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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아저씨의 로그인 생활-4화 (4/259)

꼬꾸라진 고블린을 뒤집어 이마에 박힌 나이프와 어깨에 박혀있는 볼트를 회수했다.

볼트는 상하지만 않으면 재활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백 팩에 달려있던 손도끼를 꺼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고블린의 가슴이 쪼개졌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마석을 찾아야 했다.

고블린은 심장에서 마석이 나왔다.

하지만 역시나 없었다.

F급 몬스터는 열 마리를 잡으면 한 마리라도 나오면 운이 좋은 거다.

기대했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다는 거다.

자리를 옮겨 처음에 잡은 고블린의 가슴을 쪼갰다.

“빙고."

손가락 한 마디 만한 영롱한 마석을 발견했다.

‘되는 날인가?’

기분이 좋아졌다.

고블린 가챠가 성공했다.

고블린 두 마리에 마석하나라니 남는 장사였다.

고블린들이 먹던 시체들을 살펴봤다.

몸통이 이미 상당 부분 사라진 인간시체가 둘이 있었다.

남자 둘이었다.

아직 앳된 얼굴엔 고통과 공포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라있었다.

‘어리군.’

이 일을 하다 보면 시체야 질리도록 본다.

이번에도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흩어져 있는 장비를 살펴봤다.

장비가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자격증을 따고 얼마 안 된 초보 무각성 헌터인듯했다.

무각성 헌터 자격증은 군대나 서포터 경력 2년 이상을 인정받거나 헌터 아카데미를 수료하면 받는다.

몬스터 감지기는 보이지 않았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초보 헌터가 쉽게 구할 물건은 아니긴 했다.

그래서 보통 길드나 파티에 들어가 막내 생활을 한다.

운이 좋아 어쩌면 한두 번 파밍에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앞에서 튀어나오는 고블린의 기습은 베테랑도 대처하기 힘들었다.

몬스터 감지기를 괜히 들고 다니는 게 아니다.

좀 떨어진 곳에 굴러다니는 희생자들의 백 팩을 발견했다.

주먹만 한 파란색 열매와 선명한 녹색의 잎사귀가 들어있었다.

로카라는 열매와 노그라는 약초다.

송도 게이트 무각성 헌터들의 주 수입원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꺼내 내 백 팩에 집어넣었다.

일성 로고가 박힌 일성사의 태블릿이 보였지만 무시했다.

태블릿이 돈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귀찮은 일이 생길 확률이 있어 포기하는 게 맞았다.

그 외에는 돈이 될만한 것은 눈에 보이진 않았다.

다음은 고블린 손톱이다.

비싸진 않지만, 부피도 크지 않고 용돈벌이 수준은 된다.

손톱을 잘라내기 위해 고블린 시체 쪽으로 향할 때 였다.

[몬스터 감지.]

[11시 방향 45미터 F급 몬스터.]

[생체반응하나.]

“뭐?”

전방도 아닌 이런 후방에서 이렇게 연속으로 몬스터와 만난다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주변에 차원 균열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몬스터 접근 중입니다.]

[30미터.]

순식간에 간격이 좁혀들었다.

몬스터 한 마리가 현재 위치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저렇게 빠른 F급 몬스터가 있었던가?

지도에 표시된 빨간 점은 굉장한 빠르기로 이쪽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몇 초 후면 도착할듯했다.

오랜 헌터의 감으로 왠지 모를 경계심을 느끼며 빠르게 수풀 속으로 몸을 은폐했다.

-크르릉….

그와 동시에 바로 몬스터가 나타났다.

생긴 건 고블린과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2미터는 되어 키와 크게 벌크업을 한 상체는 위압감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처음 보는 거대 고블린이었다.

나름 이 바닥에 오래 있었지만 고블린에 저런 돌연변이가 있다는 건 들은 적도 본적도 없었다.

거대 고블린은 어슬렁거리더니 배가 고팠는지 내가 죽인 고블린들의 시체에 얼굴을 박고 뜯어먹기 시작했다.

-우드득.

단단한 이빨에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민이 됐다.

이대로 빠질 것인가.

사냥을 할 것인가.

빠진다면 들키지 말아야 한다.

저 몬스터의 인식범위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빠지다가 들킨다면 꼼짝없이 근접 전투를 벌여야 했다.

무각성 헌터에게 근접 전투란 최후의 수단이다.

그나마 뛰어난 감각으로 일반인은 초월한 전투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저 덩치를 보니 근접 전투가 꺼려졌다.

일반 고블린이야 두 주먹으로도 때려잡을 수가 있지만 그냥 보기에도 몬스터의 신체 능력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싸우는 것만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가 있었다.

저 육체를 보면 도망친다고 따돌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에 부닥칠 수가 있었다.

사냥한다면 선공권을 가지고 유리한 전투를 이어 나갈 수가 있었다.

“F급이 확실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니에게 물었다.

[네. F급 몬스터입니다.]

“주변에 다른 몬스터는?”

[반경 50미터안에는 감지 되지 않습니다.]

D급은 아니었다.

D급이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야 했지만, F급이라면 할만했다.

고블린보다야 강해 보였지만 그래봐야 F급 몬스터다.

그리고 한 마리다.

F급 한 마리 선제공격이 가능한 상황.

질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저 덩치를 보니 방심은 할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전투를 준비했다.

소리를 죽이며 쇠뇌를 장전하고 백 팩에서 조립형 창을 꺼내 빠르게 조립했다.

조립식이라 내구성이 좋지 않아 오로지 투척을 위한 창이었다.

여전히 시체를 뜯어먹고 있는 거대 고블린에게 조용히 쇠뇌를 조준했다.

조준경의 빨간 점이 거대 고블린의 정수리를 노렸다.

-퉁.

-퍼억.

거대 고블린의 머리에 어김없이 박혔다.

순간 신나게 식사 중이던 괴물이 정지했다.

‘보통 F급이라면 이 한방으로 끝나겠지만.’

그래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빠르게 쇠뇌를 재장전하면서 상태를 살폈다.

-크르릉.

낮은 짐승 울음소리와 함께 거대 고블린의 고개가 들어 올려졌다.

그리고 돌아가는 괴물의 눈과 눈이 마주쳤다.

멀쩡해 보이는 모습에 빗맞았나 싶었지만 정수리에 비스듬히 박혀 덜렁거리는 볼트를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경계심이 높아지며 근육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장전된 쇠뇌를 재빨리 조준하고 당겼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눈에 박혔다.

대형 고블린은 충격을 받은 듯 고개가 뒤로 꺾이며 비틀거리나 싶더니 순식간에 튕기듯 땅을 박찼다.

-크엉!!

접근할 때 스피드를 보고 빠를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그 이상의 속도를 보여주었다.

F급 몬스터의 속도가 아니었다.

위기감에 감각이 확장된다.

사고가 가속했다.

‘늦었다.’

달려드는 몬스터가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더 느렸다.

더 빠르게 반응했어야 했다.

나름 경계한다고 했지만, 예상을 한참 벗어난 몬스터의 속도였다.

거대한 손톱이 베어 왔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손톱이 닿지 않게 최대한 몸을 비틀었다.

거대 고블린의 손톱 끝이 젖혀진 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쉣!”

팔이 걸릴 거 같았다.

인지는 하지만 육체가 따라주지 못했다.

-치익!

전투 슈트의 실드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오른팔에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예전 같았으면 피했을 공격을 맞자 둔해진 몸이 체감이 됐다.

간신히 괴물의 돌격을 피해 굴렀다.

[슈트 오른팔 손상.]

[오른팔 마력 실드 소실.]

[슈트 에너지 잔량 33퍼센트.]

수니의 경고음이 들렸다.

슈트 팔 부위가 찢겨 있었고 슬쩍 보니 벌겋게 멍이 들어있었다.

‘시불…. 긁힌 게 아니라 날아갔군.’

부상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전투슈트가 없었다면 팔이 날아갔을 거다.

전투슈트의 마력 잔량이 33퍼센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30퍼센트의 슈트 에너지가 뭉텅이로 빠져나가 있었다.

‘한방에 이 정도라고?’

‘F급인데?’

전투 슈트는 마력을 이용한 실드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F급 몬스터의 공격력은 전투 슈트의 마력이 다 닳기 전엔 전투 슈트의 실드를 뚫지 못한다.

애초에 실드의 10퍼센트도 깎지 못하는 게 F급 몬스터의 공격력이었다.

그런 면에서 실드를 뚫고 슈트를 찢어버린 이 거대 고블린의 공격력은 정상이 아니었다.

최소 D급 이상의 공격력이었다.

하지만 쇠뇌의 볼트가 박히는 걸 보면 F급이 맞았다.

D급이었으면 애초에 볼트가 박히지도 않았을 테니까.

거대 고블린의 공격력은 살인적이었다.

‘한 대만 더 맞으면 골로 가겠군.’

반응속도를 더 높여야 했다.

집중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사고를 가속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익숙한 두통이 느껴졌다.

달려드는 괴물이 보였다.

날카로운 손톱이 베어 왔다.

미리 경로를 예측하고 반응속도를 올려 회피했다.

그것만으로도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아슬아슬하게 피하고는 정글도를 옆구리에 찔러넣었다.

검붉은 피가 튀었다.

그와 동시에 창이 있는 곳까지 빠르게 굴러 창을 집어 들었다.

거대 고블린은 좀처럼 잡히지 않는 나에게 화가 많이 나 보였다.

손에 있는 창의 손잡이 끝을 잡고는 온 힘을 다해 던졌다.

-휘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괴물의 배에 박혔다.

-케엑!

창에 실린 힘에 괴물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단검도 뽑아 던졌다.

-퍽.

단검은 왼쪽 가슴에 박혔다.

그런데도 거대 고블린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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