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류 된 물의 양이 많지 않았던 터라, 기습을 기점으로 일대를 덮친 물의 수위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탓에 기습을 하는 과정에서 죽어나간 적군과 아군의 시체가 점점 자취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이 이상 적군의 중심에서 공격을 펼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에르네스 제국군은 빠른 속도로 거리를 벌려 나갔다.
추운 겨울, 잔뜩 젖어든 몸으로 움직이고 있으나 오히려 피어오르는 열기에 몸의 체온이 내려가지 않는다.
“대충 절반만 살아 나왔나……”
남은 인원은 8명.
그래도 적의 원소 마법사와 흑마법사들을 훨씬 더 많이 처리할 수 있었기에, 숨을 고르는 지금 절망이라는 감정이 피어오르는 일은 없었다.
개싸움이라 할 수 있는 백병전에서 가장 위험한 건 적군 보다 아군의 오인 공격.
특히 거센 물결이 퇴로를 가로 막은 시점에서 본인들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으니, 이토록 희망적인 성과를 도출한 건 그만큼 적이 패닉에 빠졌다는 반증일터.
하지만 이 기습은 도입부에 불과했고.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걸, 별동대들이 모를리가 없었다.
적군의 지원 병력이 도착하기 전 까지 작전을 마무리 하지 못한다면 패착.
그 전에 성황리에 작전을 마무리 할 수 있다면, 적의 지원 병력이 도착하더라도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넬 수 있으리라.
* * * * *
쿠웅──!
움찔!
건설된 댐의 밑바닥, 수심의 가장 깊은 곳.
그곳에 있던 원소 마법사들은 저 위에서 내려온 거대한 얼음 덩어리에 놀라며 몸을 움찔 떨었다.
심지어 그 수는 하나가 아니었고, 뒤이어 줄줄이 낙하하는 얼음 덩어리들은 강렬한 진동과 함께 굉장한 압박감을 선사 해왔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자신들을 겨냥한 공격이라 하기에는 댐의 면적이 거대했기에 효율이 그리 좋지 못할 터.
물론, 그런 의도도 부가적으로 있겠지만 핵심은 댐의 수위를 억지로 높히려는 것이리라.
“장벽을 미리 합쳐서 공기를 확보하지. 재수없게 더미들이 부숴지기라도 하면 우리는 전부 익사야.”
내부의 공기는 한정 되어 있기에 당연히 돌입 전 공기만을 채워 넣은 얼음 장벽의 더미들을 몇개 만들어두었다.
아무리 긴장을 가다듬고 안정된 호흡을 한다고 한들, 이만한 수압의 변화에 아무탈 없이 적응하는 게 가당키는 하겠는가.
그렇게 안그래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 수많은 얼음 덩어리가 내려앉아 더욱 진한 흙탕물 범벅이 되어버린 주변 풍경을 보며 에르네스 제국의 원소 마법사들은 조심스레 더미 장벽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내딛어 나아갔다.
‘……’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 있을 때면 들려오는, 마치 물이 숨을 쉬는 듯한 특유의 고요하면서도 공포스러운 소리.
툭.
흠칫!
지나가던 물고기들이 자신들의 장벽을 두드리는 자그마한 행동에도, 괜스레 긴장감을 머금게 된다.
“하아……”
이내 첫번째 더미 장벽 앞에 도착하여 내부로 공기를 채운 원소 마법사들은 몸이 한층 가벼워지는 느낌에 묘한 안도감을 느끼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마력을 공기──정확히는 산소로 형질 변환 시키지 못하는 건 어찌보면 다행일 것이다.
제대로 된 감압도 거치지 않고 깊은 수심으로 내려와 순수한 산소를 들이켰다면 산소 중독으로 필히 사망을 했을 테니.
하지만 그 안도감도 잠시, 깊은 수심 밑에 안착해있던 에르네스 제국의 원소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귓가로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에 오싹한 소름을 느꼈다.
물밑에서 나팔을 분다면 이러할까.
귀안이 울리는 듯한 고동 소리가 물을 타고 그대로 전해진다.
그에 괜스레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흙먼지가 내려앉은 아늑한 수심 너머의 어둠을 주시하는 원소 마법사들이었다.
화륵!
그러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 성질을 바꾼 불을 물속에서 지펴 저 너머로 천천히 날려 보낸다.
“커…… 허, 헉!”
그러자 푸른 물살이 환하게 밝혀지는 순간 그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코앞 부근에서 기괴하게 생긴 어패류의 얼굴을 들이 밀고 있는 이형의 괴물.
쩌적!
곧이어 그 괴물의 두 손이 자신들의 얼음 장벽을 붙잡고 들어 올리더니, 우악스런 힘을 주어 균열을 일으킨다.
적군에 그리 높은 등급의 흑마법사는 존재하지 않을 테기에, 이들 입장에서도 충분히 대처를 하는 게 가능했지만.
어둠이 내려앉은 아늑한 수심 밑에서 갑작스레 이형의 괴물을 마주하는 그 공포감이란, 평범한 인간의 정신력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것이었다.
쿠웅──!
“컥!”
하지만 뒤이어 나타난 또다른 괴물이, 얼음 장벽을 붙들고 있는 이형의 괴물의 머리채를 붙잡아 저 어둠 너머로 끌고간다.
그에 원소 마법사들은 얼음 장벽이 바닥에 내려앉는 자그마한 충격을 느끼며, 균열이 일어난 부근을 재빠르게 보수하기 시작했다.
“헉, 헉……”
아마 첫번째 괴물, 아니 괴이는 적군이 소환한 것일테고.
두번째로 나타난 괴이는 아군의 것이리라.
“미치, 겠군……”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이곳을 나가 평지에서 적군과 전투를 벌이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외부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아군들에게 엄청난 실례가 되는 어리광이겠지.
때문에 그들은 피어오르는 격렬한 폐쇄감, 미지의 공간에 있는 듯한 공포감을 억누르며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나갔다.
* * * * *
“쿨럭!”
고작을 숨을 고르기만 하는데도, 기침이 뒤섞인 피가 입밖으로 흘러 나온다.
날이 망가진 검을 치켜들고 자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남은 인원은 다섯명.
그 중에서도 기사는 자신을 포함해 고작 둘 밖에 되지 않았다.
박살난 주변의 지형은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오고갔는지 알려주고 있었고.
그 끝에 별동대들이 머잖아 꺼질 촛불이라는 것도 명확히 되새겨준다.
“……개새끼들, 더럽게도 재화가 많군.”
적군의 뒤에서 열리는 명계의 문이 왜 이리도 달갑지가 않은지.
아군은 벌써 모든 재화를 소진하다 못해, 그 값비싼 마력에 대한 재능을 가졌던 시신까지 제물로 바쳤는데.
쿠웅!
하지만 그 절망감 속에서, 적군에게 응수하듯 아군 또한 명계의 문을 개방한다.
끼긱!
심지어 열리는 명계의 문은 하나가 아니었다.
총 세개의 문이 지상에 내려앉아 그 너머로 기괴한 명계의 풍경을 흐릿하게 비추어낸다.
“뭐…… 뭐하는……”
더이상 명계의 괴이와 거래할 재화가 없다는 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에 놀란 얼굴로 자신들을 뒤돌아보는 기사들을 향해, 세 명의 흑마법사들은 저 마다 피식 웃으며 본인들의 제단을 굳게 움켜쥐었다.
“놀랄 게 뭐가 있다고 그렇게 쳐다봐.”
“흑마법사가 바칠 수 있는 제물이란, 자신의 목숨도 있다는 걸 잊었나.”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마지막 발악 정도는 해야 후회가 없겠지.”
애당초 이런 상황까지 고려하여 수뇌부들은 흑마법사를 별동대에 편성했을 것이다.
최후에는 스스로 목숨을 바쳐 명계의 문을 열라는 지시를 “명령” 했다가는 마도 협회에 추궁을 당할테지만.
어디까지나 자의적인 판단하에 그러는 것이라면 덜미를 붙잡힐 일이 없을 테니까.
솔직히 별동대가 부여 받은 임무의 난이도를 고려할 때, 명령을 하지 않았다 뿐이지.
차출을 하는 순간 마지막에는 그러라는 강압을 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세 명의 흑마법사들은 후회하지 않았다.
물론, 본디 자신들은 여기에 차출될 인력이 아니었고.
과정에서 명백한 불합리함이 존재했던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자신들의 제국을 통치하는 황실이 불합리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세상은 냉혹하고.
돌아가는 사회는 언제나 이기적이었으나.
그 중심에 있는 황실이 불합리 하지 않다는 건, 참으로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리라.
마력에 대한 재능도 없고.
고작 검술을 배웠을 일반인에 지나지 않은 황자가 자신들과 함께 최전선에서 검을 들어주었다.
미천한 신분이라고 핍박하며, 아무리 노력하고 재능이 있어도 천대하던 자신들을.
황실은 손을 뻗어 명예라는 것을 쥐어주었다.
그래, 그런 국가를 위해 피흘리는 것을 아까워한다는 건 언어도단일 터.
애국심을 강요하는 나라가 아니라.
애국심을 심어주는 나라에 살아가고 있다는 걸, 이들은 자랑스럽게 여겼다.
시간이 흘러, 이 역사가 이어진다면.
남아 있는 불합리함 조차도 모조리 뿌리 뽑힐테지.
황제라 칭하기 손색이 없는 자가 나라를 이끌고 있으며.
귀족이라 칭하기 부끄럽지 않은 인물이 그 곁에 있다는 걸 이 두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니 기꺼이 그들의 계단이 되어 역사를 이어 나가게 해줄 수 있는 발판이 되리라.
다만, 유일한 미련이 있다면.
그러한 제국의 고향을 이 두 다리로 다시 한 번 밟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희생의 대가가 그것이 전부라면, 오히려 싸게 먹히는 것이겠지.
덜컥!
이내 명계의 층수가 고정 되고.
거래에 응하는 명계의 괴이가 문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더니, 그들의 혼과 육신을 깔끔히 집어 삼킨 채 적진으로 뛰쳐 나간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그들의 제단만이 덩그러니 남아 동료들의 피웅덩이 위에 고스란히 놓여 있을 뿐이다.
* * * * *
“늦은 건지, 제때 맞추어 온건지.”
얼마 남지 않은 루벨타 강과의 거리를 재고 있는 엘마르크 제국의 지원 병력은 눈살을 찌푸렸다.
설원을 통과한 적은 분명 소수로 추정되고 있는데.
도대체 어느 규모의 전투가 일어났던 것인지, 여기까지 흔적이 이어져있다.
그리고 머잖아 루벨타 강으로 도달했을 때, 그들은 처참히 박살난 근처의 지형과 함께 자신들의 넋을 놓게 만드는 압도적인 댐의 면적을 보며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상류에서 흐르고 있는 루벨타 강의 수위와, 댐의 반대편에서 흐르고 있는 강의 수위는 마치 성인 남성과 어린 아이 정도의 수준으로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강의 물이 저 댐에 저장되어 있다는 것인지.
꿀꺽!
저 댐이 붕괴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곧바로 짐작이 갔던 터라, 지원 병력으로 도착한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쿨럭……!”
움찔!
그리고 널브러진 시신들 가운데, 아직 살아 있는 자가 있는 것인지.
들려오는 기침 소리에 그들은 몸을 움찔하며 시선을 옮겼다.
아쉽게도 아군이 아닌, 적군──에르네스 제국의 기사.
“크…… 크흐흐흐……”
입은 상처의 수준을 보아할 때, 곧 명줄이 끊길 것이 확실한데.
그는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댐에 간신히 상체만을 기대어 쾌활하게 웃고 있었다.
“조연들의 시간은, 끝났어…… 병신 새끼들아……”
소설도.
연극도.
항상 자경대나, 지원 병력은 늦게 도착을 하던데.
생각해보면 그들 또한 조연이지 않았던가.
그러니 참으로 어울리는 타이밍이라 생각하며 기사는 떨리는 손을 뻗어, 이미 이 세상에 없는 흑마법사들의 유품인 세 개의 제단을 품안으로 쥐어들었다.
쩌적──!
동시에 댐이 붕괴하기 시작하고.
그 위에서부터 방류되기 시작하는 물이 넘쳐 흐른다.
그리고 그 밑에서 조용히 눈을 감은 기사는 속으로 읊조렸다.
……부디, 이 거친 물살을 타고.
제국의 고향땅을 다시 한 번 밟게 해달라고.
* * * * *
“됐군!”
막사 안에서 울려 퍼지는 환호 소리.
수뇌부들은 저 마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출진을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이몬드 황자만큼은 연결된 물건이 비추어주는 너머의 풍경을 보다, 자그마한 애도를 건넨 뒤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귀족들을 향해 커다란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다.
“제국의 깃발을 챙겨라!”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여 그 깃발을 루벨타 강에 꽂아, 저들이 외지가 아닌 제국땅에서 잠들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