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시간을 보낼 곳을 찾기로 했다.
아파트는 우리 집 보다는 작은 대충 20평 정도는 되는 아파트인 거 같았다.
좀비 시체가 있는 여긴 일단 탈락이었다.
천천히 15층의 복도를 걸으면 하나하나 집안을 탐색했다.
종종 잠긴 문안에서 좀비의 인기척이 느껴지는 거도 같았지만 굳이 열진 않았다.
1514호라고 적인 그래도 나름 깔끔한 제일 끝 집을 찾았다.
문이 열려 있었는데 급하게 떠난 흔적으로 봐서는 어딘가에 대피소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문을 닫아 잠그고 거실을 대충 치우며 집안을 둘러봤지만 별다른 건 보이질 않았다.
거실의 바닥 위에 텐트를 설치했다.
여기에 세이브 포인트도 설치할까 했지만 여기서 옥상이라면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다.
굳이 재사용 시간을 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텐트 안에 매트리스를 깔고 누웠다.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했다.
‘일단 사람을 만나야 해.’
그래야 이 세계에 있는 무슨 정보라도 얻을 수 있다.
여기는 대전이다.
서울이나 부산 쪽으로 향하면서 생존자를 찾아보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이동하면서 생존자집단이라도 찾으면 베스트고.
일단 서울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서울은 한국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도시이자 수도다.
방어해냈든가 존망 했든가 둘 중 하나겠지만 솔직히 서울이 힘들면 다른 곳도 힘들다고 보고 있었다.
원래 세계도 서울은 처절하게 지키려고 했으니.
그래도 좀비 대상이라면 내륙보단 섬 쪽이 더 방어하기 생존확률이 높은 거 같은데….
뭐 나와 상관없는 일이긴 했지만.
전기도 끊겨 적응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세상이었다.
그 적적함에 베란다에서 대충 주변 지형을 수니에게 숙지시킬 겸 드론을 이리저리 날리며 가지고 놀았다.
직접 나갈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경험치도 쥐꼬리만 한 더러운 좀비들과 실랑이하기 싫었다.
어차피 질리게 볼 예정이었다.
‘쇼핑몰이나 물류창고 그런 곳 위주로 살펴보면서 이동해야겠군.’
대형 쇼핑몰은 보급품의 보고였다.
생존자가 있다면 그런 쪽을 공략하지 않았을까.
배가 고파 인벤토리에서 따끈따끈한 간짜장을 꺼내 먹었다.
인벤토리 안은 시간이 흐르지 않아 음식 보관에도 유용해 배달 음식을 열심히 쟁여뒀다.
내일 세이브 포인트가 활성화될 때까지 시간을 때워야 했다.
시간을 때울 건 많았다.
원래 세계는 내가 평생에 걸쳐 소비해도 넘쳐흐르는 온갖 창작물이 지금, 이 순간에도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텐트 안에서 누워 진격의 괴수라는 만화책을 봤다.
나름 볼만해 시간 죽이기엔 좋았다.
.
.
.
[92미터 거리에 몬스터를 감지했습니다.]
수니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만화책을 보다 잠이 들었다.
깜깜한 걸 보니 해가 진 모양이었다.
적응되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적외선 투시 활성화합니다.]
수니의 말과 함께 슈트가 살아있는 것처럼 내 얼굴을 덮었다.
흑백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느 쪽이지?’
[남서쪽 72미터입니다.]
수니가 시야에 표시를 해줬다.
베란다로 가서 밑을 내려다봤다.
아파트 단지 내를 어슬렁거리는 늑대와 비슷한 실루엣이 보였다.
늑대라고 하기에는 거의 황소보다 더 커 보였다.
‘늑대? 는 아니겠지…. 등급은?’
[감지에 의하면 D등급입니다.]
‘D등급이라 해볼 만은 하겠군.’
‘가자.’
레벨업과 보상이 마려웠다.
그동안 균열을 돌면서 전투를 해본 결과 나는 D등급 중에서도 최상위였다.
아니 다른 각성자들과 각성에 대한 메커니즘부터가 달랐다.
같은 D등급이라면 혼자서도 사냥할 만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설마 몬스터 주제에 힘숨찐은 아니겠지.’
조용히 아파트 밑으로 향했다.
거대한 늑대처럼 생긴 괴물은 무엇을 찾는지 아파트 단지 내를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었다.
듬성듬성 나 있는 털 중간중간 튀어나온 이질적인 살덩이 기포들.
멀리서 볼 땐 몰랐지만 상당히 흉측하게 생겼다.
-킁킁.
차를 바리케이드 삼아 몸을 숨기며 천천히 다가가자 괴물 늑대가 뭔가 냄새를 맡은 듯 코를 씰룩였다.
그 모습을 보고 투창을 하나 소환해 움켜쥐었다.
각성자용 투창으로 단단하고 무거운 놈이었다.
코를 씰룩이는 놈의 몸을 향해 창을 던졌다.
-후웅!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날아가 괴물 늑대의 몸에 명중했다.
-쿵!
몸에서 나올 수 없는 충돌음이 났다.
-깨갱.
괴물 늑대는 비명을 지르며 한번 구르더니 멀쩡하게 일어섰다.
두 번째 투창이 날아들었다.
두 번 당하지 않겠다는 듯 괴물 늑대는 그것을 본 듯 가볍게 피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땅을 박차며 미친개처럼 빠르게 나한테 달려들었다.
-컹!
아파트 단지에 괴물 늑대의 울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일반인이라면 오줌을 지릴만한 광경이었지만 신경을 쓰지 않고 스텝을 밟아 가볍게 옆으로 피하는 동시에 손을 들어 올렸다.
인벤토리에서 나온 커다란 대검이 이미 손에 들려있었다.
빠르게 내려쳤다.
손에서 F급 몬스터와 다른 반발력이 느껴졌다.
-쾅!
하지만 괴물 늑대는 충격을 받고 옆으로 구르며 날아갔다.
-깨개갱!
비명을 지르는 걸 보면 충격이 없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튼튼했다.
‘역시 D등급이라는 건가? 이 정도로는 안 되나?’
좀 더 공격력을 올려야 할 거 같았다.
-크르릉.
이제야 내게 경각심을 가진 모양인지 섣불리 덤벼들진 않았다.
원래 세계 쪽의 침식체는 오직 살육만이 목적인듯한 이성이 없는듯한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지능이 있는 것 같은 저런 행동을 보면 걸 보면 원래 세계의 침식체와는 조금 결이 다른 듯도 싶었다.
-아우우~!
괴물 늑대가 갑자기 하울링을 내뱉었다.
괜히 저러진 않을 거 같고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언젠가 너튜브에서 본 거 같다.
늑대가 저런 소리를 내는 거는 동료를 찾는 소리라고 들은 거 같은데.
‘서둘러야겠군.’
빠르게 괴물 늑대에게 접근하며 대검을 휘둘렀다.
괴물 늑대가 훌쩍 뒤로 물러나며 나와 거리를 벌린다.
‘헐? 시간 끄는 건가?”
몬스터 주제에 머리를 쓰는 거 같아 황당했다.
저렇게 대놓고 시간을 끌면 나도 곤란했다.
잠깐 후퇴를 생각했다.
만약 진짜 동료를 부른 거라면 몇 마리가 올지 모른다.
[몬스터 2마리 접근 중입니다.]
[거리 96미터.]
수니의 경고에 빠르게 물었다.
‘등급은?’
[D등급입니다.]
‘D등급 세 마리다. 상대할 수 있을까?’
지친 건 아니었다.
저놈이 딱히 강하다는 생각도 없었다.
처리하는 데는 별문제는 없을 거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수니의 의견을 물었다.
[추가되는 몬스터가 지금 상대와 전투력이 비슷하다면 어렵지 않은 사냥이 가능하다고 예측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몬스터가 몰려온다면 후퇴를 추천합니다.]
지금은 세이브 포인트가 활성화도 되지 않은 상태다.
수니는 혹시 몰라 나의 안전을 생각하고 있었다.
‘현재 감지된 거 이외에 더 오는 게 있으면 보고해.’
[알겠습니다. 주인님.]
수니의 생각과 내 생각이 일치했다.
상대가 가능하다면 물러설 이유는 없었다.
수니와 의견을 나누는 사이 내가 뭔가 주춤하자 겁먹었다고 생각했는지 괴물 늑대가 그 틈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추가된 놈들이 오기 전에 빨리 처리한다.
가볍게 대검을 휘둘렀다.
예상했다는 듯 괴물 늑대는 내 대검을 피했다.
그 순간 바로 위에서 인벤토리에서 나온 거대한 망치가 떨어졌다.
묠니르였다.
괴물 늑대는 그건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대로 깔렸다.
-깨깽.
다른 놈들이 오기 전 일격에 죽여야 했다.
대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후흡!”
그대로 온 힘을 다해 있는 힘껏 내려쳤다.
-쿵!
둔중한 소리와 함께 괴물 늑대의 두개골을 파고들어 부수는 것도 모자라 대검이 아스팔트에 박혔다.
<하급 침식체 처리: 1 / 10 >
기분이 좋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D급이 하급 침식체라는 것도 알았다.
[몬스터와의 거리 10미터. 공격해 옵니다.]
-컹. 컹컹.
수니의 경고와 동시에 어느샌가 달려온 몬스터 두 마리가 달려들었다.
내 머리와 다리를 노리는 합동 공격이었다.
빠르게 뒤로 몸을 물리며 망치와 대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직사각형의 초대형 방패를 꺼내 공격을 막으면서 그대로 밀어 버렸다.
-쾅! 쾅! 깨갱! 깨갱!
두 번의 충격음과 함께 침식체 두 마리는 튕겨 나갔다.
하나는 핏불…. 하나는 도베르만?
듬성듬성 난 털과 뒤틀린 피부 두 마리 역시나 역겨운 모습이다.
‘늑대가 아니라 개였나?’
뒤에서는 좀비가 달려들었다.
나와 몬스터가 싸우는 소리가 시끄러웠는지 좀비들이 몰려들었다.
“꺼져.”
발로 차자 뒤로 나뒹굴었다.
좀비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아. 진짜 쓸데없는 좀비들이.”
허접하긴 했지만 걸리적거리는 건 확실했다.
역시나 좀비들은 개 몬스터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여기서 싸우는 건 불리했다.
‘일단 좁은 곳으로 간다.’
아파트 건물 입구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