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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
백설화는 이대로 샤워기의 물을 맞으며 몇 시간이고 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샤워는 그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두 손으로 떨어지는 물을 받아봤다.
먹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 만큼의 깨끗한 물이다.
보급으로 구해오는 생수를 씻는 물로는 쓸 수는 없었다.
천부문은 강에서 물을 길어와 씻는 데 쓰고 있었다.
어떻게 한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샤워가 된다.
오랜만의 샤워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가 여색을 탐하는 건 알고 있었다.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래서 제안했다.
예상대로 그는 자신을 얻기 위해 사형제들을 살려줬다.
그 순간만은 그가 여색을 탐하는 인간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그에게 오지 않았으면 사형제들의 목은 떨어졌을 거다.
그들을 살렸으니 후회는 없었다.
‘할아버님은 알고 있었을까?’
그와의 대결에서 패배하리라는걸.
그와 여러 차례 겨뤄본 자신은 어느 정도 이러한 결과가 될 걸 예상하였다.
자신이 패배하는 것과
천부문주인 조부가 패배하는 것.
그 둘은 그 무게감이 달랐다.
그걸 알기에 자신이 나서려고 했지만….
할아버님의 결의가 확고했으니 그것을 말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조부와 겨루던 그가 거대한 검을 자유자재 다루던 걸 보니 자신조차도 그를 얼마 파악하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그런 그를 수호 사형이 사제들을 이끌고 암살하려 했다니.
그건 백설화로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이었다.
천수호와는 천부문에서 오랜 세월 같이 알고 지내왔다.
도저히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맞았다.
할아버님도 그것에 크게 실망한 기색이었다.
자신이 낭군에게 오면서 결국 사형제들은 목숨은 건졌지만.
‘아마도….’
중징계.....어쩌면 파문까지 생각해야 했다.
그만큼 문주의 명령 없이 암살을 위해 움직였다는 건 있어서는 안 되는 중대한 일이었다.
-위잉~
드라이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에 긴 머리카락이 말라간다.
전기......드라이기.
어찌 된 일인지 전기도 들어오고 있었다.
‘어떻게?’
장수 아저씨가 소형발전기를 구한다고 사형제들과 동서분주 하는 걸 알고 있었다.
‘이곳에는 그런 게 있는 건가?’
오래간만에 쓰는 문명의 이기는 묘한 감동을 줬다.
동시에.
백설화는 이곳이 자신의 생각보다 편하고 환경이 좋은 곳이라는 것을 느낄수록….
그와는 상반된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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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화는 샤워를 마치고 멍하니 의자에 앉아 편하게 쉬고 있는 여자와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그와 함께 이곳으로 오고 그의 여자들을 대면하면서부터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예상하던 그런 곳이 아님을….
그녀들은 안락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귀여운 여자아이가 조심스레 다가와 젤리를 하나 건넸다.
‘하나라고 했나….’
이 아이를 다른 이들이 하나라고 부르는 걸 들어 알고 있었다.
“제게 주시는 겁니까.”
-끄덕.
“.........감사합니다.”
하얀 이를 드러내는 꾸밈없는 웃음.
저것이 거짓됐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
그 사내가 아이들을 험하게 다뤘다면 저런 웃음이 나올 수가 없다.
‘나는….’
아무리 봐도 여자와 아이들은 억지로 붙들려 가혹한 생활을 하는 곳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게...오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쾌한 감정.
하지만 자신은 그동안 그에 대해 터무니없는 오해를 해왔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자신은 그를 오해하고 매도하고 심지어 그를 죽이려 했다.
왜 그토록 그를 베려 했는가.
만약에 그가 약해서 자신의 검에 쓰러졌다면?
저 아이들의 미소는 사라졌겠지.
얼마나 많은 원망을 들었을까.
그걸 생각하니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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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을 때.
아이들은 대충 보급해온 물건으로 끼니를 때우지만, 함께 먹을 때는 내가 원래 세계에서 가져온 음식을 내어준다.
아이들이 내가 가져온 음식을 맛있게 먹는 그 모습이 꽤 보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맛집 찾아다니며 챙길 정도로 부지런하진 않았고.
그래도 꾸준히 괜찮은 배달 음식 위주로 음식을 인벤토리에 넣어놓았다.
오늘은 새로 합류한 백설화도 환영할 겸.
그녀가 원하는 메뉴로 식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들과 밥을 먹으러 휴게실로 들어가자.
“.......?”
왜인지 백설화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얘는 또 왜 이렇게 무게를 잡고….’
“소녀가 낭군님께 크나큰 오해를 하고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설화가 왜 이러나 싶어 아이들을 둘러봤다.
“아저씨 얘 좀 말려봐…. 아까부터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수지가 황당한 표정으로 내게 툴툴댔다.
아이들은 어색한 웃음을 짓고 뻘쭘하게 서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러고 있던 거지….
“낭군님. 소녀를 벌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염치없게도 용서를 구합니다.”
설화는 내게 석고대죄하며 고개를 숙였다.
“소녀를 용서해 주신다면 평생을 사죄하며 낭군님을 모시고 살겠습니다.”
“...........”
이거 뭐라고 해야 하는 거야.
설화의 석고대죄로 어색하게 얼어붙은 공기.
날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소리 같은데.
그 오해 덕분에 오히려 설화를 내 여자로 할 수 있었던 거 아닌가?
솔직히 신경 쓰지도 않고 있었다.
이렇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니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었다.
“어..........괜찮으니까 일어나라고.”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하고 싶어 그녀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설화는 이미 혼자만의 분위기에 취해 처연하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낭군님….”
-찰싹.
손바닥으로 그녀의 튼실한 엉덩이를 때렸다.
“하흑!”
“벌은 이걸로 하지.”
“낭군님 죄가 많은 저를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그, 그래.”
일단 용서를 빌고 있으니 용서를 해줬다.
용서해 주지 않으면 끝이 안 날 거 같았다.
문득 언젠가 사극에서 본 장면이 떠오른다.
용서받을 때까지 몇 날 몇일을 무릎 꿇고 있었다던가….
그녀는 진짜 그럴 거 같아서 조금 무서웠다.
설화의 눈이 촉촉한 게 왠지 모르지만 용서해 준 내게 감동한 거 같았다.
뒤에서는 설화와 나의 묘한 분위기에 지아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참나...사극 촬영 현장도 아니고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이런 이상한 애는 도대체 어떻게 데려온 거야.”
수지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투덜댔다.
-짝. 짝.
손뼉을 쳐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자 밥이나 먹자.
그렇게 말하며 내가 자리에 앉자 지아와 설화가 자연스레 내 좌우로 자리를 잡았다.
“얼씨구. 의자왕이 따로 없구만.”
수지가 비꼬고 있었지만 추한 질투에 불과했다.
남자가 아니니 질투는 아닌가?
“아...난 족발이 당기네.”
수지가 당당하게 자신이 먹고 싶은 걸 혼잣말이라기에는 크게 중얼거렸다.
요즘 오냐오냐해주니 수지는 배가 불러있었다.
무시하고 설화에게 물었다.
“설화는 뭐 먹고 싶은 거 있나? 나름 환영파티라고 생각하고 네가 원하는 거로 먹지.”
“머, 먹고 싶은 음식 말입니까….”
설화는 내가 뭔 소리를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하늘 같은 낭군님의 말씀이니 거역할 수 없다는 듯 다소 부끄러워하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럼 토마토 파스타가 먹고 싶습니다….”
갈비찜이나 그런 게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의 메뉴 선정이었다.
“그럼 오늘은 파스타로 하지.”
“난 로제!”
“알리올리오!”
아이들 앞으로 파스타를 세팅해 줬다.
“이, 이게….”
백설화는 갑자기 나타나는 따끈한 파스타에 어버버했다.
“나, 낭군님은 신선이셨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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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화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극도의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이게 조기교육의 폐해인가?
“천부문에 갔다 오겠다고?”
백설화를 뺏어왔으니 혹시 몰라 한동안은 움직이지 않고 천부문의 동태를 주시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설화가 내게 천부문에 다녀오겠다고 한다.
설화야 원래 천부문 사람이었으니 그곳에 가도 위험한 일은 없을 거다.
“소녀는 천부문에서 낭군님의 잘못된 오해를 풀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나야 천부문이 오해하든 어쩌든 별 상관은 없었다.
그들에게 아쉬울 게 없고,
바라는 게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마도 지금쯤 천부문에서 내 이미지는 거의 최악이지 않을까 싶었다.
습격한 놈들을 반쯤 죽여놓고,
백설화까지 데려왔으니 인상이 좋다면 그게 이상했다.
하지만 백설화는 어떻게든 천부문에 내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대결에서 이겨 그녀를 마음대로 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데리고 오긴 했지만, 처음부터 그녀를 구속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내게 굳이 일일이 묻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편하게 갔다 와.”
“낭군님의 하해와 같은 넓은 마음에 소녀 백설화 다시 한번 감동했습니다.”
설화는 내게 크게 감복하며 큰절을 올렸다.
“........”
아니........도대체….
나이도 어린 게 어떻게 자랐길래….
이 정도면 천부문 놈들의 아동학대를 의심해 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