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일수도 없는.
그렇다고 벗어 날 수도 없는 독방에 틀어 박힌 듯한 감각을 느끼며, 페르젠이라는 증오스러운 사내의 삶을 관조하던 리지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서진이라는 인간의 기억은 제외 되어 있었기에, 드문드문 그의 행동이 제시하는 동기가 이해 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아니, 사실 그것을 자신이 이해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무력감, 좌절, 절망으로 얼룩진 삶의 발단.
처절함, 긴박함, 여유가 없는 쫓김으로 얼룩진 삶의 전개.
그리고 체념, 순응으로 마무리 되는 삶의 결말.
이 모든 것을, 왜 자신이 “이해” 해줘야 한단 말인가.
애당초 이해 할 수 있는 것도 직접적으로 파고드는 기억을 통해, 그 순간 그가 느꼈던 감정들 또한 떠밀려오기 때문이리라.
그 중에서도 가장 역겨운 건……
유리엘.
라우라.
유페미아.
제레미아.
레이몬드.
엘리자베스 등.
그들과의 인연을 통해 그가 스스로의 행복을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렇기에 리지는 페르젠이 넘겨준 카르마를 통해 그 감정들을 모조리 지워 버렸다.
카르마를 다루는데 있어서 어색함은 있을지라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는 자연스레 자각이 되었기에 실수는 없었다.
그러자 자연스레 그 공백을, 순수한 분노와 증오가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공감 받을 수도 없는.
남들에게 말할 수도 없는 속사정이 어쨌단 말인지.
삶이 무너지고.
가문이 사라지고.
가족이 떠나버린.
그 비극으로 점칠된 자신의 삶을 한쪽에 달고, 그의 속사정을 다른 한쪽에 얹혀도.
해당 저울은 선명한 비대칭을 선보이며 기울어질 뿐이다.
인연을 쌓아 깨달은 행복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주제에, 그는 그것을 자신에게서 앗아갔고.
자의와 상관없는 불합리함을 넘겨 받은 주제에, 그는 그것을 자신에게 똑같이 베풀었다.
……애초에 그 모든것을 알면서도, 매번의 선택의 기로에서 악업을 고집한 게 아닌가.
그것을 최선으로 여겼다면, 적어도 끝까지 그 역겨움을 유지했으면 좋았을텐데.
이러한 어쭙잖은 속죄의 형태를 취하고자 하는 그가 리지는 구역질이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으득!
때문에 널브러진 몸을 천천히 일으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비틀비틀 다가가 손을 들어 올린 뒤……
짜악!
그 뺨을 거세게 후려 갈긴다.
카르마를 소모하여 인과율을 비트는 것은 가능해도.
카르마를 발산하여 그에게 물리적인 타격──보유하고 있는 카르마를 갉아 먹는 행위는 불가능했기에 리지는 분통이 치밀었다.
아니, 발산하는 건 가능했지만.
그것은 고작 한뼘 정도의 카르마.
때문에 그것을 전부 발산하는데 걸리는 시간보다, 이 카르마를 버티지 못하고 자신의 혼이 붕괴되는 시간이 더욱 빠르리라.
“끝까지 역겨운 새끼.”
“……”
“그 주둥이에 속죄라는 단어를 담지 마. 이 또한 찝찝하고 불편한 마음이 편해지고자 하는 짓거리에 지나지 않잖아? 자신에게 최악이 될 수 있는 건 모조리 틀어 막아 놓고, 나보고 당신의 천칭이 되어 보라고?”
고개가 돌아간 페르젠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붙잡아 자신을 마주보게 만든 리지는 입술을 거칠게 짓씹었다.
혼에 불과했기에 피가 나오지는 않았으나,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이 얼마나 지독한 한(恨)을 품고 있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능하다.
“옭아매던 불합리함을 전부 걷어 낸 채, 이승으로 복귀하는 당신이 행복한 삶을 보내는 건 내가 두 눈을 뜨고 바라 볼수가 없어.”
“……”
“당신을 소멸시키거나, 그 행위 자체를 가로 막지는 못하더라도…… 그래. 유페미아라는 여인이 품고 있는 자식으로 내가 환생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
그것도 아니라면.
“유리엘 언니…… 아니, 언니라고 부르는 것도 웃기겠지. 유리엘이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건 어떨까.”
또.
“로젠베르크의 영애가 더 이상 당신의 손으로 관리조차 될 수 없게끔, 그 경지를 강제로 끌어 올린다면?”
“……”
“당신이 그토록 아끼는 유일한 혈연인 제레미아 후작의 아내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 그를 내 치마폭에 감싸안고 브뤼테인을 부패 시킨 뒤 황실도 함께 몰락시키는 거야. 그래, 이게 제일 좋아 보이는데. 당신 생각은 어떠한지 들어보고 싶네.”
가까이 얼굴을 들이미는 리지가 진득한 원한을 담아 낮은 목소리로 읊조린다.
“어디 한 번 그 잘난 입으로 말해봐.”
“……”
“말해 보라고──!”
짜악!
“말해!”
짜악!
“말해에──!”
침묵을 유지하는 페르젠이 답답했던 건지 수차례 뺨을 후려 갈기는 리지가 그에게 대답을 종용한다.
그에 페르젠은 자신의 멱살을 붙잡은 채 고개를 숙이고는 울분을 이기지 못해 전신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리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 기억들을 관조했다면, 그에 대한 해답은 이미 너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자신이 쌓아온 인연들에게 리지는 해를 가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복수라기 보다는, 이곳에서 인간의 혼이라는 본질적인 한계에 부딪쳐 자신을 소멸시킬 수 없음에 내지르는 화풀이일테니.
그리고 그토록 증오하던,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악업을 고집했던 페르젠이라는 인간의 삶의 방식을 그녀가 온전히 답습하는 것이 가능할까.
가족이 떠나가고.
가문이 무너지고.
인생이 망가진, 그 처절한 불합리함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묻고.
그로인해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이라는 인간과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라는 인간이 동등해진다면.
……그 시점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더 이상의 대가를 물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페르젠 입장에서는 리지의 그 방식이 가장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리지 입장에서는 그 대가를 페르젠 본인이 받지 않고, 다른 이들이 받는다는 점에서 용납할 수가 없으리라.
“내가…… 하지 못할 것 같아……?”
“네가 정말로 그러겠다면, 여기서 나는 무릎을 꿇고 네게 빌어야겠지.”
리지가 넘겨 받은 카르마를 그런 식으로 소모한다고 했을 때, 충분히 페르젠 입장에서 무마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소모되는 카르마의 양은 적지 않을 터기에, 자연스레 명계에서의 입지가 줄어드리라.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처박아 놓았어도, 명확하게 자신이 약해졌다라는 걸 깨닫는 순간 괴이들은 자신의 카르마 소모를 유도하며 기어오르려 할 터.
그 끝이 어떠한지는, 이름이 잊혀진 이전 명계의 주인이 절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던가.
사실 굳이 따지자면 그것은 부차적인 이유다.
아니 부차적이라 하기에도 어폐가 있겠지.
명계에서의 입지가 약해진다는 건, 차후 오랜 시간이 흐르게 되었을 때.
죽음을 맞이한 유리엘과 유페미아의 혼을 만신전에 붙들어 둘 수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했으니.
‘……’
그리고 재차 자신의 목적과 결의를 확인했을 때, 페르젠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승에서의 인연을 명계에서까지 이어 나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신기했기에.
심지어 그 목적을 이룬다고 한들, 앞날이 순탄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시간의 흐름에 구애 받지 않게 된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하다는 건 아니었으니.
이름이 잊혀진 그의 말대로, 영원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닿을 수 없는──오직 꿈꾸는 것만이 허락된 이상향.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젠은 감히 그것을 손에 넣어보고자 했다.
필멸을 불멸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분명 한없이 불멸에 가까운 필멸 정도는 그려 낼 수가 있을 테니.
“그러면 어디 한 번 꿇어봐.”
이윽고 고개를 치켜드는 리지가 자신을 향해 그렇게 말하자, 페르젠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자신의 몸을 숙였다.
명계 전역을 아우르는, 이곳의 법도이자 모든 괴이들의 통치자──베르트엠 엘퀴아 에뤼에.
그가 세계의 순리를 이루는 부품에 불과한, 한낱 인간의 영혼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페르젠은 분명 리지가 다른 사람들에게 불합리함을 떠넘기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했지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한, 지금 이 순간 명백한 을(乙)은 그였다.
“이게 전부야? 처절할 정도로 애걸하는 것이 어떠 한지는 내가, 내 가족들이! 그 날──! 당신에게 절실히 보여줬잖아……?”
실소를 내뱉으며 표정을 일그러트리는 리지가 페르젠을 향해 더한 굴욕을 보이라며 강요한다.
그에 페르젠은 기꺼이 자신의 머리 또한 그녀의 발밑으로 숙였다.
“하…… 아하하……!”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리지는 페르젠의 머리를 자신의 발로 자근자근 짓밟으며 짐승처럼 울부 짖었다.
“이렇게 쉬운데…… 이렇게 할 수가 있는데에──!”
이걸 왜 도대체, 그날 그 순간이 아니라.
지금 와서야 하는 것인지.
그 날 그 순간에 그러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을 텐데.
여기서 더더욱 그녀의 울분을 돋게 만드는 건, 페르젠의 이러한 행동 동기가 어떠한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의 생각대로 리지는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없었다.
불합리함의 대가를 페르젠이 받지 않는다는 것부터가 당연히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고.
고작 그러한 화풀이의 결과로, 자신과 그가 똑같아 진다는 것이 너무나도 역겨웠기 때문이다.
아니, 역겨운 걸 떠나서 너무나도 억울했다.
가해자는 분명 그인데.
자신이 느낀 아픔을 고스란히 돌려주기 위해서는, 어째서 피해자인 자신이 그와 똑같아 져야 한단 말인가?
어째서 피해자인 자신이 악업을 짊어져야 한단 말인가?
“아아아아악!”
처절한 약자의 비명을 지르며 두 손을 뻗은 리지는 페르젠의 머리를 내려치고, 그의 머리카락을 쥐어 뜯으며 억눌린 감정을 쏟아냈다.
자신이 느낀 좌절, 절망, 고통의 모든 것을 페르젠이 고스란히 돌려 받길 원하면서도.
그걸 위해 자신의 손은 더럽히지 않고, 끝까지 피해자로 남길 원하는.
……이것이 과연 그릇된 바람일까.
아니, 분명 그러지 않았기에 인간들은 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죄를 처벌하는 것이리라.
치안의 유지.
국가가 백성에게 바라는 인간의 이상향.
「 법 」 이라는 것에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겠지만, 결국 리지는 그것이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똑같이 가해자가 되는──그 불합리함을 없애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승에서의 법과 명계에서의 질서도, 감히 그를 처벌할 수 없었고.
그렇게 끝까지 자신을 옭아매는 지독한 불함리함 속에서, 그녀에게 남은 건 비틀린 천칭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