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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꼬마를 데리고 이동하는 거로 결정했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발걸음은 너무 느렸다.
그 느린 속도에 좀비들이 슬슬 몰려들었다.
-퍽! 퍽! 퍽!
좀비들의 머리가 내 창 질에 수박처럼 터져나갔다.
하지만 이러다가 대전에 있는 좀비를 다 쓸어버릴 판이었다.
이렇게 해서 언제 서울까지 간단 말인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걸 느꼈다.
아이를 왼손으로 안아 들었다.
꼬맹이가 기다렸다는 듯 내 목을 끌어안았다.
이런 걸 보면 나를 그다지 꺼리는 거 같진 않았다.
싫다고 발버둥이라도 치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다행이었다.
그리고 달렸다.
한 30분을 달렸을까?
어느샌가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우리를 쫓고 있었다.
팬클럽도 아니고 대 환장 파티군.
경험치도 얼마 안 되고 일일이 처리하기는 귀찮아 일단 내버려 두고는 있었다.
[하급 침식체 발견. 북서쪽 91m.]
수니가 침식체를 감지했는지 경고해 왔다.
도로 바깥쪽에 있는 보이지 않는 주택가 안에 있는 거 같았다.
레벨업과 보상이 목적이다.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아파트단지에 있던 괴물 개와 같은 종이라면 애를 지키며 데리고 싸울 순 없었다.
꼬맹이의 안전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4층 크기의 옷 가게가 있는 상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빠르게 도로변 상점들 사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흐읍!”
꼬맹이를 왼손에 안고 가볍게 점프해 건물 2층에 있는 창문턱을 오른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오른팔에 힘을 줘 힘껏 당기며 몸을 띄워 올렸다.
내 목을 감은 작은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몸이 떠오르며 3층을 지나 4층의 창문턱이 보였다.
내 몸이지만 정말 경이로운 힘이었다.
그 4층의 창문턱을 잡고 몸을 다시 한번 위로 튕겨 상점 건물의 옥상에 올라섰다.
밑에는 우릴 따라온 좀비들이 바글바글했다.
주변을 둘러봤다.
옥상은 잠겨있었다.
여기면 꼬맹이도 안전하지 않을까?
좀비도 이곳까지 올라오진 못할 테니 말이다.
[새로운 하급 침식체 감지했습니다. 전방 20미터.]
“뭐?”
[다른 개체입니다. 처음 발견한 침식체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개체라고? 뭐지 언제 이렇게 가까이 들어왔지?’
클로킹 기능이라도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옥상 아래를 내려다봤다.
좀비 무리 중 하나가 이상한 변이를 하고 있었다.
-크에겍!
피부가 부풀어 오르며 커지고 있었다.
마트에서 본 좀비가 생각났다.
좀비 침식체가 저런 식으로 변하는 거였나?
변신인지 진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기회였다.
“여기에 좀 있어라. 괴물을 좀 잡아야 하니까.”
-끄덕.
꼬마는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질질 짜지 않고 말을 잘 듣는 꼬맹이라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좀비는 살이 부풀어 오르며 아직도 변신 중이었다.
“변신은 못 참지.”
그대로 변신 중인 좀비를 향해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묠니르를 소환해 변신하는 좀비를 향해 있는 힘껏 내리쳤다.
망치의 엄청난 무게에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흐압!”
-꽈앙!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아스팔트가 내려앉으며 주변의 좀비들이 튕겨 날아갔다.
“후…. 납작해졌군.”
나도 모르게 어디선가 들어본 대사를 지껄여본다.
어디서 나온 말이었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급 침식체 처리: 5 / 10 >
변신 좀비는 피떡이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 해머는 솔직히 내가 아직 사용하기에는 몸에 부담이 가는 무기였다.
다른 각성자들이 맨즈사의 대검을 쓸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조금은 알 거 같았다.
‘육체 강화를 빨리 하나 더 올려야 하겠군.’
해머를 인벤토리에 넣자 피떡 사이에 반짝이는 마석이 보였다.
마석도 집어 인벤토리에 넣었다.
옥상을 보니 머리를 빼꼼 내밀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날 보고 있는 꼬맹이가 보였다.
별일은 없는 모양이었다.
[침식체 50m. 빠르게 접근 중입니다.]
요란한 망치 소리를 들었는지 3미터 정도 되는 덩치 큰 좀비 괴물이 좀비들을 해치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마트에 있던 놈보다는 근육질인 게 날렵해 보였다.
달려드는 좀비들을 피해 그쪽으로 마주 달렸다.
좀비 침식체는 처음 만난 개들과는 다르게 둔해 상대하기가 편했다.
그 괴물 개들이 오히려 더 민첩하고 상대하기 껄끄러웠다.
달리며 달려드는 좀비를 밟고 점프했다.
몸이 2미터 정도 떠오르며 덩치 좀비의 머리가 사정거리 들어왔다.
창 궁니르를 내질렀다.
-쿵!
머리에는 맞았지만, 공중에서 지른 창이라 힘을 충분히 받지 못했는지 머리뼈를 부수기엔 부족한 거 같았다.
머리에 충격을 받는 좀비의 눈동자가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
“크어엉!”
덩치 좀비가 울부짖으며 내게 거대한 주먹을 휘둘러왔다.
방패가 인벤토리에서 튀어나오며 그 주먹을 막았다.
창을 재빨리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방패를 잡았다.
-쿵.
방패에 충격이 가해지며 몸이 위로 떠 올랐다.
몸이 건물에 처박힐 듯이 날아갔다.
몸을 빙글 돌려 날아가는 힘을 이용해 건물 벽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거대 좀비를 향해 다시 한번 뛰어올랐다.
‘이걸 피하려나?’
뛰어오른 두 손엔 어느샌가 거대 망치 묠니르가 들려있었다.
민첩한 괴물 개였다면 하지 않았을 거다.
이 좀비 놈들은 피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듯했으니 해볼 만한 선택지였다.
“훕!”
근육이 찢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졌다.
거대한 망치가 덩치 좀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놈도 뭔가 위기감을 느꼈는지 양팔을 교차하며 머리를 막았다.
-꽈아앙!!!
-푸화악!
덩치 좀비의 그 노력이 무색하게 먼지구름이 피어오르며 둥글게 생긴 크레이터 위엔 뭉개진 살덩이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하급 침식체 처리: 6 / 10 >
망치를 겨우 두 번 사용했을 뿐인데 피로를 느꼈다.
화끈한 공격력에 신이 나서 나도 모르게 흥분하고 말았다.
육체 강화의 스킬 레벨을 올리기 전까지는 이 망치의 사용은 좀 자제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그때였다.
-우어엉!!!
어마어마한 짐승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끼며 빠르게 꼬마가 있는 옥상으로 이동했다.
꼬마는 귀를 막고 벌벌 떨고 있었다.
“....저건 뭐지?”
저 멀리 멧돼지 비슷한 실루엣이 보였다.
그 크기부터가 터무니없었다.
한참 멀리서도 보이는 그 거대 멧돼지는 체고만 거의 건물 10층에 달했다.
-쿵. 쿵.
걷는데 땅이 흔들렸다.
천천히 걷는듯했지만, 저렇게 어마어마한 크기다.
인간 입장에서는 상당한 속도일 거였다.
방향은 불행히도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시불…. 내 망치 소리를 들은 건가?’
내가 신이 나서 망치 찍는 소리가 어마어마하게 크기는 했다.
괜히 어그로가 끌린 모양이었다.
몬스터 세계에서 크기는 곧 힘을 이야기한다.
서포터 시절 B급은 한번 본 적 있었다.
저거 반절 정도 크기 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것만 해도 장난이 아닌 위용이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각성자가 죽어 나갔다.
그런데 그 두 배 크기라니 압박감이 어마어마했다.
“저건…. 최소 A급이군.”
A급 이상은 나도 본 적이 없었다.
원래 세계의 우리나라에서도 A급 이상은 나타난 적이 없었다.
저건 잡을 수 없다.
뭘 생각할 것도 없었다.
‘튀자.’
꼬마를 안아 들고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이 세계에 와서 이렇게 전력 질주로 급하게 움직인 적이 있었을까?
아이를 안아 들고 얼마나 달렸을까.
뒤를 돌아보니 전에 우리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그 거대 멧돼지가 서 있었다.
워낙에 크다 보니 멀리서도 잘 보였다.
쫓아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의 낮은 건물과 다르게 SY 빌딩이라는 이름이 붙은 10층짜리 건물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밑에는 S 월드라는 통신사매장이 하나 있었고 그 옆에는 빌딩에 들어가는 입구가 보였다.
빌딩 입구로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옥상 문은 잠겨있었지만, 장애는 되지 않았다.
-우지끈!
그리고 옥상에서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멧돼지 괴물을 봤다.
겨우 멧돼지 구경하려고 괜히 힘들게 올라온 건 아니었다.
아이를 내려주고 인벤토리에서 드론을 꺼냈다.
꼬마가 내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드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장난감 아니다.”
꼬맹이가 시무룩해 하는 건 무시하고 드론을 날렸다.
-부웅.
그래도 흔치 않은 기회였다.
이런 정보는 얻을 수 있을 때 얻어야 했다.
내가 좀 가까이 다가가서 등급을 측정해 볼까 했지만, 등급 하나 측정하자고 그런 모험을 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았다.
드론이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가자 멧돼지의 자세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꺼먼 털이 덮인 몸에 듬성듬성 징그러운 촉수 같은 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오도독. 오독.
거대 멧돼지는 밑에 있는 좀비들을 무슨 사료 먹듯이 처먹고 있었다.
윙윙 날아다니는 드론이 거슬렸는지 멧돼지의 거대하고 검붉은 눈동자가 드론을 향했다.
마치 나를 보는듯한 착각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리고 드론의 화면이 꺼졌다.
‘박살 났군.’
뭐에 박살이 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인벤토리에서 드론을 하나 더 띄워 날렸다.
이번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멀리서 관찰했다.
혹시나 이쪽으로 오면 어떻게 하나 조마조마했다.
멧돼지는 좀비를 잡아먹으면서 조금 머무는듯하더니 남쪽으로 천천히 이동을 시작했다.
-쿵. 쿵.
다행히 내가 있는 곳과는 반대쪽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멀어져야 했다.
고등급의 몬스터는 자신만의 영역을 갖는다.
이건 원래 세계에서 통용되는 이야기이긴 했지만, 이곳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이 저놈의 영역이라면 무조건 대전은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저런 터무니없는 몬스터를 보자 고민은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