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신중을 기울여 선별을 하였네만……”
“이 정도면 충분하네.”
“그, 그런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고서 확답을 들은 귀족 한 명이 등을 돌리자 페르젠은 넘겨 받은 서류를 옆으로 치웠다.
별동대를 구성할 수 있는 허락을 받기는 했어도, 차출 할 수 있는 인원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엄연히 각 귀족들마다 휘하에 관리하고 있는 병력들이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인맥이 있고, 친분이 있는 자는 제외하고.
그 중에서 실력이 특출난 자들을 골라 자신의 곁으로 보내오리라.
당연히 그 과정에서 최우선 순위로 오르는 건, 자신들 가문과 상대적으로 적대적 위치에 있는 이들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높은 확률로 태생이 평민인 이들──정확히는 황실의 등용문을 탄 자들이겠지.
황실의 힘이 커지는 것에 반감을 품고 있는 귀족들이 이참에 황실의 팔과 다리가 되어줄 새싹들을 잘라내는 걸 마다하지 않을리가 없을 터.
그래, 레이몬드 황자는 그 사안까지 전부 고려한 채 자신에게 이 기회를 허락한 것이었다.
‘그러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페르젠이 자신의 소속 부대원들이 있는 막사로 걸음을 옮긴다.
사전에 모여 있으라고 언질을 두었기에, 리지를 포함한 소속 부대원들은 전부 움막 안에 모여 안으로 들어서는 자신을 쳐다보았다.
“길게 말하지 않겠다.”
“예.”
“황자 전하의 허락을 받아 별동대를 구성하게 되었고, 내 휘하에 속한 그대들 중에서 몇몇 인원을 간추릴 것이다.”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있어도, 별동대라는 소리에 자그마한 웅성거림이 일어난다.
“……”
하지만 거기서 유일하게 입을 꾹 닫고 있는 리지는, 푸른 멍이 들어 있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시기가, 어떻게 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별동대가 하게 될 역할과 그 작전의 내용이야 어차피 발탁된 이들에게만 공유될 터.
때문에 페르젠 휘하의 부대원들은 정확한 시기만을 물어왔다.
“앞으로 한번더 전투를 치른 직후, 그날밤 바로 출행하게 될 것이다. 그 전투에서 사전에 발탁된 이가 사망하게 된다면 예비로 지정된 해둔 이들이 빈자리를 대신하게 되겠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호명하도록 하겠다.”
자신의 이기적인 행복을 위해, 이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기는 하나.
페르젠은 단 한번도 자신이 전쟁을 하고 있다는 자각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리는 그림은 리지를 죽이고 매듭은 완전히 끊은 뒤, 적군의 퇴로 또한 깔끔히 틀어 막아 총력전을 가하는 것.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고유 능력의 횟수는 두번이 남아 있다.
그러니 퇴로가 막힌 상태에서 서로가 서로의 배수진이 되는 상황이라면, 승산이 낮지는 않을 터.
아니, 오히려 승산은 상당히 높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차례차례 인원들이 호명 당하고, 나뉘어진 세 개의 조에서 두명씩 총 6명이 발탁 되었을 때……
“리지.”
페르젠은 마지막으로 리지를 불러, 7명의 인원 차출로 마무리를 지었다.
“호명은 여기까지다. 불리운 이들은 림벨에게 상세 내용을 전해 듣도록 해라.”
“그……! 실례인 건 알지만, 고작 케테르 등급의 그녀가 별동대에 편성되는 건……”
동정심인지.
아니면 전장에서 그 동안 정이라도 든 것인지.
그녀의 십부장인 아스텔이 손을 들며 반론을 제기하자, 페르젠은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지 않느냐.”
“……”
“그녀이기에, 그녀가 이 작전에 발탁되지 않는다면…… 수뇌들 사이에서 반발이 일어날 것이다. 또……”
페르젠은 말끝을 흐렸으나, 그 뒤의 말이 어떤 것인지 여기에 있는 이들은 전부 자각하고 있었다.
본래 다른 이들이 들어가야 할 그 자리에 “리지”가 대신 들어가 있다는 것을.
즉, 그녀를 제외하게 된다면.
자연스레 여기에 있는 다른 한 명이 그녀를 대신해야만 한다.
그리고 성공하기만 한다면 엄청난 공을 올리는데 기여를 한 것이나, 반대로 그만큼 위험성이 높은 것이기에……
“……”
더 이상 그 누구도, 페르젠에게 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스텔 또한 멍든 얼굴로 조용히 앉아 있는 리지를 한번 바라보고서는 씁쓸하게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물론, 정말로 리지가 다른 한 명의 자리를 대신하여 참가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해석이 되게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자연스레 고립시킬 수 있었기에, 마다할 필요도 없는 것.
누가 본다면 비겁한 방식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악당에게 있어서 비겁함이란 오히려 정직함이 아닐지.
“쉬도록.”
그렇게 휠체어에 얌전히 앉아 있는 리지와 한동안 시선을 교환하던 페르젠은 등을 돌렸다.
* * * * *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느냐.”
엘마르크 제국의 진지안, 거기서 그레모리 여제는 거만하게 앉은 채 명계의 문을 열어 거래를 시도하는 흑마법사를 보며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재정비를 하는 겸 자신의 몸도 추스리기 위해 폭우가 쏟아지는 이틀간 얌전히 굴기는 했으나.
사실 그 무엇보다 그녀가 한번 알아보고 싶었던 건, 페르젠과 자신이 전투를 하는 도중 열렸던 명계의 문 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이 지나고 생각을 해보니, 그 당시의 상황은 이해 하기 힘든 점이 많았다.
흑마법사와 괴이간의 거래가 어떻게 이루어지던가?
1층을 제외하고나서는 거래할 괴이를 유도할 수도 없었고, 괴이 쪽에서도 흔쾌히 승낙을 해주지도 않기에.
2층 이상에 서식하는 괴이와 거래를 할 때는 먼저 제물을 선보인 뒤, 그 제물에 반응을 해줄 괴이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 당시 페르젠과 자신 사이에 흘러간 시간은 길어야 5초.
명계의 문을 빠르게 열었다고는 하나, 그 5초 안에 3층에 서식하는 괴이와 거래가 성립되었다는 건 역시 우스운 일이겠지.
아니, 그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믿기 보다는.
그런 식의 결과가 성립 될 수 있는 방식이 있었던 게 아닐까.
예컨대 사전에 미리 거래를 해두고,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때 강림을 해달라는 조건을 덧 붙이는.
“……”
하지만 유클리드 등급의 흑마법사들을 차례차례 모아놓고 그 가설을 검증해보니, 전부 거래를 성공하지 못했다.
어쩌면 아폴리온 등급의 흑마법사가 되어야지만 거래 방식에 특이점이 생기는 걸까?
“복잡하구나.”
이 가설을 한 번 믿어보느냐, 그러지 않느냐는 상당히 어려운 사안이었다.
만약 이 가설이 확실하다고 한다면 페르젠의 목숨을 필요이상으로 위협하지 않는 것.
그래, 그것만으로도 전쟁의 승기를 잡는 게 가능했다.
왜냐하면 이 가설대로라면 페르젠은 이미 명계와 거래를 하였고, 그 거래한 괴이가 강림하는 조건은 목숨의 위협을 받을 때 이니까.
아폴리온 등급의 흑마법사가 명계와 거래를 할 때 소모하는 재화는 상상이상의 수준.
그리고 보유한 재화 중에서 일부를 그런 식으로 사용했다면,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터.
특히나 흑마법사가 명계와 거래 할 때 소모하는 재화는 그 특성상 단기간에 보충하는 것도 어렵다.
“흐음.”
정말 그리하다면, 그런 식으로 설정한 조건에 틀림없이 정해진 기간도 있을 터.
‘조금만 더 기다려 보도록 할까.’
시간을 끌어서 이쪽이 손해를 보는 건 없었다.
아니, 그만큼 국고가 낭비 되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상대방도 똑같지 않은가.
‘잘만하면……’
고작 다리 한쪽을 더 내주는 선에서 전쟁이 마무리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레모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말아 쥐었다.
아무리 최악으로 치닫는다 하더라도 두쪽 다리를 전부 내주고 의족을 차는 것이겠지.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 가설에 조금더 힘이 쏠릴 때의 이야기였다.
에르네스 제국 또한 이러한 휴전이 길어지면 재화를 보충 할 수 있으니 굳이 먼저 나서려 하지 않을 터.
시간을 조금더 끌어보고 반응을 지켜본 뒤, 저쪽에서 먼저 급하다는 입질을 보여주면 그때 나서도 늦지 않는다.
으레 전쟁이 그러하듯, 텅텅 비게 될 국고 정도야.
승리하여 상대방으로부터 받아내면 되는 것이 아닌가?
때문에 편하게 허리를 피고 주변에 있는 자신의 가신들을 보며 그레모리는 한 사내에게 시선을 주었다.
“루이펄트 후작.”
“예. 폐하.”
“지금까지 공은 그대가 제일 많이 세운 것 같더구나?”
“폐하의 치하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대로만 간다면 짐에게 후사를 낳게 해줄 사내는 그대가 되겠지.”
“제가 어찌……”
“쓸데없는 겉치레는 내버려두고, 하나 궁금한 것이 있다만.’
“말씀하십시오.”
“그대는 짐이 팔 한쪽만 남게 되어도 안을 수 있겠더냐?”
“무슨 말씀을……?”
“아폴리온 등급의 흑마법사와 전투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고작 그 대가가 이 한쪽팔로 끝날리가 있겠느냐.”
“제국의 미래를 위한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 옵소서.”
“재미없는 대답이구나.”
남아 있는 한쪽팔로 턱을 괴는 그레모리가 피식 웃는다.
오베른 왕국의 왕녀들을 던져주었을 때, 그녀들에게 어떠한 짓을 하였는지 전부 보았건만.
저런 대답을 하면 믿어 줄 것 같았는지.
벌거벗은 사내가 침대 위로 다가오는데도, 두다리가 없어 옴짤달싹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고간 사이에 달린 그것을 빳빳하게 세울 게 틀림 없었다.
상상을 하니 상당한 역겨움이 치밀어 오르나……
그 거부감과 반대로, 자신은 이 전쟁에 승리했을 때 그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말 것이다.
더 이상 오를 산이 없으니.
스스로를 추락시켜보는 것도, 틀림없이 재미난 하나의 유흥거리 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