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갈지는 이미 수니와 함께 정해는 놨다.
판타지보다는 그래도 현대의 좀비가 약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전 좀비 영화에서 보던 좀비라면 일반인 입장에서야 재앙이지 각성자로서는 강해 봐야 F급 몬스터 정도일 거다.
언어도 문제였다.
판테라쪽으로 갔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했다.
여러모로 23지구라는 곳이 판테라보다는 리스크가 낮아 보였다.
“23지구.”
-부웅.
직사각형의 은빛 통로가 일렁이더니 물감을 휘저어 놓은 거 같은 일그러진 풍경이 보였다.
풍경이 왜곡돼 정확한 확인은 되지 않았지만, 현대의 도시 같아 보였다.
저항이 있던 문이 저항이 사라지며 내 손이 쑥 들어갔다.
“엇!”
깜짝 놀라 손을 꺼냈다.
꺼낸 손을 유심히 살펴봤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이걸로 진입하는 건가?”
[주인님 조심하십시오. 24시간은 로그아웃할 수 없습니다.]
수니가 걱정되는 듯 경고했다.
“알고 있다고. 수니 비서.”
이미 몸은 완전 무장을 한 상태였다.
그래봐야 진아에게 받은 회사의 전투 슈트를 입은 정도지만 이 정도만 해도 상당한 방어력이었다.
필요한 물품은 인벤토리에 다 들어있었다.
“그래 가자.”
발걸음을 옮겨 내 몸을 풍경이 일렁이는 문 속으로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었다.
적응되지 않는 고요함 속에 맑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옥상?’
그리고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 발생!!>
<침식체를 제거하십시오.>
<침식체 처치 시 추가 경험치가 있습니다.>
<하급 침식체 10마리 처치 보상: 스킬포인트 1>
<중급 침식체 처치 보상: 스킬포인트 1>
<상급 침식체 처치 보상: 스킬포인트 5>
<최상급 침식체 처치 보상: 스킬포인트 10>
스킬포인트는 내가 강해지는 근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스킬포인트를 준다고 한다.
레벨업해야 겨우 하나 얻을 수 있는 스킬포인트를.
역시 닥사보다는 퀘스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작 올 걸 그랬나?”
조금은 후회해보지만, 각성자로서는 배부른 고민이었다.
스캔을 돌렸지만 별다른 건 감지 되지 않았다.
몬스터도 사람도 없다는 소리였다.
‘스캔이 침식체를 감지할 수가 있나?’
원래 세계의 몬스터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차원 균열에서 나오는 침식체와 게이트에 있는 몬스터.
침식체가 원래 세계의 몬스터와 비슷하다면 감지가 될 터였다.
‘침식체라면 원래 세계의 몬스터와 같은 건가?’
하지만 그것도 보기 전엔 알 수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15층 정도가 되는 한국의 오래된 아파트 옥상인 거 같았다.
‘그나저나 내 옷 다 어디 갔지?’
분명히 진입하기 전에 진아가 준 회사의 전투 슈트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입고 있는 건 스킬이 된 타이트한 검은색 전투 슈트 딸랑 하나 입고 있었다.
[인벤토리 안의 물건은 이상 없습니다.]
나와 인벤토리 속 외의 물건은 통과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젠장. 슈트도 인벤토리에 넣고 왔어야 했군.’
“운동복 하나만 줘.”
[네. 주인님.]
내 몸에 애용하는 운동복이 순식간에 입혀져 있었다.
수니를 이용한 편리한 인벤토리 활용 중 하나였다.
이 편한 걸 한번 맛보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뒤엔 불이 꺼진 듯한 시커먼 직사각형의 통로가 보였다.
손바닥을 대자 메시지가 떠오른다.
<세이브 포인트가 활성화될 때까지 로그아웃할 수 없습니다.>
<세이브 포인트 활성화까지 23시간 56분 46초>
쿨타임이 돌고 있었다.
“세이브 포인트?”
<새로운 세이브 포인트를 지정하시겠습니까?>
<세이브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새로운 세이브 포인트를 설정하면 기존의 세이브 포인트가 사라집니다.>
<새로운 세이브 포인트 설치에는 24시간이 소요됩니다.>
직사각형의 문과 같은 통로.
내가 로그인했을 때의 진입 장소가 세이브 포인트인 거 같았다.
세이브 포인트는 스킬 레벨을 올려야 증가한다.
세이브 포인트를 하나 더 추가하면 이 문을 한군데 더 설치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러면 두 군데 중 골라서 진입할 수 있다는 소리인가?
쿨타임은 어떻지?
따로 적용되는 건가?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메시지가 반응하지 않는 걸 보면 그건 로그인 스킬을 올려야 확인해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만약 따로 쿨타임이 돈다면 나름대로 로그인이라는 스킬도 올릴 가치는 있지 않을까?
그래도 역시 제일 후 순위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일단 정찰이 먼저였다.
옥상 주변을 둘러봤지만 별다른 건 없었다.
옥상 문은 잠겨있었다.
뜯고 내려갈까 하다가 일단 인벤토리에서 드론을 꺼내 날렸다.
드론의 고도를 낮추자 좀비가 보였다.
드론의 소리에 어그로가 끌렸는지 드론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좀비가 달리는 걸 보면 일반인에게는 위협이 될만했다.
그래도 그리 강해 보이진 않았다.
그 소리에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한 열댓 마리 정도의 좀비가 드론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별로 볼 건 없군.’
드론을 이리저리 돌려 주변을 대충 둘러봤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전 복합 터미널 4.5km>
도로표지판을 보고 대전이라는 걸 알았다.
로그인 장소가 한국인 거도 그렇고 내가 사는 곳과 진입 장소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건가?
시간은…. 내가 오후에 출발했는데 여긴 오전인 거 같은데.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지만, 태양을 보면 대충 아홉 시나 열 시 정도 되는 거 같았다.
목련이 보이는 걸 보면 계절은 봄인 거 같고.
주변을 최대한 돌아봤지만, 사람이라고 할 건 없었고 좀비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다지 수확도 없이 드론을 회수했다.
-우직끈.
옥상의 문손잡이를 부쉈다.
아파트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퀴퀴하고 불쾌한 냄새가 올라왔다.
건물들의 외관으로 봐서는 평범한 현대도시의 모습이었다.
기술력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였다.
우리 쪽은 게이트도 막았는데 이쪽은 왜 이렇게 황폐한 건지 모르겠다.
뭐 어딘가로 대피해 있을 수도 있고….
원래 세계도 처음엔 대도시 빼고는 거의 존망 했으니.
그래도 대전이면 나름 큰 도시 아닌가?
세계 자체가 존망 했다고는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었다.
겨우 좀비에게?
영화에서나 가능하지, 현실에서는 힘들지 않을까?
어쨌든 이번 진입은 애초에 정찰 개념이다.
24시간을 보내고 바로 복귀할 생각이었다.
우리 세계와의 시간 차이도 확인해 봐야 했다.
‘그런데 돌아갔더니 터무니없이 몇 년 지나고 그런 건 아니겠지.’
그건 좀 공포였다.
일단은 시간을 보낼 곳을 찾아봐야 했다.
위층부터 집을 탐색하기로 했다.
아파트는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였다.
제일 위층인 15층 복도는 중간중간 핏자국이 보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깨끗하고 조용했다.
일단 복도 통로 바로 옆에 있는 집을 확인하기로 했다.
각성자의 예리한 감각이 문 건너편에서 인기척을 감지한다.
스캔해보니 감지반응에 별다른 건 없었다.
인간이 아닌 좀비일 확률이 높았다.
좀비는 스캔으로는 감지가 되지 않는 거 같았다.
문은 감겨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우두둑.
문이 부서지며 억지로 열리자 흉측하게 생긴 좀비 하나가 쇳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크아!!
워낙 흉측해 성별은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입고 있는 옷을 보면 여자였었던 좀비 같았다.
발로 배를 걷어차자 달려온 거보다 빠르게 뒤로 자빠지며 굴러갔다.
하지만 별다른 타격은 없는 건지 이내 일어서더니 달려들었다.
인벤토리에서 거대한 창을 꺼내 그대로 좀비의 배에 찔러넣었다.
맨즈에서 산 3미터가 넘는 굵은 창 궁니르다.
좀비는 배가 꿰뚫린 채 내 힘을 이기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대로 창을 밀어 벽에 박아넣어 고정했다.
-쿵.
좀비는 창에 배를 꿰뚫린 채로 내게 달려들려 했지만, 워낙 튼튼한 창이기에 어림도 없었다.
좀비를 관찰했다.
검게 물든 눈알.
흉측하게 뒤틀린 피부.
그 피부 위로는 검은색 혈관이 꿈틀거린다.
“흠. 부패는 심하지 않은데….”
이 사태가 된 게 얼마 되지 않는 걸까?
“우리 쪽 침식체...는 아닌 거 같은데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인벤토리에서 정글도를 꺼내 손에 쥐었다.
-스걱.
팔 한쪽을 잘라냈다.
절단면에 검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피는 별로 나오지 않고 이내 멎었다.
고통을 느끼진 않는 거 같았다.
“크아아!”
나를 보며 잡으려고 팔을 휘적이는 게 공격성도 여전했다.
-푸욱.
정글도로 심장을 찔러 본다.
“케엑!! 켁!”
좀비의 입에서 검은 피가 조금 흘러나오긴 했다.
그래도 죽진 않았다.
그래도 타격이 있으니 입에서 피가 나오는 게 아닐까.
시간을 좀 더 보내면 죽으려나 싶었지만.
-스걱.
-데구루루.
목을 자르자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따닥. 딱.
바닥에 놓인 머리가 나를 보며 이빨을 딱딱였다.
“실제로 보니 신기하긴 하네.”
-퍽!
정글도가 그 머리에 꽂히자 눈이 풀리며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쥐꼬리만 한 경험치가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좀비도 일단은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이야기다.
<하급 침식체 처리: 0 / 10 >
하지만 침식체도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역시 쉽게 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런 거 열 마리면 밸런스 붕괴다.
“그런데 개똥 같네…. 가성비 개.....구리다. 이놈들 마석은 가지고 있으려나?”
좀비라 그런지 생명력이 끈질겼고 머리를 깨지 않으면 잘 뒤지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F급 몬스터보다도 경험치가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