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저씨의 로그인 생활-80화 (80/259)

그들은 내가 좀비 머리에서 마석을 꺼내는 걸 보고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걸 보면 마석의 존재조차 모르는 거 같았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죽은 좀비의 몸을 해체해 가며 연구하진 않을 테니 정상적인 반응이 아닐까.

“저, 저기요....아저씨….”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도망치면서 침식체 좀비들에게 전기찜질을 하던 중년 부부의 딸로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뒤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손도끼로 마석을 캐는 나를 얼떨떨하게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미묘한 그들의 긴장을 느꼈다.

내가 손쉽게 커다란 좀비를 때려잡는 것을 봤다.

체구도 상당하다.

경계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거다.

아니면 죽은 좀비의 머리를 깨부수는 내가 이상해 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원래 세계나 이쪽 세계나,

나를 이제는 평범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은 없었다.

직접적으로 내게 뭔가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이제는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먼저 말을 걸어온 이 젊은 여자는 생각보다 담이 컸다.

대학생 정도일까.

예쁘게 생겼고 나이는 이십 대 정도로 보였다.

이 여자는 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더 큰 모양이었다.

아마도 좀비 놈들을 쉽게 처리한 강자에 대한 호기심일 거다.

“호, 혹시 어디로 가세요?”

그녀는 그래도 긴장을 놓지는 않고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청주.”

나도 물어볼 게 있고 솔직히 대답해 줬다.

“처, 청주요!? 거, 거긴….”

내가 목적지를 말하자 젊은 여자가 화들짝 놀란다.

“뭐라도 있나?”

“거긴 괴, 괴물들의 소굴이 되었어요. 우리도 그곳에서 도망쳐 나온 거예요.”

그 소리를 듣고 오히려 반가웠다.

괴물들의 소굴.

몬스터가 많다는 소리다. 오히려 좋지 않나.

나의 판단은 옳은 거 같았다.

“생존자들이 모인 집단 같은 게 있나?”

“잘 모르겠어요. 있어도 그곳에 있진 않을 거예요.”

내 생각보다 청주의 상황은 더 심각한 모양이었다.

“혹시 빌딩만 한 괴물이라도 있어?”

대전에서 본 초대형 멧돼지가 생각이나 노파심에 물어봤다.

그놈은 아직 내 능력으로는 역부족이다.

만약에 그것과 비슷한 놈이 청주에도 있다면 생각을 다시 해봐야 했으니 그녀에게 물어봤다.

“그건 아닌데. 괴물 거미들이….”

거미라는 말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들떠있던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고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거미? 내가 알고 있는 그 작은 곤충을 말하는 건가?”

[주인님. 거미는 곤충이 아닙니다.]

‘뭐? 곤충이 아니라고?’

[네. 절지동물의 한 종류에 속하지만, 완전히 다른 생물입니다.]

허...거미가 곤충이 아니라니….

지금까지 곤충으로 알고 있었는데.

‘충격이군.’

여자의 눈치를 보니 얘도 거미가 곤충이 아니라는 걸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나만 무식한 게 아니었다.

“그게 거미인지 그건 모르겠지만 거미처럼 생긴 괴물이에요.”

그 괴물이 어떻게 생기게 됐는지 처음부터 그 과정을 본 게 아닌 이상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냥 형태만 그렇게 생긴 건가?

아니면 거대화를 한 건가.

그녀의 말을 듣고 망설였다.

난 곤충 같은......벌레들을 싫어했다.

.......무서워하는 게 아니다.

싫어하는 거다.

아니, 혐오한다.

그 작은 벌레들도 싫었는데.

그런 게 거대화를 했다면 그 혐오스러움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어렸을 때는 사마귀도 손으로 척척 잡고 그랬던 거 같은데.

특별한 계기도 없는데,

왜 이렇게 벌레들을 혐오하게 됐는지 알 수가 없다.

각성 후 최대의 난관이 아닐까.

‘만약에 바....선생이 거대화했다면.....시발.....끔찍하군.’

이 세계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큰 위기였다.

여자의 거대 괴물 거미란 말을 듣고 끊임없이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애들한테 그렇게 큰소리치고 나왔는데,

다시 복귀하기에는 역시나 뻘쭘했다.

‘그래. 일단 가서 보고 결정하자’

마음을 다잡았다.

“설마, 청주로 가시려고요? 아저씨 강한 건 알겠는데 진짜 위험해요. 그러지 말고 우리와 함께 가시는 건 어때요?”

그녀는 내가 순식간에 큰 변형 좀비를 처리하는 걸 봤다.

내가 강하다는 걸 봤으니 함께 움직여서 조금 더 안전을 챙기고 싶을 거다.

자신의 아빠와 엄마도 돌봐야 했으니 나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얼굴은 귀엽고 예쁘장하게 생겼다.

하지만 그녀의 가족을 짊어질 예쁨이냐면 그건 아니다.

나도 미인들만 상대하다 보니 꽤 눈이 높아졌다.

그녀 혼자였다면 생각은 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예쁘니 자그마한 호의를 베풀어 줄 가치는 있었다.

“쭉 가다 보면 세종시가 나올 거다.”

“예?”

내가 뜬금없이 하는 소리에 그녀가 눈을 똥그랗게 뜬다.

“강이 하나 흐르고 있는데 그 남쪽에 있는 아파트 단지 잘 찾아보면 천부문이라는 생존자 집단이 하나 있지.”

그녀의 반응을 무시하고 말을 이어 했다.

“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괜찮은 생존자 집단이니 갈 곳 없으면 찾아가 보도록 해.”

그렇게 말하고 쿨하게 등을 돌렸다.

내 거점에 들일 정도의 친분을 쌓지도 않았고, 내가 챙기기는 귀찮으니 천부문에 떠넘기기로 했다.

“자, 잠깐….”

“누, 누나. 귀찮아하는 거 같은데 그냥 가자.”

“그, 그래. 유진아.....저분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가자.”

“어? 어….”

가족들이 말리자 유진이라는 여자는 떨떠름해 하면서도 나를 잡진 않았다.

천부문은 종종 찾아오는 생존자들을 잘 받아주는 거 같았다. 나름의 규율도 있고 무각성자들을 차별하지도 않고 잘 대해주는 곳이다.

내 성격과는 맞지 않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 세계에 흔치 않은 괜찮은 생존자 집단일 거다.

이 가족들도 귀한 각성자가 둘이나 있으니 천부문으로서도 전력 증강도 되고 뭐 괜찮지 않을까?

그런 무책임한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두런두런 가족회의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아저씨가 말하는 곳에 가볼 거야?”

“글쎄....괜찮은 사람 같으니 속는 셈 치고 한번 들러는 볼까?”

난 그들에게 선택권을 줄 뿐이다.

가서 마음에 들면 가서 정착할 테고, 내 권유가 의심된다면 안 가면 된다.

나야 그들이 어느 쪽을 선택하던 상관이 없었다.

*

*

*

건물이 높지는 않았지만, 점점 많아지고 멀리 아파트 단지도 보이는 게 청주로 진입한 거 같았다.

그리고 점점 도심에 가까워지자….

“에이...시발….”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잘못 온 거 같은데.’

그 여자애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도시로 진입할수록 하얗게 거미줄로 덮여있는 건물들이 보였다.

어디부터 시작된 건지 알 수조차 없었다.

아직 거미줄이 덮여있지 않은 그 경계의 외곽을 타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좀비 놈들이 보이지 않는 게 괴물 고양이 놈들이 생각났다.

하얀 거미줄은 어디가 끝인지 보이지도 않았다.

외관상으로는 숨어있는지 그 여자가 말한 거미 괴물은 보이지 않았고 마력 감지로도 잡히지 않았다.

‘없는 건가?’

그건 말이 안 된다.

몬스터가 없으면 이런 기괴한 거미줄이 건물들을 뒤덮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설마 감지가 안 되는 건가?’

고민했다.

감지가 통하지 않는다면 확실한 방법은 건드려 보는 거다.

건드린다면 외곽 쪽에서 건드는 게 나아 보였다.

영역의 경계에 있는 거미줄을 건드려 보기로 했다.

일단 도로변에 아파트 단지 입구가 보였다.

그 입구를 지나 단지 안으로 들어섰다.

아파트 건물 외곽 전체에 거미줄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단지 안쪽에도 괴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근처의 거미줄을 자세히 바라봤다.

거미줄은 얇지 않고 굵은 밧줄처럼 단단해 보였다.

그걸 창끝으로 툭툭 건드려봤다.

끈적끈적했다.

그 점성이 상당했다.

내 힘으로도 이 정도다.

일반인이 건드린다면 떼어 내는데 고생 좀 할 거 같았다.

거미줄을 툭툭 건드리고 있으니 귀에 소리가 들렸다.

-사그락사그락.

상당히 귀에 거슬리는 기분이 나쁜 소리였다.

아파트 2층 테라스 쪽에서 몸통이 소형차 정도의 거미 괴물 하나가 여덟 개의 다리를 움직이며 기어 나왔다.

집 안에 있던 모양이었다.

‘이....씹….’

거미가 거대해진 것과 같은 흉악하고 혐오스러운 그 모습에 다 때려치우고 복귀하고 싶었다.

문제는 눈으로 보이지만 마력 감지가 되지 않는다는 거다.

‘뭐지?’

특수능력 뭐 그런 건가?

아니면.....시발....설마 침식체조차 아닌 거 아냐?

-사각사각.

빠르게 내게 다가온 괴물 거미가 그 좆같이 갈라진 입에서 하얀 무언가를 뿜어냈다.

“헙!”

그걸 보고 식겁해 재빠르게 피했다.

-철썩!

바닥에 늘어 붙은 하얀 걸 보니 거미줄이었다.

시발 잡아야 하나.

잡아야 했다.

잡아야 뭐든 파악할 수 있었으니.

보이는 건 한 마리뿐이다.

설마 저 거미줄이 덮여있는 아파트 단지 집마다 거미 괴물이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핵폭탄 마렵네….’

핵폭탄이면 B등급 몬스터까지는 처리할 수 있긴 할 거다.

그렇게 들었던 거 같기도 하고.

-끼엑!

거미 괴물은 내게 빠르게 다가오며 거미줄을 내뱉었다.

내 능력으로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안구 테러가 심각했을 뿐 등급도 높아 보이지 않았고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아무리 봐도 다시 봐도 좆같이 생겼네. 다른 곳으로 가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일단 빨리 이 거미 괴물 놈을 조지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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