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하긴 하지만 고양이상의 예쁘장한 외모를 가진 단발머리의 소녀는 나를 아니 내 뒤의 누군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까 처음 내게 무릎을 꿇고 빌던 검은색 원피스의 여자였다.
어느샌가 몸을 움츠리고 내 뒤에 서 있었다.
단발머리 소녀가 노려보는 모습을 봐서는 이 여자에게 원한이 있는 모양이었다.
방금 그놈들의 동료였나?
“그놈들과 함께 우리를 사냥한 여자예요.”
단발머리 소녀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듯 이를 갈며 말했다.
“오. 오해에요!! 전 한패가 아니에요!! 진짜예요!”
검은 폴라 원피스의 여자는 필사적으로 호소했다.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슬쩍 뒤로 빠졌다.
내가 뭔가 피해를 본 건 아니었지만 단발의 소녀는 뭔가 원한이 있는듯했다.
괜히 어설프게 참견해볼 생각은 없었다.
둘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자 나라는 보호막이 없어진 검은 원피스의 여자가 단발 소녀에게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비비며 빌었다.
“저. 정말 죄송해요. 언니! 제가 미쳤나 봐요. 저놈들이 협박하는 바람에!”
‘아니. 언니라고 부르기에는 저쪽이 나이가 더 적어 보이는데.’
인제 보니 내 눈이 이상한 게 아니었다.
이 여자는 옷도 그렇고 저 두 명에 비해 상당히 깔끔했다.
이런 세계에서 저렇게 몸에 달라붙는 깔끔한 니트 폴라 원피스라니….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 깔끔하게 빠진 뒤태는 보기가 좋았다.
-쫙!
따귀를 찰지게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흑. 흑.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따귀를 맞은 여자는 이제는 아예 도게자를 하고 빌고 있었다.
도게자를 하는 바람에 치마가 올라가며 그녀의 예쁜 엉덩이와 검은색 속옷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뒤에 있던 내게 예상치 못한 좋은 눈요깃거리가 됐다.
그 모습을 보고 그녀가 이대로 죽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죽일 건가?”
단발머리 소녀에게 무심코 물었다.
“히익!! 죄송합니다. 저도 살고 싶었어요. 어. 언니! 엉. 엉. 제. 제발! 살려주세요!”
내 말에 검은 원피스의 여자는 공포에 질린 듯 단발 소녀의 다리를 잡고 애원했다.
소녀는 조금 갈등하는 듯했다.
이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아. 아니에요…. 그럴 생각은…. 민망하니까 일어나요!”
그녀의 필사적인 모습에 마음이 풀린 건지 아니면 내가 원피스 여자의 엉덩이를 보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여자에게 소리쳤다.
‘음? 아닌가? 그놈들과 진짜 한 패거린 아니었나?’
“네? 네. 네! 언니!”
“그 언니라는 소리도 그만하고요! 나이도 나보다 많이 보이는데.”
“네! 네! 감사합니다! 언. 아니 감사합니다!”
“...하아. 됐어요.”
단발머리의 소녀를 보니 죽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니면 살인을 해본 적이 없거나 아니면 진짜 험한 꼴을 당해본 적이 없거나.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호구 기질이 있어 보이는 소녀였다.
일어난 검은 원피스 여자의 처량한 모습은 그게 또 묘하게 청순미가 흘러나왔다.
[하급 침식체 다섯 접근 중입니다.]
아까 그 총소리를 들은 건가?
“이러고 있을 시간 없군.”
“네?”
“침식체다.”
“침식체?”
-컹! 컹!
처음 아파트단지에서 본 괴물 개인 거 같았다.
덩치 좀비에 비해 생각보다 까다로운 놈들이었다.
괴물 개들의 개 짖는 소리에 아이들이 시퍼렇게 질렸다.
“벼. 변형체!”
응? 여기서는 변형체로 부르는 건가?
하긴 나는 시스템에서 붙여준 이름으로 인식이 박혀있으니.
이 세계의 인간이 부르는 명칭이 아니었다.
저 괴물 개는 지금의 나에게는 큰 위협은 아니다.
아이들을 슬쩍 봤다.
하지만 여자 둘 꼬마 둘.
‘이것들을 지킬 수 있으려나.’
뭐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어쩔 수는 없는 일이다.
“차 안으로 들어가라.”
여자와 아이들을 대형 밴 안으로 넣고 문을 닫았다.
차 안에 있겠다고 해서 마냥 안전하지만은 않다.
괴물 개들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버틸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괴물 개들은 도로 옆에 있는 밭에서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황소보다 큰 개들 5마리가 먼지구름을 피우며 달려오는 위용은 대단했다.
위기감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레벨업된 육체를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됐다.
달려오는 괴물 개들을 마중 나갔다.
뒤에 차 안에 있는 애들보다는 나에게 신경이 쏠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미 육체 강화는 한 단계 올라섰다.
앞에 달려오는 두 마리가 순식간에 내 머리와 다리를 노렸다.
훌륭한 콤비플레이였다.
다리를 노리는 괴물 개의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나며 입이 벌어진다.
그 벌어진 입을 다리를 들어 올려 피하고는 그대로 내리밟았다.
-쿵!
땅이 움푹 들어가며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괴물 개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나갔다.
머리로 날아오는 놈은 묠니르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후려치자.
-으적!
피떡이 되며 날아간다.
순식간에 뭉개지는 두 마리의 그 살벌한 모습에 뒤에 달려들던 세 마리가 주춤했다.
기다려 줄 생각은 없었다.
발을 구른다.
-쿵.
몸이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 나갔다.
주춤거리던 괴물 개들은 내가 접근한 걸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묠니르가 사라지고 내 손엔 이미 거대한 대검이 들려있었다.
거대한 대검이 횡으로 반원을 그렸다.
-푸확!!
괴물 개 3마리가 일격에 순식간에 반토막으로 찢겨나갔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스킬포인트 1을 획득했습니다.>
<하급 침식체 처치 0 / 10>
걱정한 것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아니 내 생각보다 강화한 육체는 훨씬 뛰어났다.
인지능력. 반사신경. 스피드. 파워.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
.
.
지아는 차 안에서 극도의 공포에 떨었다.
전에 있던 생존자 집단이 해체된 것도 저 변형체 개들에 의해서였다.
그곳에서 탈출하고 지아는 한참을 악몽에 시달렸다.
괜히 객기를 부려 거처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얼마 안 있으면 저 사내의 몸을 물어뜯어 해체하고 곧 이곳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죽음을 예감했다.
-덜. 덜. 덜. 덜.
“엄마. 아빠.”
지아는 자기도 모르게 엄마, 아빠를 찾으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리고 사내를 향해 달려들던 변형체들이 순식간에 피안개를 뿌리며 눈 깜빡할 사이에 말 그대로 도살당했다.
“저…. 저게….”
옆에 자매들도 말문이 막힌듯했다.
벼, 변형체가 아니었나?
순간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예상과는 다른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그 피안개 사이로 거대하고 듬직한 사내의 등이 보였다.
그리고 그 괴물들을 처리하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사내의 등 뒤로 후광이 어린듯했다.
지아는 그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봤다.
공포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공포가 사라진 그 자리에 안도와 편안함이 가슴에 차올랐다.
“아….”
-쿵. 쿵.
심장이 뛰었다.
지아는 그렇게 멍하니 다가오는 커다란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차에서 나오는 단발 소녀의 얼굴이 조금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침식체보다는 나에 대한 경계인 거 같았다.
내가 험한 마음을 먹는다면 이 아이들은 반항할 수단이 없다.
검은 원피스의 여자는 왠지 나사가 빠진 듯한 멍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무서웠나?
하지만 그녀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오. 오빠. 저. 정말. 멋졌어요!”
‘오. 오빠?’
검은 원피스의 여자는 뭔 생각인지 내 팔을 끌어안으며 선망이 어린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팔에서 느껴지는 몽클한 감촉이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단발 소녀가 굳어있던 얼굴을 조금 풀며 말했다.
“저. 정말 대단하네요. 그 많은 변형체를 다….”
그 순간이었다.
-쾅!
“꺄악!!”
갑자기 폭탄이 터지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났다.
‘아니. 뭐 이런. 개 같은….’
차위에 뭐가 떨어진 건지 밴의 운전석 부분이 완전히 찌그러져 박살이 나 있었다.
그 찌그러진 위에는 커다란 무언가 보였다.
대형견 정도 크기의 새다.
비둘기?
너무 크고 흉측하게 뒤틀린 비둘기였다.
상당히 혐오스러운 모습이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 위에 거대한 시커먼 구름이 보였다.
아니 어마어마한 새때가 커다란 무언가를 둘러싸고 싸우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뭐랑 싸우고 있는 거지?’
인상을 찌푸리며 살펴봤지만 시커먼 새 구름에 싸여 잘 보이진 않았다.
-쿵!
-쿵!
커다란 뒤틀린 비둘기가 하나둘씩 지면에 떨어졌다.
저 멀리 하늘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나도 구경하는 거 말고는 어떻게 뭘 할 수단이 없었다.
그래도 확실한 건 저 싸움이 어떻게 끝나도 이쪽으로 주의가 끌린다면 좋을 건 없어 보였다.
저 많은 비둘기를 상대로 이 아이들을 지켜낼 자신은 없었다.
거대한 비둘기가 떨어져 처참하게 찌그러진 운전석과 연기가 솔솔 나는 밴이 보인다.
별로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다.
‘어휴. 쉽게 가는 법이 없군.’
차가 생겼다고 좋아했더니 이 꼴이다.
“이동하지.”
여기에 더 있어 좋을 건 없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