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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식파의 오광식은 4년간 능력이 정체됨을 느끼자 빠르게 포기하고 어두운 세계로 발을 들였다.
오광식의 성격엔 이쪽이 맞기도 했다.
각성자이기도 했으니 피라미 세계에서 세력을 키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 동생 광우가 최소 C등급으로 예상되는 각성자를 건드렸다는 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 미친놈 때문에 말 그대로 조직이 뭉개질 뻔했다.
동생 놈은 뒤졌어도 할 말이 없었지만, 다행히 멀쩡히? 돌아왔다.
그리고 한동안 긴장 속에 살아야 했다.
당연히 그 각성자 놈이 데려간 여자를 되찾아올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시발 놈. 눈치 없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동생 놈만 아니었으면….’
그때 부하 놈 하나가 급하게 들어오며 소리쳤다.
“사장님 스, 습격입니다.”
“습격? 태상파야?”
“아, 아닙니다. 웬 미친 여자가….”
“여자?”
광식은 앞에 있는 모니터에 CCTV 화면을 띄웠다.
귀신같은 여자 하나가 커다란 도끼를 들고 부하들을 말 그대로 도살하고 있었다.
“씨발. 각성자잖아.”
얼굴과 팔에 깁스한 동생 놈이 도망가다 도끼에 다리가 잘리는 걸 봤다.
그래도 혈육이라고 머리에 피가 솟구쳐 올랐다.
“씨벌 년. 뒤졌다.”
광식 자신도 각성자다.
사무실 뒤에 멋들어지게 걸려있던 일본도를 꺼내 들었다.
-쾅!
문이 박살이 나며 피 칠갑한 여자가 다리가 잘린 동생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질질 끌고 들어오고 있었다.
잘린 다리에서 흘린 피가 복도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으..허... 혀, 형….”
힘없이 앓는 소리를 내는 동생은 그래도 아직 살아있는 거 같았다.
‘어디선가….’
그녀의 낯익은 얼굴에 광식이 기억을 더듬었다.
“시빨! 유재은!! 운 좋게 각성했다고 여길 쳐들어와?!”
“뭐…. 그렇지.”
“각성했으면 조용히 있을 것이지. 이년이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지랄.”
광식은 대화하는 척하며 재은에게 기습적으로 달려들어 빠르게 일본도를 내려쳤다.
기습이었음에도 그녀는 침착하게 동생을 놓고 옆으로 빠르게 피하더니 들고 있던 도끼를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광식은 그걸 간발의 차로 피했다.
하마터면 팔이 날아갈 뻔했다.
‘빠르다!’
-꿀꺽.
재은이 긴장한 광식의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얼굴에 피칠을 한 채 웃고 있는 그 모습이 제법 섬뜩했다.
“씨발! 뭘 웃어!”
광식은 위험을 감지하고 전력을 다해 재은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자신의 전력을 다한 그 공격을 여유 있게 피하며 장난처럼 도끼를 휘두르는 그녀에게 광식은 큰 위협을 느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씨발! 좆됐다! 가지고 놀고 있어. 나보다 위야!’
지치지 않고 반항하는 그 맛에 데리고 있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진작에 길들이거나 망가뜨리던가 해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각성하고 이렇게 뜬금없이 나타날 줄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진짜 개 같은 상황이었다.
“재은아…. 대, 대화로 해결해도 되지 않을까?”
광식은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대화?”
“그, 그래.”
광식은 속으로 그녀에게 돈을 얼마나 쥐여주면 될까 계산하고 있었다.
-쩌억!
“어?”
어느샌가 광식의 왼쪽 허벅지에 도끼가 반쯤 박혀있었다.
경계는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빠른지 눈치를 채지도 못했다.
“끄아아악! 씨발 년! 개 같은 년!”
광식은 다리를 잡고 바닥을 굴렀다.
“각성자라 그런가…. 패는 맛이 있네.”
“뭐. 뭐라고!?”
어느샌가 그녀의 손엔 머리 부분이 두툼한 쇠로 된 손 망치가 들려있었다.
-씨익.
재은이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씨. 씨발!”
-으적. 으적. 으적. 으적.
재은은 망치로 빠르게 광식의 무릎과 팔꿈치의 관절을 박살을 냈다.
“끄어어어.”
“제, 제발 재은아…. 도,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게….”
관절이 박살이 난 광식이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말했다.
그런 광식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그녀는 덤덤히 가방에서 쇠말뚝을 꺼내기 시작했다.
광식은 재은의 그 모습을 보고 자기 조직과 제휴? 한 그 보육원 돼지 원장 놈의 소식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새로 부임할 원장 놈과 다시 관계를 이어가면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죽었는지 들었을 땐 웃으며 흘려들었다.
하지만 광식은 이젠 웃을 수 없었다.
“넌 각성자니까 돼지 놈보다는 잘 버티겠지.”
환하게 미소 짓는 재은의 모습에 광식의 표정이 공포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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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파에 늘어져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어제 새벽 광식파의 사무실에서 끔찍한 대량 학살의 현장이.......특히 광식파의 보스 오광식..........쇠말뚝이 박히고 성기가 잘린 채로.......며칠 전 살해당한 천사 보육원의 원장 우상규 씨와 동일한 살해 방식으로 보아................살해가 아닌가 경찰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범인은 젊은 여성으로 추정............」
대충 들어보니 연쇄살인 같은데 고추를 잘라버리다니 상당한 빌런한테 걸린 거 같았다.
‘딱 보니 죽어도 싼 놈들이군.’
동정도 아까운 놈들이었다.
더 볼 거도 없었다.
“다른 채널.”
[네. 주인님.]
-띡.
내 한마디에 수니가 채널을 돌렸다.
마력 간섭이었다.
수니를 이용해 전자기기에 이렇게 편리하게 리모컨 없이 간섭을 할 수도 있었다.
여자를 흥분시키는 거 말고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
그 외에도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물건을 인벤토리에 넣을 수도 있고, 연구하면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어 보였다.
「제주도 수복에 관한 문제가 다시 대두되는 가운데.....」
“더 돌려 봐.”
-띡. 띡. 띡.
빠르게 돌아가는 텔레비전 화면은 그다지 내 흥미를 끌만 한 게 없었다.
내일 좀비 세계도 가야하고 컨디션 조절하려면 잠을 좀 자야 했다.
‘그쪽 세계시간이 점심 전이었던가? 한숨 푹 자고 천천히 가서 애들과 밥이나 먹으면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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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유재은 양입니다.]
한창 푹 자고 있는데 수니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수니에게는 따로 재은이를 추적하라고 지시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니는 내가 잘 때는 웬만하면 깨우지 않는다.
그런데 굳이 수니가 날 깨웠다는 건….
“어디지?”
[현관 앞입니다.]
현관문을 열자 먼 고생을 하고 왔는지 꾀죄죄한 재은이가 어울리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움츠리고 서 있었다.
진짜 다시 올 줄은 몰랐는데….
“왔으면 들어오지. 귀신처럼 뭐해. 거기 서서.”
비밀번호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내 말에 재은이가 움찔했다. 그리고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터벅터벅.
그녀에게서 피 냄새가 났다.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건지….’
“아저씨….”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그대로 나를 끌어안았다.
왜인지 나에게 얼굴을 보이기 싫어하는 거 같았다.
“........”
그렇게 한동안 안고 있는데 가슴에 축축한 물기가 느껴졌다.
재은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 줘다.
왠지 그래야 할 거 같았다.
“.........”
“나…. 가정부 다시 해도 될까?”
“그래.”
“응.”
“놀은 만큼 감봉이야.”
그녀가 돌아온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응”
“그리고…. 너 냄새 난다. 좀 씻어야겠다.”
“프흡.......같이씻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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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은이 돌아온 건 의외이긴 했지만, 예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동안 미뤄둔 좀비 세계로 돌아와 수니의 지시에 따라 지하수를 복구시켰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지하수 복구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혹시 몰라 고장이 났을지도 모를 장비를 바리바리 싸 들고 왔지만 쓸 일은 없었다.
쓰지 못했다고 해도 어차피 스페어로 놔두면 되니 마냥 헛수고는 아니었다.
전기는 소형 마력 발전기를 돌려 해결했다.
꼬마 둘에 여자 둘, 그리고 나, 겨우 5명이 쓸 전기다.
충분하고도 남았다.
오히려 과한 감이 없지 않았다.
태양열발전도 생각은 해봤지만, 설치도 복잡하고 안정적이지가 못했다.
차츰 여유가 생기면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도 쇼핑몰이나 근처를 뒤져보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만세!!”
지하수가 나오자 지아가 손을 번쩍 들며 좋아했다.
그리고 진아에게 받은 전투 슈트를 그녀들에게 건네줬다.
“어머. 이 이게 뭐죠? 우주복인가요?”
“우주복은 이렇게 슬림하진 않아요…. 하지만 SF영화에 나오는 우주복 같긴 하네요.”
채원과 지아가 슈트를 만져보며 신기한 듯 말했다.
“내가 좀비에게 물리고 괜찮았던 적 있지.”
“앗! 설마 그게 이 옷 때문인가요? 그러고 보니 오빠가 입었던 옷이랑 비슷한 거 같기도….”
“그런 게 어떻게….”
이 좀비 세계는 원래 세계가 게이트가 터지기 전의 기술 수준이었다.
의문을 품는 것도 당연했다.
언젠가 이야기해 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 의문을 해결해줄 생각이 없었다.
“일단 입어봐.”
대충 입는 요령을 알려줬다.
지아와 채원은 다른 곳으로 가 슈트를 입고 왔다.
몸매가 다들 좋아 슈트를 입은 모습들이 보기가 좋았다.
“생각보다 상당히 편하네요….”
“어머. 오빠 저, 마치 미래의 여전사가 된 거 같지 않아요?”
그녀들은 자기가 입은 슈트가 신기한 듯 둘러보고 있었다.
두꺼운 책을 한 권씩 던져줬다.
“이, 이게 뭐예요?”
“매뉴얼.”
“매뉴얼이요? 이 두꺼운 게?”
“그래. 기능은 매뉴얼을 보고 확실히 익혀두도록 해.”
지아는 그 두꺼운 책을 보고 질린 듯했지만, 채원은 눈을 반짝이며 매뉴얼을 훑어보고 있었다.
“나는 이 학교를 중심으로 낮 동안은 이 근처 침식...아니 변형체들을 정리할 거야. 그동안 너희는 나 없이 지내야 해.”
“그러면….”
아이들의 얼굴에 불안한 표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24시간 상주하면 아이들을 보호해 줄 수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래. 그 슈트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지 너희들한테 그냥 주는 게 아니야. 좀비는 슈트를 입고 있는 너희들을 어떻게 하지 못할 거다.”
“좀비 정도는 알아서 처리하라는 말씀이군요.”
“꿀꺽. 오, 오빠 그런 건가요?”
나는 지아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뭐…. 틀린 말은 아니야.”
“하긴 이정도 장비를 가지고도 준비하나 못 잡는다면 저희도 문제가 있겠죠.”
채원은 슈트를 연신 쓰다듬는 게 상당히 마음에 든 거 같았다.
“오, 오빠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도 힘내볼게요!!”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어 보이는 채원과는 다르게 지아는 겁에 질려있었다.
각성자가 좀비에게 겁을 집어먹고 있다니...뭐 저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였다.
“하지만 변형체는 달라. 혹시 감지되면 내게 무전을 넣어. 그러면 돌아올 테니까.”
“벼. 변형체….”
지아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저. 저는 오빠 따라가면 안 될까요?”
그새 마음이 약해진 지아였다.
“안돼.”
“히잉….”
내 매몰찬 거절에 지아는 울상을 지었다.
“그렇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다. 이 근처의 변형체 먼저 정리할 테니까. 이곳에만 있으면 너희가 싸울 일은 거의 없을 거야.”
아이들이 납득하던 하지 않던 내가 이 세계에 온 이유는 침식체를 사냥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