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저씨의 로그인 생활-98화 (98/259)

결국 며칠 되지 않아 금세 정체는 밝혀졌다.

난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유명인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들이 아파트 앞 주차장에 진을 쳤다.

“아저씨 기자들 저거 괜찮은 거야?”

제주도 공략이 잠정 중단되고 재은이는 집에 돌아와 있었다.

“뭐....놔두면 잠잠해지겠지.”

기다리는 것도 곤욕이다.

최근까지 유나나 경숙이 만날 때 외에는 집돌이였던 나다.

게임이나 하면서 며칠 상대하지 않으면 지들도 사람이니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재은이와 질척대던 중 벨을 누르는 어떤 미친놈 때문에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기자 놈들이 모이를 기다리는 새끼 새처럼 기대에 찬 반짝이는 눈빛들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난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야, 다 꺼져.”

“대, 대중들은 알 권리가….”

“언론의 자유가….”

기자들 사이에서 소심하지만, 용기 있는 목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알 권리? 언론의 자유?

그런 건 힘없는 놈들에게나 들이대는 거였다.

이미 그런 세상이다.

“내 자유와 권리라는 것도 좀 보여줄까?”

살벌한 미소와 함께 목을 풀면서 커다란 주먹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다들 창백하게 질리더니 포식자를 만난 초식동물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놈들이 흩어지자 만족하고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한 여자가 조심스럽게 뒤늦게 동승을 했다.

아파트 주민인 모양이었다.

빠르게 스캔한 결과 괜찮은 여자였다.

여자는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펜과 종이를 내밀었다.

-스스슥.

그녀에게 사인을 해줬다.

예쁜 여자에게는 이 정도 팬서비스는 해줄 수 있었다.

*

*

*

그때 도망간 기자 중 한 놈이 기사를 썼다.

내가 내려갔을때 찍은 듯한 사진이 한장 실려있었다.

『S급 히어로의 위엄!』

『나는 그에게서 풍기는 범상치 않은 포스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랄...처맞을까 봐 도망가놓고서는 기사는 가관이었다.

이게 지금 시대의 언론이다.

언론사에서는 절대 내게 좋지 않은 이야기를 쓸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나를 무조건 붙잡아둬야 했다.

그러니 나의 심기를 건드리는 안 좋은 기사는 그 어디에서도 원하지 않는다.

쓴다고 해도 소리소문없이 기사는 내려간다.

내게 책잡힐 일은 알아서 자중할 수밖에 없으니 이따위 기사가 나오는 거다.

덕분에 한나는 지금쯤 나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을 거다.

아파트 쪽에 기자들을 한번 정리했으니 그들이 갈 곳은 그쪽밖에 없었다.

*

*

*

“후욱! 후욱!”

앨리스는 흥분하고 있었다.

푸른 하늘을 가르는 검은 유성!

칠흑같이 검게 빛나는 대검과 함께 내리꽂는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천벌과 같았다.

“미티어 스트라이크!!! 홀리...몰리...왓더..개 멋있어!!!”

앨리스는 새로운 S급 히어로의 탄생에 흥분하고 있었다.

“나와라! 그레이트 다크 블레이드!!!”

그녀는 갑자기 영상을 보며 뜬금없이 섀도복싱을 시작한다.

-훅! 훅!

“간다!!! 다크 블레이드! 이것이 바로 흑염의 대검!!!”

그녀는 제멋대로 스킬 이름을 붙여가며 흥분해 침대 위에서 방방 뛰었다.

점점 광기를 띠어가는 히어로 덕후 앨리스였다.

그녀는 이미 검은 갑옷을 입은 히어로의 영상을 백번 넘게 돌려보고 있었다.

“소, 속보?! 검은 기사의 정체!? 왓더!!”

재빨리 기사를 클릭했다.

무심한 듯해 보이는 잘생기지도 못나지도 않은 선 굵은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얼굴도 남자답고 이렇게 시크하고 멋있을 수가!!!”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앨리스의 눈에는 S급 히어로라는 이유로 더할 나위 없는 멋있는 사내로 보였다.

“눈썹도 진하고 이 멋있는 턱선. 히히......어?”

화면의 사내의 모습을 뚫어지게 보던 앨리스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 낯이 익은데?!”

앨리스는 이런 히어로를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결국 생각해 내고야 말았다.

“홀리!! 왓더!! 몰리!! 유나의.....히익?!”

*

*

*

-띵동.

「정부에서 왔습니다.」

“정부? 알았으니까 가봐.”

-뚝.

정부고 자시고 나는 한참 좋은 시간을 보내기 직전이었다.

“아저씨 무슨 일이야?”

샤워하고 나온 재은이 내 허리를 끌어안아 왔다.

보기 좋게 촉촉하고 아름다운 나체를 그대로 드러낸 그녀에게 음심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어 별거 아니야.”

그녀의 매끄러운 허리를 끌어안고 서로의 입술이 겹쳤다.

-츕. 쯉. 츄릅.

-띵동.

“........”

벨 소리가 좋은 분위기를 깼다.

「대통령께서 보내셔서 왔습니다.」

놈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그득했다.

“어? 그래? 내가 아주 큰 잘못을 했군. 기다려 내가 내려갈 테니.”

「그,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

*

*

“........보낸 사람이 두들겨 맞았다고?”

고석천은 대통령이다.

비서실장 임재원의 보고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네….”

“성향이 빌런 쪽인가?”

“전과도 없고....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기자들을 대하는 걸 볼 때 그저 자신을 귀찮게 하는 걸 싫어하는 거 같습니다.”

“다루기 쉽지는 않다는 이야기군? 미국 쪽 각성자 컴퍼니 소속이라고?”

“네 그 블루라이트사 회장 딸이 세운 히어로 프렌즈라는 회사입니다.”

“아. 언젠가 들어본 적은 있는 거 같군. 둘이 깊은 관계인가?”

S급 각성자 정도면 계약에 묶여있다고는 하지만 그냥 파기해도 별말 하지 못할 거다. 그런데 아직 별말이 없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굳이 그런 컴퍼니에 묶일 이유가 없으니 말입니다.”

어디서 뚝 떨어진 초고등급 각성자다.

불과 1년도 안 돼 S급이 됐다.

그런 그가 외국회사에 소속되어 있다니 아깝긴 했다.

“어떻게 안 되나?”

“조심히 대해야 합니다. 성격도 좋다고 볼 수 없습니다. A급 히어로들과 달리 한국에 이뤄놓은 게 없습니다. 가족도 없습니다. 게다가 그의 여자라고 할 수 있는 한나는 미국인입니다.”

그 말은 즉 한국에 미련이 없다면 쉽게 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애인이 미국인이니 더욱 위험했다.

그는 이미 자기 능력을 증명했다.

고석천은 비행형 A급 몬스터라는 보고를 받았을 때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느껴 대피할 비행기도 공항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단신으로 잡아냈다.

현재 전투 능력만 따지면, S급 중에서도 최고일지도 모른다고 평가받고 있다.

최근 고등급 균열이나 몬스터가 나타나는 게 심상치 않았다.

그가 한국을 떠나기라도 하면 자신은 탄핵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다른 A급 히어로들은 한국에 지지기반이 있고 가족이 있었다.

한국은 벗어나려면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그게 없다.

“골치 아프군. 그에 대한 대우는?”

“일단 다른 나라들과 비슷하게 맞춰볼 생각입니다.”

“그래, 쓸데없이 교섭한답시고 맘 상하게 하지 말고 웬만하면 되는대로 최대한 맞춰줘.”

*

*

*

회사의 주가는 과거 한때 유행했던 비트코인처럼 미터기를 뚫고 있었다.

상위 거대길드나 컴퍼니만을 원하던 루키들의 지원이 끊이지 않았다.

전에는 원하던 루키들을 웃돈 줘가면서 데려와야 했지만,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굴러 들어왔다.

보통 A급 이상의 각성자들은 전부 자신의 길드를 만들거나 개인 히어로 컴퍼니를 운영하고는 한다.

운호가 상당히 특이한 사례였다.

그냥 이름만 올려놓고 있는 수준이었지만 그것만으로 막대한 이득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었다.

대표적인 게 터무니없이 돌았던 운호의 애인이라는 루머.

한나는 그걸 이제는 부정도 하지 않고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한나를 음해하려던 소문이 이제는 오히려 자신을 건드릴 수 없는 언터쳐블로 만드는 플러스로 작용하고 있었다.

회사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찾아와 그와 접점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운호의 애인이라는 소문 때문에 자신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운전기사의 말이 한나의 상념을 깨웠다.

“수고 했어요.”

기사에게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려 회사로 들어가자 한나는 너무나 반갑고 익숙한 얼굴을 봤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그를 빠르게 쫓아 동승을 했다.

“최웅동 이사님. 요즘 얼굴 보기 힘드네요.”

한나는 최웅동에게 살갑게 인사를 했다.

반면에 그녀의 얼굴을 본 최웅동은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아......한나 대표….”

최웅동의 똥 밟은 표정이 상당히 보기 좋았다.

한나는 그의 면상마저 반갑게 보이는 날이 오다니 격세지감이라는 말의 뜻을 알 수가 있었다.

“아! 전에 뭐라고 하셨죠? 그분에 대한 지원이 너무하다고 그러셨던 거 같은데….”

“하하, 나는 한나 대표를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네. 주변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그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거네. 나는 대표를 절대적으로 지지한다네. 하하.”

“아, 어떻게 하죠? 이미 말해버렸는데….”

“무, 뭘 말인가?”

“우리 운호 씨에게 회사에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자, 자네 제정신인가?”

“예? 제정신이요? 저한테 하신 말씀인가요?”

한나가 뿔테안경을 슬쩍 치켜올리며 반문했다.

“아, 아니네….”

“걱정하지 마세요~ 농담이에요. 죠크, 아시죠?”

“노, 농담….”

최웅동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한다.

화가 난듯했지만, 자신에게 쩔쩔매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나는 언제나 자신의 일에 태클을 걸던 최웅동의 그 모습이 너무 재미가 있었다.

저 푸들거리는 돼지 얼굴.

스마트 폰으로 찍어 놓고 싶었지만, 자제력을 발휘해 참았다.

상쾌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최웅동에게 기분 좋은 아침 인사를 하고 집무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비서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표님. 한국 정부 쪽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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