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괜찮아도 나 아니면 감당할 사람도 없잖아?”
“.........”
내 말에 천부문 사람들은 민망해하면서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날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이번 사냥에서 나보다는 천부문이 꽤 큰 피해를 볼 거다.
나는 흑랑 사냥과 아이들을 안전을 위해 그들을 이용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좀 더 버틸 수 있게 신경을 더 썼을 뿐이다.
내가 상대할 상급 침식체인 흑랑만이 아니라 중급도 파악한 것만 4마리가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하급 침식체 괴물들.
흑랑은 내가 맡는다고 해도,
천부문에는 중급 침식체를 오롯이 혼자 감당할 만한 인간도 별로 없어 보였다.
백설화, 노인네, 그리고 대사형이라는 저 중년 남자.
중급을 견제할 만한 인간이 셋뿐이라는 게 좀 불안불안했다.
“........그러고 보니 천수호는 어디 갔지?”
나중에 조질 생각이었는데 어느샌가 까먹고 있었다.
여기에 와서도 못 본 거 같았다.
그러다 급하니까 생각이 났다.
천수호 놈은 C등급 각성자다.
마음에 안 들지만 괜찮은 전력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혹시 알겠는가.
놈이 열심히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면 내가 면죄부를 줄 마음이 들지.
“사형은 파문당했습니다.”
“그, 그래?”
설화의 대답에 나는 떨떠름했다.
예상외였다.
내 식구 감싸기를 시전할 줄 알았는데.
파문까지 당했다니 문주 할배가 마음을 독하게 먹은 거 같았다.
할배....그 정도로 화가 났나.
천수호는 쓸데없이 운이 좋았다.
‘쩝. 어처구니없군.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역시 마음에 안 드는 놈이었다.
없는 놈 찾아 뭐하나.
작전은 간단했다.
복잡한 작전 세울 시간도 없고 머리도 없었다.
내가 유인해 싸우는 동안 천부문이 합류해서 싸운다.
천부문이 중급 침식체 괴물들의 주의만 끌어만 줘도 무난하게 흑랑 놈을 잡을 자신이 있었다.
“낭군님은 이곳으로 흑랑을 유인할 생각이십니다.”
천부문의 거처 옆에 아직 개발되지 않은 황무지.
좀 멀리 떨어진 곳을 선정할까도 생각했다.
쓸데없는 걱정일 수도 있겠지만, 혹시 일이 꼬여 빈집털이라도 당한다면 치명적이었다.
놈을 보면 그러고도 남을 놈으로 보였다.
내가 이렇게 일을 복잡하게 하는 것도 아이들의 안전 때문이었다.
만약 나 혼자였다면.
천부문이 어떻게 되든지 신경 쓰지 않고 게릴라전을 하면 되다.
아니면 청주에 가서 스킬포인트를 벌고 와도 되고.
그러면 시간은 걸리더라도 결국 흑랑이라는 놈의 사냥은 무난하게 성공할 것이다.
그 대가로 천부문은 너덜너덜해질 테지만.
‘재수 없으면 몰살일 테고….’
하지만 난 혼자가 아니다.
먼 곳에서 사냥하다 빈집털이라도 당한다면 지금까지의 내 모든 행위가 모두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니 그걸 도저히 관과 할 수가 없었다.
기왕이면 이곳과 가까운 곳에서 싸워야 했다.
단점은 천부문이 버티지 못한다면 몬스터가 그대로 거처에 있는 사람들이 대비할 틈도 없이 들이닥칠 수도 있다는 거다.
하지만 아이들이 위험할 때 내가 대처할 수 있는 범위에 두고 싶었다.
놈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볼 생각도 했지만, 그러면 전장을 고를 수가 없다.
그리고 정돈된 상황보다는 난전이 될 가능성이 컸다.
“........이상입니다. 혹시 다른 의견 있습니까?”
설화가 작전 설명을 마치고 주변을 돌아본다.
“........”
문주 할아버지도 반대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작전의 내용에 위험한 일은 오롯이 나만이 부담을 지는 상황이다.
그러니 그들로서는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었다.
*
*
*
날이 밝았다.
“오빠.”
“낭군님.”
내가 그 괴물의 유인을 하러 간다는 걸 아는 아이들의 얼굴은 걱정이 가득했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그녀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천부문을 벗어났다.
내 의지에 마력이 온몸을 휘감았다.
마력이 매끈한 형태를 이루며 심플한 검은색의 전신 갑옷을 만들었다.
그리고 손끝에서부터 몸이 점점 투명하게 변해갔다.
처음에 볼 이득은 봐야 했다.
이득을 보고 천부문과 흑랑 무리의 균형을 조금이라도 맞출 필요가 있었다.
빠르게 이동하며 감지를 이용해 놈들을 찾았다.
천부문과 꽤 떨어진 곳에서 갈색과 검은색의 얼룩이 있는 중급 괴물 개를 발견했다.
도로 한복판에 팔자 좋게 느긋하게 엎드려 있었다.
‘시고르자브종인가.’
주변엔 하급 괴물 개들이 몇 마리 흩어져 있었다.
위협이 되지 않는 하급 잡몹들은 무시했다.
하지만 투명화를 했다고 해도 인간보다 감각이 민감한 짐승들이다.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중급 괴물 개가 뭐가 이상한지 귀를 쫑긋거리고 냄새를 맡는다.
짐승이라 감각이 좋았다.
하지만 아직 의심만 하는 단계다.
한 번에 치명상 내지는 즉사시켜야 한다.
그래도 명색이 중급 침식체다.
‘일격에 가능하려나?’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몰래 접근할 이유도 없었으니.
가까이 다가가 거대 망치 묠니르를 꺼내 높게 들어 올렸다.
놈이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듯 고개를 들었다.
그대로 놈의 머리를 향해 묠니르를 내려쳤다.
놈이 내가 내려치는 순간 눈치채고 피하려 했지만 조금 늦었다.
-쾅!
거리에 어마어마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마력 방어가 견고한 중급 침식체를 조용히 처리할 순 없었다.
-캥!!
중급 침식체라고 한방은 버텼다.
하지만 상당한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게 빈사 상태로 보였다.
놈은 머리뼈가 조금 함몰된 상태로 눈알이 기묘하게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며 빙글 돌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그대로 한 번 더 망치를 내려쳤다.
-으적!
-쿵!
결국 놈의 머리가 부서졌다.
<중급 침식체를 처리했습니다.>
<스킬포인트 1을 획득했습니다.>
[주인님. 상급 침식체가 빠르게 접근 중입니다.]
흑랑 놈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허...저렇게 바로 달려올 줄은….’
생각보다 반응이 상당히 빨랐다.
빠르게 머리가 깨진 괴물 사체에서 마석을 챙기고 은신을 풀었다.
이제부터는 유인의 시간이었다.
은신하고 계속 공격할까도 생각했지만, 놈들이 나를 무시하고 천부문으로 그대로 달려들 경우를 무시할 수 없었다.
탱커가 탱커의 역할을 못 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난장판이 될 테니 탱커의 역할을 충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아우우!!
투명화를 풀고 모습을 드러낸 나를 발견한 흑랑이 달려오면서 하울링을 했다.
묠니르를 인벤토리에 넣고 놈을 피해 빠르게 달렸다.
-크릉. 크릉. 헥헥!
주변에서 괴물 개들이 몰려드는 게 느껴졌다.
내 앞을 하급 괴물 개가 막아섰다.
빠르게 인벤토리에서 나온 창이 내 손에 잡히며 순식간에 그대로 쏘아졌다.
순식간에 창끝에 놈의 머리가 깨졌다.
<하급 침식체 처치: 3 / 10 >
저런 허접한 놈들은 내 레벨업의 재료가 될 뿐이다.
‘좀 더 몰렸으면 좋겠는데.’
잡몹이라도 7마리만 더 잡으면 귀한 스킬포인트 하나다.
-크엉!!
흑랑 놈이 내 뒤를 쫓아오며 포효를 질렀다.
달려오는 하급 침식체 괴물들이 순식간에 내 경로에서 흩어졌다.
내가 강하다는 걸 느끼고 좁밥들은 산개시킨 거 같았다.
‘미쳤나....시발….’
어이없게도 사람보다 더 빠르고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고양이 괴물 때도 느꼈지만 이놈들은 인간적으로 선 넘은 짓을 많이 했다.
하급 괴물 개들은 주위에 넓게 거리를 벌리고,
흑랑과 중급 괴물 개들만이 내게 빠르게 접근하며 쫓아 오고 있었다.
-크엉!!
놈의 공격이 등 뒤에서 짓쳐들어오는 걸 느꼈다.
꼴에 네발짐승이라고 빠르긴 빨랐다.
등 뒤로 거대방패를 인벤토리에서 소환했다.
튼튼한 방패라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방패를 마력으로 감싸 강화했다.
-쿵!
방패에 충격이 가해짐과 함께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놈의 공격은 내게 좋은 추진력을 제공해 줬다.
-크엉!
소리를 지르는 게 내가 기묘한 방법으로 도망가자 놈이 열받은 모양이었다.
나는 흑랑 괴물무리를 무난하게 끌면서 약속의 전장으로 향했다.
*
*
*
천부문 삼십 명 정도의 무인들은 전부 검은색 슈트를 입고 있었다.
그들의 눈엔 굳은 결의가 떠올라있었다.
-쿵. 쿵.
멀리서부터 둔중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낭군님이 오시는 거 같습니다.”
“서, 설화야.”
설화의 옆에 있던 이지아는 불안한 듯 설화를 불렀다.
“낭군님은 강하십니다. 괜찮을 겁니다.”
백설화는 자신의 불안함을 감추고 이지아를 위로했다.
-쾅! 쾅! 쾅!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이내 검은 사람의 형상이 드러났다.
심플한 검은 갑옷으로 온몸을 둘러싼 인간.
그 익숙한 커다란 체구만으로 운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뒤로는 흑랑의 무리가 운호를 뒤따르고 있었다.
“오, 오빠야!”
운호는 유인장소인 미개발 황무지에 도착하자 도망치던 걸 멈추고 흑랑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다친 곳도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괴물들에 둘러싸여 거침없이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는 운호가 보였다.
신기하게 허공에 나타나 괴물 개들의 공격을 적절한 순간 방어하는 거대한 검은 방패.
걱정한 게 무색하게 오히려 여유가 있어 보였다.
“낭군님이 오셨습니다.”
“흑랑과 원한의 종지부를 찍을 때다. 가자.”
백태산의 명령에 천부문 무인들은 검을 뽑아 들고 빠르게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