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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아저씨의 로그인 생활-12화 (1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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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을 마친 나는 한나와 히어로 몰 2층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박운호 씨를 우리 회사로 모시고 싶어요.”

예상했던 말이 나왔다.

“저는 회사에 들어갈 생각이 별로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최고의 대우를 해드릴게요. 계약금으로 100억을 드릴게요.”

한나의 표정은 이 정도면 어떠냐는 표정이었다.

“......”

그냥 거절하기엔 상당히 많은 돈이었다.

신생 회사라더니 돈은 꽤 있는 모양이었다.

투자를 잘 받았나?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말도 안 되게 지르는 거였다.

‘사기인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보통 F급이 5에서 10억 수준일 거다.

D급은 그것보다 많이 받긴 하지만 많아 봐야 30억 안쪽일 거다.

지금 막 각성한 D급 각성자를 누가 미쳤다고 100억을 준단 말인가.

각성자의 성장치는 그 누구도 잘 모른다.

F급이었던 사람이 A급이 되는 일도 있고 평생 F급에서 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높은 등급에 관심이 높은 이유도 낮은 등급보다는 높은 등급이 그 위로 올라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내가 C급이나 B급으로 각성했으면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C급 이상의 각성 판정받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도 정말 흔치 않다.

그래서 일단 판정받으면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언론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국뽕튜브는 말할 것도 없다.

텔레비전이나 뉴스를 잘 보지 않는 내가 너튜브 수많은 국뽕티비에 도배되던 강우진이라는 각성자를 알 정도니 말 다했다.

첫 마력 측정에 C급을 받은 전 세계가 놀라고 발칵 뒤집힌 자랑스러운 한국인 강우진.

D급까지는 어느 정도 심심치 않게 나오니 다행히 나는 국뽕튜브에 나오진 않을 거다.

그런데 100억이라니….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라고 보는 건가?’

애초에 햇병아리로 볼 나이도 아니다.

그것도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를 뭘 보고 그런 제안을 하는 겁니까.”

“전 운호 씨의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습니다.”

한나는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 있게 말했다.

영입을 위한 입에 발린 칭찬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별로 끌리진 않았다.

그녀가 예쁘다곤 해도 회사 쪽에 들어가는 건 다른 문제였다.

계약금이란 건 일종의 족쇄다.

100억이 큰돈이긴 했지만 내 스킬을 생각하면 그 정도 돈은 금방 모을 거도 같았다.

어차피 헌터는 연봉보다는 실적 위주였기 때문이었다.

인벤토리의 존재로 인해 서포터 비용도 절감이 될 테고 파티 사냥할 생각도 없으니 독식도 가능했다.

심드렁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한나는 상당히 저자세로 나왔다.

“무엇을 원하죠? 최대한 맞춰 드릴게요.”

한나는 애절한 눈빛 공격을 시작했다.

보통 각성자 스카우트를 이렇게 하나?

하나부터 열까지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의심만 더 커진다.

뭐 영입 협상을 어떻게 하는지 본적도 없고….

꽤 큰 돈에 잠깐 끌렸지만 그래도 회사에 얽매이긴 싫었다.

“글쎄요….”

왜인지 쓸데없이 나를 높게 평가한 모양이다.

내게 필사적인 예쁘장한 얼굴이 귀엽기는 했다.

고지식한 뿔테안경과 예쁘장한 얼굴이 잘 어울렸다.

아니 예쁘니까 잘 어울리는 건가.

얼굴이 패션이라는 말은 진리였다.

그 밑으로 보이는 가슴의 풍만감.

내 시선을 느낀 건지 한나가 얼굴을 붉혔다.

옆에 있던 비서로 보이는 단발머리의 여자가 나를 노려본다.

침묵이 흘렀다.

너무 노골적으로 봤나? 싶었지만 여기서는 철판을 깔기로 했다.

괜히 당황해봐야 서로 어색해진다.

아마도….

한나도 내 시선에 얼굴을 붉힐 뿐 그것에 대한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영입을 위해 참는 건가.

하지만 여비서는 나를 계속 경계하는 듯했다.

“정말 안 되겠나요? 원하시는 조건을 말씀하시면 웬만하면 다 들어 드릴게요.”

왜인지 나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맘이 동하진 않았다.

그녀는 미녀다.

초절정 미녀.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회사 같은 곳에 들어갈 생각도 없는데 관심이 있으니 이렇게 카페도 같이 온 거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쁜 건 이쁜 거고 이건 이거다.

이후로 다시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한나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저는 놓치고 싶지 않아요. 운호 씨를.”

모르는 누가 보면 착각할 만한 대사다.

반면에 그녀의 손의 감촉은 좋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간절한 모습에 내가 원하는 데로 질러봐서 그다지 손해 볼 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습니다.”

“정말요?”

한나가 활짝 웃자 주변이 환해진다.

“아직 좋아하긴 이릅니다.”

“네! 네! 말씀만 하세요!”

한나는 뭔가 진전이 되는듯하여 보이자 신이 난듯했다.

저 얼굴을 언제까지 유지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조건을 말하죠. 일단 제가 하고 싶을 때만 사냥하겠습니다.”

“네?”

옆에 있는 여비서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제가 하고 싶을 때만 사냥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한나는 내 처음으로 건 조건에 팔짱을 끼고 조금 곰곰이 생각하는듯하더니 말했다.

“좋아요!”

...진짜 이해한 건가?

이 조건은 그냥 계약금을 받고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이것도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지만 아직 하나가 더 남아있었다.

“계약도 제 마음대로 해지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네에?!”

“아니 그런 말도 안 되는!”

한나와 무표정하던 여비서가 놀라 소리쳤다.

항상 무표정하던 여비서에게서 놀라는 표정이 나오자 그건 그거대로 재미있었다.

겨우 D급 헌터의 이런 개소리도 들어줄 수가 있을까 싶었다.

반면에 나는 느긋했다.

애초에 계약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었다.

한나는 입술을 깨물며 고민했다.

이게 고민할 문제인가 싶었다.

나는 느긋하게 고민하는 미녀를 천천히 감상했다.

오늘 아니면 이런 미녀를 언제 실물로 볼까 싶었다.

“대표님. 이건….”

여비서는 혹시나 한나가 이상한 선택을 할까 불안한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언니.”

결심을 굳힌 듯 그녀의 눈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좋아요!”

“......미쳤구먼.”

나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나왔다.

이 여자가 진짜 회사 대표 맞나?

대표라면 이런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아니 대표니까 이런 결정을 내릴 수가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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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는 뭐가 그리 급한지 계약을 위해 나를 회사로 끌고 왔다.

서울 강남에 10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는 나름 건실한 회사처럼 보였다.

그리고 계약서에 기어코 사인하게 만들었다.

계약 조건을 생각하며 별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닌가 싶었지만….

[계약서에 별다른 독소조항은 없습니다.]

내겐 유능한 비서가 머릿속에 있었다.

계약서의 내용은 내가 받을 혜택만을 나열한 터무니없는 계약서였다.

아무리 나라 해도 조금 양심의 가책을 받을 정도였다.

귀찮지 않은 부탁이면 한두 개는 들어줘도 괜찮을 거 같았다.

“이제 한식구네요! 잘 부탁드려요!”

내가 계약서에 사인을 마치자 한나가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건넸다.

“아…. 예.”

그 좋아하는 모습에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을 마주 잡았다.

하지만 아직 마음 한구석에 의심을 지우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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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너무 저자세로 나간 거 아닐까?”

운호가 나가자 진아가 걱정스레 한마디 했다.

“그는 처음부터 회사에 들어올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이 정도는 해야 해요.”

“정말 괜찮을까?”

진아의 얼굴은 여전히 펴지지 않았다.

“뭐가요?”

“이런 계약이라니 그가 딴마음을 먹는다면….”

진아는 100억이 날아간다는 뒷말을 삼켰다.

“괜찮을 거예요. 그의 이득만 가득한 계약서에요. 이런 이득을 굳이 걷어찰 사람으로 보이진 않고요.”

한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지금은 괜찮다고 해도….”

“그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요.”

“그…. 정도야?”

“언니가 보기엔 어땠죠?”

“내 눈에는 네 몸을 훑어대는 음흉한 남자로밖에 보이질 않았는데….”

진아는 조금 혐오가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하하. 좀 노골적이긴 했죠. 그래도 왠지 기분이 그렇게 나쁘진 않더군요.”

한나는 유쾌하게 웃었다.

“한나야!”

“하하. 농담이에요. 언니는 너무 딱딱하다니까…. 그것뿐이에요?”

“막 각성한 사람 같은 느낌은 아니야. 이상할 정도로 빈틈이 없어. 솔직히 그를 제압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하겠어.”

한나는 D등급 각성자였다.

“망치를 들어 올리던 그 모습은 정말 대단했죠.”

한나는 낮에 봤던 그 장면을 회상하며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그건 누구라도 감탄할만했어.”

진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수긍했다.

“그러면 제 눈이 제대로 본 게 맞겠네요.”

“도대체 어느 정도인 거야?”

진아가 궁금한 듯 말했다.

“미국의 s급 히어로 엘라 이상이에요.”

“!!!!”

한나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그가 이 회사에 이름을 올려두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깟 100억보다 그 이상의 이득을 볼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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