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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223화 (223/260)

“무슨 일로……”

움찔!

선반의 약제를 정리하던 의무병은 막사 안으로 들어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가, 붉은 머리의 여인──리지의 상태를 보고는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약을 좀…… 받으러 왔어요.”

“……”

“반역의 핏줄이 흐르는 제게는, 의원의 손길 조차 허락 되지 않는 건가요?”

“아닙니다. 아, 앉으시지요.”

전선에 서지는 않더라도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는 알고 있었고.

지나가면서 드문드문 본적도 있었기에, 흙먼지와 적군의 핏자국으로 가려진 흔적 너머에는 이러한 상처를 달고 있었구나 싶어 의무병은 자신도 모르게 안쓰러운 마음을 품었다.

“겉으로 보이는 외상 말고, 추가적인 내상에 관하여 증상이 있다면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소변을 눌 때 마다…… 고간이 아파요.”

“아, 그건……”

충분히 당혹스러울 말이었으나, 의무병은 태연한 얼굴로 리지의 말을 듣고 답변을 해주기 시작했다.

의원이 되었을 때, 가장 많은 돈을 받는 경우.

그것은 귀족들의 치부와 관련된 일──그 중에서도 성병을 다룰 때 였기에 이 부근에 대해서 박식하지 않은 의원은 적었다.

“전장의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청결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 겁니다. 여름이 아니기에 염증이 더 번질 일은 없겠지만…… 약과 연고를 처방해줄테니 드시고, 가급적 시간이 난다면 해당 부위를 물로 가볍게 씻어만 주세요.”

물론, 리지 또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의원이 그런 식으로 사고를 유도하게끔 언질을 주었다.

대뜸 페르젠이 자신을 강간하여 음부를 헤집어 놓았다고 말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멍든 부위와 꺾인 손가락을 치료 받고, 처방 받은 약과 연고를 든 채 자신의 움막으로 돌아온 리지는 바지를 내린 뒤 조심스레 자신의 음부를 바라보았다.

“……”

도저히 닫혀 질 것 같지 않더니, 어느새 꽈악 다물려 팅팅 부어오른 음순이 움찔거린다.

누가 보면 음부에 회초리를 휘두르지 않았을까 싶어, 리지는 연고를 조심스레 자신의 음부에 펴발랐다.

“아……”

그러던 도중, 자신의 자궁 안에 머물러 있던 페르젠의 정액 일부가 찔끔 흘러 나오는 것을 보며 리지는 기겁을 하듯 몸서리를 쳤다.

나름 깨끗히 씻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런 식으로 흘러나올 만큼 자신의 자궁에는 그의 정액이 가득 들어차 있는 걸까.

조소인지 실소인지 모를 헛웃음을 지으며 그것을 스윽 닦아낸 리지는 여전히 더부룩한 포만감이 서려있는 아랫배에 조심스레 손을 얹혔다.

마음 같아서는 지그시 눌러 머금고 있는 그의 정액을 모조리 뱉어내고 싶지만, 이것은 자신을 망가트리는만큼 페르젠에게도 위협을 가할 수 있게 해주는 무기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리지는 재차 자신의 음부 쪽에 연고를 바른 뒤 약을 먹고, 소속 십부장인 아스텔을 찾아갔다.

“너……!”

거기서 아스텔은 리지의 몰골을 보고, 놀란듯이 두 눈을 크게 뜨더니 한숨과 함께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괜찮은 거냐……”

“괜찮아요.”

“전장에서 나름 신경을 쓴다고는 했지만…… 나도 여력에 한계라는 게 있어.”

“알아요. 십부장인 당신에게 그 점으로 하소연을 하러 온 건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그렇다니 다행이지만, 그래도 이 분위기 자체가 편하지 않다는 그의 표정은 가급적 얼른 용건을 말해 달라는 것 같았다.

“지낼 장소를 다시 옮겼으면 해요.”

“어디로?”

“어디겠어요. 같은 부대원들이 머무르고 있는 곳이죠.”

“거리가 멀지는…… 아니다.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네가 잠들었을 때 마다 시달리는 악몽 때문에 그 여파로 우리들이 피해를 받아. 그래서 건의를 통해 너를 옮긴 것이고.”

“이제 그러지 않을 거예요.”

“스스로 호언장담하는데는 분명 이유가 있겠지만, 솔직히 혼자 공간을 받은 건 좋은 점도 있을 텐데.”

“……”

아스텔의 말에 리지는 더이상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굳이 지낼 장소를 옮기는 이유는, 페르젠이 자신을 죽이는데 있어서 리스크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병사들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 된 곳에서 자신을 죽이고.

그 여파로 본인의 추악한 내면을 어느정도 드러낼 각오가 있다면, 기꺼이 그리 하라는.

특히, 완전한 입막을 위해서는 피드백을 할 수 없도록 자신의 머리통을 박살내거나 녹여야 할 텐데.

그 정도로 잔인한 손속을 휘두른다면 틀림없이 말이 나오겠지.

……물론, 이것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전장에서는 수많은 눈이 존재하더라도.

그 수많은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 마음대로 해라. 부대원들한테는 내가 말을 해놓지.”

“고마워요.”

“더 하고 싶은 말은 없나?”

“아……”

“있나 보군.”

걸음을 돌리려던 아스텔이 팔짱을 끼고 다시금 자신을 바라보자, 리지는 잠깐 뜸을 들이다 고개를 치켜 들었다.

“아스텔. 당신이 조금 불편 할 수도 있는 질문이에요.”

“네가 울면서 무섭다고 내 바짓가랭이를 붙잡으며 돌려 보내달라는 말만 하지 않는다면 뭐든 괜찮아.”

“그럼 다행이네요.”

휠체어의 팔걸이에 손을 올려 놓고 있던 리지가 그것을 다소곤히 모으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당신은…… 경험했던 섹스가 어떠했나요.”

“……”

“정정할게요. 경험했던 성관계가……”

“저, 정정하지 않아도 된다.”

태연한 모습을 하고 있어도, 말을 더듬는 것으로 자신의 당혹함을 표현한 아스텔은 헛기침과 헛웃음을 남발하며 얼굴을 감싸쥐었다.

“이 질문의 의도가…… 도대체 무엇이냐.”

“그냥, 알고 싶은 거예요.”

“내 여자 이력을?”

“아니요. 섹스라는 것 자체가 남들에게는 무슨 의미인지.”

해당 주제로 신랄한 음담패설을 해본적은 있어도.

해당 주제를 철학적으로 물어오는 사람은 리지가 처음이었기에 아스텔은 적잖은 곤혹을 느꼈다.

‘혹시……’

너무 힘들고, 너무 지치니.

사람의 품이 그리운 걸까.

그녀가 아무리 반역의 핏줄이라 한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인이었고.

전장의 스트레스가 응축된 병사들은, 그녀가 유혹한다면 별다를 말 없이 기꺼이 응할 것이다.

그리고 리지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고독함과 외로움, 전장의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하는 것일까.

“너는…… 사랑한다는 감정을, 상대방에게 어떻게 표현한다고 생각하나.”

“글쎄요.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것일까요.”

“뭐, 그렇지. 보통은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감정의 표현은,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니까.”

“……”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했을 때,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선물일까요.”

“그런 건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

“……”

“그런 점에서 섹스는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것을, 말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요?”

“말로만 사랑을 전하는 건 언젠가 식상해지기 마련이야. 그래서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사랑한다는 말을 가급적 아끼라는 것도 있고.”

“그렇군요.”

“아무튼 그런 거라고. 우정이라던지, 숭배라던지, 존경이라던지. 사람의 감정에는 여러 형태가 있고 그것을 타인과 교감하는 방식은 각자 틀리잖아? 그런 점에서 섹스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교감시켜주는 몇 안되는 수단중 하나고. 사랑하는 사람과 몸을 섞을 때 그 사람이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느낌, 각자가 모든 치부를 드러내고 섞여드는 느낌은…… 하. 이걸 뭐라고 해야하지?”

긁적.

뒷머리를 세차게 긁으며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눈가를 매만지던 아스텔이 이내 생각을 정리했다는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사람들은 도심이나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정말 함께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니잖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몸을 섞을 때 만큼은, 이 넓고 냉혹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사람 만큼은 내 곁에 함께 하고 있다는…… 그런 감상이 들어 때로는 더욱 애틋해지기도 해.”

“……”

“사내들이나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인들이 섹스에 관해서 단순한 성적 유흥거리로 말하고는 한다지만…… 그 교감에는 분명 값어치가 있으니, 혹여나 이상한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면 미래의 행복을 멋대로 걷어 차지 마라.”

짙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마치는 아스텔이 그렇게 리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걸음을 돌린다.

그에 리지도 더 이상 아스텔을 붙잡지 않고, 조용히 휠체어에 앉은 채 이제는 맑게 개인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그녀가 아스텔에게 건넨 질문, 거기에는 딱히 복잡한 의도가 없었다.

그저 전날밤, 자신이 희생했던 그 행위의 값어치가 남들에게는 얼마나 되는 것이었는지를 알고 싶었을 뿐이니까.

끼릭.

그리고 아스텔의 답변을 통해 자신이 전날밤 잃어버린 것은, 상당히 소중한것이었구나 싶어 리지는 씁쓸한 웃음을 머금은 채 휠체어를 이끌었다.

* * * * *

“하……”

한편, 리지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고 걸음을 옮겼던 아스텔은 뒤늦게 붉어진 귓가를 어루 만지며 고개를 숙였다.

리지에게 그런 질문을 받은 것은 당황스러웠으나, 하필이면 아직 여인을 안아 본적이 없는 자신에게 해당 질문을 건넨 것이 추가적으로 황당함을 불러 일으켰다.

나름 머리를 싸매어 답변을 했다고는 생각했지만, 자신이 무얼 말했는지 지금 당장 상기시켜보라고 한다면 한 문장도 뇌리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래도……’

자신의 외모가 나름 여인들을 적잖게 많이 안고 다닌 걸로 보였나 싶어, 아스텔은 괜스레 충족되는 자존감에 어깨를 으쓱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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