳐 지나가는 노을 진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식사하셨습니까?”
말문을 먼저 연 건 김진아였다.
“나? 아직...가서 먹어야지.”
“.......같이 식사라도 하시겠습니까?”
“........뭐.....라고?”
“제가 운호 님께 식사를 대접해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꼬셔도 안 넘어오던 김진아가 먼저 권유하다니......S급은 되고 볼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쉬운 남자가….
맞았다.
“식사 좋지.”
미인과의 식사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안내하겠습니다.”
김진아는 나를 호텔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호텔이라니....이러면 좀 기대해도 되나?’
기대감에 마음이 들떴다.
그리고 그 호텔 레스토랑은 이미 예약이 되어있었다.
‘흠....내가 거절하지 않을 걸 예상한 건가?’
미녀에게 약한 쉬운 남자라는 건 그동안 봐온 게 있으니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을 거다.
그렇다면 김진아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테이블에 정갈하게 놓인 스테이크를 썰었다.
“제가 마음에 드십니까?”
김진아는 단도직입적이었지만 나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뭐...그렇지.”
“전.....예쁘지 않습니다. 그래도 좋습니까?”
미인이었다.
‘자각이 없는 건가?’
한나처럼 화려한 미인이라고는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목까지 오는 단정한 단발머리.
쌍꺼풀이 없어 조금은 날카로운 듯한 매력적인 눈.
단아하고 정석적인 동양의 미인이라는 느낌이었다.
“넌 미인이야.”
“제가.......말입니까?”
그녀의 얼굴이 와인 때문인지 내 칭찬 때문인지 는 알 수 없지만, 살짝 달아올라 있었다.
그 모습이 역시나 이뻤다.
“대표님께 관심이 있지 않으셨습니까?”
“있지.”
한나도 미인이다.
관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내 거침없는 대답에 김진아의 얼굴에 조금 황당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바보같은 질문이었군요. 저는 당신을 회사에 묶어두고 싶습니다.”
본론으로 나왔다.
‘역시나 그것 때문인가? 그렇다고 한나가 시켰을 거 같진 않았다.’
그냥 봐도 둘이 상당히 신뢰하고 밀접한 관계로 보였으니.
그녀가 목적이 있긴 했지만, 상관은 없었다.
“난 묶일 생각이 없어.”
아무리 여자가 좋다고 해도 나는 무언가에 얽매이는 걸 상당히 싫어했다.
무각성 헌터 시절 혼자 심마니 생활을 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역시 그렇습니까. 혹시 회사를 떠날 생각이십니까?”
“글쎄...지금은 별생각이 없는데….”
사람 일은 모른다지만.
나는 솔직히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회사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대부분 내가 부려 먹었으니 나쁘게 생각하는 게 이상했다.
당연히 S급 각성자로 인정받은 지금은 혼자서 사업을 하던 뭔가를 하는 게 더 큰 이득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내가 열심히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라야 했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고.
“지금의 관계가 괜찮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지금처럼만 해준다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달라질 건 없어....진아 씨가 힘 좀 써준다면 좀 더 애착이 가지 않을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은근슬쩍 어필해본다.
“후우....어쩔수 없는 분이군요.”
“그럼?
진아가 살포시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살짝 붉은 게 부끄러워하는 듯도 보였다.
‘스, 승낙한 건가?’
“내가 모른 척하고 떠나면 어쩌려고?”
말 그대로 그녀를 따먹고 모른 척 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요. 제 안목을 탓해야지.”
그녀가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몸을 내어주는 상황이다.
하지만 내가 뭐 성인군자도 아니고 상관하지 않았다.
실제로 진아가 내 여자가 된다면 그녀의 부탁을 조금 더 신경을 써줄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 됐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남아있는 고기를 입에 빠르게 욱여넣고 진아와 함께 호텔 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