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력에 의심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형체를 가질 수 없는 뇌전 다발을 성질 변환 시켜 고체로 응집해낸 선형궤도 자체가 반동으로 박살이 났으니까.
당연히 그 즉시, 모든 마력을 소모한 페르젠이기에 이사벨은 실풀린 인형처럼 주저 앉았다.
그리고 페르젠은 밀려드는 마력 탈진 현상을 느끼며 수차례 헛구역질을 하고는, 이사벨을 회수한 뒤 간신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흑마법사가, 심지어 주력으로 삼는 시신이 원소 마법사인데.
마법과 마법을 통해 순수한 자연 현상을 일으켜 허를 찌르는 것이 아닌, 이러한 물리적 타격을 선보일 것이라 예상이나 했을까.
그것도 극의에 오른 오러 나이트를 대상으로.
“쿨럭……!”
아니나 다를까, 그의 시야가 닿는 저편.
전투를 벌인 이내 처음으로, 그레모리는 무릎을 바닥에 꿇고 있었다.
전위차를 통한 전자기력으로 가속된 금속 탄자의 속도는 음속의 몇십배.
때문에 그녀가 할 수 있었던 반응이란 고작 남아 있는 한쪽팔을 앞으로 내밀어 손바닥을 피는 것이 전부였다.
당연히 마력을 끌어 모아 덮어 씌웠어도, 가속된 금속 탄자 자체는 그저 광물에 지나지 않았기에 하등 의미가 없는 행위.
직격한 금속 탄자는 그녀의 피부를 녹인 뒤 찢어발기고, 수근골을 분쇄한 뒤 직선으로 파고들어 상완골을 조각내버렸다.
그래도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신체라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직격한 금속 탄자는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으나.
오히려 그탓에 반발력을 통해 튕겨져 나간 탄자는 그레모리의 비장을 꿰뚫었다.
그 각도가 조금만 위로 도달했어도, 비장이 아닌 그녀의 심장이 터졌으리라.
적출 수술을 감행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인간의 장기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수술 절차를 밟았을 때의 이야기다.
특히, 손상을 입었을 때 출혈이 심각한 장기였기에 그레모리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혈액의 양은 가공할 지경.
당장이라도 그녀를 옮겨 출혈부터 잡아야했지만, 그레모리는 시원하게 뚫린 자신의 몸뚱이를 보며 오히려 웃을 뿐이었다.
남아 있던 팔조차 더이상 쓰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건 확실히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이 전쟁이 끝나게 되면 더이상 검을 붙잡을 일은 없겠지.
내부에서 반기라도 드는 자들이 나오지 않는 이상에야, 재미없고 지루한 일상들이 이어질 것이다.
“폐, 폐하!”
말머리를 돌려 다가오는 가신들의 안색이 새파랗다.
지금 자신이 죽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기 때문일까.
“다, 당장 후방으로 가셔서 수술을……!”
고막을 터트린지 오래이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는 없었으나.
입모양으로 내용을 유추한 그레모리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몸뚱이이기에 열악한 상황 속에서 수술을 진행해도 감염의 걱정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상태로 오랜 시간 방치했을 때 이어지는 과다 출혈이 그녀의 몸을 좀먹겠지.
하지만 품고 있는 확신은 작금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그녀에게 속삭인다.
상성상 유리한 괴이가 강림해있고.
지금처럼 자신이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페르젠이 추가적으로 명계의 문을 열어, 승기를 이어 가지 못하는 건 틀림없이 보유하고 있는 재화가 바닥 났기 때문일 터.
그렇기에 그레모리는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 ■■. 」
그러자 자신의 뇌리에 알 수 없는 언어로 명령을 내리는 괴이의 속삭임이 몇차례 울려 퍼진다.
신체가 망가질수록 마력의 양이 폭등하는 것이 아닌.
보유하고 있는 마력을 훨씬더 세밀하고 촘촘히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이기에.
방어를 이어 나가던 그레모리는 도중에 전신에 두른 마력을 일제히 거두어들였다.
마력을 아끼기 위함도 있었지만, 이 목소리에 대처를 하지 못했던 병사들이 주로 어떤 최후를 맞이 했는지 보았기에 배짱을 부려 본것이기도 하다.
두팔이 없는 자신에게 스스로 배를 가르고 심장을 꺼내도록 할 수 있기는 하련지.
특히나 곧 녹아 없어지기 직전의 형체를 하고 있는 괴이였던터라, 일부러 도발을 해본 점도 적지 않았다.
이윽고 의지를 벗어나 움직이는 몸은 의족이 아닌 다리를 굽히게 만들고.
상체를 뒤로 젖혀, 그 무릎에 얼굴을 때려 박게 만든다.
퍼억──!
“큿!”
오러 나이트의 신체는 견고한 갑옷이기도 했지만, 이런 식의 자해는 동시에 날카로운 칼날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그 충격이 적지 않았기에 그레모리는 아주 잠깐, 일시적인 기절을 했다.
다행히도 의식의 소실은 곧바로 회복을 했으나……
퍼억!
되풀이 되는 자해에 초점이 흐릿해지며, 상이 맺히는 모든 것들이 나뉘어 보이는 복시 현상이 일어난다.
속이 메스껍고, 구토감까지 치미는 것을 보아하면 명백한 뇌진탕.
주륵.
나아가 이마 부근이 찢어져 그녀의 얼굴에 선홍색 핏물이 젖어들고, 안와골절을 통한 결막에 출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크, 흐…… 아하하하!”
하지만 무릎뼈와 함께 두개골이 박살나는 것보다, 강림한 괴이가 명계 너머로 강제 송환되는 것이 먼저였다.
지금까지 수차례 이 능력을 발휘해왔으니, 드디어 임계점에 도달한 것.
그리고 그 괴물 같은 그레모리의 모습을 보며 레이몬드 황자 근처에 있던 수뇌부들은 다급한 음색으로 그를 불렀다.
“폐하……!”
“우리는 전투를 속행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레이몬드 황자의 대답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마력을 모조리 소진하고, 가지고 있는 재화가 전부 바닥난 흑마법사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모르지 않을 텐데.
“폐하!”
“……백작이 자신을 믿어 달라고 했다. 그러니 그럴 수 밖에 없겠지. 애초에 여기서 병력을 돌려 백작을 보호한다 한들, 우리의 퇴로를 막은 강물의 수위도 낮아지지 않아 후퇴는 불가능하다. 저 상황에 놓인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는 백작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터.”
사실은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레이몬드 황자는 당장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려 뒤로 물러나고 싶었다.
하지만 페르젠의 부탁과,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답을 사전에 들었기에 그를 믿고 전선을 유지할 뿐이다.
반면, 수뇌부들은 레이몬드 황자의 대답에 반대로 안도감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흑마법사가 저 상황에서 남아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한다면 한 가지 밖에 없었으니까.
그레모리의 상태도 좋지 않았고.
무려 브뤼테인의 핏줄이니,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결착을 내어 주지 않을까.
그리고 레이몬드 황자는 그러한 귀족들의 표정에 서려있는 생각을 어렵지 않게 읽어내며 검을 붙들고 있는 손에 우악스런 힘을 주었다.
오랜 시간 그들의 충성을 받아온 자신들 조차도.
브뤼테인의 희생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데.
어찌하여 이들은, 브뤼테인의 희생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이윽고 레이몬드 황자를 뒤로하고 몸을 일으키는 그레모리가 걸음을 내딛는다.
복시 현상 탓에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한 몸이 비틀비틀거리지만, 그 흐릿한 초점은 정확히 페르젠을 눈에 담고 있었다.
‘자……’
이제 페르젠은 어떤 선택을 할까.
아니, 그 선택 또한 능동적이기 보다는 수동적일 가능성이 크다.
확고한 죽음에 도달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명계의 문이 열리도록 미리 거래를 해둔 것이 가설이 아니라 정설이라면.
이 전쟁은 가히 자신의 승리라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도 그럴것이 일반적이라면 이 시점에서 페르젠은 진작 자신의 목숨을 제물로 명계의 문을 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건 최후의 보루가 남아 있기 때문일 터.
“욱……!”
그렇기에 그레모리는 뇌진탕으로 인해 치미는 구토감을 한번 해소하고서, 이제 자신의 유일한 무기이기도 한 왼발을 내딛고는 진각을 밟았다.
당연히 그 움직임, 속도 자체를 페르젠이 반응 할 수는 없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처음부터 자신의 고유 능력을 통해, 명계의 괴이를 강제로 강림시키는 횟수를 전부 써먹을 심산이었기에.
굳이 자해를 통해 그 능력을 강제로 이끌어내지 않은 건, 그녀가 너무 빠르게 눈치를 채면 안되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결과적으로 그레모리는 눈치를 채게 되겠지만, 이 고유 능력에 능동성은 없고 수동성만 있다는 것으로 자각한다면.
가하는 공격의 위협성은 대폭 줄어들것이고, 방어 수단이 전무한 지금의 시점에서 그것은 명백한 호재가 되리라.
고유 능력의 횟수가 2회 밖에남지 않은 상태에서, 기껏 강림한 괴이가 자신을 지키느라 급급하게 되면 그만한 손해가 없을 테니까.
사실은 그 탓에 이사벨을 사역할 수 있었던, 개전과 동시에 자해를 하고 밀어 붙이는 방법이 전력적인 측면에서는 가장 좋았겠으나 고유 능력의 횟수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페르젠의 심리는 그러한 배짱을 부릴 수가 없었다.
그레모리를 죽이고, 전쟁에서 승리 한다는 가능성은 그것이 제일 높겠지만.
살아 남아, 자신의 행복을 꾸려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지금의 판단이 가장 높을 테니까.
명예, 역사, 가문, 핏줄 등을 고려했다면.
애초에 선조들의 시신을 발판으로 삼는 짓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있는 건, 브뤼테인 가문의 차남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행복을, 삶을 추구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악당 한 명 뿐.
탁.
이내 자취를 감춘 그레모리가 눈앞에서 드러나고, 그녀는 의족을 주축삼아 들어 올린 왼발을 뻗어……
쩌걱──!
제단으로 삼은, 반지를 끼고 있는.
자신의 오른팔, 정확히는 손목을 형체도 없이 짓밟아 찌그러트렸다.
“크흡……!”
뇌리로 바로 직결되는, 그 말로 형용하기 힘든 통증에 페르젠은 커다란 목소리로 비명을 내지를뻔 했으나.
그것보다도 재빨리 돌아가는 사고회로는 왼팔을 품안으로 넣어 단검을 꺼내게 만든다.
마력 탈진 현상이 찾아왔고.
더 이상의 재화도 없어 보이는 흑마법사를 눈앞에 두고.
이 절호의 기회에, 굳이 제단으로 삼은 물건부터 흑마법사의 몸에서 떨어트린다?
물론, 의구심이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의구심을 충분히 무시할만큼의 메리트가 있는데.
그레모리, 그녀가 이 정도로 고지식한 정공법을 고수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곧장 쥐어든 단검으로 자신의 심장을 겨냥한 페르젠이 고유 능력의 트리거를 충족시키려 들었지만……
터억!
왼발과, 의족을 달고 있는 오른발로 페르젠을 제압한 그레모리는 그대로 그의 위에 올라탄 채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곱상하게 생겨서 그런지, 당황한 얼굴이 마치 계집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