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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259화 (259/260)

“읏……”

의외로 아침에 약한 편이었으나, 라우라는 꾸역꾸역 몸을 일으켰다.

질척.

그러자 상쾌하다기 보다는, 자는 동안 흘러내린 정액으로 인해 축축해진 이불보가 묘한 불쾌감을 선사해온다.

자신과 몸을 섞었던 페르젠은 보이지 않았지만, 라우라는 딱히 실망하지 않았다.

출산을 앞두고 있는 유페미아에게 온신경을 쏟고 있는 페르젠이 이른 새벽부터 그녀를 보살펴주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오히려 만월이 아닌데도 자신을 안아주는 페르젠 덕에 라우라는 정말로 그의 여자가 되었다는 현실을 실감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대충 널브러진 옷을 주워입고 욕실로 향한 라우라는 목욕을 한 뒤, 시녀들에게 머리를 손질 받고서 활동하기 편한 차림으로 갈아 입었다.

벌써부터 나가기 싫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우지만,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는 별채 밑.

거기서 준비 운동을 하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유리엘이 두 눈에 들어오자 라우라는 어쩔 수 없이 걸음을 옮겼다.

“아, 안녕…… 하, 하세요……”

“어서오렴. 이제는 익숙할 테니 가도록 할까.”

“네……”

짧은 인사 뒤, 느린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는 유리엘을 따라 라우라는 그녀의 뒤에 달라 붙었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 페르젠과 약조했던대로.

그의 첩이 되기 위해 유리엘과 유페미아 앞에 홀로 나선 라우라였으나……

다행히도 유페미아는 리지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불임이라는 말을 들어서인지 별다른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묘하게 짜증이 나고 불쾌했던 동정어린 시선을 생각하자면,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하지만 유리엘만큼은 전쟁터에서 쌓은 유대감이 이리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시돋힌 경계를 취해왔다.

‘하기야……’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 입장에서는 두번째 보급을 하러 간 과정에서 자신이 몸을 섞은 사내가 누구인지, 이제는 알고 있을 테니까.

따르던 제자가.

믿었던 부관이.

뒤에서 남몰래 자신의 남편과 섹스를, 그것도 추정하건데 한 두번이 아니라면 괘씸하다고 느끼는 게 당연하리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쟁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체력이 늘었던터라 이 괴롭힘 아닌 괴롭힘으로부터 라우라는 그럭저럭 버텨낼만 했다.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다른 것에 비해 육체가 힘든 아침구보 정도는 약과라 하는 게 옳겠지.

“오늘은 벨라치에 귀부인이 살롱을 연다고 하여 그곳에 갈 생각이란다.”

“네, 네……”

살롱.

유행의 출발지는 자신들 로젠베르크였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미술품이나, 고가의 예술품들을 지인들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전람회.

다만, 시간이 흐르는 과정에서 살롱은 구색만을 그렇게 띄고 본질은 사실상 훨씬 더 규모가 큰 사교모임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래, 그런 사교적 교류에 유리엘은 자신을 대동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화와 예술의 성지, 로젠베르크 가문의 외동딸.

전쟁영웅, 루에르그 백작의 첩.

겉으로 보이는 자격은 충분하다 못해 넘쳐흐르겠으나, 라우라는 그러한 사교모임을 극도로 싫어했다.

왜냐하면 자신은 말더듬이었으니까.

그리고 자신이 사교모임을 싫어하는 이유가, 곧 유리엘 입장에서는 자신을 대동하고자 이유일 터.

그곳에서 자신의 자존감을 처절히 박살내고, 말을 더듬는 탓에 교류를 어려워하는 자신을 보살펴주며 우위에 서있다는 자각을 뇌리에 심어주려는……

이 얼마나 암컷다운 서열정리 방식인건지.

한 두번 정도라면 견제의 의미에서 그치겠으나, 유리엘 본인의 생활 패턴에 자신을 완전히 종속시킴으로써 그녀는 철저하게 군림하려 들었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그녀가 회임을 하였기에 강도가 줄어든 압박이리라.

그래서인지 라우라는 내심 리지가 부럽기도 했다.

그녀는 독립적인, 서열 외의 입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를 당하는 것도 아닌.

기왕이면 유리엘의 대항마가 되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싫어도 알프레드의 핏줄이기는 한 건지, 리지에게 기세가 잡아 먹히지 않은 유리엘은 여전히 독보적인 위치를 자랑했다.

“하아…… 하아……”

그렇게 아침구보가 끝이나자, 라우라는 턱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스윽 닦고서 차오르는 숨을 조심스레 골랐다.

“보기보다 땀을 많이 흘렸구나.”

“괘, 괜찮……”

“가자. 땀냄새를 풍기며 살롱에 갈수는 없으니 씻어야 하지 않겠니.”

더 이상의 말은 듣지도 않겠다며, 곧바로 등을 돌리는 유리엘이 별채 안으로 들어가자 라우라는 짙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같이 씻는 것 자체가 싫은 건 아니었다.

다만, 어제는 페르젠과 몸을 섞었기에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을 텐데.

그것을 보는 유리엘이 태연한 반응만을 보여줄지.

애초에 그것을 노리고 이 상황을 조성한 유리엘이지 않겠나.

꼴깍.

괜스레 갈증이 일어나 라우라는 입안에 고인 타액을 목구멍 뒤로 집어 삼켰다.

* * * * *

“뭐하니.”

“아……”

“옷을 벗는 것까지 내 손을 거쳐야 하는 것일까.”

“아, 아니요……”

고개를 저으며 유리엘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라우라는 이내 한꺼풀 한꺼풀 옷을 벗어내리며, 페르젠의 흔적이 선명히 담겨있는 나신을 드러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부끄러운 건, 입고 있는 팬티를 벗어내리는 과정에서 흘러내린 그의 정액이 걸쭉하게 늘어지는 광경이었다.

한 번 목욕을 했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안에 자리를 잡고 있던 그의 정액이 이리도 많았는지.

땀냄새와 뒤엉킨 탓에 퍼져나가는 수컷의 냄새가 선명히 느껴진다.

그러자 눈살을 미미하게 찌푸리며 품평이라도 하듯 자신을 훑는, 유리엘의 흑요석 같은 검은 눈동자.

“그이가 생각보다 너를 거칠게 다뤘나보네.”

움찔!

아담한 가슴 한가운데를 기점으로 쭈욱 내려가는 유리엘의 검지가 적나라한 키스마크를 더듬거리더니 자신의 배꼽 근처에서 멈추어선다.

이미 그의 아이를 품고 있는 주제에.

피임약을 먹어 착상도 되지 않을 자신의 자궁을 견제하는 것일까.

스윽.

“흣!”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의도인지도 모르게끔, 한층더 밑으로 내려가는 유리엘의 검지가 그의 정액을 흘리고 있는 자신의 음부를 가볍게 훑자 라우라는 야릇한 신음을 토해내며 두 다리를 반사적으로 오므렸다.

찔꺽.

그리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의 정액이 묻은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는 유리엘.

“들어갈까.”

그 침묵 끝에 나오는 한마디, 거기에 뒤섞인 웃음은 도대체 무엇이련지.

“네……”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은 압박감에 라우라는 잔뜩 기죽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유리엘을 따랐다.

첨벙.

‘흐읏……’

그래도 모락모락, 김이 솟아오르는 넓은 욕조 안.

따스한 물들이 자신의 몸을 감싸안자 라우라는 조금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 여유를 즐길새도 없이, 대뜸 향유를 가져오는 유리엘이 자신의 뒤로 자리를 잡고 머리를 감겨주자 다시금 불편함이 치솟아오른다.

혼자 할 수도 있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될 것 같아 라우라는 얌전히 유리엘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정신적으로는 결코 편하지 않았으나, 등에 맞닿는 그녀의 품은 엄청난 괴리감이 느껴질만큼 포근하다.

옷위로 볼때는 몰랐는데.

피부 위로 촉감을 느껴보니, 저 무식한 살덩이는 더더욱 커진 것 같았다.

이대로 편하게 등을 기댄다면 더할 나위 없는 목베개가 아닐지.

촤악──!

이윽고 일어난 거품까지 유리엘이 깔끔히 씻겨주자, 라우라는 자신의 눈가를 덮은 물기를 두 손으로 스윽 닦아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런 겉치레는 굳이 하지 않아도 돼.”

참, 누가 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네, 네……”

그래도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린 라우라는 유리엘로부터 떨어지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겨드랑이 사이로 두 손을 넣는 그녀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더니 욕조에 걸터앉자, 라우라는 반강제적으로 그녀의 무릎 위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멀리서 보고 있으면 정말 사이가 좋은 언니와 여동생 같았으나, 정작 당사자인 라우라는 숨이 턱 하니 막혀왔다.

“라우라.”

“네……”

“나는 말이야. 거짓말이 정말 싫단다.”

“……”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네가 불임이라는 핑계로 그이의 동정심을 유발했을까봐…… 나는 그게 참으로 거슬려.”

“저, 저는 정말……”

“그래. 네가 정말 불임일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 사실을 왜 지금까지 숨겨왔을까.

“하나뿐인 외동딸이 불임이라면, 로젠베르크는 자식을 더 낳아야만 했을 텐데.”

“그, 그건……”

“그래. 나도 들었어. 네 어머니가 회임을 하셨다는 건.”

하지만.

“공백기가 참으로 길다고 느껴지네.”

아무리 임신이라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지만, 이쯤 되면 원래는 둘째에 대한 계획이 없었던 게 아닐까.

“물론, 나는 너를 믿어줄거야.”

그래도.

“혹여나, 그이의 아이를 품기만 한다면 모든 걸 얼버무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거짓말을 한 게 아니길 바라.”

나근나근한 목소리로 귓가에 울려 퍼지는 유리엘의 속삭임.

정말, 그럴 의도는 없었더라도.

불임에 대한 사실은 명확한 거짓말이었기에, 라우라는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욕실이라 들키지 않은 건 불행 중 다행이겠지.

“자. 그러면 제대로 씻어야겠지.”

“네……?”

내비추는 의아함을 뒤로하고, 무릎 위에 앉힌 자신의 두 다리를 좌우로 벌리는 유리엘이 밑으로 손을 내려 고간 근처를 쓰다듬더니……

찔뿍!

“히끅!”

수줍게 다물려 있는 자신의 음부를 열어 젖히며, 검지와 중지를 깊숙히 밀어 넣은 채 질주름 하나하나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정액을 긁어내린다.

“앗……! 아…… 앙!”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허리를 들썩이는 라우라가 유리엘을 올려다보며 그녀의 팔을 붙잡으려 했으나, 시리도록 차가운──그 무표정을 보고 있으니 자연스레 굴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뒤따라 두 손을 모으고 말았다.

그렇게 한 번 굴복을 하고 나니, 이것으로 자신이 불손한 의도가 없었다는 게 증명이 된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럼에도 정말 이것이 맞나 싶은 혼란스러움이 수시로 피어오르나……

움찔!

차마 반항한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 없었던 라우라는, 그녀의 손가락이 자신의 질 안에 들어찬 페르젠의 정액을 모조리 약탈해나가는 광경을 얌전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에게 채웠던 목줄이 풀리기 무섭게.

다시금 자신에게 목줄을 채우는 유리엘.

그것을 보고 있자하니, 오직 그만을 위해 길러지고 키워진 여인이라는 게 거짓은 아닌 듯 하다.

브뤼테인 가문의 자그마한 별채.

이곳에는 페르젠이라는 왕이 있었고.

그 곁에는 유리엘이라는 왕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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