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저씨의 로그인 생활-95화 (95/259)

*

*

*

회의실의 분위기는 상당히 험악했다.

한나는 지금 상황이 안 좋다고 생각했다.

‘젠장. 엄마 손 빌리기 싫어 투자받은 게 잘못된 건가? 이 정도로 짜증이 날줄은....스파이라도 심은 건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사람 볼 줄 모르는 자기 눈을 탓해야 했다.

그렇다고 회사가 최웅동 이사, 저 돼지 놈에게 넘어가는 꼴은 볼 수 없었다.

초창기부터 루키들에게 너무 후하게 계약한다는 말이 많았다.

한나야 성장 가능성이 확실한 루키를 위한 투자였지만, 외부에서 보면 이해를 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래도 최근 그 루키들의 성장에 잠잠해졌지만.

박운호의 일이 터지면서 다시 폭발했다.

“겨우 D급 각성자의 계약서를 왜 공개 못합니까!”

“그건.....비밀이에요.”

“저희는 그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겨우 D급의 계약금이 터무니없다는 소리가….”

“회사에 영입하고 한 활동이....F급 균열 처리 몇 개...C급 토벌 참가 한번...실적도 거의 없고...그 C급 토벌마저 기밀로 처리됐군요.”

“수상합니다…. 허위경력 쌓아주기 뭐 그런 겁니까?”

이사회 임원들은 하이에나처럼 한나를 물어뜯었다.

“등급에 비해 터무니없는 지원......저희 귀에는 그가 한나 대표의 애인이 아닌가 하는 소리마저 들리고 있어요.”

“모함이에요. 그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영입한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한나 대표. 그걸로는 해명이 되지 못합니다. 여기까지 회사를 성장시킨 대표의 공은 인정합니다.”

최웅동은 어린 나이에 대견하다는 칭찬을 하는 듯했지만, 그건 칭찬이 아닌 완전 아랫사람을 대하는 자세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다음에 적절한 해명을 내놓지 못한다면 대표 자리를 내려놔야 할지도 모릅니다.”

한나는 최웅동 이사의 잠깐 비치는 비릿한 미소를 봤다.

‘저 돼지 새끼!’

면상에 쌍욕을 처박고 싶었지만 참았다.

한나는 자신이 그만두면 그만뒀지, 쫓겨나는 수모를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

*

*

염제 곽상현은 붉은 머리에 호쾌한 인상의 중년 사내였다.

그는 제주도를 되찾기 위해 길드를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향.

그 의미는 그곳을 잃어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지 못한다.

길드 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길드 마스터의 권위와 각성 등급도 깡패였으니 뭉개버리고 진행했다.

예전 그 아름답던 모습은 어디 가고 차원 균열 때문에 황폐한 대지만이 남아있었다.

그 모습에 속은 타들어 갔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복구가 쉽지 않겠구나.’

자신은 이곳을 정리하고 길드 본부를 이쪽으로 옮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길드에서 자신의 이런 마음을 알면 발작을 할 거다.

곽상현의 불편한 마음과는 다르게 공략은 순조로웠다.

몬스터가 많기는 했지만,

다행히 고등급이라고 해봐야 C등급이 전부인 거 같이 보였다.

그동안 각성자들의 사냥 기술도 많이 발전하고, C등급 이상의 고등급 각성자들도 많아져 전력이 많이 올라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간만에 염제라고 불리는 곽상현 자신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공략이 순조롭지 않은 게 이상했다.

곽상현 손짓 한 번에 D급 차원 균열과 주변의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타오르며 잿더미로 변했다.

그리고 균열 코어와 마석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몬스터 부산물을 챙기려면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만, 곽상현은 빠르게 저 더러운 놈들을 치워 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곽상현은 길드원들과 함께 선두에서 파죽지세로 균열을 정리하며 밀고 나갔다.

상당히 많은 균열 코어와 몬스터 부산물, 마석이 나왔지만, 길드에는 이득이 거의 없었다.

그 정도로 돈을 쏟아부어서 히어로, 헌터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각성자들을 모집했다.

적자를 예상하고 진행했지만, 손해를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몬스터가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곽상현은 차원 균열들을 정리하며 결국 한라산 백록담까지 다다르게 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를 포함한 길드원들은 백록담 중앙에 있는 거대한 알 하나를 볼 수 있었다.

“감지는?”

“탐지가 되지 않습니다.”

부 길드 마스터인 도유환이 보고했다.

이런 경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없는 경우도 아니었다.

특수 개체일 가능성이 컸다.

‘등급이 문제인데….’

몬스터 감지기로 감지가 되지 않으니 그걸 알 수 없다.

알 크기로 보면 단정 지을 수 없지만, A급 정도로 보였다.

A급이라도 아직 알 상태이기에 해볼 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A급 몬스터가 나타난 적이 없다.

언제 부화할지 모르겠지만,

정석대로 하면 철수해야 했다.

그리고 다른 길드 마스터에게 지원을 요청해야 했다.

곽상현은 고민했다.

‘쯧. 잘 풀리나 싶더니….’

하지만 그 고민은 짧았다.

“후퇴한다.”

곽상현은 그래도 초창기부터 활약해온 베테랑 헌터기도 했다.

마음이 급하다고 해도 상황판단은 할 줄 알았다.

B급이라도 조심해야 하는데 A급 괴물일지도 모른다.

어설픈 예측이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일단 놔두고 다른 길드 마스터에 지원을 요청한다.”

곽상현은 그들이 오는 동안 주변을 정리하고 있을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쩍!

무언가 균열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거대한 알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쩌저적.

그 균열은 알 전체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곽상현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후드득.

금이 간 알이 부서져 내라며 거대한 검은 실루엣이 보였다.

몸을 말고 있어 무엇이지 처음에는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그 괴물은 거대한 날개를 펴고 그 위용을 자랑했다.

곽상현은 그 모습을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저, 저거….”

그건 검붉은 용이었다.

판타지 영화에서 나올법한 그런 용.

-크아아!

기지개를 켜듯 용이 포효했다.

괴물과 300M 정도의 거리가 있음에도 그 포효에 D등급 이하의 각성자들은 피를 토하며 비틀거렸다.

C등급 이상의 각성자도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었는지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용은 자신의 탄생을 과시하듯 하늘을 향해 브레스를 쏘아 올렸다.

거대한 빛줄기가 구름을 관통해 하늘로 솟아올랐다.

곽상현은 그 모습을 보고 최소 A급 이상의 괴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전력으로는 대항할 수 없다.

곽상현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내가 시간을 끌 테니 신속히 후퇴해라.”

“마스터 그, 그건….”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빠르게 본토에 연락할 생각이나 해.”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도유환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런 곽상현의 생각과는 다르게 검붉은 용은 그대로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어?”

그러더니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곽상현은 자신의 결의를 무시하고 날아가는 용을 멍하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좆됐다는걸 알았다.

“미치겠군….”

그 날아가는 방향이 한국 본토 쪽이었기 때문이었다.

*

*

*

이재은은 운호 말대로 마지막으로 토벌대에 참가했다.

운호의 걱정과는 달리 플레임 길드는 자신들을 선봉으로 위기 없이 제주항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무난히 공략을 해나가고 있었다.

제일 위험한 선봉을 선다는 점에서 플레임 길드는 각성자들 사이에서 평가가 올라가고 있었다.

놀란 건 예상보다 많은 몬스터 숫자.

제주도는 말 그대로 몬스터 천국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재은과 한나는 제주도가 아닌 부산에 있었다.

한동안 몬스터들과 씨름을 하다가 부산에 짧은 2박 3일의 휴가를 나왔기 때문이다.

숙영지의 시설도 그렇게 나쁘진 않지만, 도시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많은 각성자가 이렇게 교대해가면서 쉬고 있었다.

그 많은 각성자들 덕에 부산은 지금 성수기였다.

빡빡하게 굴려지는 몬스터 사냥에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상상 이상의 수입이었다.

통장에 꽂히는 돈을 보면서 다들 버티고 있는 거다.

이재은은 놀랍게도 제주도에서 사냥하며 등급이 올랐다.

그녀는 그저 등급이 올라 많은 돈을 받게 된 것이 기분이 좋은듯했지만, 김진아는 다르게 보고 있었다.

김진아가 재은을 따라다니는 이유는 하나였다.

한나가 말한 유재은의 애매모호한 성장 가능성.

그녀는 각성자들의 성장에 대해 지금껏 틀려본 적이 없었다.

김진아 자신도 그 범주 안에 있었다.

한나는 애매모호하게 답하긴 했지만, 결국 유재은이 성장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성장했다.

하지만 뭘 알아볼 새도 없이 가볍게 성장을 했다.

한나와 김진아의 입장에서는 특이한 이레귤러였다.

김진아는 유재은에게 자신의 성장에 대한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조금 더 신빙성을 더해가는 느낌이었다.

재은과 김진아는 이제 휴가를 마치고 항구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기다리던 배가 도착했다.

배를 타려고 줄을 서 기다리던 그때 먼바다에서 한줄기 섬광이 피어올랐다.

그 광경을 보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재빠르게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진아 씨 저거.”

“제주도에 무슨 일이 터진 거 같군요.’

제주도와 부산은 상당한 거리다.

단정을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유재은도 빛줄기가 터져 나온 게 그쪽이었으니, 막연히 제주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먼 곳에서도 보일 정도로 하늘로 쏘아지는 섬광은 뚜렷했다.

재은은 그게 긍정적인 신호로 보이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홀린 듯이 바라보던 섬광이 사라지고, 유재은의 눈에 김진아가 재빨리 어딘가 전화를 거는 게 보였다.

“제주도에 대해 뭔가 들어온 소식 있습니까?”

김진아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려는 거 같았다.

“아, 예, 그렇군요.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면 보고해 주십시오.”

한동안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던 김진아가 통화를 끊고 유재은에게 말했다.

“아직 정확한 정보가 없습니다. 일단 빛줄기는 제주도 쪽에서 나온 건 확실한 거 같습니다.”

왜곡 현상이 걷힐 정도로 아직 차원 균열을 정리하지는 않았다.

안쪽으로 통신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안쪽에 무슨 상황인지는 안의 사람들이 나와야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배 왔는데?”

“배는 타지 않겠습니다.”

“어? 그러면 위약금이….”

“배도 출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위약금 보단 안전이 최고입니다. 일단 여기서 제주도 상황을 파악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동하죠.”

“어? 어.”

김진아는 제주도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터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다행히 부산은 제주도에서 가까운 땅이 아니다.

일이 생겼어도 이곳은 그나마 안전할 거다.

“그럼 시간이 더 생긴 건가? 어디 괜찮은 맛집 탐방이라도 갈까?”

“또 먹는 겁니까?

“어차피 먹는 게 남는 거라고.”

유재은과 차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던 김진아는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제주도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온 모양입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