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라와 유리엘로 인해 잠깐 느슨해졌던, 온 몸의 신경이 바짝 날카로워진다.
그리고 예민해진 그 모든 감각은, 좌우대칭을 반드시 맞춰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보다 선명하게 자극하며 페르젠의 이성을 무참히 짓밟았다.
그녀의 오른손 중지 또한 당장이라도 붙잡아 꺾어 버리고 싶으나, 그 욕망을 간신히 억누른 채 페르젠은 주먹을 꽈악! 말아 쥐었다.
움직이는 그녀의 손을 따라, 자취를 뒤쫓는 자신의 눈동자.
그것조차 스스로의 의지로 제어하는 게 힘들어 페르젠은 고개까지 숙였다.
가려운 부분을 당장이라도 긁어 내리고 싶은데, 그 충동을 억제하고 있으니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든다.
“……”
일단, 이 상황에 “어떻게?” 라는 의문을 품기 보다는 자연스레 넘기는 것이 최선이겠지.
당장 그녀를 죽여버리기에는, 정면으로 들어왔기에 부대원들의 의심을 사고 말 것이다.
상황과 시기가 전부 섣부른 판단이라 알려주고 있었고.
그녀가 저 행동에 확신을 품고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이기에, 페르젠은 발작하듯 튀어나가려는 자신의 손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아스텔!”
“예……! 예! 부르셨습니까?”
부름에 슬그머니 천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서는 아스텔이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쭈뼛거린다.
“의무병에게 리지를 데려가도록 해라.”
“아, 알겠습니다.”
한맺힌 여인이 죽어 귀신이 된 듯한, 그러한 분위기를 풍기며 안으로 들어서놓고는 정작 자신의 상처를 보고하려 했던 걸까.
혹시 다친 것이 다른 병사들의 괴롭힘 때문인가?
확실히 그런것이라면 페르젠을 찾아 올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이 가시지 않아 아스텔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으나, 감히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리지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러자 리지는 생각보다 얌전히 자신의 시신을 사역하여 품에 안겨 들었다.
저벅.
그리고는 그대로 걸음을 옮기며, 사역하는 시신의 어깨에 턱을 얹힌 채 페르젠을 응시한다.
“……”
그 서슬퍼런 눈빛은, 천막 너머로 리지가 자취를 감추고 나서도.
한동안 아른거리는 아지랑이처럼 페르젠의 시야에 맴돌았다.
“하……”
직후, 페르젠은 멈추고 있던 숨을 토해내며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찌푸려진 눈살 위로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떨어지고.
불안에 떠는 사람처럼, 의미없이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며 그 답지 않게 정신 사나운 행동을 보인다.
기어코 자신의 근처에 놓인 물건들을 일부러 어지럽힌 뒤, 스스로 좌우대칭을 무너트리고는 그것을 손수 정돈하며 리지에게 쏠린 이성을 바로 잡았다.
당장 눈앞에 어긋난 대칭을 바로 잡고 있으니, 잠시나마 여유가 생기게 되었지만……
툭.
그 또한 정돈을 끝마치고나면, 자연스레 리지의 오른손 중지를 마저 꺾어야 한다는 강렬한 욕구가 치솟아 올랐다.
그에 페르젠은 정돈을 끝마친 물건을 다시 어지럽힌 뒤, 그것을 정리하는 행동을 반복하며 시간을 끌었다.
‘스스로 자해를 하여, 죄책감을 유발하려는 것일수도 있다……’
적어도 그녀가 자신의 강박 증세를 알아챌 수 있는, 그러한 빌미를 제공한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리지의 눈빛은, 그 표정에 서린 감정은.
결코, 스스로 자해를 하여 자신에게 죄책감 따위를 유발하려는 것 같지가 않았다.
“……”
그 끝에, 페르젠은 리지가 바닥에 떨어트리고간 비에 젖은 흙더미를 바라보았다.
“……!”
그러자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던, 저 흙더미가 무엇을 의미 하는지──그것을 어렴풋하게 깨닫자 페르젠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온몸이 비에 젖어 들어가는 것도 잊은 채.
고작 두 시간전, 말을 묻어 주었던 장소로 향한다.
“……”
거기서 페르젠은 볼 수 있었다.
말끔하게 파헤쳐진 구덩이 아래로, 앞발이 모두 부러진 채 쏟아지는 비를 맞고 있는 말의 시신을.
그래, 그녀는 저것을 통해 깨닫고 만 것이다.
아니, 저것만으로는 부족했겠지.
8년전.
한달전.
두시간전.
세 번에 걸쳐 일어난 그 연속된 사건이, 기어코 그녀에게 자신의 역린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쏴아아아!
빗줄기가 더욱 거칠어지며 페르젠의 머리를 무겁게 짓누른다.
툭.
투둑!
그에 고개를 뒤로 젖힌 페르젠은 두 눈을 떠서 더욱 흐려진 하늘을 자신의 붉은 눈에 선명히 담았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대지로 쏟아져 내리는 굵은 빗방울.
세상의 모든 소리를 집어 삼킬 기세로 울려 퍼지는 빗소리.
……그래.
어린양의 발악과 비명 정도는, 이 폭우에 전부 묻혀지리라.
* * * * *
9시간 40분.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움막안에서 물건을 어지럽히고 정돈하는 것을 반복하며.
간신히 강박증의 고삐를 붙잡고 있던 페르젠은 정확히 밤 11시가 되자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뒤를, 미리 꺼내놓았던 이사벨이 조용히 따른다.
쏟아지는 폭우는 여전히 그 기세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얼마 떨어 지지 않은 리지의 움막까지 병사들에게 들키지 않고 이동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내 두 걸음 남겨둔 거리에서 페르젠은 리지의 움막 주변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냈다.
소리는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울려 퍼지는 진동이니, 이것으로 내부의 소리가 새어나갈 일은 없으리라.
아무리 비가 거칠게 쏟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만반의 준비를 해둬서 나쁠 건 없을 터.
“……”
그렇게 페르젠은 짧은 단검을 역수로 쥐고 걸음을 내딛었다.
망설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죄없는 사람을 죽여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전장에서 마주한 엘마르크 제국의 병사들도.
시엘 미드포드도.
로에르와 세자르도.
자신이라는 사람에게 반드시 죽어야만 했던 「객관적인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악당이 자신의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죄를 쌓아 나가는 것이 필연이라 한다면.
페르젠은 그 운명을 거부하지 않기로, 오래전부터 마음을 먹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서 자신의 죄를 뇌우치며, 용서 받을지 용서 받지 못할지──그 불확실한 가능성에 매달려 슬퍼하는 성자가 될 바에야.
온전한 악당이 되어 웃기로 하였으니까.
……강박증이라는 사실을 알아 챈 리지는, 다양한 수단으로 자신의 목숨을 위협해 올 수 있었다.
아니, 자신의 목숨 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잃을 것이 생겨버린 자신에게, 그 모든 것을 스스로의 손으로 망가트리게끔 유도를 할 수가 있었다.
굳이 쌓을 필요가 없는 업보.
굳이 늘려갈 필요가 없는 죄책감.
그렇게 생각하여 지금까지의 방향성을 유지해왔으나, 이제는 그 매듭을 억지로 잘라낼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이……’
극복해내고자 한다는 것이냐.
‘무엇이……’
때가 되면 말해주겠다고 한 것인지.
이성을 무참히 갉아 먹으며, 한 인간의 자아를 망가트리려는 강박증의 벽을 오랜만에 느낀 페르젠은.
결코 이것을 극복할 수도 없었고.
설령, 유페미아나 유리엘이라 한들 진실을 털어 놓는 건 독이 될거라 고쳐 생각하고 말았다.
저벅.
만약 그럴 수 있었다면, 자신은 여기서 걸음을 돌리고 말았을 것이요.
저벅.
그러지 못했다는 건, 자신은 영원히 이 강박증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리라.
“……”
이윽고 리지의 움막 안으로 들어선 페르젠은, 자신의 숨소리를 죽인 채 놓여 있는 간이 침대로 가까이 다가가……
삐걱──!
재빨리, 일말의 군더더기도 없이.
심장 부근을 향해 역수로 쥐고 있는 단검을 박아 넣었다.
하지만 그러한 페르젠을 반기는 건, 피부와 근육을 뚫고 파고든 단검이 박동하는 심장을 꿰뚫는 감촉 따위가 아니었다.
끼릭.
동시에 짙게 내려 깔린 어둠 너머로,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당신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네요.”
모습을 드러내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리지가 화사하게 웃으며 자신을 반긴다.
“찾아 올 거라 생각했어요.”
“……”
“직접, 당신의 손으로 나를 죽이려 할 거라 믿었어요.”
“……”
“그래야 불안요소가 된 나의 싸늘한 주검을 보며, 당신은 안심한 채 제 오른손 중지를 편히 꺾을 테니.”
“……”
“안 그래요? 왜냐하면 당신은 지독한 강박증을 앓고 있으니까.”
그 어느때보다 격렬한 흥분을 머금고 있는 페르젠의 두 눈이 리지를 훑는다.
쿠웅!
직후, 이사벨을 통해 대지를 솟아 오르게 만든 페르젠은 강제로 리지를 자신의 앞에 끌고 왔다.
바닥을 나뒹구는 휠체어와 함께, 철퍼덕 넘어지는 리지가 옅은 신음을 토해내지만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고 여린 목을 붙들어 잡는다.
그리고는 쥐고 있는 단검을 그대로 쑤셔 박으려 했으나, 페르젠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왜…… 요?”
간신히 헐떡거리며 입을 여는 리지가 페르젠의 밑에 내려 깔린 채로 비웃음을 머금는다.
“찌르지…… 않을 건가요?”
자신의 심장 앞에 멈추어선, 그의 팔목을 붙잡아 도발이라도 하듯 더욱 가까이 가져다대는 리지이지만……
페르젠의 손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등 뒤에 실타래를 따라 떠다니고 있는 저 인형은, 자신의 여인이자 아내인 유리엘의 형상을 하고 있었기에.
“알잖아요.”
“……”
“당신이 모를리가 없잖아.”
“……”
“그 단검으로 내 몸을 꿰뚫어도, 유리엘 언니의 몸에는 미약한 생채기가 날 뿐이에요.”
“……”
“저 인형은 고작, 자고간 간이 침대에 떨어진 머리카락 몇가닥만을 머금고 있을 뿐이니까.”
명계의 제 1층에 서식하는, 이름없는 괴이.
하지만 이승에서 살아가고 있는, 흑마법사들이 그 괴이에게 붙여준 별칭은 저주인형.
지닌 능력은 상대방과 자신의 신체를 연결하는 것.
그리고 그 연결은, 상대방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무언가를 가능한 많이 바칠수록 깊어진다.
상대방을 저주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몸 또한 자해를 해야 하는 제약과, 상대방의 신체 부위를 요구하는 특성 때문에.
해당 괴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의 가성비는 최악이었다.
설령 자살까지 할 마음이 있다고 한들, 그만한 상처를 똑같이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못해도 상대방의 신체를 반절 정도는 바쳐야 했으니까.
그러니 리지의 말대로, 여기서 이 단검을 그녀의 심장에 쑤셔 박아도.
유리엘의 몸에는, 정말 미약한 생채기가 생기는 선에서 그칠 것이다.
하지만 그 생채기가 정확히 가운데 생기는 것이 아니고서야, 그것을 인지하는 시점에서.
자신은 끝없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말겠지.
이 전장을 이탈해 유리엘을 찾아가, 그녀의 몸에 새겨진 미약한 생채기가 올바른 대칭을 이룰수 있도록 손을 쓰고 말 것이다.
“끅……! 케헥!”
그러나 그 연결의 깊이가, 그 정도로 미약하다면.
질식을 시키면 그만이었다.
유리엘 입장에서는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 말터.
그렇기에 페르젠은 혀를 깨물지 못하게끔 자신의 손가락을 그녀의 입에 쑤셔 박고, 여린 목을 움켜쥐고 있는 손에 강하게 힘을 주었다.
충혈되는 보랏빛 눈동자에 비치고 있을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구역질나고 구차할까 싶었으나.
그것은 악당에게 있어서 새삼스럽지도 않을 모습이지 않던가.
꿈틀!
“!”
하지만 머잖아, 페르젠은 그녀의 입에 쑤셔 넣은 자신의 손가락을 타고 슬금슬금 무언가가 기어오르는 듯한 감촉을 느끼고는 시선을 옮겼다.
자그마한 눈뭉치 같은 형태의 동그란 벌레.
달팽이처럼 다리가 없어서 그런지, 자신의 손가락에 밀착해있는 그 느낌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다방면으로 지식이 있는 페르젠이라도 그 벌레의 이름을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 벌레의 이름 따위가 아니라, 어째서 이 벌레가 그녀의 목구멍을 통해 자신의 손가락을 기어오르고 있었느냐였다.
꽈악!
고민 할 필요도 없었다.
새끼 손가락의 반의 반도 되지 않을, 저 눈뭉치 같은 자그마한 벌레는 필시 리지 본인의 마력으로 사역되고 있는 시체일 터.
그러하다면 틀림없이 저 벌레의 내부에는 극독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 독이 오러 나이트와 마법사들에게 만일의 순간을 대비해 자결할 수단으로 황실이 내려준 것이라 한다면, 퍼지는 순간 맞닿는 부위가 서서히 녹아내리겠지.
“끄흑!”
하지만 대처도, 반응도 더할 나위 없이 빨랐으나.
“……”
그녀의 입에서 꺼낸 자신의 손에는 새하얀 눈뭉치 같은 벌레가 보이지 않았다.
“콜록! 내가…… 이 정도도, 생각 못했을 것 같아요……?”
조소를 머금으며 자신의 입술을 핥는 리지가 오싹할 정도의 아름다운 눈웃음을 짓는다.
“눈치는…… 정말 빨라……”
자유로워진 손으로 페르젠의 커다란 손을 붙잡고, 해당 벌레가 어디 있는지.
그 위치를 가늠해주겠다는 듯, 자신의 목으로 가져다대는 리지가 말을 잇는다.
“예상대로 그 벌레는 독을 머금고 있어요. 눈뭉치 같은 몸을 짜내어 퍼트리는 순간…… 제 장기는 전부 녹아 내리겠죠.”
“……”
“유리엘 언니가 죽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저 따끔따끔한 감각을 느끼고 끝날 테니까.”
대신 연결된 그녀의 장기에는 분명 희미한 흔적이 남을 것이다.
피부에 드는 멍처럼, 자그마한 반점 같은 것들이.
물론, 장기는 평소에도 상당한 양의 혈액들이 오고가며 순환하기에 낫는 것은 금방이리라.
3일?
아니, 하루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 그 강박의 욕구를 충족 시킬 수 있을까요?”
흠칫!
너무나도 잔혹하게 정곡을 꿰뚫어 버리는 리지의 싸늘한 목소리에 페르젠은 특유의 붉은 눈을 파르르 떨었다.
그 말대로 인지를 하게 되는 순간, 자신은 유리엘의 몸을 직접 째서 구석구석 확인하지 않고서야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마력으로 통제권을 강탈하려는 기미가 보이면…… 저는 주저 없이 그 벌레의 몸을 쥐어 짜내 독을 퍼트릴 거예요.”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듯.
부드러운 손길로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리지가 나근나근한 목소리로 자신의 귓가에 속삭인다.
확실히 두 단계나 차이가 나는 등급상, 압도적인 질적 마력을 가지고 있는 자신이 통제권을 강탈하려드는 것만이 유일한 변수로 남게 되리라.
하지만 페르젠은 그것을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처음으로 낙담하듯 두 손을 천천히 내렸다.
한낱 벌레의 일생은 보잘 것이 없다.
때문에 조금의 피드백만으로 구현율은 가볍게 90%를 넘어 버린다.
그리고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그녀가 흑마법사로서 가지고 있는 재능은, 일정 구현율에 도달하는 순간 결코 통제권을 강탈당하지 않는 것.
그래, 적어도 지금 이 순간.
페르젠이 리지를 상대로 꺼내들 수 있는 무기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리지라는 여인 앞에 앉아 있는 건, 8년 전의 잃을 것 없던 악당과 다르게.
잃을 게 너무나도 많이 생겨버린 악당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