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아저씨의 로그인 생활-3화 (3/259)

헬멧의 바이저를 내렸다.

바이저의 반투명한 디스플레이에 전투 슈트 상태 정보 인터페이스가 떠오른다.

“수니.”

[네. 주인님]

차분하고 지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니는 전투 슈트에 기본 내장된 음성인식 인공지능이다.

“내비게이션.”

[내비게이션을 실행합니다.]

디스플레이 오른쪽 위 구석에 작은 미니맵과 각 채집 포인트를 잇는 루트가 표시됐다.

그와 동시에 투명한 작은 화살표가 전면에 떠올라 갈 방향을 표시했다.

태블릿을 백 팩에 넣고 정글도와 쇠뇌를 꺼내 바로 쏠 수 있게 볼트를 장전했다.

쇠뇌는 컴파운드 보우식 쇠뇌로 장전은 느리지만 뼈조차 부수는 파괴력이 보장되는 쇠뇌였다.

F급 몬스터는 볼트를 머리와 심장 같은 급소에 맞는다면 한 방에 죽는다고 보면 된다.

쇠뇌를 왼쪽 어깨에 걸고 오른손으로는 정글도를 들었다.

“후….”

가볍게 심호흡하고는 눈앞 디스플레이에 보이는 화살표를 따라 밀림으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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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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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자든 아니든 게이트 안에서는 웬만해서는 혼자 행동하지 않는다.

장기공략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당일치기라도 최소 2인 파티를 한다.

처음엔 나도 파티를 이루고 파밍을 하고 다녔다.

그러다 통수를 맞았다.

요즘에야 덜하다고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배신과 뒤치기는 흔한 일이었고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다.

놈들도 내가 아니었다면 성공했을 거다.

하지만 내가 반쪽짜리지만 각성상태라는 것을 몰랐고 반쪽짜리라도 없는 놈들보다는 월등했다.

당연히 그들은 게이트 몬스터의 훌륭한 자양분이 되었다.

그 후로도 빈번히 통수를 맞았다.

각성 헌터들의 밑을 닦아 주던 서포터 생활할 때는 몰랐던 무각성 헌터의 세계는 말 그대로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정부는 사방에 있는 게이트 처리만으로도 손이 모자랐고 바깥도 아닌 게이트 안쪽의 일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게이트와 차원 균열로 인해 세상이 망할 것 같은 세기말 분위기도 한몫했다.

멀쩡한 인간이 없었다.

멀쩡한 인간은 그들끼리 똘똘 뭉쳐있었고 외부인을 받지 않았다.

나중에 심마니협회라는 게 생겨 좀 나아지긴 했지만 그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처음이야 그렇다 치지만 온갖 통수와 뒤치기를 당하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면 몇 번을 죽어도 모자랐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파티를 만들까 싶었지만, 자신의 그릇을 잘 알고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관리할 자신이 없었다.

그동안 모아온 자금을 모조리 털어 전투 슈트를 샀다.

후방에서 활동하는 인간에게 전투 슈트는 말도 안 되는 사치다.

당시 마공학과 현대과학의 결정체로서 상당한 가격이었고 각성 헌터들의 전유물이었다.

마석으로 충전되는 전투 슈트는 유지비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안정성을 생각한다면 이것만 한 게 없었다.

심마니 일이 전투 슈트를 영끌해 살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

당시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돈보다는 각성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서포터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당시 노예나 마찬가지였었던 서포터는 다시 하기 싫었다.

보통은 그런 거금이 있으면 은퇴하는 게 정석이었지만 그 당시에 나는 그런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열정이 넘치던 시기였다.

전투 슈트는 만족스러운 성능을 보여주었다.

혼자 하는 불안함은커녕 편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특히 정신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

다른 파티의 뒤치기조차 전투 슈트의 존재 자체로 사라지자 파티에 관한 생각은 머릿속에서 깨끗이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서포터 생활 5년과 무각성 헌터 생활 9년을 거치며 게이트를 배회하는 고이다 못해 썩어 문드러진 망자가 되었다.

물론 고인 물이니 괜찮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나이가 들수록 각성 같은 건 진작에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아 떠나는 게 정상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인제 와서는 각성보다는 생활비를 벌기 위한 생계 수단에 가까웠다.

오랜 무각성 헌터 생활을 해서 내 집 마련도 했지만, 평생을 편하게 살만한 돈을 모아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이 일보다 편할 거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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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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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에 들어서자 가벼운 긴장감을 느꼈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었다.

얼마 만이지 한 달이 됐나 안됐나 잘 모르겠다.

“몬스터 감지 활성화.”

[몬스터 감지를 활성화합니다.]

[현재 반경 50미터 주변에 몬스터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몬스터 감지 장치.

수많은 무각성 헌터들을 양성시킨 희대의 발명품이다.

내 것은 전투 슈트 안에 내장되어있었지만, 무각성 헌터들은 보통 태블릿 형태의 감지기를 들고 다닌다.

몬스터의 등급도 어느 정도 판별할 수 있어 헌터들에게는 필수품이었다.

F급 몬스터는 무기만 있다면 평범한 성인 남성이라도 잡기 어렵지 않다.

그래서 부담스러운 가격에 체계가 잡힌 파티가 아니면 감지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무각성 헌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기습적으로 코앞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는 F급이라도 무각성 헌터에게는 재앙이다.

한마디로 접근하는 몬스터를 미리 파악만 할 수가 있다면 죽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다는 거다.

코어가 공략당한 이런 후방에 있는 몬스터라고 해봐야 거의 전방에서 새는 소수의 F급이 대부분이고 몬스터가 어디 있는지 미리 파악만 할 수가 있다면 죽을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물론 이것도 몬스터가 거의 없는 이런 후방에서나 할 수 있는 짓이지 전방에서는 어림도 없는 짓이다.

바이저에 반투명하게 떠 있는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첫 번째 포인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삼십 분쯤 걸었을까.

조금 심심해 질 때쯤 수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몬스터 감지.]

[5시 방향 42미터.]

[F급 몬스터 생체반응 둘.]

“둘?”

[네. 두 개의 생체반응이 감지됩니다.]

밀림으로 들어서자마자 얼마 안 돼서 한번 만나기도 힘든 몬스터를 두 마리나 발견하다니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미니맵 확대.”

구석에 있던 미니맵이 반투명하게 눈 앞에 펼쳐진다.

2마리의 몬스터는 한 지점에서 움직임이 없었다.

내가 향하는 루트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지역이었지만 저런 위험한 변수를 놔두고 가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여기서 철수할 생각이 아니라면 실속은 없지만 잡아야 했다.

F급 몬스터다 겁먹을 이유가 없었다.

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천천히 접근했다.

몬스터는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미리 파악한 F급 몬스터는 위협이 아니다.

선제공격이 가능하다면 F급 몬스터는 사냥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수풀에 은폐한 상태로 조심스레 몬스터를 살펴봤다.

고블린이었다.

하지만 판타지 영화에서나 나오던 그런 고블린은 아니다.

정식 명칭이 침식체 어쩌고였다.

비슷한 생김새에 헌터들 사이에서 편하게 그렇게 불릴 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흉물스러운 괴물이었다.

반들반들한 대머리와 뾰족한 귀.

구부정한 허리와 어린아이와 같은 작은 덩치.

벌거벗은 매끈한 검은 피부 위에 튀어나와 있는 꿈틀거리는 검붉은 혈관들.

덩치에 맞지 않는 날카롭고 길게 뻗은 위협적인 커다란 네 개의 손톱.

꼴에 인간형이라고 밀림에 숨어 기습할 줄 아는 나름 지능도 가지고 있어 무각성 헌터들이 몬스터 감지기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이유 중 하나기도 했다.

반대로 말하면 기습이 아니라면 그다지 무서운 몬스터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두 마리의 고블린은 귀밑까지 찢어진 입을 벌려 날카로운 이빨로 무언가를 뜯어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람시체인듯했다.

쇠뇌를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조준경의 빨간 점이 왼쪽에 있는 고블린의 머리를 조준했다.

-퉁.

“켁.”

고블린은 쇠뇌의 볼트에 관자놀이를 꿰뚫렸고 그대로 쓰러졌다.

즉사였다.

거리도 가까웠고 못 맞추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남은 고블린 한 마리가 자기 앞에 쓰러진 고블린을 보고 어리둥절한 듯하더니 소리를 지른다.

“끼! 끼엑!”

그것을 주시하며 빠르게 쇠뇌의 크랭크를 돌려 재장전했다.

두리번거리던 고블린은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 빨갛게 물든 톱날처럼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미 재장전을 마친 쇠뇌의 조준경은 고블린을 향해 있었다.

달려드는 고블린의 머리보다는 맞추기 쉬운 몸통 쪽을 겨냥했다.

-퉁.

-퍼억.

빠르게 날아간 볼트가 어깨에 박혔다.

고블린이 볼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달려들다 뒤로 튕겨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바닥을 구른 고블린은 이내 일어나더니 상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언제봐도 역시 미친놈들이었다.

“끼에엑!”

더 이상 쇠뇌의 재장전 시간은 없었다.

무각성이라도 헌터짬이 있다.

익숙한 상황이었다.

빠르게 허벅지에 있는 나이프를 뽑아 집어 던지고는 정글도를 들고 근접전 준비를 했다.

-퍽.

날아간 나이프가 운좋게 고블린의 이마에 박혔다.

기대하지 않은 행운이었다.

칼을 쓸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나이프가 이마에 박힌 고블린의 눈동자에 생기가 사라지고 이내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꼬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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