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저씨의 로그인 생활-57화 (57/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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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원은 소령이었다.

애초에 세종시 군부대 대대장이었고 좀비 사태가 터지고 군대를 움직여 주변의 민간인을 보호했다.

위에서는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장서원은 초능력자가 됐다.

재능이 있었는지 운이 좋았는지 캠프의 가장 강력한 능력자가 되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대대장이었다고 해도 여태까지 이 생존자 캠프의 리더로 있을 수가 없었다.

회의실에는 캠프의 간부들이 모여있었다.

물론 전부 다 초능력자다.

초능력자가 아니면 간부가 될 수 없었다.

“그 한복 입은 놈들이 강 건너에서 왔다고?”

“네.”

장서원의 질문에 사냥팀 간부가 대답했다.

“거긴 고양이 괴물 놈들이….”

“그놈들이 그 고양이 놈들을 처리했다는 말인가?”

“어떻게 그 괴물 놈들을 처리할 수가 있었지?”

모여있던 간부들이 술렁였다.

물론, 괴물 고양이 놈들이 자력으로 떠났을 가능성도 있다.

“능력자인 것은 같은데 칼 쓰는 솜씨가 기가 막혔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 고양이 놈들을 처리했다면 위험한 인간들이었다.

“가끔 보이던 변형체 좀비 시체도 그놈들 짓인가?”

가끔 보고되던 푸른 돌이 빠진 거대 좀비 시체.

“아마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사냥팀이랑 보급팀한테 괜히 부딪치는 건 최대한 피하라고 해.”

“아, 알겠습니다.”

장서원의 말에 담당 간부가 대답했다.

도시는 넓고 아직 사냥감은 많았다.

그들도 부딪치고 싶어 하는 거 같진 않았고.

굳이 만만치 않은 집단과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접촉해본 녀석들의 말에 따르면 놈들의 기질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괜히 쓸데없는 날을 세워 대립할 이유가 없었다.

책상 위에 놓인 푸른 돌을 하나 집어 들었다.

“흠….”

이 푸른 돌이 에너지 덩어리라고 했다.

이 작은 것이….

문명을 다시 세울 열쇠라고 열변을 토하던 대학교수라는 인간이 생각났다.

이 돌을 지금도 열심히 연구하고 있을 거다.

초능력자들을 풀어 사냥하는 이유기도 했다.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다.

그 검을 든 생존자 집단도 뭔가를 알고 있는 거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푸른 돌이 변형체 좀비 시체에서 사라질 이유는 없을 테니.

장서원은 푸른 돌을 습관처럼 손안에서 굴리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

*

*

여느 때처럼 느긋하게 침식체 사냥을 나설 때였다.

누군가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기척을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자리에 서서 뒤돌아보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백설화라고 했던가?’

그 천부문 할배의 손녀였다.

그 댕기 머리와 한복 치마를 흩날리며.

건물 위를 사뿐사뿐 밟으면서 내게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지?”

백설화의 표정을 보니.

연애편지라도 줄 거 같은 분위기는 아닌 거 같았다.

나와 거리를 벌리고 자리를 잡고 선다.

그녀는 누가 보더라도 나는 싸울 준비가 됐다는 자세였다.

“암살이라도 하려는 건가?”

내 말에 백설화의 그 단아한 아미가 꿈틀거린다.

“천부문은 암살하지 않습니다. 용건이 있어서 왔습니다.”

“용건?”

이름도 염탐하면서 알게 된 거다.

처음 한 번 보고 마주한 적이 없는 사이였다.

“여자와 아이들을 놓아주십시오.”

“.......”

그 말뜻을 이해하는 데 조금은 시간이 걸렸다.

‘내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을 말하는 건가?’

내가 그 아이들을 구속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오지랖도 넓었다.

그렇다고 그 오해를 풀 생각은 없었다.

저건 내가 무슨 변명을 해도.

믿지 않을 답정너의 얼굴이었다.

“내가 왜?”

“그냥 놓아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와 대결해주십시오. 대결해서 제가 이긴다면 그 아이들을 놓아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그 요구를 왜 들어줘야 하지?”

굳이 그녀와 싸워서 귀찮은 거 말고는 이득이 될 게 없었다.

“.......당신이 이긴다면....뭐든...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어떤 요구도 들어드리겠습니다.”

“내가 이긴다면? 내가 뭘 요구할지 알고.”

황당한 제안을 하는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댕기 머리 때문인지 단아한 느낌을 주는 미인이었다.

‘가슴도 괜찮고 특히 엉덩이가 커 보이는군.’

이제 다시 자세히 보니 나쁘진 않은 아니 상당히 괜찮은 여자였다.

내가 자기의 몸을 훑어보는 걸 느낀 건지.

백설화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두 눈에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으득. 파렴치한............ 알겠습니다. 그게 설사 제 몸이라도.......거부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저 본능적인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뭔가 오해가 더 깊어진 거 같기도 했다.

그녀의 몸을 요구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저렇게 말하는데

안 받을 정도로 성인군자는 아니다.

생각해 보니 백설화의 저 매력적인 몸이 아니면 그다지 마음이 동할 것도 없어 보였다.

‘결과적으로는 백설화의 생각이 그다지 틀린 것도 아닌 게 되나?’

그렇다고 그녀가 이 거래를 지킬 것인가는 다른 문제였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패배하면 나중에 또 다른 말을 할지도 모른다.

“흠…. 좋아. 덤벼.”

그래도 괜찮은 상품도 걸렸고.

속는 셈 치고 상대 못 해줄 건 없었다.

“후우…. 가겠습니다.”

백설화가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검을 뽑았다.

-스릉.

나는 무기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마력이 주먹을 감싸며 시커멓게 물들었다.

그것을 본 백설화의 눈빛이 신중해졌다.

나름 그 무공이라는 게 어떤 건지 견식 할 기회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너무 빨리 끝낼 수도 없다.

얼마나 잘 싸우나 천천히 공수를 교환할 생각으로 주먹을 뻗었다.

-슉. 슉.

생각보다 몸이 날래 내가 가볍게 내지른 주먹을 잘도 피했다.

B등급과도 어쩌면 겨룰만한 수준이었다.

확실히 무공이라는 게 대단했다.

마력의 제어나 체술.

원래 세계 각성자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다.

내 커다란 주먹을 기기묘묘한 방법으로 이것도 피하나 싶은 것을 잘 빠져나갔다.

‘이것이 무공인가?’

꽤 볼 만은 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평범한 각성을 했다면 탐날 만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왜인지 공격은 하지 않고 내 공격을 피하고만 있었다.

‘탐색하는 건가? 역시 이 정도로는 안 되나?’

좀 더 속도를 높여볼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훗! 한심하군요.”

“.........?”

“어딜 노리는 겁니까? 그건 제 잔상입니다만.”

.............그녀는 왜인지 신이 나 있었다.

“당신의 단순한 공격은 이미 다 파악이 끝났습니다.”

‘뭐..............좀 더 즐기게 해줄까.’

-붕. 붕.

그 모습이 조금 귀엽기도 해 장단에 맞춰 바보처럼 주먹을 휘둘러 줬다.

-샤락.

“그런 육체를 가지고 그런 어설픈 움직임이라니 안타깝습니다.”

-스슥.

“보법도 엉망입니다.”

-팟.

“자세는 나쁘지 않습니다만.”

왜인지 백설화는 내 어설픈 공격을 피하며 훈수질을 시작했다.

완전히 우위에 섰다고 확신한 거 같았다.

그녀의 신기한 무공은 당연히 나는 흉내 낼 수 없다.

물론, 그게 수니의 마력 활용 능력에 비할 바는 아니다.

쉬운 길이 있는데 귀찮게 그럴 생각도 없었고.

확실히 동급이면 압도하고 한 단계 위급도 상대해 볼 만한 능력이었다.

-휘릭~ 처억.

백설화는 볼 거 다 봤다는 듯 화려한 공중제비를 돌면서 나와 거리를 벌리고 착지했다.

그 자세에는 자신감과 오만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후우….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녀는 처음과는 다르게 나를 완전히 아래로 보는 말투로 말했다.

“그대가 이대로 이곳을 얌전히 떠난다면 멀쩡히 보내 드리겠습니다.”

백설화는 승리에 확신이 차 있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거부하겠다면.....최소 한군데 잘릴 각오는 하셔야 할 겁니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검이 새파랗게 물들었다.

마력검.

여기서는 검기라고 하려나?

슬슬 장난을 끝낼 때였다.

“언제까지 떠들고만 있을 건가?”

백설화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후…. 물러날 생각이 없군요. 저도 더는 봐 드리지 않겠습니다.”

-팟!

그녀가 빠르게 내게 쇄도하며 검을 휘둘렀다.

전보다는 두 배는 빠른 움직임이었다.

내 배를 베어오는 듯하더니 검이 기묘하게 휘어 목을 노려왔다.

어디 한군데 잘린다더니 그게 목일 줄은 몰랐다.

검을 움직이는 속도가 육체 강화 스킬을 올리기 전이었으면 대처하기 어려올 뻔했다.

‘그녀의 역량을 낮게 보긴 했군.’

하지만.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져 있던 승부였다.

다가오는 백설화의 검을 손으로 가볍게 붙잡았다.

내가 자신의 검을 막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건지.

그녀의 두 눈이 경악으로 찢어질 듯이 커졌다.

“이제 다 즐겼나?”

“뭐?”

-퍼억!

가느다란 백설화의 복부에 내 커다란 주먹이 빨려 들어갔다.

역시 재능이라고 해야 할지 그 순간조차 그녀는 마력을 돌려 방어했다.

“컥!”

하지만 충격을 완벽히 해소할 수는 없었는지 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금방 쓰러질 듯이 비틀거렸다.

여자다 보니 그다지 때릴 데가 없었다.

얼굴을 때리자니 예쁜 얼굴이 망가질까 봐 좀 그랬고.

어디 한군데 부러뜨리기에는 내가 마음이 약했다.

역시 배가 가장 무난했다.

“큭! 이, 이게 무슨….”

그녀의 눈빛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설마 자기가 진짜 압도한다고 생각한 건가?

일반인이 아무리 격투기와 무술을 수련해도 주먹으로 달려드는 트럭을 박살 낼 수 없고.

총알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나와 그녀는 그 정도의 격차가 있었다.

이런 기교로 해결이 될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심마니 시절 아무리 용을 써도 D급 몬스터를 잡지 못하는 것과 비슷했다.

몬스터가 전투기술이 뭐가 있겠나.

그냥 압도적인 피지컬로 찍어누르는 거다.

백설화가 빠르다고 해도 내게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리게 보였다.

그러니 뻔히 보이는 페인트를 걸어봐야 내가 보기에 쓸데없는 움직임으로밖에 안 보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녀의 무공실력은 내 예상보다 뛰어난 것도 사실이긴 했다.

“나를.......속인겁니까?”

뭘 속였다는 건지….

민망해서 그러는 건가?

“패배를 인정하나?”

내 말에 백설화의 눈빛이 번득이며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저건.......무슨 현상이지?

저것도 무공인가?

“하앗! 아직 입니다!!”

-파앗!

백설화가 온 힘을 다해 내 목을 향해 검을 베어왔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낸 건지 전보다도 빨랐다.

검에는 특이하게도 은은한 금빛 검기가 맺혀있었다.

하지만 뻔히 보였다.

가볍게 고개를 젖혀 피하고.

-퍼억!

다시 한번 그녀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우욱!”

-쨍그랑.

견디기 힘들었는지 백설화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비틀.

다리가 풀린 듯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패배를 인정하나?”

“아....아직….”

설 힘도 없어 보이는데 어디 한군데 부러뜨려야 인정하려나.

남자 놈이었으면 인정사정없이 부러뜨렸겠지만.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는 자비가 흘러넘쳤다.

“흠…. 실망이군. 자기 몸을 희생하는 척 거래 어쩌고 고상한척하더니…. 뭐 이해는 한다만.”

그녀는 자신의 패배에 관한 생각조차 없었을 뿐이다.

막상 그 상황이 닥쳐오니 약속을 실행할 각오가 없었고.

“뭐...라...? 나, 나는...그런게….”

인간이란 동물이 원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

나는 이런 결과가 될 줄도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녀는 평범한 인간이다.

현실을 부정하는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는 했다.

백설화의 몸이 아쉽기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강제로 범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자가 없다면 모르겠지만.

내 여자들도 예뻤고 당장 안을 수도 있는데 그럴 생각은 없었다.

“쯧. 됐다. 가라.”

“뭐…?”

그녀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자, 잠깐!”

“.......?”

뒤를 돌아보자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겠.....다….”

무언가 말하는 듯했지만 내 귀로도 잘 들리지 않을 중얼거림이었다.

“뭐라고?”

“으득! 야,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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