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저씨의 로그인 생활-75화 (75/259)

“수호 사형”

“태민아!!”

내가 놈들을 바닥에 질질 끌면서 천부문으로 가자 경계를 서던 놈들이 경악했다.

녀석들은 바닥에 끌려왔으니 피범벅이되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챙!!

경비를 서던 놈들이 화가 난 듯 검을 빼 들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놈들은 우리 거처에 습격을 해왔다.”

“그, 그럴 리가….”

내 말에 리더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당황했다.

“문주라도 불러오지, 그래?”

중년의 사내가 옆에 있던 젊어 보이는 녀석에게 무언의 눈짓을 하자 그가 천부문 안쪽으로 달려갔다.

내 말대로 문주를 부르러 간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부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문주 할배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바닥을 구르고 있는 놈들을 보고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가 뭘 잘못했는가….”

천부문주 할배의 언제나 허허거리던 얼굴엔 은은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자제력이 뛰어나도 역시 자기 쪽 사람들이 다친 건 못 견디는 모양이다.

“놈들은 우리 거처에 침입에 날 죽이고 여자들을 강간하려던 놈들이다.”

뭐.....강간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놈들은 멋대로 내 거처에 침범했다.

그리고 날 죽이려 한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 사실에 조금 덧붙여 그냥 내 멋대로 죄를 하나 추가했다.

원래 세계도 아니고 법이 없는 세상이다.

유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그게 무슨….”

내 말에 천부문주는 자기 제자들이 그런 짓을 하려고 했다는 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라면 그럼 이놈들이 한밤중에 왜 나한테 잡혀 온 건데. 원래라면 여기 있어야 할 놈들이 아닌가?”

“그, 그건….”

문주 할배는 정황상 내 말이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보이자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아, 아니야 우린 그저 그녀들을 구하려고!!”

천수호의 사제 중 하나가 이대로라면 살인과 아녀자를 강간하려 한 인간 말종이 된다는 게 견딜 수 없는지 피를 토하며 변명했다.

“흥. 미수로 그쳤으니 발뺌하는군. 시커먼 남자 놈들이 뭉쳐 여자들이 자는 곳에 몰래 밤에 침입해 왔다라…. 뻔하지 않나?”

“아니다!!! 우린 네놈을…!!”

“허.......수호야.....그를 어떻게 하려고 하였느냐….”

허탈한 천부문주 할배의 읊조림.

“크윽! 사, 사부님....그, 그건….”

천수호는 자기 사부의 말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가 했던 말은 나를 암살하려 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문주 할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제자들이 자신의 명령 없이 암살을 위해 움직였다는 게 상당히 충격인 모양이었다.

“이유는 충분히 알겠지. 이놈들의 목을 치겠다.”

인벤토리에서 대검을 꺼냈다.

천부문도들은 허공에서 나타나는 거대한 대검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 내가 금방이라도 놈들의 목을 칠듯하여 보이자.

“멈추시오!!”

노인네가 급히 말렸다.

-챙!

천부문의 무인들은 자신의 사형제가 허무하게 죽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는지 검을 뽑아 들었다.

서로 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제자 6명의 목이 날아갈 상황이 오니 노인네의 얼굴은 심각하게 갈등하는 표정이었다.

할배는 과연 싸울 것인가 이놈들을 버릴 것인가.

그때였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백설화가 한복 자락을 곱게 휘날리며 내 앞으로 튀어나왔다.

“사형.....사제들 정말 그를 해하려 했습니까?”

백설화는 바닥을 기고 있는 녀석들을 보며 차분히 물었다.

“사, 사매….”

“.........사, 사저….”

백설화의 추궁에 천수호의 눈동자가 촛불처럼 흔들렸다.

“..........사실이군요….”

그녀의 질문은 궁금했다기보다 사실확인에 가깝지 않았을까.

“운호 님. 사형....특히 사제들은 아직 어립니다. 선처를 베풀어 주실 수는 없습니까.”

“안돼. 특히 이놈은 내 목숨을 두 번이나 노렸다.”

내가 백설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이건 그녀가 부탁해도 들어줄 수 없었다.

“역시.......그렇군요….”

납득한건가?

“저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나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탐난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발정이 난 놈이라고 해도 그녀와 섹스 한 번에 이놈들을 살려둘 수는 없었다.

특히 한 놈은 괘씸한 놈이다.

내 눈빛을 읽은 건지 백설화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사형과 사제들을 용서해주신다면 일생을 바쳐 당신을 모시겠습니다.”

“........?”

“안 된다! 설화야.”

“사저! 안 됩니다!!”

“사매!! 안돼!!!”

백설화의 말에 천부문의 인간들이 경악했다.

특히 천수호 놈은 갓 잡은 생선처럼 미친 듯이 펄떡이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다.

내가 여자를 좋아하고.

백설화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 하는 제안이긴 할 테지만.

“너........를 준다고?”

그녀가 말하는 건 천부문을 떠나 내 여자가 된다는 의미일 거다.

백설화.

겨우 대결에 졌다고 처녀까지 바친 여자다.

아마도 지금의 약속도 지킬 거다.

“네….”

하찮은 시커먼 사내 여섯 놈의 목숨과 백설화.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당연히 백설화였다.

천부문주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과연 이걸 용인할까.

“아이들이 잘못한 건 알겠네.....그렇다고 손녀를 팔 수는 없지. 제자 아이들도 그냥 죽게 버려둘 수가 없네......천부문의 문주로서 내가 책임을 지겠네.”

백설화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역시나 천부문주 노인네가 막아섰다.

“조부님….”

“크윽! 사. 사부님….”

“안 됩니다!!!”

어떻게 책임질지 모르겠지만 끽해봐야 자기 목숨 정도일까.

쓸데없는 희생정신이었다.

다 죽어가는 늙은 할배의 목숨 따위로 백설화를 포기할 순 없었다.

“흐음….”

무의식적으로 턱을 만지며 백설화를 얻을 방법을 잠깐 고민했다.

다시는 덤비지 못하게 천부문 이놈들의 기를 꺾어 놓을 필요도 있어 보였다.

“기회를 주지.”

“기회?”

“뭐...결투를 하지.”

“결투?”

“내가 진다면 그냥 돌아가겠다. 내가 이긴다면 이놈들을 살려주고 백설화를 가지겠다. 대결할 놈은 알아서 내보내라.”

놈들을 살려주긴 싫었지만, 백설화를 생각한다면 지금은 살려주는 게 나아 보였다.

머릿속까지 무협으로 가득 차 있는 놈들이다.

이 정도면 깔끔하게 납득하고 백설화를 넘겨주지 않을까 싶었다.

“좋습니다. 조부님 허락해 주십시오.”

“설화야….”

“조부님......설사 지더라도 저 하나로 끝낼 수가 있습니다.”

문주 노인네는 한동안 심히 고민하는듯하더니….

“후우........알겠네.”

결국 승낙했다.

설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모르긴 몰라도 백설화만은 이게 패배할 대결이라는 걸 알 거다.

“조부님 제가….”

“내가 하겠다….”

나서려던 백설화를 제지하고 천부문주 노인네가 내 앞에 자리를 잡았다.

천부문주이니 아마도 최고 고수이긴 할 거다.

“선공을 양보하지.”

“거절하지 않겠네.”

내가 거만하게 선공을 양보하자 노인네는 날름 받았다.

문주 노인네의 눈이 금빛으로 물들고 들고 있는 검에서는 황금 검기가 새어 나왔다.

백설화보다는 금빛이 좀 더 또렷한 게 무공이 조금 더 숙련된 경지 같았다.

할배는 빠르게 내게 짓쳐 들며 검을 휘둘렀다.

시작부터 전력을 다하는 노인네였다.

문주 노인네는 백설화와 달리 방심 따윈 하지 않는듯했다.

나도 대검에 마력을 씌우고 노인의 검을 맞이했다.

-쾅! 쾅! 쾅!

서로 빠르게 검격을 교환하자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칼 다루는 솜씨가 나이 먹은 만큼 백설화보다 조금 더 나은 거 같았다.

인간이 다룰 수 없는 무겁고 거대한 대검과 평범한 장검이 겨룬다면.

정면 대결은 안 된다.

당연히 회피와 스피드로 승부를 봐야 했다.

노인네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문주 할배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딴 건 통하지 않았다.

이 거대한 대검은 내가 다룸으로 인해 무거운 무게가 가지는 한계가 없었다.

할배의 가벼운 검보다 빨랐고 파괴력도 압도적이었다.

문주 노인네도 그게 예상과는 다르니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무겁고 거대한 무기가 한계를 벗어나 동등 그 이상의 빠르기를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큰 무기가 유리하다.

그러니 문주 할배는 날 공격할 기회조차 없었다.

-쾅! 쾅! 쾅!

어느샌가 노인네는 내 검을 막기 급급했다.

애초에 이 정도 체급 차가 나면 막으면 안 되지만 피하고 싶어도 내가 피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손쓸 새도 없이 문주가 밀리는 그 모습을 보는 천부문의 녀석들은 얼굴이 핼쑥해졌다.

내 대검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이 가느다란 검이다.

그런데 피하지도 못하고 막기만 하고 있으니 문주 할배는 지금 죽을 맛일 거다.

대검을 막을 때마다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할배는 이미 한계인 거 같았다.

-부웅!

적당히 상대해줬으니 마무리를 지을 때였다.

순간 대검이 지금까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문주 할배의 머리를 내려쳤다.

-으적!

노인네는 반사적으로 빠르게 자신의 검을 들어서 막았지만.

그것조차 의미 없이.

대검은 순식간에 가로막은 검을 박살 내며.

그대로 할배의 머리로 짓쳐 들었다.

“아악!! 아버님!!”

“문주님!!!”

“조부님!!”

누가 봐도 그대로 머리가 쪼개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천부문 인간들의 절망 어린 고함이 들려왔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속도와 파괴력으로 내리치던 대검이 그대로 멈췄다.

보통은 원래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내 육체는 그걸 가능하게 했다.

내 대검은 노인네의 머리 한 치 앞에 두고 멈춰 서 있었다.

죽음의 공포를 느낀 걸까.

노인네의 부릅뜬 눈동자가 흔들리며 이마에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져, 졌소….”

할배는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흠. 좋군.”

죽을 거로 생각했던 문주가 살아나서일까

아니면 패배해서일까.

주변은 조용했다.

그 가라앉은 분위기와는 다르게.

나는 백설화를 가질 수 있으니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백설화가 조용히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내가 조부를 살려준 걸 말하는 거 같았다.

처음부터 내 여자가 될 사람의 조부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넌 이제 내 것인가?”

그렇게 말하며 설화의 허리에 팔을 둘러 끌어안았다.

설화는 갑자기 쑥 들어오는 내 팔에 잠깐 몸을 굳혔지만 이내 순종적인 자세로 말했다.

“네. 저는 이제 당신을 모시겠습니다.”

중년의 미부가 떨리는 목소리로 설화를 불렀다.

“서, 설화야!!”

얼굴이 닮은 걸 보니 설화 엄마인 거 같았다.

유전자의 힘은 위대했다.

그녀 역시나 몸매나 미모가 출중했다.

“어머니 괜찮습니다. 저는 어디 먼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잔잔한 설화의 목소리는 그녀의 어머니뿐 아니라 천부문 모두에게 하는 소리 같았다.

설화를 옆에 끼고 당당하게 초상집 분위기인 천부문을 나섰다.

슬쩍 보니 천수호 놈은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있었다.

몸을 가늘게 떨고 있는 게 울고 있는 거 같았다.

울보 놈이군.

지금 당장 쳐 죽이고 싶긴 하지만….

‘약속한 것도 있고 나중에 몰래 죽여야 하나.’

죽인다면 천부문 안에 있을 때는 어렵고 사냥할 때를 노리면 될 거 같았다.

좋은 여자를 얻었으니 경사로운 날이다.

백설화 특사로 잠시 목숨을 붙여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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