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아침이 두번 밝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복귀를 하지 않은 페르젠 때문에 레이몬드 황자는 부상자를 잘 돌보라는 언질을 주고서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페르젠에게 따로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작전이 개시되는 그 시점에 맞추어 적군의 진지를 습격하기까지도 했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나……’
별동대가 루벨타 강에 편히 도착할 수 있도록, 한 번더 적군의 눈을 돌리기 위한 의도도 있었지만.
사실은 페르젠이 추적을 뿌리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게끔 그레모리 여제의 발걸음을 빠르게 돌리기 위함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리만큼, 이틀차에 접어드는 지금까지도 페르젠이 복귀를 하지 않자 레이몬드 황자는 옅은 초조함과 불안감을 선보였다.
오러 나이트의 길을 걸었던, 브뤼테인의 전대 가주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진작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으니까.
“……!”
그러나 머잖아, 저 멀리서 흐릿하게나마 한 사람의 인영이 보이자 레이몬드 황자는 두 눈을 크게 뜨며 근처에 있던 병사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당장 짐을 따라 오거라!”
“저, 전하……!”
명령을 내리기 무섭게, 진지를 박차고 달려가는 레이몬드 황자를 보며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들은 당황을 머금은 채 그의 뒤를 헐레벌떡 뒤쫓았다.
* * * * *
‘체통을 지키시지 않고, 어찌……’
에르네스 제국의 진지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자신을 발결한 레이몬드 황자가 병사들을 이끌고 달려오자 페르젠은 옅은 웃음을 머금은 채 걸음을 멈추었다.
사실 도착하려면 더욱 빨리 도착할 수는 있었으나,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아니, 일부러 그러지 못했던 점도 있었다.
계속해서 뇌리를 어지럽히는 강박의 충동 때문에 연결이 불안정하여, 오러 나이트의 길을 걸었던 전대 가주들에게 도움을 받기에는 마력의 소모가 극심했으니까.
물론, 추적이 완전히 끊겼다는 확신이 도중에 들었을 때는 도움을 받아도 상관이 없었으나……
페르젠은 일부러 자신의 육신을 혹사시키기 위해 꿋꿋이 눈밭을 자신의 두 발로 헤쳐왔다.
도착하는 즉시 피로함에 물든 자신의 몸뚱이가 강제적인 수면을 취했으면 했기에.
끊이지도 않고 계속해서 머리를 맴도는──충족시킬 수 없는 강박의 충동은 지속적으로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마약에 대한 금단 증상이라는 극단적인 비유를 하지 않아도.
먹지 않는 것.
잠을 자지 않는 것.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결핍만으로도, 사람은 간단히 미쳐버리지 않나.
그처럼 사람이 어떤 욕구를 느꼈을 때, 그것이 충족 되지 않고 끝없이 결핍되는 고통은 차마 말로 이룰 수가 없는 것이었다.
사박.
이내 쌓인 눈을 밟으며 레이몬드 황자가 자신의 지척으로 도달 했을 때, 페르젠은 수척한 얼굴로 그를 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그가 건네주었던 검을 허리춤에서 빼내어 앞으로 내민다.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전하.”
“……”
고작 이틀의 시간 동안 그를 보지 못했을 뿐인데.
눈앞에 있는 페르젠의 모습은, 어찌 십수년만에 재회를 하게 된 느낌이 드는 것인지.
그의 자태에는 여전히 황가를 향한 변치 않는 충성심과 군더더기 없는 품격이 스며 들어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레이몬드 황자는 처음으로, 그의 모습에 아련한 동정심을 머금고 말았다.
“정말…… 고생이 많았네. 백작.”
빌려주었던 자신의 검을 도로 받으며, 레이몬드 황자는 페르젠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임무의 수행 과정에서 별탈은 없었는가.”
“예.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사실은 그러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 충족되지 않는──결핍된 충동에 대한 통증을 토로하고 싶었으나, 페르젠은 그 모든것을 억누르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차피 털어놓아 봤자 해결될 수 없는 난제인데, 자신의 마음이 조금 편해지고자 전장의 총사령관으로 있는 그의 어깨를 무겁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알겠네. 그러면…… 편히 쉬도록 하게. 백작.”
“예. 그러면 저는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몸을 일으키는 페르젠이 자신의 곁을 지나쳐 진지로 걸어간다.
하지만 레이몬드 황자는 그런 페르젠을 뒤따라 진지로 걸음을 돌리지 않았다.
지금 몸을 돌렸다가는, 두 눈에 들어올 페르젠의 등이 너무나도 나약하고 작아 보일 것 같았기에.
……그건 틀림없이 페르젠 본인도 바라는 바가 아니겠지.
“전하. 안으로 드시지요. 바람이 춥고 매섭습니다.”
“날씨가 더우니 조금만 이렇게 있도록 하자꾸나.”
움찔!
좀처럼 공감하기도, 이해하기도 힘든 레이몬드 황자의 말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말을 내뱉었던 병사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곧이어 옆에서 바라본 그의 얼굴에 짙은 수심이 드리우자, 병사는 더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 * * * *
삐걱!
이곳에 남아 있던, 자신 휘하의 부대원들과 재회조차 하지 않고 막사로 들어선 페르젠은 곧장 간이 침대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해소되지 않는, 충족 되지 않는 강박에 대한 충동이 여전히 울부 짖으며 자신을 괴롭게하나……
한계까지 내몰린 육신의 피로는 그것조차 억누르며 억지로 수면을 취하게 만든다.
그렇게 물에 빠져 한참을 허우적거리다 힘이 빠져 서서히 가라앉는 사람처럼, 조금씩 흐릿해지는 의식의 끈을 느끼며 페르젠은 두 눈을 감았다.
이 몸뚱이로.
악당이 되어.
……처음으로 도피라는 선택을 해보는 순간이었다.
* * * * *
쿵!
늦은 새벽, 지친 몸을 이끌어 억지로 수면을 취했던 페르젠은 간이 침대에서 눈을 뜨는 순간 주먹으로 바닥을 내려치며 입술을 거칠게 짓씹었다.
짙은 수마의 기운이 남아 있어 정신이 몽롱했을 때는 괜찮았으나, 조금씩 그것이 걷히고 맨정신이 돌아오자……
여지없이 리지가 자신에게 새겨 넣은 강렬한 주박이 뇌리에 떠오르며 결핍된 강박의 충동이 요동친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그것을 참도록 강요하지 않았고.
주어진 상황이 억제를 하게끔 만드는 것도 아니었으나.
충족시킬 방안이 없었기에, 페르젠은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며 불규칙한 숨을 토해냈다.
사람이 불치병에 걸렸을 때 느끼는 심정이 이러할까.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겨울임에도,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은 그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는지 잘 대변해주고 있었다.
“……”
기어코 몸을 일으킨 페르젠은 자신의 제단을 쓸어내려 그 안에서 독한 술을 끄집어냈다.
상당한 고가의 값어치가 있는, 엄연한 재화의 일종으로 보유하고 있던 것이나.
……지금 당장, 술기운이라도 빌리지 않으면 페르젠은 참다 못해 자해라도 할 것만 같은 욕망을 느꼈다.
이성을 극단적으로 흐트러트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자신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될 터.
“쿨럭……!”
목을 불로 지지다 못해 녹여 버리는 것만 같은, 압도적인 도수의 와인이라 그런지.
코르크 마개를 따고 마시는 순간 페르젠은 적잖은 통증을 느꼈다.
심지어 이틀간 아무것도 섭취하못지 못한 빈속이었기에, 쓰리다고도 표현하기 힘든 아픔이 올라온다.
하지만 자신의 정신이 결핍된 강박의 충동조차 잊고, 그 아픔에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페르젠은 훨씬 안정된 기분을 느꼈다.
이내 기분 좋은 취기를 넘어서, 만취에 가까운 영역에 정신이 발을 내딛자 페르젠은 걸음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바닥에 볼썽사납게 주저 앉았다.
“큭……!”
그러나 비명을 지르는 빈속이 토기를 유발하자, 페르젠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막사를 벗어났다.
그렇게 비틀비틀 진지의 뒤편으로 걸어가 속을 게워내자, 옅은 핏물이 뒤섞여 흘러 나온다.
자신의 위가 상처 입은 것인지.
아니면 목이 상처를 입은 것인지.
무엇하나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페르젠은 이사벨을 아공간에서 꺼내 텁텁한 입가를 거칠게 헹궜다.
“……”
그리고 그 물이 밑으로 떨어져, 쌓인 눈을 녹이며 옅은 웅덩이를 만들었을 때……
“하하……”
그곳에 비추어진 자신의 추한 꼬락서니를 보며 페르젠은 실소를 흘렸다.
‘로에르……’
마지막 순간에, 너는 나의 불합리함이 되어주겠다고 말을 했었지.
‘네 놈은 아니었어도……’
너희들이 살려두고 간 리지가 나의 불합리함이 되기는 했구나.
사박.
눈밭에 힘없이 주저 앉아 곁에 있는 이사벨에게 기대어 페르젠은 어두컴컴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넘겨야 할 고비는 이제 몇개 남지 않았는데.
도저히 그것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지 않아, 페르젠은 드물게 좌절감이라는 것을 느꼈다.
마법사에게 있어서 주어지는 역경이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중한 기회이기도 하지만……
도리어 그것은, 모든 것을 무너트리는 절망이 되기도 한다.
‘어느덧 2월인가……’
며칠 뒤면, 유리엘과 라우라가 이곳으로 오리라.
하지만 페르젠은 그녀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이리도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가 않았기에.
그러나 시간은 언제나 필멸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는 것이었고.
봄의 개화를 한달 정도 앞둔, 2월 4일──보급 부대가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