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럭.
평범한 사내의 체취와, 비에 젖어든 땅의 향취만이 맴도는 자신의 공간에서 눈을 뜬 페르젠은 몇차례 몸을 뒤척이다 상체를 일으켰다.
“……”
낯설고도 강렬햔 향을 맡은 이후부터 모든 기억이 끊겨져 있었지만, 뻐근한 고간과 옅은 근육통이 올라오는 몸의 여운을 느끼고 있으니 이곳에 없는 라우라와 대략적으로 어떤 밤을 지새웠는지 짐작이 간다.
몸은 분명 피로함을 호소하고 있는데.
거기에 깃들어 있는, 묘한 상쾌함은 무엇인지.
마치 불면증에 걸린 사람이 몸을 혹사하여 강제로 수면을 취한 뒤 아침을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투둑.
“……짐승이라 그런지, 사람이 나약 할 때를 참으로 잘 알아 채는 구나.”
따끔거리는 감각에 단추를 풀어 상체를 훑어보니, 그녀의 손톱자국과 깨물린 이빨 자국으로 인해 새겨진 상처가 적나라하다.
약이 발라져 있기는 했지만, 역시 불균등한 대칭이 거슬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페르젠은 그것을 고의적으로 방치한 뒤, 다시금 단추를 잠그고 몸을 일으켰다.
뒤에서 자신을 끌어 안고 목을 옥죄여오는 듯한 리지의 주박을, 라우라가 새긴 상처들이 억지로 헤집어 주는 것 같았기에.
저벅.
“……”
걸음을 내딛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런 정사의 흔적조차 남지 않은 말끔한 풍경이 두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페르젠은 거기서 편안함 보다 명백한 아쉬움을 느꼈다.
유리엘의 달콤한 도화꽃의 향기도.
라우라의 청아한 백매화의 향기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벌써부터 그것을 그리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페르젠은 조용히 움막을 나섰다.
어느덧 많이 옅어진 빗줄기.
오늘 그녀들이 떠날때쯤이면 먹구름이 게이고 화사한 햇살이 쏟아 질련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의 얼굴에 짙은 상념이 그윽히 맴돈다.
* * * * *
배정받은 자신의 움막으로 돌아온 라우라는 곧장 다시금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와 간이 욕실로 향했다.
자신의 시신을 통해 움막 안에서 목욕을 해도 상관 없었지만, 그럴 경우 불쑥 들이닥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낭패가 아닌가.
사실 그 정도 리스크는 감수할 만큼 몸이 피곤하기는 했으나, 페르젠이 자신의 항문안에 사정한 정액을 처리하는 모습을 들킨다면 그 자리에서 목격한 사람을 죽여버릴 지도 모를 것 같았다.
때문에 라우라는 한층 옅어진 빗줄기가 추적추적 내리는 바깥을 거닐며 저 멀리서 보이는 간이 욕실로 나아갔다.
타악.
그렇게 안으로 들어온 라우라는 문을 닫고 입고 있는 옷을 벗어내린 뒤, 제단인 로사리오를 통해 시신을 꺼내들어 자신의 마력을 방사했다.
직후, 몇차례 심호흡을 내뱉은 뒤 따스한 물을 뒤집어 쓰고 간이 욕실의 벽면을 짚은 채 엉덩이를 뒤로 쭈욱 내민다.
손가락으로 긁어 내기에는 손톱이 있었기에 상처가 더욱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홀로 관장을 했던 방식처럼, 시신을 통해 마력을 물로 형질변환 시킨 라우라는 점성을 올린 뒤 자신의 항문으로 부드럽게 주입했다.
움찔!
“읏……”
불쾌하기 짝이 없는 감각.
본디 밖으로 배출만을 시키는 장소인데.
페르젠의 정액이 들어차있는 상태에서 이물감이 추가되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더부룩한 느낌이 와닿는다.
그러나 그것을 억지로 참아내고, 들어차있는 페르젠의 정액을 머금은 점성 높은 액체를 밖으로 끄집어내자……
“흐으……!”
라우라는 야릇한 신음소리와 함께 두 다리의 힘이 풀려 제자리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상당한 프라이드를 지니고 있는 그녀의 자아는 지금 자신의 몸이 쾌락을 느꼈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고 있으나, 희미한 오르가즘을 느낀 그녀의 몸뚱이는 낯선 쾌락의 여운을 느끼며 암컷의 냄새를 풀풀 흘려댄다.
촤악!
그에 라우라는 애써 그것을 무시하기 위해 몸의 열락을 식힐 찬물을 한가득 뒤집어 썼다.
그러자 희석되어 떠내려가는 정액을 따라 몸의 체온이 순식간에 내려앉지만, 그것도 잠시라는 듯 뜨겁고 달뜬 한숨이 입술을 타고 새어 나온다.
이딴 천박한 행위에 발정을 해버리는 자신을 결코 자각하고 싶지 않은데.
그녀의 몸은 어느덧 벽면에 기댄 채, 꽈악 다물린 음부를 좌우로 벌려 천박하게 부풀어 오른 음핵을 매만지고 있었다.
지난 밤으로는 채워지지 않을 만큼, 자신도 상당한 욕구불만이었을까.
아니, 분명 완전한 내성을 가지지 못한 몸이 피어올린 최음향의 잔재 때문에 이러는 것이라 애써 변명하며……
“흐읏!”
라우라는 자신의 음핵을 손가락 끝으로 꼬집듯 움켜쥐고는, 발끝을 바르르 떨며 묽은 애액을 소변처럼 쏟아냈다.
* * * * *
비가 그친 하늘 아래, 분주하게 움직이는 보급 부대를 바라보며 레이몬드 황자는 얼굴을 쓸어 내렸다.
아직 유리엘에게 별동대를 통한 상세한 작전의 개요는 말해주지 않은 상태.
이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 그로서는 도통 감이 잡히지가 않았다.
……페르젠이 유일하게, 자신의 권위를 통한 고집을 부린 것이 유리엘의 후방 차출이다.
때문에 별동대가 성공할 때를 대비해 보급 부대를 여기에 묶어 두고 합류시키는 게 득이 될지 가늠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실패를 하게 된다면 장기전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니 보급 부대를 묶어 두지 않고 보내는 게 이득이었다.
애당초 보급 부대가 합류를 하게 된다고 한들 승률이 가파르게 오르지도 않을 테고.
그래서 괜히 그레모리 여제와 전투를 하게 될 페르젠의 심리가 흔들리지 않게 레이몬드 황자는 보급 부대를 돌려보내는 걸 선택했으나, 머리는 복잡했다.
얼핏 보면 나름의 근거를 찾아 내린 합리적인 선택 같지만, 다른 의미로는 두려움과 망설임을 덮기 위해 핑계를 한가득 붙인 선택이었으니까.
하지만 끝끝내 보급 부대가 준비를 마쳤다는 병사의 전달을 전해 듣고도, 자신의 결심이 흔들리지 않는 걸 보며 레이몬드 황자는 걸음을 내딛었다.
* * * * *
채비를 마치고 자신의 말 앞에서 갈기털을 부드럽게 쓸어내려주던 유리엘은 짧은 상념에 잠겼다.
한달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인데.
이번에는 왜 이리도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인지.
페르젠의 나약한 모습을 지켜보았기 때문일까.
아니, 사실은 무척이나 뒤숭숭한 직감이 전신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연극이었다면 소중한 사람의 물건이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부서지거나 하는 장면이 나올 것만 같은──비극의 분기점.
하지만 그탓에 자신이 이곳에 남게 되는 고집을 부린다면, 페르젠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드리라.
어쩌면 이 직감이 비극의 분기점이 아니라, 이 직감을 믿고 이곳에 남게 되는 자신의 선택이 비극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었으니.
‘감정이라는 건…… 정말 어렵네.’
연극에서 인질로 붙잡히는 여주인공을 볼 때 마다, 유리엘은 그것이 참으로 어리석고 답답하다고 수차례 느꼈었다.
그러나 이제와서 그 연극들의 어리석고 진부한 장면들을 되돌아보니, 왜 이리도 이해가 가는 것인지.
물론, 자신이 꼭 그러라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 또한 없지 않은가.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페르젠이 전투에 임하는 각오를 변질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행복한 미래를 그려나가기 위해 전장에 서있는 것일 테니.
반대로 자신은 전장에 서게 된다면, 함께 행복한 미래를 그려나가기 위함 보다는 당장 눈앞에 있는 그의 안위만을 신경 쓸 것 같았다.
……임하는 각오와, 짊어지는 무게가 다를지언데.
어느쪽이 욕심을 접어야 하는지는 명확한 것.
때문에 유리엘은 저 멀리서 걸어오는 페르젠과 레이몬드 황자를 보며, 자신의 고뇌를 숨긴 채 걸음을 옮겼다.
* * * * *
출발은 좀 느렸으면 좋았을 텐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라우라는 조심스레 자신의 말 위에 올라타며 저 뒤에서 페르젠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유리엘을 쳐다보았다.
최대한 상체를 숙여 고삐를 잡더라도, 말이 움직일 때 마다 들썩거리는 몸으로 인해 허리의 통증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리라.
그 뿐만이 아니라 안장에 맞닿은 엉덩이가 마찰을 일으킬 때면 상처 입은 항문이 따끔 거릴 것 같아 라우라는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
안장에 부드러운 천을 깔아두기는 했지만, 장기간 말을 타고 있다보면 참는 것도 고역일 터.
‘아……’
그렇게 잠시 뒤, 페르젠과 마지막 대화를 마친 유리엘이 제자리로 돌아와 말 위에 올라타자 라우라는 한숨을 내쉬며 고삐를 붙들었다.
히힝!
이윽고 신호를 따라 보급 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움찔!
천천히 나아가던 라우라는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하체가 들썩 거릴 때 마다 올라오는 허리의 통증에 희미한 신음을 입밖으로 흘려 보냈다.
“……”
그리고 그런 라우라를 한참동안 지켜보고 있던 유리엘은 말머리를 옆으로 살짝 돌린 뒤, 라우라에게 가까이 다가가 약 한첩을 건넸다.
“먹으렴.”
“아……”
“진통제란다.”
전시였기에 달거리로 인해 몸상태가 나빠져도,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없으니.
유리엘은 따로 진통제를 구비해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 진통제를 라우라에게 건네는 유리엘의 친절에는 걱정 뿐만이 아니라 엄중히 나무라는 듯한 호통 또한 명백하게 뒤섞여 있었다.
“어떤 남자와 만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배려심이 하나도 없는 걸 보아하니 마음을 접는 게 좋아보이네.”
“그……”
“로젠베르크를 상대로 괜한 추문을 퍼트릴 일은 없겠지만, 이별을 통보 했을 때 앙심을 품는다면 내게 말하렴.”
“그, 그런게……”
“아무리 오래만에 재회를 하는 순간이었다 해도. 여자를 물건 다루듯 난폭하게 안는 남자와 사이가 깊어져봤자 좋을 게 없어.”
“……”
페르젠과 오랜 시간 몸을 섞다보니, 자연스레 현재 라우라의 상태가 상당히 거친 섹스의 여파라는 걸 유리엘은 어렵지 않게 눈치를 챘다.
물론, 달거리로 인한 몸상태의 악화일수도 있었지만.
가까이서 함께 생활을 하게 되니 싫어도 그 주기를 어렴풋하게 알게 되었기에 자연스런 배제가 가능했다.
“한참 감정이 이성의 눈을 흐리게 만들어 줄 때라, 더 말을 해봤자 반발심만 생기겠지만…… 내 말을 너무 가볍게 여기지는 마렴.”
“네……”
유리엘의 어처구니없는 착각에 입술을 달싹거리는 라우라였지만, 솔직히 무슨 대답을 해줄 수 있나 싶어 얌전히 수긍하는 척 입을 닫았다.
그보다 유리엘의 입에서 저러한 말이 나온다는 건, 도대체 얼마나 페르젠에게 배려를 받으며 몸을 섞었다는 것일까.
조금 짜증이 치솟아 오르기는 했지만, 다른 의미로는 본인의 취향을 과감히 드러낼 수 있는 건 자신 뿐이라는 것이 아닐지.
하기야 아무리 몸뚱이가 천박하다고 한들 본성까지 음탕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 쓰잘데기 없는 젖가슴을 난폭하게 주무르거나, 숨이 막힐 정도로 목구멍에 성기를 쑤셔 박거나, 항문에 삽입을 하는 행위는 명문가의 영애로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고 절대 받아 주지도 않을 터.
그러한 점에서 역시 말하지 않아도 그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고.
가학적인 섹스의 취향을 언제든 받아줄 수 있는 자신이야말로 반려라는 의미에 적합하리라.
애당초 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페르젠이 망가지기 시작한다면, 그 모습에 실망을 느끼고 떠나지 않으련지.
그 때가 되면 백야가 드리우는 곳에서 그를 돌보며, 아이를 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
상상을 하니 자궁이 묘하게 욱씬거려와 라우라는 붉은빛이 맴도는 입술을 혀로 가볍게 핥았다.
* * * * *
“……”
떠나가는 보급 부대를 먼발치에서 지켜보다 페르젠은 등을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잠시 동안 따라 붙는 호위에 함께 하고 싶었지만, 어느덧 그녀들에게 조금씩 의존하기 시작하는 자신의 모습을 자각했던터라 그럴 수가 없었다.
욕심을 부려 꽃을 꺾어, 전장이라는 물병에 그녀들을 담았다가는.
금방 잎이 지고, 향기 또한 빛바래질테니까.
그렇기에 페르젠은 자신의 몸에 은은하게 남아 있는 도화꽃의 향기와 백매화의 향기를 맡으며 나약함을 어루 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