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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242화 (242/260)

“후……”

눅눅해진 빵을 억지로 씹으며 목뒤로 삼킨 기사는 피로한 눈가를 매만지다 연초 한대를 꼬나물었다.

그러자 곁에 있는 마법사가 친절히 마력으로 불을 붙여준다.

“고맙군.”

“별말을. 지금까지 우리들을 엎고 달려와준 노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텐데.”

“그보다 이걸 좋아해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적이 추적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위치를 들킬 수도 있는 흡연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비가 내릴 때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기에, 별동대 전원이 연초를 입에 물고 오랜만의 몽롱한 느낌에 심취해 있었다.

“잠자리가 불편한 것 보다, 나는 차라리 연초를 피울 수 있는 게 더 행복해.”

“하기야…… 그러고보니 이러면 루벨타 강의 수위는 더 불어나겠군.”

“백작님도 무사히 복귀하셨다고 하셨으니, 남은 건 이제 우리 몫 밖에 없어.”

간만에 누적된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수 있는 연초를 피우다, 가혹한 현실을 직시시켜주는 한 마디를 듣자 별동대의 안색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출진 할 때 아무리 페르젠이 사기를 올려주었어도, 그것이 오랜 시간 유지될 수는 없는 법.

차라리 이 자리에 그가 함께 하고 있었다면 모를까, 그러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사기는 곤두박질 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적의 사지에 들어와 있고, 목표가 있으니 움직이고는 있지만.

자신들의 손에 걸린 이 작전이 성황리에 마무리 될 수 있을거라는, 그러한 확신이 이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았다.

“자. 휴식은 충분히 취했어. 가도록 하지.”

“그래.”

당장은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앓는 신음을 내며 루벨타 강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패잔병과도 같았다.

* * * * *

“강이라 부르기에는 우스운 수준이군.”

72시간.

정확히 3일 뒤, 저 멀리서 눈에 들어오는 루벨타 강을 보며 별동대들은 짧게 혀를 내둘렀다.

한층 더 수위가 불어나 흙탕물을 머금은 채 흐르고 있는 루벨타 강은, 마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대해의 중심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래도 저 정도면 도중에 적군의 보급대와 마주치는 일은 없겠어.”

엘마르크 제국이 보급을 받기 위한 최단 루트는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루벨타 강을 직선으로 경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의 수위와 흐름이 이토록 난폭하다면 돌아갈 가능성이 높을 터.

때문에 자신들의 상대는 오로직 추적으로 따라 붙은 적군 뿐이리라.

“목표 지점이 멀지 않았을 텐데. 지도상 어디 쯤이지?”

“지형이 지도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위치상 여기쯤.”

“그런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며, 별동대들은 짧게 숨을 고른 뒤 걸음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머잖아 목표지점에 도착한 별동대들은 조잡한 마지막 식사와 짧은 휴식을 취하며, 제 1층에 서식하는 괴이──엿보기 구멍을 통해 연결된 물건을 루벨타 강의 풍경이 잘 보이도록 숨겨서 배치한 뒤 한 자리에 모였다.

그러자 너머로 레이몬드 황자의 모습이 비추어지고, 그것을 확인한 별동대들은 각자 경례 자세를 취했다.

목소리가 오고가지는 않는 터라 주고 받을 수 있는 건 수화뿐이었지만, 맴도는 침묵은 어느때보다 엄숙하고 비장하였다.

“황자님께서 우리들의 이름을 각기 부르고 계신다. 복잡한 내용은 없고, 건투를 빈다고 하는 군.”

제일 앞에서 레이몬드 황자의 수화를 해석해주고 있는 마법사의 말을 들으며 별동대들은 옅은 웃음을 지었다.

“……남아 있는 가족을 걱정하지 말라는, 그런 말을 해주지 않으셔서 오히려 기분이 좋은 걸.”

“그렇지. 우리가 아는 황자님이라면 겉치레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러 나오는 말일 테니.”

출진을 하기 전, 그 장엄했던 연설이 거짓이 아니라면.

에르네스 제국은 틀림없이 자신들이 죽더라도, 가족에게 막대한 보상을 해줄 것이다.

아니, 자신들이 신뢰하고 지켜보았던 황실이라면 확실하리라.

다만 그 말을 여기서 되짚어 준다는 건, 자신들의 성공 여부보다 실패를 더 높게 점치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나.

때문에 별동대들은 단순하게 자신들의 건투를 빌어준 레이몬드 황자의 말에 오히려 감사함을 느꼈다.

저뜻은 적어도 총사령관인 레이몬드 황자만큼은 자신들의 성공을 믿고 있다는 것이니.

“아……”

그렇게 마지막 보고는 이것으로 마무리 되는가 싶었으나, 레이몬드 황자는 연결된 물건을 쥐어들고 막사 밖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그마한 물건의 면적으로는 차마 전부 담기도 힘든, 최전선에서 살아남은 부대 모두가……

일제히 전열을 가다듬고, 자신들에게 경례를 취하고 있는 광경이 비추어진다.

일반 병사도.

수뇌부에 소속되어 있는 귀족들도.

제국의 기둥인 페르젠도.

곧이어, 총사령관인 레이몬드 황자도.

연결된 물건을 고정시켜둔 뒤, 손을 들어 자신들에게 경례를 취해왔다.

이건 틀림없이 레이몬드 황자의 마지막 배려일 것이다.

자신들을 이곳으로 차출 시킨 수뇌부의 귀족들이 저런 광경을 마련했을리는 없을 테니까.

분명 레이몬드 황자는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알려주고 싶은 것이리라.

이대로 작전이 실패한다면, 여기에 모인 자신들은 그저 몇몇 귀족들의 가십거리로 짓씹어지다 조용히 묻힐 뿐일 테니.

……그렇게, 마지막 보고가 끝이 나고.

등을 돌려 각자의 무기를 쥐어드는 별동대들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전우들의 얼굴을 두 눈에 담았다.

“하하……”

정말, 새삼스럽지도 않을 만큼 매력적인 곳이 없는 못난 외모들.

틀림없이 동료들과 자신은, 주인공이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들이리라.

중요한 작전을 앞두고 있음에도.

그러한 자신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진부하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겠지.

하지만 몸에 좋은 약은 언제나 쓴맛을 내듯.

자신들 같은 조연이 펼치는, 페이지를 순식간에 넘길 만한 허접한 이야기가……

역사를 흐르게 할 뜨거운 고동이 되리라.

* * * * *

막사 안으로 들어와 작전의 개시를 지켜보고 있던 수뇌부들과 페르젠은 주먹을 조심스레 말아 쥐었다.

지금까지 추적에 걸리지 않았다면, 적어도 작전의 첫 단추를 꿰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라고 볼 수 있겠지.

대지에 간섭하여 지반을 뚫고 들어간 원소 마법사들이 얼음 장벽을 펼쳐 둥글게 자신들을 감싸 안은 후, 루벨타 강의 밑바닥으로 내려가 최소 15m 높이 이상의 댐을 건설하고 자괴시켜야 한다.

그레모리 여제처럼 극의에 오른 오러 나이트가 아닌 이상, 팔이나 다리쪽만 불순물이 제거되어 마력이 흐르기에.

지금처럼 난폭한 급류를 무시하고 뛰어들어 아군의 원소 마법사들을 도륙낼 수는 없을 터.

특히 형질을 변환시키는 쪽과 다르게 “간섭”하는 쪽은 간섭을 하고 있는 동안, 다른 마법사들이 무력화를 시킬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때문에 댐이 세워지는 순간 막느냐, 뚫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고.

성공적으로 수행이 된다면, 거리상 약 40분후에 압도적인 물살이 엘리알타 협곡으로 도달하리라.

……성공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시간은 길어도 반나절.

그 안에 전쟁이 장기전으로 지속 되느냐.

아니면 모든 총력전을 기울이는 마지막 싸움이 되느냐에 대한 결착이 나겠지.

“상당히 긴장을 많이 하고 있을 텐데. 걱정이 되는 군요.”

“실전 경험이 적은 것도 아니고. 긴장을 해서 실수를 할 일은 없을 텐데.”

“그것이 아니라 루벨타 강의 밑바닥으로 내려간 원소 마법사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압박감과 더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강 밑은 적잖은 폐쇄감을 불러 일으킬테고 그렇게 불필요한 호흡을 많이 하게 되면 결국 서로가 서로의 살을 갉아 먹는 꼴이 되죠. 마력을 공기로 형질 변환 시키는 건 불가능하니.”

“그렇군. 얼음 장벽을 쳐서 내려갔으니 내부의 공기는 한정 되어 있기에 그런 식으로 자멸할 수도 있다는 건가.”

부정적인 견해이기는 했으나, 그것이 틀린 지적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방식은 외부에 있을 흑마법사들과 기사들에게 지키면서 싸우는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큰 장점.

“시작되었나!”

이윽고 잔잔한 침묵 끝에, 연결된 물건 너머로 거대한 벽이 치솟아 오르며 루벨타 강을 강제로 가두는 댐이 세워지는 풍경이 보인다.

물살이 상당히 거칠었기에 내부에 들어차기 시작하는 물은 빠른 속도로 수위를 올리기 시작했지만, 자괴를 시킨 댐에서 한번에 쏟아져 내리는 물이 이곳까지 도달하여 적의 퇴로를 봉쇄하는 수준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한 마디로, 지금부터가 관건이다.

* * * * *

“무, 무슨……”

근방을 뒤덮는 커다란 그림자가 생길만큼, 압도적 높이의 댐은 대기를 하고 있던 엘마르크 제국군에게 적잖은 당혹감을 선사했다.

요동치는 마력의 근원지는 사나운 물살이 흐르고 있는 루벨타 강의 아래.

“며, 명령을!”

세살 아이가 이곳에 있어도, 에르네스 제국이 저 댐을 통해 노리려는 바가 무엇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때문에 몇몇 원소 마법사는 즉각적으로 저 댐에 간섭을 해보려 했으나, 역시 이미 간섭하고 있는 상태의 대지에는 추가적인 관여가 불가능했다.

“당황할 것 없다. 간섭은 불가능해도 무너트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테니까. 일단 댐의 하단을 공략한다. 안밖의 수압 격차가 명확할테니 충분한 균열을 일으키기만 하면 적의 노림수는 무용지물로 돌아갈 터.”

“부대를 나누어 훨씬 더 상류로 이동한 뒤, 적군의 댐에 물이 들어차지 않게끔 임시적인 댐을 건설해 수위를 줄이는 건 어떻습니까?”

“안 된다.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 추적대로 차출된 건, 곧 도착할 보급대를 염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중에 비가 한번더 내렸으니 보급대는 우회를 했을 터. 그러니 수뇌부에서는 추가적인 지원 병력을 편성하여 올려보냈을 것이다. 무리를 할 필요는 없어. 적은 고립되어 있고 시간은 우리편임을 명심하라.”

물론, 그렇다 한들 댐의 하단만을 공략한다는 건 불안한 감이 적잖아 있었다.

시작부터 강의 밑바닥에 있는 적군의 원소 마법사를 죽이기에도 어려웠고.

때문에 추적대를 전두지휘하던 젤렌 남작은 고심 끝에 괜찮은 공략법을 떠올렸다.

“댐의 꼭대기에 얼음을 만들어 낙하시킨다.”

“얼음…… 말입니까?”

“뿐만 아니라 흑마법사들은 최대한 덩치가 큰 괴이를 소환시켜 댐에 떨어트리도록.”

투석을 통한 공략법도 있기는 했지만, 너무 1차원적인 공격 방식은 적군이 방어를 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투자한 값에 비한 효율이 그리 좋지 못했다.

“최악을 상정한다면 차라리 댐에 차오르는 물의 양을 제한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은 수단이지. 괴이를 강밑으로 내려보내면 적군의 흑마법사도 똑같이 괴이를 소환하여 응수할 수 밖에 없을 터. 그럼 그만큼 늘어난 부피로 인해 댐안에 물의 양은 겉값이 된다. 그렇게 되면 댐이 붕괴하더라도 그 여파가 진지까지 닿지 못하겠지.”

너무 겁쟁이 같은 마인드가 아닌가 싶었으나, 이 방식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리스크를 최대한 짊어지지 않으려는──한 마디로 불안감을 최소한으로 만들어주는 방식이었기에 따르는 이들은 더 이상의 의견 제시를 하지 않고 얌전히 수긍하였다.

“그러면 가도록 하지!”

“예!”

* * * * *

젤렌 남작의 세세하고 꼼꼼한 명령 아래 움직이는 엘마르크 제국군은 탁 트인 곳으로 나아갔다.

추적을 하는 과정에서 적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그만큼 적은 수로 이동을 하고 있다는 반증일 터.

저 깊은 수심 밑에 있을 적군의 원소 마법사들을 제외하면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으니, 적은 기습을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어차피 공략해야 할 댐이 자신들을 피해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고.

면적이 작아 목표를 겨냥하는데 애를 먹는 것도 아니니, 정확히 기본만을 추구하면 잃을 게 없으리라.

콰직!

“……!”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젤렌 남작은 자신의 귀로 선명하게 들리는 굉음에 몸을 움찔 떨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정면의 댐을 바라보니, 중앙 부근에서 일어나는 균열이 빠른 속도로 확장 되기 시작하며……

콰앙!

갑작스러운 붕괴를 일으킨다.

벌써부터 댐이 붕괴하는 것은 젤렌 남작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사안이었기에 대처를 지시하지 못했으나,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 인간은 누구나 최대한의 발악을 하게 되는 법이었기에 뒤에서 보호를 받고 있던 원소 마법사들이 자발적으로 장벽을 펼치고는 내딛고 있는 땅에 간섭하여 위로 치솟게 만들었다.

“무슨……!”

아니, 위로 치솟게 만드려 했으나.

이미 누군가가 마력을 방사해 간섭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자신들의 마력이 스며들지 않아 적잖은 당혹감을 머금었다.

쿠웅!

이윽고 댐이 붕괴하여 터져나오는 루벨타 강의 흙탕물이 엘마르크 제국군이 펼친 장벽을 들이 받고.

그 사나운 기세를 펼치며 좌우로 갈라진 채 흐르기 시작한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댐에 저장된 수위는 높지 않았으나, 잠깐 동안 주변을 아비규환으로 만들 정도는 충분했다.

“기습이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매복하고 있던 외부의 에르네스 제국군이 고립된 엘마르크 제국군을 향해 기습을 시도한다.

애당초 불리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작전이기에, 이런 식으로 허를 찌르는 변칙을 선보이지 않으면 격차를 줄일 수가 없었다.

물론, 시작부터 빠른 붕괴가 일어나도록 댐을 세운 에르네스 제국이기에.

본래의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붕괴된 지점을 메우고, 한층더 두텁게 댐의 벽면을 보수하려면 어마어마한 마력이 소진되었지만 이만한 리스크도 감내하지 않는다면 작전의 성공을 감히 점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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