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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터벅. 터벅.
천수호는 멍하니 정처 없이 거리를 걸었다.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움직일 뿐이었다.
천수호는 결국 파문당했다.
다음 대 문주로서.
백설화의 반려로서.
보장된 미래가 사라졌다.
모든 것을 잃었다.
원칙이라면 단전까지 폐하고 내보내는 게 당연했지만.
끝까지 마음 약한 사부는 자신이 괴물들에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게 걱정이 됐는지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다.
어디부터 잘못됐을까.
빗줄기가 사정없이 얼굴을 때렸다.
‘사매….’
자신이 그놈을 암습하지만 않았으면….
뭔가 달라졌을까.
“크윽!!”
자신의 실수로 사매를 잃었다.
아니 잃은 정도가 아니다.
그놈의 노리개로 들어갔다.
“으아아!!!”
지독한 답답함에 고함을 질렀다.
한참을 소리를 지르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엎드려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파문당했다는 사실보다.
지옥에 있을 사매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 미칠 거 같았다.
그놈에게 농락당하고 있을 사매를 구하고 싶었다.
‘어떻게?’
자신은 천부문에서 파문당했다.
도와줄 인간도 없다.
하지만 놈은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했다.
보잘것없는 무공으로는 달걀로 바위 치는 격이다.
사부가 그놈을 상대하기 꺼린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천부문 전체가 달려들었어도,
어떻게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참을 비를 맞으며 절망하고 있을 때였다.
“뭐야? 저거 좀비인가?”
“글쎄.”
“한복 입고 있는 거 보면 그 칼잡이 놈들 쪽 인간 아냐?”
천수호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폭우 속에 우비를 걸친 사람들이 보였다.
괴물들을 사냥하면서 종종 마주치던 생존자집단 사람들인 거 같았다.
“비 맞은 생쥐 꼴이긴 한데.....좀비는 아닌 거 같고.....아직 사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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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자리를 비울 생각이다.”
아이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이야기했다.
전부터 새로운 사냥터 물색에 대해 생각은 하고 있었다.
백설화를 데려오고 어수선해서 미뤄왔던 일정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오히려 설화가 있음으로써 안심하고 갈 수 있을 거 같았다.
“어, 어디 가려고?”
한수지가 물었다.
“청주 쪽에 잠깐 갔다 올 생각이야.”
청주에 가는 시간이야 얼마 안 걸릴 거다.
하지만 세이브 포인트를 설치할만한 괜찮은 곳을 물색하려고 넉넉하게 시간을 잡았다.
“거리가 거리인 만큼 연락은 힘들 거다.”
통신거리를 늘리려면 중계기를 설치해야 하는데.
지속적인 관리를 할 게 아니라면 조금 쓸데없는 짓이었다.
이런 걸 신경 쓰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
“괘, 괜찮지 않을까….”
수지는 내 갑작스러운 외출 선언에 조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낭군님 마음 편히 다녀오십시오.”
“저, 저도 있다고요!”
아이들은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얼굴은 괜찮지 않은 표정이었다.
붙잡아도 소용없을 거 같아서,
억지로 보내준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아이들의 표정에 조금 마음이 약해졌다.
하지만 지아와 설화, 수지면 중급 침식체도 문제없을 거였다.
애초에 침식체 자체가 여기까지 올일 자체도 거의 없다.
거기에 설화 덕에 사이가 조금은 괜찮아진 천부문도 있으니.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뭔가 까먹은 게 있는 거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뭐...별거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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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캠프의 리더 장서원은 부하들이 데려온 천수호라는 남자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부하들의 말을 들어보면 주워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새로 흘러들어온 세력이었으니, 관심이 있었다.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천수호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한 듯한 공허한 눈빛으로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장서원 자신의 질문을 맥아리가 없긴 하지만 꼬박꼬박 잘 대답해 주고 있었다.
집단의 이름은 천부문이라고 했다.
들어본 바로는 계룡산에서 괴물들에게 쫓겨 이곳까지 흘러온 모양이었다.
‘여러 여자를 데리고 사는 상당히 강한 남자라….’
여자 여럿 데리고 사는 거야 이런 세상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상당히 강하다는 말은 신경이 쓰였다.
천부문이 흘러들어와 자리 잡기 전.
학교 건물에 살고 있던 남자라는 거 같았다.
천수호는 공허한 눈빛 속에서도 그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상당한 증오심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 사내와 마찰이 있었고,
그를 죽이려다 사문의 규율을 어겨 쫓겨났다고 했으니 원한 관계인 거 같았다.
사매, 사매 하는 걸 보니 아마도 여자를 뺏긴 거 같았다.
전형적인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절망하는 젊은이였다.
‘천부문이라는 집단이 그 괴물 고양이 놈들을 쫓아낸 게 아닌 건가?’
천수호는 괴물 고양이 놈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냥 떠난 건가?’
장서원은 그 강하다는 사내 혼자.
놈들을 처리했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은 당연히 할 수가 없었다.
계속 이야기를 들어보니,
천부문은 흘러들어오는 생존자들을 꽤 잘 받아주는 모양이었다.
호구스러운 모습이 이곳 생존자 캠프 초기의 모습과 비슷했다.
여기도 처음엔 사람들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잘 받아주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깐깐하게 변했다.
아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자원은 한정돼있고 식량문제도 있다.
가려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천부문이라는 곳도 언제 이곳과 비슷하게 사람을 가려 받을지도 모른다.
꽤 신경이 쓰이는 집단이다.
슬슬 사람을 투입해서 염탐해보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정보수집은 할 수 있을 때 해두는 게 좋았다.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장서원은 천수호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 천수호가 그 공허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본다.
그곳에서 규율을 어겨 쫓겨났다고 해도,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성이 박살이 난 인간도 아닌듯했다.
천부문이라는 집단에서 나름 잘나간 모양이니 전투력도 높을 거다.
의욕은 없어 보였지만,
괜찮은 인재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능력자라면 괜찮은 대우를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장서원은 풀이 죽어 멍하니 앉아있는 천수호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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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로 목적지를 정한 이유는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게 컸다.
원래 세계의 지도와 크게 차이는 없을 테니 아마도 맞을 거다.
그렇다고 시기의 차이도 있고 완전 같은 세계도 아니다 보니 마냥 믿을 건 못됐지만.
비슷하진 않을까.
일단 표지판을 보고 따라만 가도, 길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다.
한 손에는 맨즈사에서 만든 부담스러울 정도로 굵고 기다란 창.
그리고 등에는 배낭을 메고 도로를 따라 느긋하게 걸었다.
백팩이야 없어도 되긴 하지만
인벤토리 스킬은 남들이 보기에 너무나 신기한 스킬이다.
혹시 생존자들을 만났을 때.
신기한 원숭이를 보는 듯한 시선도 별로였고,
괜히 능력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인간도 생길 수가 있으니,
그걸 대비한 물건이었다.
대충 가방에서 꺼내는 시늉이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그냥 매고 있을 뿐이었다.
내 성격에 이것도 귀찮으면 언제 때려치울지 모르겠지만.
-크르륵!!
도로 위를 방황하던 좀비가 목에 이상이 있는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좀비 놈들이 부담스러운 건 지저분하다는 거다.
그러니 최대한 멀리서 조져야 한다.
좀비의 피라도 옷에 튀면 깔끔한 나로서는 찝찝해서 입고 다닐 수가 없다.
-퍽!
창끝에 좀비의 머리가 깨지며 그대로 쓰러졌다.
그렇게 한동안 걷고 있으니 이쪽으로 달려오는 인간들이 보였다.
3명…? 아니 4명이었다.
남자 둘 여자 둘.
[F급 각성자가 두 명입니다.]
아웃도어를 입은 4명이었는데 달리는 인간은 셋이었다.
강화계 각성자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나이 든 여성을 업고 달리고 있었다.
그들 뒤에서는 커다란 좀비 침식체 두 마리가 그들을 쫓고 있었다.
나이 차이가 나는 남자 둘의 얼굴이 비슷한 걸로 봐서는 가족으로 보였다.
‘청주 쪽에서 오는 건가?’
그쪽 상황을 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들은 상당히 다급해 보였다.
딸로 보이는 젊은 여자는
뒤의 침식체를 향해 미약한 뇌전을 쏘아내며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미숙한 능력 탓에 침식체 좀비 놈들은 움찔거리기만 할 뿐 크게 타격은 받지 않는 거 같았다.
공격을 하는 건지,
아니면 침식체 좀비 놈들을 열받게 하려고 하는 건지 모를 전기 찜질이었다.
‘화염계 각성자였으면 좀 나았을 텐데….’
그들은 맞은편에서 느긋하게 걸어오는 나를 보고 흠칫했지만, 뒤에 놈들이 무서운지 멈추지 않고 달려왔다.
“도, 도망쳐요!!”
중년여성을 등에 업은 젊은 남자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 젊은 남자가 지나가고 중년의 남성과 젊은 여자가 뒤를 이어 나를 지나쳐 갔다.
그러면서 느긋이 걷는 날 보는 그들의 시선엔 의문이 가득했다.
보다 못한 예쁘장한 젊은 여자가 답답했는지 내게 소리쳤다.
“아, 아저씨 도망쳐요! 뭐해요?!”
그리고 자신은 할 말 다 했다는 듯 내게서 멀어졌다.
뒤따라오던 침식체 좀비가 내게 달려든다.
거대 좀비 놈들의 그 더럽고 흉측한 모습은 언제 봐도 부담스럽긴 했다.
내 팔이 움직이고 순식간에 창이 쏘아져 나갔다.
-퍼 퍽!
최대 사거리에서 창을 질러 놈들의 머리를 부쉈다.
거대 좀비가 거의 동시에 몸이 쓰러졌다.
-쿵. 쿵.
“어? 이, 이게….”
달리면서도 내 모습을 보고 있었는지.
내 공격에 너무도 쉽게 쓰러지는 침식체 좀비의 모습에 젊은 여자의 조금은 허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언제나처럼 인벤토리에서 손도끼를 꺼내서 좀비 침식체 놈들의 머리를 쪼갰다.
그리고 아차 했다.
‘아......백팩에서 꺼내는 컨셉인데….’
까먹었다.
아니, 인벤토리 스킬의 편의성에 너무 물들어 있었다.
뭐.....괜찮다.
다음부터 잘하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