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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세계로 돌아와 수니에게 유나한테 무슨 일이 있는지 조사시켜봤다.
유나 성격에 다른 남자가 생겨서 그런 건 아닌 거 같았다.
그리고 수니의 보고를 받았지만 별건 없었다.
“학교…. 집. 학교. 집인데?”
유나치고는 특별할 게 없는 생활이지만….
‘혹시 부모에게 들켰나?’
그럴 수도 있었다.
딱히 은밀히 만나고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
‘어떻게 하지?’
“아저씨 뭘 그렇게 고민해?”
재은이 살갑게 내 무릎 위에 앉았다.
“그냥….”
“여자 생각?”
“........”
예리했다.
“아저씨. 혹시 나 때문에 여자친구 안 데려오는 거야?”
“그건 아닌데….”
그녀는 내가 종종 나가서 여자를 만나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가끔 나가서 만나는 유나를 여자친구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유나가 여자친구라기에는 애매한 관계이긴 했다.
굳이 집에 데려오지 않는 이유는 부모와 함께 사는 유나의 생활 때문이기도 했다.
나름 유나를 배려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집과는 다른 호화로운 호텔에서 여자를 안는 맛은 또 다른 감흥을 줬다.
그래서 나도 굳이 이곳으로 데려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난 괜찮으니까 데려와도 돼.”
진짜 여자친구라면 오히려 그게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유나 문제는 천천히 재은이의 부드러운 엉덩이를 만지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참나. 아저씨는 잠깐을 못 참는다니까.”
엉덩이를 살살 만지자 그녀도 내 목을 끌어안고 내게 키스를 해왔다.
-츕. 츄릅. 츄읍.
그녀와 부둥켜안고 서로의 혀를 빨면서 본격적으로 다음 단계를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띵동.
벨 소리가 울렸다.
“츄룹. 음?”
[진아 씨입니다.]
수니가 보고를 해왔다.
아까 수니를 통해 찾아온다는 소리는 듣긴 했다.
타이밍이 좋지 않군.
진아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한 소리기도 했다.
집에 있으면 가만히 있는 시간보다 재은이와 질척거리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
그녀가 타이밍을 맞추는 게 더 힘들었다.
“아웅. 아저씨 누구야?”
“진아.”
“아! 전에 아저씨 찾아왔던 정장 입은 여자. 아저씨 회사 사람이라고 했던가?”
“뭐 그렇지.”
그래도 아직 거사를 치르기 전이었기 때문에 정리할 건 없어 바로 진아를 집으로 들였다.
“실례하겠습니다.”
진아는 재은을 보고 흠칫하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반가워요.”
재은도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받아줬다.
“그래 용건이 있다고.”
“C급 몬스터 사냥에 관심이 있으신가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C급?”
“네. 사실은 원래 사냥해야 할 헌터가 구멍을 냈습니다.”
하급 헌터 하나 빠졌다고 해서 날 찾아올 리가 없었다.
“C급 헌터인가?”
“네.”
C급 몬스터 사냥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게이트 안의 주력 사냥은 C급 몬스터 사냥이었다.
“원래 하려던 인간은?”
이렇게 나가더라도 잡혀있는 사냥은 해주고 가는 게 상도이긴 했다.
지금처럼 좆되라는 식으로 그냥 내팽개치고 나가는 게 없는 건 아니지만.
C급이라면 뭐.......그래도 잘 먹고 잘살 거다.
“계약을 파기하고 다른 길드로 이적했습니다.”
“위약금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그쪽 길드에서 지급했습니다.”
적지 않은 돈이었을 텐데 꽤 유망해 보였는지 빼간 모양이었다.
“내가 그걸 땜빵 해줬으면 하고?”
“네.”
“다른 헌터들은?”
“안타깝게도 C급 각성자들은 전부 일정이 잡혀있습니다.”
C급 사냥?
솔직히 스킬을 올리려는 내게 이득이 별로 없긴 했다.
이쪽 세계에서의 사냥은 효율이 떨어졌다.
게다가 혼자 잡는 것도 아니고 파티 사냥이다.
전에 잡은 B급만 하더라도 좀비 세계였으면 스킬포인트 5개짜리였다.
“이번 사냥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비밀 유지 서약서를 작성하게 하겠습니다.”
내가 고민하는 듯 보이자 진아가 지레짐작하고는 말을 해왔다.
나는 그걸 고민하는 게 아니었지만.
하긴 처음 F급 균열 처리한 거 빼고는 아무것도 안 하고 너무 놀기만 했다.
아니 그냥 놀기만 하면 다행이었다.
그 사이 진아는 또 열심히 부려 먹었다.
창고를 매입한다든가 하는 내가 하기 귀찮은 일들을 맡겼다.
그녀는 군말 없이 그것들을 꽤 잘 처리해줬다.
이쯤 되면 아무리 철판을 깔고 부려 먹어도 나도 양심에 찔렸다.
거부한다면 진아야 별말 없이 돌아갈 테지만.
나에게까지 왔다는 건 그만큼 급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내겐 크게 의미 없는 사냥이긴 하지만.
재은이를 봤다.
“........?”
내가 쳐다보자 재은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헌터 체험 혹은 데뷔무대로는 괜찮지 않을까?
나도 게이트 안의 C급 몬스터 사냥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괜찮은 각성자를 알고 있는데 말이야….”
“예?”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꺼내니 진아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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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은은 얼떨떨했다.
진아와 함께 히어로 프렌즈 컴퍼니의 대표.
한나라는 여자와 만났다.
오면서 번갯불 콩 볶아 먹듯이 각성자 협회에 들러 마력 측정을 한 것은 덤이었다.
보통은 이렇게 대표와 만날 일은 없다.
운호가 부탁한 것도 있고 추천한 인물이기도 해서 궁금한 한나가 불러들였다.
“D등급이시라고요.”
한나가 매력적인 보랏빛이 감도는 눈동자를 빛내며 물었다.
“뭐..그렇게 나왔더라고....요.”
운호 아저씨는 첫 만남부터 편한 느낌으로 대했지만.
회사 대표라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왠지 자신과는 동떨어진 세상에서 사는듯한 느낌이 드는 여자였다.
재은은 자격지심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와의 거리감을 느꼈다.
“계약은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원래는 이런 계약은 하지 않지만 운호 씨가 부탁하니 추가했어요.”
운호는 한나에게 연락해 재은에게 자신과 같은 조건의 계약을 제시해 주라고 요구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계약금은 없어도 된다고 했다.
한나도 그 정도는 운호를 배려해 재은에게 제안 정도는 할 수가 있었다.
“하나는 운호 씨가 하신 계약. 또 다른 하나는 평범하게 각성자들이 하는 표준 계약입니다.”
“예? 아저씨가 한 계약이요? 그게 어떤 거죠?”
운호가 한 계약이라는 말에 재은은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이겁니다.”
한나가 준비한 듯한 계약서 한 장을 내밀자 재은은 그걸 받고는 천천히 읽어봤다.
“........”
별거 없었다.
일하고 싶을 때만 일한다는 소리였다.
재은은 운호가 왜 헌터라고 했으면서 여유 있게 백수 같은 모습을 보이는지 알 수가 있었다.
물론 재은은 운호가 100억이나 해 처먹었다는 걸 몰랐다.
운호가 돈 자랑한다고 떠드는 성격도 아니었으니 알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운호와의 계약은 회사에서도 철저한 비밀이었다.
그 사실은 주주나 간부들은 말할 것도 없고.
회사소속 각성자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난리 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운호가 한나의 예상대로 무럭무럭 자라서? A급 각성자라도 되면 이야기가 달라질 테지만….
지금 상황에서 운호와의 계약은 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괜찮아 보이는 조건일 수도 있죠. 하지만 대신 계약금은 없습니다.”
운호는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막 각성한 재은에게는 계약금이 없다면 그렇게 좋은 조건일 게 없었다.
운호에게는 한나가 매달려야 하는 처지니 과도한 호의를 베푸는 거지.
재은이야 100억이라는 돈도 들지 않을 테고.
운호 때문에 신경이야 더 써주긴 하겠지만.
회사소속 대우 괜찮은 프리랜서 용병으로 생각하면 됐다.
계약금도 없는 이런 계약은 이제 막 각성한 각성자가 할만한 계약은 아니었다.
처음 각성자 장비를 마련하려면 목돈이 들어간다.
계약금은 그걸 위한 자본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계약금이요…?”
“예 재은 씨가 원하신다면 4년 계약에 20억 드리죠. 운호 씨를 봐서 업계 표준보다는 많이 드리는 겁니다.”
“2, 20억….”
현실과 괴리가 있는 금액에 어리벙벙해졌다.
“2년 계약도 있지만 그건 계약금을 많이 못 드려요. 선택은 운호 씨가 재은 씨에게 맡긴다고 했습니다.”
재은은 각성자 세계에 대해서 잘 몰랐다.
-꿀꺽.
마른침이 삼켜졌다.
자신과는 상관이 없던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었다.
계약서를 드릴 테니 자세히 읽어보시고 며칠 시간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 큰 금액에 혹하긴 했지만, 재은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 아저씨랑 같은 계약으로….”
“제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재은 씨에게는 그렇게 매리트가 있지 않은 계약이에요.”
한나는 재은을 진심으로 생각해서 하는 말이었다.
“저는 헌터 일을 한다면 아저씨하고 같이 다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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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어때? 별로야?”
그녀의 이상한 표정을 보고 진아가 물었다.
“그게….”
“....?”
“잘 모르겠어요.”
한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뭐?”
“모르겠어요. 이런 적은 처음인데.”
“도대체 어떻길래.”
이쯤 되자 진아도 궁금해졌다.
“알쏭달쏭?”
“.........”
“아니. 냉정하게 보면 성장 가능성이 안 보여요.”
“.......그런데 뭐가 문제야?”
“흠....그런데 느낌이 이상해요.”
한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
“될 것도 같아요.”
“한나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게요. 저도 이런 느낌은 처음이라서 그래도 그녀를 계속 지켜볼 필요는 있어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