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같이 가요!”
검은 폴라 원피스의 여자가 급하게 뛰어와 내게 바짝 붙었다.
그녀의 등에는 깜찍한 작은 가방이 매여있었다.
그 밴 안에서 가지고 온 건가?
그리고 웃긴 게 그게 옷과 퍽이나 잘 어울린다는 거다.
이쯤 되면 신발도 구두를 신고있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식은 있는지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물론 검은 원피스와 잘 어울리는 깔 맞춤한 검은 운동화.
걷는 모습이 키도 커서 모델 같기는 했다.
‘진짜 모델인가?’
아니 진짜 모델이라도 세계가 이따윈데 저따구로 하고 다닌다고?
이 아이도 사실은 정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매로 보이는 둘은 그래도 세계관에 어울리는 정상적인 모습과 배낭을 메고 쫓아왔다.
‘저게 정상이지.’
아이들은 하늘에서 신나게 싸우고 있던 뒤틀린 비둘기들에게 긴장하고 있었는지 조용히 내 뒤를 따라왔다.
한동안 빠르게 이동하다가 도로 옆에 한적하게 서 있는 건물 2층짜리 카페를 발견했다.
뛰진 않았지만 빠른 이동에 아이들이 지쳐있는 게 느껴졌다.
“저 카페 쪽으로 이동하지.”
카페로 들어가 정신을 집중해 마력 감지를 사용했다.
주변에 좀비가 있는지 살펴본다.
카페 건물 안에는 좀비는 느껴지지 않았다.
건물의 문단속을 하고 다들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아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전 서채원이라고 해요. 이 아이는 제 동생인 서채영이라고 하고요.”
“박운호다.”
“운호 오빠라고 부르면 되나요? 전 이지아예요! 잘 부탁드려요.”
이지아가 내게 달라붙으며 친근하게 인사를 한다.
아저씨 소리만 듣다가 오빠라니…. 적응이 되진 않았다.
그렇다고 굳이 그것을 뭐라고 할 생각도 들진 않았다.
하지만 지아라는 아이의 살가움은 적응이 좀 안 됐다.
“아저씨. 그 아이는….”
채원이 내 옆에 조용히 있는 마트 꼬마를 보고 내게 물었다.
“나도 몰라.”
“예?”
“마트에서 만났는데 말을 못 하는 거 같더군.”
못하는 건지 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 예….”
채원이 동정 어린 눈빛으로 꼬마를 쳐다봤다.
“이 사태가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는 알고 있나?”
“들은 거로는 중국 우한에서 실험하다가 이렇게 된 거라고 알고 있어요.”
중국 우한?
원래 세계의 게이트가 열리기 전 과거 언젠가 한때 유행했던 코로나를 말하는 건가?
“이것도 정확하지는 않아요. 저도 그냥 텔레비전에서 하는 소리를 들은 거뿐이라.”
“이렇게 된 게 얼마나 된 거지?”
“예? 저. 저도 얼마나 됐는지는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2달은 안 되지 않았을까요?”
한 달은 넘었고 두 달은 안 된 거 같았다.
“다른 곳 상황은 좀 알고 있는 게 있나?”
혹시 다른 대도시의 상황이 알 수 있을까 싶어 물어봤다.
“그건 워낙 급속도로 상황이 악화해서 잘 모르겠어요. 그런 걸 알아볼 정신도 아니었고….”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지?”
“예? 그. 그건….”
채원은 나를 보며 갈등이 생기는 듯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고민하는 건가?
대충 뭘 고민하고 있는지는 예상은 갔다.
아직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모를 테니 신중하다면 신중하다고 할 수가 있었다.
채원의 옆에 있는 동생인 꼬마를 봤다.
열 살? 열한 살?
그쯤 된 거 같았다.
나도 여기서 꼬마 하나 더 추가 한다는 게 솔직히 내키진 않았다.
지금 데리고 있는 애만 해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오. 오빠. 저 운호 오빠 따라가면 안 될까요? 제가 잘할게요…. 제발 버리지 말아 주세요. 네?”
지아는 나와 함께 하고 싶은 거 같았다.
하지만 얘도 뭔가 정상과는 거리가 먼 아이인 거 같았다.
내 능력을 봤으니 따라오고 싶은 마음도 이해는 갔다.
냉정하게 꼬마하고 별 차이가 없었다.
조금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생각해 보고 내일 얘기하지. 일단 밥이나 먹자.”
“히잉.”
지아가 울상을 지었지만 무시했다.
나도 생각 좀 해 봐야 하고 채원도 뭔가 고민하는듯했으니 굳이 서둘러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었다.
카페의 테이블을 치워 자리를 확보했다.
자리를 만들고 텐트를 두 개 쳤다.
가지고 있는 게 두 개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혼자 자고 나머지 한쪽 텐트에 몰아넣고 재우면 될듯했다.
군대에서는 저거보다 작은 텐트에 4명이 자기도 했으니 괜찮을 거다.
더구나 두 명은 체구가 작은 꼬마들이었다.
훨씬 나은 상황이다.
그것도 불편하면 밖에서 자면 된다.
내가 인벤토리에서 물품을 꺼내는 걸 본 지아가 놀라 물었다.
“오. 오빠! 마법사였어요?”
채원. 채영 자매도 놀란 눈을 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까지 굳이 능력을 귀찮게 숨길 이유는 없었다.
원래 세계야 워낙 미디어 매체가 멀쩡해서 소식이 빠르니 내가 이런 능력을 갖췄다는 걸 알면 하루가 지나지 않아 전 세계가 안다는 소리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끽해야 4명이다.
설사 나와 헤어져 열심히 내 능력에 대한 소문을 퍼트린다고 해도 얼마나 퍼질까.
퍼진다고 해도 이런 세상이다.
원래 세상과 비교할 게 안 됐다.
그리고 어차피 나는 이쪽 세계의 인간도 아니었다.
지아의 그 말에 채원의 동생인 꼬마도 눈을 반짝이며 날 보고 있었다.
“나 같은 사람 본 적이 없나?”
“초. 초능력자는 알고 있어요.”
지아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나도 그런 초능력자라고 생각하면 돼.”
“하지만 운호 오빠처럼 대단한 능력을 갖춘 사람은 없을 거예요!”
지아는 왠지 흥분한 거 같았다.
내 능력인데 왜 자기가 흥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채원이도 지아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화염계 각성자를 봐서 예상은 했지만, 각성자가 더 있는 모양이었다.
저녁 식사는 컵라면으로 정했다.
바닥에 버너를 놓고 그 위에 주전자를 올리고 그 안에 생수를 부어 넣고 버너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컵라면을 꺼내 애들에게 던져줬다.
“커. 컵라면! 저. 저희 컵라면 먹는 건가요?!”
지아가 경악했다.
“하아…. 이게 얼마만의 라면인지….”
지아는 컵라면에 볼을 부볐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채원 자매도 상기된 얼굴로 컵라면을 들고 있는 게 기대하는 모양새다.
지아는 기대가 되는지 컵라면을 들고 흥분된 얼굴로 버너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물이 끓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원피스가 그렇게 긴치마가 아니었기에 매끈한 다리와 그사이의 팬티가 슬쩍슬쩍 보인다.
그 좋은 구경에 이걸 말해줘야 말아야 하나 조금 고민해본다.
‘굳이?’
하지만 내 시선을 느낀 지아가 나를 보며 배시시 웃더니 슬쩍슬쩍 다리를 벌려 팬티를 보여줬다.
검은색 속옷 위로 일자로 파인 도끼 자국이 보였다.
유혹…. 하는 건가?
하반신에 조금은 피가 쏠린다.
슬슬 쌓일 때가 되긴 했다.
뭐 좋은 눈요기는 되니 나쁘진 않았다.
꼬마는 역시나 죽을 데워먹었다.
라면을 쳐다보는 게 먹고 싶어 하는 거 같았지만 그래도 별말을 하지 않고 먹었다.
아니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건가?
저런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마냥 무시하기도 찝찝했다.
그래도 내일부터는 조금 자극적인 걸 줘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지 어차피 마트에서 많이 챙겨왔는데 죽으로 메뉴를 통일하면 되겠군.
아이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음식이 귀한 세계다.
못 먹는 걸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거까지 신경 쓸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기…. 김치!!!”
지아는 또 한 번 경악했다.
“아…. 이 고향의 맛! 눈물 날 것 같아요.”
오래간만에 먹어보는 라면인지 셋은 부르르 떨며 국물 한 방울조차 소중히 하며 먹어 치웠다.
“저기 불침번은….”
채원이 걱정되는 듯 조심스레 물어왔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자라. 정 신경 쓰이면 네가 서던가.”
수니도 있고 내가 저 아이들 마음 편하여지라고 그 귀찮은 불침번을 해줄 이유도 없었다.
수니는 좀비를 감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건물에 좀비가 들어올 만한 구멍은 전부 막아놨다.
설사 들어온다고 해도 어지간히 잠귀가 어둡지 않은 이상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걸 굳이 채원이에게 일일이 설명해가며 이해시키는 수고를 하기는 귀찮았다.
“그. 그래요. 운호 오빠가 괜찮다면 괜찮지 않을까요?”
지아의 그 말에 채원이 지아를 째려본다.
지아는 채원의 그 눈빛에 찔끔했다.
.
.
.
지아는 자기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조해졌다.
지아는 자기가 운호에게 그다지 쓸모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운호는 자기에게 관심을 가진듯했지만, 지아는 그동안의 다른 남자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운호에게 버려진다면?
좀비에게 물어뜯기고 변형체에게 사지가 찢겨 죽는 자기 모습이 떠오른다.
주. 죽는다!
-덜. 덜. 덜.
지아는 운호와 떨어졌을 때 자신에게 닥쳐올 현실을 알고 있었다.
얼마 안 가 죽을 거라는 걸.
지아는 살고 싶었다.
‘아! 안돼!’
살기 위해서는 운호를 어떻게든 붙잡아야 했다.
지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 내 몸에 흥미가 없는 건 아닌 거 가 같았어.’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운호의 남자다운 듬직한 육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