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벅.
보급의 인수인계를 마치고, 드디어 여유 시간이 난 라우라는 뒤늦게 페르젠의 소식을 전해 들은 뒤 의무소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곳과는 확연하게 다른──심지어 제 2 황자 레이몬드가 거주하는 막사보다 더욱 공을 들여 지어진 간이 의무소에는 자그마한 수술이 진행되고 있거나 다친 병사들이 누워 섬세한 간호를 받고 있었다.
‘이 정도로 정교히 설계되었다면……’
휘하의 원소 마법사들이 얼마나 갈려 나갔을지, 그 고충이 어느정도 짐작이 되어 라우라는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단순히 넓은 범위에 간섭하는 것 보다.
면적이 적더라도 훨씬 정교하게 형태를 다듬는 것이 더욱 많은 마력과 정밀도를 요구한다.
실제로 대지에 간섭하여 자그마한 꽃을 만들 수만 있어도, 지식이 있는 자들은 그의 수준을 매우 높게 사는 편이었다.
‘넓구나.’
말을 더듬는 특성상, 가능하면 물어보지 않고 페르젠의 병실을 찾아가고 싶었는데.
그게 되지 않을 것 같아 근처의 의무병에게 물음을 던진 라우라는 간신히 걸음을 내딛어 페르젠이 누워 있는 병실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수액을 맞고 누워 있는 페르젠과, 그 옆에서 상체만을 엎드려 조용히 잠들어 있는 유리엘이 보인다.
최전선에서 전투를 이어 나가던 이들만큼은 아니었어도, 그녀의 몸또한 적잖은 피로가 누적 되어 있을 테니 졸음이 몰려오는 건 어쩔 도리가 없으리라.
‘못본 사이에…… 많이 한심한 사내가 되었구나. 애송아.’
병실 특유의 냄새에도 좀처럼 가려지지 않는, 페르젠의 근처에서 풍겨오는 냄새는.
그의 체취도 아니었고, 환자의 냄새도 아닌, 제법 짙은 술냄새였다.
하지만 페르젠 정도 되는 사람이 스스로의 몸을 망치는 수준으로 술에 의존하는──그 미련한 모습은, 의외로 라우라에게 있어서 제법 친숙한 것이다.
자신 또한 전생에서 도저히 괴벽을 극복할 수단이 마련되지 않아 수시로 술에 취했던 적이 많았으니까.
한 마디로 그가 이 지경이 되어버린 건, 전생의 자신처럼.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봉착한 건 아니련지…… 라우라는 그렇게 유추했다.
그나 자신이나, 유독 자아가 강한 사람은.
어지간한 일에 실의나 좌절을 느끼지 않는 법이었기에.
‘많이도 수척해졌구나.’
유리엘이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걸음을 옮겨 페르젠에게 다가간 라우라는 작고 여린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조심스레 더듬거렸다.
특유의 날렵한 턱선이 이만큼이나 도드라질 정도로 쇠약해진 모습은, 역시나 자연스레 안쓰러운 마음을 품게 만든다.
욱씬.
그래서일까.
가슴 한편이 미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라우라는 잠이든 페르젠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며 눈을 감았다.
사랑하는 사내가 괴로워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무력감은 의외로 아픈 것이었다.
그나 자신 같은 사람이 봉착한 난제란, 적어도 필멸자의 손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터.
아무리 발악을 해보아도, 결국 남게 되는 것은 비참한 타협안뿐이었다.
아니, 명확한 타협안이라도 존재하고 있다면 다행이리라.
자신만해도 이번 생에서 타협안이 되어준 건 페르젠이었고.
그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다시 한 번 생을 마감했겠지.
‘전생의 나와 다르게, 너는……’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지 않느냐.
그러니 적어도, 무너지지 않는 타협안을 제시해줄 수 있는 지지대는 분명 있을 거라고 속삭이며 라우라는 두 눈을 뜬 채 페르젠의 입술에 키스를 하였다.
‘만약……’
그 어떤 타협안조차 찾지 못한 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놓아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내가 마지막 종착점이 되어 주도록 하마.’
전쟁이 시작되기 전 말해주었던, 극점의 어딘가──영원히 태양이 지지 않는 백야가 드리우는 곳에서.
‘밑바닥까지 내려 앉아 울부짖는 그대를…… 내가 죽을 때 까지 보듬도록 하겠니라.’
그러니 당장은 빠르게 기력을 되찾고, 이 병상에서 일어나기나 하라고 라우라는 페르젠에게 바랐다.
‘그러지 않는다면……’
곧 다가올, 만월이 드리우는 날.
자신의 손으로, 이리도 쇠약해진 페르젠을 죽여버릴지도 몰랐기에.
원치 않은 호칭은 전생에서 터득한 마녀 하나로 족했다.
사랑하는 사내까지 잡아 먹고, 요녀라는 호칭까지는 얻고 싶지가 않아 라우라는 검지를 쭈욱 뻗어 페르젠의 뺨을 살포시 푹 찔렀다.
* * * * *
“……”
수액을 통해 망가진 전해질의 균형이 맞추어지자, 꽤나 기나긴 수면을 취했던 페르젠은 두 눈을 뜨고서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수액의 도움을 받고 있다 한들, 몽롱하고 무력한 기운은 좀처럼 떠나가지가 않는다.
그래도 혈색은 훨씬 좋아져 안정을 찾은 그였기에, 편안한 호흡을 내뱉으며 바늘이 꽂혀있는 왼팔을 슬그머니 들어 올렸다.
이것을 보는 순간 허전한 오른팔이 거슬리고.
그런 식으로 자극 되는 강박증은, 자연스레 몽롱하고 무력한 기분에 가려져 있던 리지의 주박을 되새긴다.
……그에 페르젠은 왼팔에 꽂힌 바늘을 제거하고, 오른팔의 혈관으로 수액을 다시 놓으려던 생각을 고히 접었다.
이런 식으로 눈앞의 다른 강박 증세로 의식을 분산시키지 않으면, 리지가 선사한 주박은 자신의 정신을 끊임없이 갉아 먹었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동시에 이것 또한 어디까지나 임시 방편에 지나지 않으리라.
길잃은 아이에게 사탕을 주고 달래도, 울음을 그치는 것은 잠시였고.
머잖아 엄마를 찾으며 다시금 펑펑 울어 재끼듯, 이 방식으로 의식을 분산시키는 건 언젠가 한계가 올 것이다.
일종의 내성을 지닌다고 봐야겠지.
지금은 이정도로 리지가 새긴 주박으로부터 의식을 분산 시킬 수 있지만, 반복을 거듭하다보면 더 강한 자극으로 의식을 분산시켜야 할 것이고……
끝내 감당하지 못할 수준에 이르른다면,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는 격이었다.
때문에 술기운을 빌려 정신 자체를 반쯤 무너트린 상태로 지낸 것이었는데
솔직히 그런 생활 또한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을 터.
‘시간이 상당히 흘렀나……’
자그마한 창문 너머로 보이는 짙게 내려 깔린 어둠은, 어느덧 밤이 드리웠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덜컥.
“아……”
그 때 조잡한 병실의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서는 유리엘이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스프를 든 채 자신을 바라보다 두 눈을 크게 뜬다.
멈칫!
그에 본능적으로 이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듯 달려가려는 그녀의 몸이었으나, 뒤늦게 따스한 스프가 담긴 접시를 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소곤히 멈추어서서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다.
“모, 몸은 좀…… 어때? 잠시 깨워서 이것만이라도 먹이려고 했었는데, 다행히 일어났네.”
“많이 좋아 졌다. 걱정 할 정도는 아니야. 그리고…… 미안하게 되었다.”
“……”
“다치지는 않았나. 유리엘.”
“응…… 다치지는 않았어.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식기전에 조금이라도 빈속을 채워둬.”
수저와 함께 자신에게 스프를 내미는 유리엘을 보며 페르젠은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았다.
목이 아직 따끔거리고, 우유를 풀어 만든 스프임에도 몇 번을 먹다보니 속이 더부룩해졌으나……
페르젠은 자신의 곁에서 서글픈 눈빛을 하고 있는 유리엘을 보고서는 꾸역꾸역 한 접시를 깔끔히 비워냈다.
그러자 미지근한 물과 함께 약을 내미는 유리엘.
“가급적 연초는 피우면 안 돼.”
“강가에 내보낸 아이 취급까지는 하지 않아도 된다.”
“……차라리 그랬으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네.”
강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 정도야, 눈을 돌리지만 않는다면 모든 변수를 차단할 수 있고.
설령 사건이 터지더라도 재빠른 대처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페르젠에게 자신이 무엇을 해줄수 있는지, 그것이 도저히 가늠되지 않아 유리엘은 꾸욱 억눌러 두고 있던 답답함을 풀어 헤쳤다.
“들었어. 당신이…… 리지를 죽였다는 걸.’
“그러느냐.”
부정 할 생각도.
감출 생각도 없었기에, 페르젠은 덤덤한 반응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아니, 덤덤한 반응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다는 것은, 두렵다는 반증이기도 할 테니.
“……내게, 환멸이 드나. 유리엘.”
“당신을 환멸 할 것이었다면, 진작 그리 했을 거야.’
리지와 관련한 일을 가지고 페르젠을 나무랄 자격이 없다는 건, 유리엘 본인이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전말을 알고 있음에도 이 남자의 아내가 되기로 했던 건 분명한 자신의 선택이었고.
벼랑 끝에 서있는 그 아이에게 잔인한 짓을 하기도 했으니까.
다만……
“내가, 이리도 서글퍼하는 건……”
그렇게 자신의 손을 더럽히면서까지 추구하려 했던 건, 틀림없이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였을 텐데.
어째서 재회하여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이 남자는 보다 나은 삶이 아니라, 보다 불행한 삶을 연명하고 있는 것인지.
그래, 유리엘은 페르젠이 리지를 죽임으로써 스스로의 손을 더욱 더럽혔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자신의 손을 더럽혀서 얻은 결과가, 겨우 이런 것이라는 사실에 아파하는 것이다.
“당신에게 물었을 때, 내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그런 무력감을 느낄까봐 사실은 말을 꺼내는게 두려웠어.”
“……”
“그래도 그건 올바른 방향이 아니겠지. 그러니까 페르젠.”
“……”
“당신이 왜 이렇게 괴로워하는 건지…… 내게 말해줄 수 없을까?”
다소곤히 모인 그녀의 두손이 식은땀을 머금은 채 서로를 애틋하게 부둥켜안는다.
그 모습을 보며 페르젠은 꾸역꾸역 비워낸 접시를 한쪽으로 치워두고 입을 열었다.
“업보다.”
“업보……”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 유리엘. 아무리 발버둥치고, 발악을 했어도. 결국 나는 삼류악당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것이니.”
“……”
“도움을 받을 수도, 도움을 바랄 수도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이것은 순전히 내가 감당해야만 하는 몫이다.”
물론, 공감 받기는 힘들지라도.
자신이 저질렀던 악행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사정이라는 게 존재했다.
하지만 검은 흉기이고.
검술은 살인술 이듯.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죽여야 하며.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베어야 한다.
그처럼 어떤 대의가 깃들어 있든, 본질은 변할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이 걸어온 악당의 길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리라.
“하지만 내 눈에는……! 지금 내 눈에는 당신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걸로 보이지가 않아……”
“그러느냐.”
이미 지독히도 나약한 모습을 들키고 말았는데.
숨겨서 무얼 하겠다고.
“상당히 눈썰미가 좋아졌구나. 유리엘.”
페르젠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이 업보는 내가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아……”
“내색 하지 않은 채 지낼 자신이 있었다면, 여기서 네게 어쭙잖은 위안이라도 건넸겠지만……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 조차 없는 상태이기에 오히려 지금까지 욕심을 부린 과거의 자취를 많이 후회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것이었다면 차라리 형님과 불편하고 어색한 형제 사이로 남았으면 어땠을까 싶고, 너희들과 가정을 꾸려가는 행복을 모른 채 혼자 지냈으면 어땠을까 싶으며, 나 따위가 오랜 세월 브뤼테인에게 부채감을 지니고 있던 황실과 개선된 군신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증표가 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념들이 끊이지가 않는다.”
“……”
“하지만 이대로 체념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내 역량이 되는 선 까지 악착같이 발악을 할 것이다.”
그러나 로에르도, 세자르도, 리지도 말을 했듯이.
분수에 걸맞지 않는 행복을 움켜쥐고 있었던 만큼.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인간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더할 나위 없이 추악하리라.
“그렇기에 나와의 생활로 고대하고 있던 행복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웃음보다는 울음을 터트리는 날이 많을지도 모르고, 추억보다 많은 후회가 쌓여 갈지도 모르고,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만을 수없이 찾게 될지도 모르겠지.”
그러니까.
“도저히 내 곁에 있을 수가 없는, 그런 때가 온다면…… 나를 떠나도 괜찮다. 유리엘.”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
꽈악!
페르젠의 말을 전부 전해 듣자마자, 유리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일으켜 페르젠의 몸을 으스러지듯 끌어 안았다.
상처 입을 것을 알면서도, 불행해질 것을 알면서도 곁에 최대한 남아 있어 달라는 페르젠의 말은──새삼스레 자신이라는 존재가 그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 되었는지 체감이 되어 기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슬픔이 밀려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이라는 생물은 아무리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상황속에서도, 결국 스스로가 납득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법이었다.
때문에 페르젠이 관계의 끝을 결정짓는 선택권을 자신의 일방적인 의사에 온전히 일임한것은, 본인은 이미 이별을 확실시 하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이제와서 어울리지 않게 이타적으로 굴지 마…… 내가 아는 페르젠이라는 남자는, 설령 자신의 추악하고 더러운 모습에 상대방이 지쳐 떠나가겠다고 말을 하더라도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곁에 붙잡아 두는 사람이야.”
“……”
“그러니까 뻔뻔하게 굴어. 당신이 지닌 업보로 인해 상처입고 힘들어하는 내가 아니라, 당신의 곁에 내가 없는 상황을 두려워하란 말이야……!”
애초에 곁에 남아 있게끔 최대한 노력을 해보겠다는 그 말은, 돌려 말하자면.
곁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는 순간,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말과도 일맥상통 할 것이다.
그러니……
“정말 내게 선택권을 온전히 일임할것이었다면…… 당신은 그렇게 말해서는 안됐어.”
당신의.
당신을 위한.
당신을 위해 태어나고 자라난 여인이, 어떻게 당신의 죽음을 외면할 수 있다는 것인지.
“설령 꽃잎이 떨어지고, 가지가 꺾이고, 뿌리가 썩어들어가도……”
봄의 벚꽃.
여름의 연꽃.
가을의 국화.
겨울의 매화에도 지워지지 않을, 나의 도화향(桃花香)은 당신의 품에서 머물다 함께 지워질거야.
당신이 악당이라면, 나또한 엄연히 그것에 어울리는 악녀가 되기로 다짐했으니.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나아가는 방향이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감내하겠다고.
유리엘은 그렇게 말을 마치며 페르젠의 가슴팍에 깊숙히 고개를 묻었다.
“……”
그에 페르젠 또한, 더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유리엘의 뒷머리를 천천히 쓸어내리며 그녀의 몸을 다정히 안아주었다.
진정성 깊은 그녀의 말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자신의 파멸일것이라는…… 그러한 생각에 여전히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걷지 않은 커튼으로 인해 아침이 밝았다는 것을 모르듯.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그녀의 따스한 품과, 듣기 좋은 목소리로 들려오는 위로의 한 마디.
그래, 자신은 이것을 그녀에게 바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언젠가 커튼을 걷고 그 너머의 풍경을 직시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태양이 없는 회색빛 하늘과, 악취가 풍기는 썩어 문드러진 땅이 자신을 반기겠으나……
그곳에 색을 입히고, 씨앗을 심어 꽃을 피우려는 발악 정도는 해봐야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겠지.
선택들이 모여 이루어진 결과가 운명.
그러니 “악당이라서” 라는, 그런 시시한 이유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자신의 끝은 원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