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아, 아버님....서, 설화는….”
안절부절못하는 며느리.
천부문의 무인들은 조용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태산 자신이 한마디 하면 천부문도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손녀 백설화를 찾아오기 위해 일어설 거다.
백태산은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아들에 이어 손녀까지….’
백태산은 방금의 결투를 곱씹었다.
탄탄한 기본기와 지극히 단순한 공격.
하지만 그 단순하다면 단순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패했다.
압도적인 속도와 파괴력이 문제였다.
자신의 움직이는 방향을 다 읽은 듯한 공격.
그 사내가 대단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런 무기를 그렇게 자유자재로 휘두른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무기인 만큼 넓은 공격 범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걸 피할 틈도 주지 않고 터무니없이 빠른 속도로 휘둘러오니 결국 무리하게 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걸 교묘하게 이용해 공격하니 결국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은 더욱 대단했다.
백태산은 그 거대한 대검이 자신의 검을 부수고 머리 위로 짓쳐오는 그 순간.
죽음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내는 도저히 거두어들일 수 없는 파괴력이 담긴 검격을 멈춰 세웠다.
평범한 무기로 그랬다면 조금 이해해볼 수 있는 구석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무식하게 크고 무거운 무기의 검격을 깔끔하게 멈춰 세웠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가능한 방법은….
그것조차 전력이 아니라는 거다.
전력이 아니었기에 거둬들일 수 있었다.
그게 타당한 생각이었다.
보이는 것보다 그의 능력은 더욱 대단했다.
그와 대결을 한 백태산은 느낄 수 있었다.
설마 했지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천부문 전체가 달려들어도 그를 어쩌지 못할 거라는….
“...........결과에 승복해라….”
“크윽!!”
“아가씨….”
“사저….”
백태산의 선언에 백설화를 잃은 천부문도들의 분위기가 참담하게 가라앉았다.
*
*
*
아이들은 안자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부문이 습격을 해왔고 내가 그 본진으로 갔으니.
내가 걱정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곧이곧대로 믿고 편하게 있을 수도 없었을 거다.
포로들을 데리고 천부문으로 간 내가 백설화와 함께 돌아오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했다.
“오, 오빠. 이분은요?”
“오늘부터 같이 지내게 될 거다.”
“가, 같이요?”
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걸까.
지아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오, 오빠. 절 버리실 건...아니죠?”
내가 새로운 여자를 들였으니 자기를 내칠 거라 생각한 건가?
“내가 왜 널 버려.”
내 말을 듣자 지아는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지아는 상당히 예쁘다.
그런 그녀를 그냥 버린다니 매력적인 여자에 대한 소유욕이 강한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서로 인사하는 건 처음일 겁니다. 소녀, 낭군님을 모시게 된 백설화라고 합니다.”
그런데 내 옆에 있던 백설화는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소리를 내뱉었다.
“나, 낭군?!”
“나, 낭군님이요?!?”
백설화의 폭탄선언에 모두가 놀라고,
지아는 눈을 부릅뜨며 경악해 소리를 질렀다.
“오, 오빠 겨, 결혼하셨어요!?”
지아의 눈은 위험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그 기세에 밀려 나도 모르게 부정했다.
“아, 아니….”
“그, 그런데 이분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죠?”
“저는 운호 님을 일생 모시게 됐습니다. 그러니 운호 님은 당연히 저의 낭군님입니다.”
충격적인 내용과는 다르게 백설화는 표정의 변화 없이 담담히 말했다.
“그, 그건 제가 용납 못 해요!!”
“실례지만 낭군님과 어떤 관계십니까.”
백설화의 추궁 아닌 추궁에 지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저, 저요? 저, 전 오빠의 애인이에요!!”
“휘유~”
수지가 휘파람을 불며 채원이와 함께 막장 아침드라마를 보듯 둘의 대립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저보다 전에 낭군님과 결혼할 사이였다는 말씀이시군요.”
“겨, 결혼!?”
결혼이란 말에 당황한 지아를 보는 백설화의 눈이 예리하게 번득였다.
“아닙니까?”
저건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는 사이라면 헤어지라는 압박인가?
움찔하던 지아는 백설화의 눈빛을 보고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마마마맞아요!!”
그러면서 왜인지 힐끗힐끗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흠...그렇다면, 정실부인이시군요.”
“저, 정실부인?!”
-꿀꺽.
지아는 정실부인이라는 단어에 흥분된 듯 마른침을 삼킨다.
곧이어 뭐가 좋은지 얼굴을 붉히며 입꼬리가 움찔거린다.
“정실부인께서는 소녀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백설화는 곤란하다는 듯 지아에게 물었다.
“저, 정실부인.....크흠....그, 그렇다면... 헤…. 헤헤.”
백설화가 자신에게 굽히고 들어오자 지아의 굳어있던 얼굴은 이미 완전히 풀려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샌가 두 명의 부인을 가진 유부남이 되어있었다.
“아니!! 지아야!!! 거기서 납득하면 어떻게 해!! 이게 말이 되냐고!!”
갑자기 좋게 흘러가는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수지가 급발진했다.
“강자에겐 삼처사첩도 흠이 아닙니다.”
설화가 차분히 말하자 수지가 소리쳤다.
“미친! 너 어느 시대 사람이야!! 나보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죄송하지만, 낭군님과 어떤 관계이십니까.”
밀접한 관계가 아니라면 빠지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나, 나? 어, 어….”
백설화의 말에 수지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지 어버버했다.
“식객이시군요.”
“시, 식객?! 아저씨도 뭐라고 해봐.”
왜 나한테 그걸 물어보는지 모르겠지만….
식객 맞지 않나?
백설화가 아주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이곳에 끼어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여기에 끼어들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걸.
“아저씨. 서, 설마 두 여자와 함께 오손도손 살겠다는 생각은 아니지?”
“왜 안 되는데….”
내가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수지와 채원이 나를 보는 표정이 영 좋지 못하다.
“지아야!! 넌 이걸로 만족하는 거야? 이럴 때 아저씨한테 뭐라고 해야지.”
“에? 저, 저요?”
뜬금없이 지아에게 불똥이 튄다.
그런 수지의 압박에 지아가 안절부절못했다.
“저, 저는.....오, 오빠가 원한다면….”
수지는 아직 케케묵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 여자만 선택해야 한다는 건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다.
지금은 약육강식의 시대!!
남자는 오직 한 여자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는 건 뭐.........그냥 개소리고….
그냥 내가 둘 다 포기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두 여자를 얻을 수 있다면 수지와 채원의 경멸 어린 시선쯤은 감내할 수 있었다.
“자…. 쓸데없는 소리 말고 늦었으니 잠이나 자자. 너희들도 자고.”
두 여자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미, 미친....아저씨. 지금 두 명이랑 같이 자려고 하는 거야?!”
수지의 말을 무시하며 두 여자를 끌어 침실로 향했다.
하지만 내게 끌려가는 설화와 지아는 당황했다.
“자, 잠깐만요. 이, 이건.....오, 오빠....서, 설마?! 세, 세 명......”
“나, 낭군님....이건….”
어쩔 수가 없다.
한 여자만 예뻐해 준다면 다른 한 명이 질투할 수도 있으니.
나는 두 명을 공평하게 귀여워해 줄 의무가 있었다.
아마도….
“........”
*
*
*
백설화는 멍하니 일어났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는지 밖에서 들어온 햇빛으로 실내는 이미 환했다.
둘은 어디로 갔는지 넓은 침대에는 자신 혼자뿐이었다.
평소라면 이렇게 늦게 일어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밤새 그에게 시달려 늦잠을 잤다.
사타구니엔 어젯밤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후우….”
만족이라는 걸 모르는 사내였다.
끊임없이 자신과 정실부인을 정신을 잃을 때까지 탐했다.
3명이 함께라니….
이런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욱씬.
셋이서 엉켜있던 광란의 밤을 생각하니 하복부가 저릿하며 애액이 스며 나왔다.
조금 흥분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흐트러진 긴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드르륵.
그때 이지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머, 깼어요?”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백설화는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이불보로 가슴을 가렸다.
“어제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면서 왜 그래요. 댕기 머리하시려고요? 아직 하지 마세요. 샤워 먼저 해야죠?”
백설화는 이지아의 샤워라는 소리에 귀가 솔깃했다.
“아....그렇군요.”
예전이야 샤워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은 귀하다.
귀한 샤워를 한다고 하니 기대감에 조금은 마음이 들떴다.
“안내해 줄게요.”
“정실부인 감사합니다.”
“정실부인이라는 소리가 싫지는 않지만, 왠지 나이 들어 보여요.”
이지아가 귀엽게 볼을 부풀렸다.
“저보다 손윗사람이니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나이가 어떻게 돼요?”
“올해로 만 19세 됩니다.”
“어머. 나보다 한 살 적네. 그럼 편하게 말놔도 되겠다. 그냥 지아 언니라고 불러.”
“정실부인이라는 말이 거슬리신다면 지아 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백설화의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는 단호한 얼굴에 지아의 얼굴에 어쩔 수 없다는 쓴웃음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