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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판에 밥을 받아와 식탁에 앉으니 그에 이어 누군가 내 앞에 앉았다.
“안녕하십니까. 각성자 임철우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밝힌 남자가 내게 손을 내밀어왔다.
“........”
“........”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흐흠…. 과묵하신 분이군요.”
남자가 머쓱하니 손을 집어넣었다.
뭐 하는지도 모르는 놈 손을 잡고 싶지는 않았다.
“C급 각성자이시라고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내가 불편해한다는 걸 모르는 건가?
이상한 놈이었다.
내 키와 덩치는 사람이 가까이 오기를 꺼리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눈치가 없는 건지 앞에 앉아 뭐라고 나불거렸다.
“혹시 슈트가 어디 제품인지 알 수 있을까요? 나름대로 안목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처음 보는 모델 같아서 궁금하네요.”
슈트는 그냥 수니가 물질화로 적당히 모양만 흉내 낸 거였다.
하지만 그걸 이놈에게 말해줄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야.”
“네?”
“꺼져.”
“.......아. 예. 예.”
놈이 창백하게 질린 채 헐레벌떡 식판을 들고 자리를 떴다.
냄새나는 사내놈의 수다를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
싸가지 없다는 소리는 좀 듣겠지만 뭐 어떤가.
저런 놈들이 들러붙지 않을 테니 오히려 좋지 않을까.
진짜 성격 더러운 각성자였으면 식판으로 머리가 깨졌을 거다.
폭력을 사용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젠틀맨이었다.
“아저씨 누구야?”
식판에 밥을 받아온 재은이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나야 모르지.”
이름을 뭐라고 한 거 같은데 이미 기억에서 사라졌다.
“와. 밥 맛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구내식당 짬밥치고는 퀄리티가 좋았다.
역시 회사에 돈이 많아서 그런가?
“아저씨 이거 한번 먹어봐 맛있어.”
내 입에 고기 한 덩어리를 넣어줬다.
내 식판에도 있었지만 맛있게 받아먹었다.
“쩝. 쩝.”
“맛있지?”
“응. 맛있네.”
주변에서 눈꼴 시려하는 게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요리사 아저씨한테 배워서 집에서 해줄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고.”
맛있긴 했지만.
재은이가 굳이 고생하며 배울 정도 까진 아니었다.
“애인인가요?”
시끄러운 사내놈이 떠나고 어느샌가 나와 사냥할 파티원인 고은하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뭐…. 그렇지.”
“헤헤. 아저씨. 앙~”
“쩝. 쩝.”
“두 분 사, 사이가 좋네요….”
사이가 좋지 않다면 매일같이 살을 맞대고 살 수가 없었다.
“컴퍼니 소속 각성자는 거의 다 알고 있는데 처음 뵙네요.”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랬군요. 그런데 비밀 유지 서약서까지 쓰게 하다니. 혹시 비밀 병기 그런 건가요?”
“뭐…. 그렇게 생각해도 돼.”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하기 귀찮았는데 알아서 변명거리를 만들어주니 땡큐였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이번 사냥 취소가 안 돼서. 갖고 싶은 물건이 있었는데 그게 또 한정판이라서 이번 사냥 취소됐으면 못살 뻔했거든요.”
고은하는 내 앞에서 조잘조잘 잘도 떠들었다.
하지만 얼굴이 예뻐서 남자 놈과는 다르게 들어줄 만은 했다.
“아저씨. 아~”
“쩝.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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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숙소는 생각보다 상당히 좋았다.
내가 등급이 높아서 좋은 곳을 준거 같았다.
“아저씨. 난 텐트 같은 곳에서 잘 줄 알았는데 좋다. 샤워할 수도 있고.”
아직은 나름 인프라가 갖춰진 캠프 안이다.
“내일부터는 텐트에서 생활해야 할걸.”
재은이는 따로 잘 수도 있었지만 나와 함께 자기로 했다.
다들 내 애인인 줄 알고 있으니 그러려니 할 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아가 찾아왔다.
“무슨 일이지?”
“작전 브리핑이 있습니다.”
아까 전술 팀장이라는 남자가 말한 게 생각났다.
“가야 하나?”
“C등급 몬스터 사냥이 처음이시면 참가하시는 게 좋습니다.”
진아의 권유가 있기도 했지만.
재은이도 이번이 첫 사냥이다.
참석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재은이와 함께 작전 브리핑이라는 것에 참가했다.
이번 사냥에 참여하는 전원이 모여있었다.
헌터 녀석들도 참석했다.
생각보다 착실한 놈들이었다.
전술 팀장이 상황판을 가리키면서 뭐라 뭐라 설명했다.
잡을 놈은 네발로 기어 다니는 뚱뚱한 도마뱀 같은 몬스터였다.
균열에서 나오는 몬스터가 아닌 게이트 토속종이였다.
단단해 보이는 푸른 피부가 독특했다.
그 때문인지 블루 드레이크라는 폼나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대충 들어보면.
가는 길에 F급 균열 두 개 처리하고.
그다음에 저 블루 드레이크라는 놈을 잡는다는 거 같았다.
나중에 모르는 건 수니에게 물어보면 되니 대충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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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똑.
“운호 님. 시간 됐습니다.”
진아의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내 위에는 벌거벗은 재은이가 엎어져 자고 있었다.
그녀의 탱탱한 엉덩이를 두드려 깨웠다.
“재은아, 학교 가야지.”
“아웅…. 아빠 오 분만….”
잘 받아주는 걸 보니 재은이도 진아의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준비하고 재은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니 헌터나 서포터 할 거 없이 전부 슈트를 입고 완전 무장을 한 상태였다.
우리가 제일 늦은 거 같았다.
회사에서 지급한 건지 장비들이 다 좋은 게 확실히 이 정도면 상당한 전력이었다.
(등에 멘 대검 그거 아닌가? 왜 저걸 쓰는 거지? C급이라고 하지 않았나?)
(덩치가 크니 그 무식한 대검도 그렇게 크게 보이지도 않는구나.)
내가 맨즈사의 유명한 특대검 엑스칼리버라는 전설의 검을 등에 메고 있으니 그게 꽤 신기해 보인 모양이었다.
검보다는 도에 가까운 무기이기는 했지만.
만든 놈들이 그렇게 이름을 짓겠다는데 내가 뭐라 할 건 아니었다.
그래도 등급이 높으니 우습게 보이진 않는 거 같았다.
역시 사람은 능력이 있어야 무슨 짓을 해도 인정받는다는 걸 깨닫는다.
“전원이 다 모였습니다.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전술 팀장이 내게 보고 했다.
참고로 내가 대장이었다.
가장 높은 등급 각성자가 대장이다.
그냥 체면 세워주려고 하는 감투인 거 같았다.
바지 대장이다.
모든 지시는 전술 팀장이라는 이 사내가 했다.
실질적인 리더였다.
무각성자인 전술 팀장도 엄밀하게 보면 서포터였다.
나야 누가 대장을 하던 별 상관이 없었지만, 지랄하는 각성자가 있었으니 이런 체계가 만들어진 거 같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출발!”
전술 팀장의 호령에 각자의 짐을 한 보따리씩 매고 밀림으로 진입했다.
이동은 순조로웠다.
서포터들이 지나가면서 눈에 보이는 열매나 약초를 캐는 것도 보였다.
확실히 서포터들이 대우도 좋아졌고 전문화가 된 느낌이었다.
아니 체계화된 컴퍼니 소속이라 그런 걸 수도 있었다.
그리고 종종 튀어나오는 F급 몬스터를 때려잡으면서 이동했다.
몬스터 감지기도 있다.
위험할 일은 없었다.
재은이는 첫 사냥인데도 겁먹지 않고 몬스터를 손쉽게 처리했다.
첫 만남부터 느낀 거지만 몬스터한테 겁먹을 만한 여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권유한 것이기도 하고.’
이곳으로 오기 전에도 봤지만 역시 도끼 쓰는 솜씨가 뛰어났다.
몬스터 잡는데 그렇게 화려한 테크닉이 필요한 건 아니다.
각성자라 육체 능력이 뛰어난 것도 한몫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작이 깔끔했다.
어디서 도끼질이라도 해본 솜씨였다.
‘시골에서 장작이라도 패면서 살았나.’
워낙에 다들 숙련된 헌터들이라 그런지 덕분에 나는 칼 뽑을 일도 없었다.
F급 몬스터들 상대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긴 했다.
서포터들의 인도에 따라 느긋하게 걸었다.
그렇게 네다섯 시간 정도를 별 탈 없이 이동해 첫 번째 목표에 도착했다.
“F급 균열입니다.”
전술 팀장이 보고했다.
물론 F급 균열 처리에 C급 몬스터를 처리할 헌터들은 참가하지 않는다.
C급 몬스터 사냥 외에는 뭘 시킬 생각도 없어 보였다.
전술 팀장이 재은이와 진아, 그리고 헌터들에게 뭐라 뭐라 지시했다.
그리고 그녀들을 선두로 헌터들이 균열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오면서 달려드는 몬스터를 보고 예상은 했지만.
균열 주변에 있는 것은.
굵은 몸통의 스네이크형 몬스터들이었다.
선두에 선 그녀들은 무난하게 그 검붉은 괴물 뱀들을 학살하면서 균열로 전진했다.
진아는 클레이모어로 보이는 양손 대검을 들고 휘둘렀다.
내 취향일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대검이 폼이 나긴 했다.
도끼를 휘두르는 재은이도 나름 즐기는 모습이었다.
흉포한 몬스터 놈들 사이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저러는 걸 보면 나름 적성에 맞는 거 같기도 했다.
그 뒤를 따르는 F급 헌터와 무각성 헌터들이 그녀들이 흘리는 몬스터를 무난하게 처리하고 있었다.
몬스터들과 헌터들의 싸움은 멋진 액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쩌엉.
재은의 도끼에 균열이 깨지고 주변의 F급 몬스터도 순식간에 정리가 됐다.
그리고 서포터 들이 우르르 달려들더니 주변에 죽어있는 괴물 뱀 사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가끔 나오는 마석과 가죽 등 돈이 되는 부산물을 챙기고 있었다.
“세상 많이 좋아졌네….”
“응? 아저씨 왜?”
옆에서 내 팔짱을 끼고 있던 재은이 물어왔다.
“라떼는 말이야. 저렇게 느긋하게 움직이면 쌍욕을 먹거나 발로 채였어.”
아니, 빨리 움직여도 눈에 거슬리면 차이는 게 일상이었다.
내 말을 들은 서포터들이 동작이 조금 빨라진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착각일까?
“아저씨. 고생 많이 했구나.”
재은이 내 엉덩이를 두드려줬다.
내 인생 최악의 시기를 뽑는다면 군대와 짐꾼 시절이다.
지나가면 추억이라는데….
추억은 개뿔 그딴 기억은 없는 게 낫다.
라떼의 추억에 잠겨있는데 진아의 시선이 느껴졌다.
“크흠….”
더 말하면 꼰대 소리 들을까 봐 참았다.
서포터들은 부산물을 다 챙기자 균열을 처리한 공터를 깔끔하게 치우고 바로 숙영지를 뚝딱 만들어 냈다.
확실히 체계화되고 깔끔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점심 밥을 먹었다.
야전에서 먹는 거치고는 먹을 만은 했다.
이곳에서 하루 자고 C급 사냥은 내일 한다는 거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재은과 진아는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균열을 처리하러 떠났다.
한 2, 3km 정도 떨어진 곳에 균열하나가 더 있다고 했다.
F급 균열이라는 말은 들어 그녀들 실력이면 걱정할 건 없었다.
그래도 시야에 안보이니 조금 신경이 쓰였다.
결국 드론을 띄웠다.
나 말고도 그들을 촬영하는 드론 몇대가 떠 있었다.
드론을 띄운 게 무색하게 그녀들은 순식간에 균열을 처리했다.
재은과 진아의 헌터팀이 균열을 처리하자.
전과 같이 서포터들이 몬스터 사체에서 부산물을 챙기고 그녀들과 함께 숙영지로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