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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218화 (218/260)

땀과 먼지, 피로 엉겨 붙은 빨간 머리를 타고서 그녀의 턱으로 주르륵 내려간 빗방울이 투욱 떨어진다.

“……”

분명 저 말은 오른쪽 다리가 다친 것이었을 텐데.

어째서 왼쪽 다리 또한 처절히 박살난 채 묻혀 있던 것일까.

짐승의 시신이더라도 피드백은 가능했기에, 리지는 저 왼쪽 다리에 관한 기억이 피드백 되지 않는 점에서 확실히 사후에 부러진 것이라 단정했다.

짐승들의 기억은 인간보다 훨씬 직관적이기에, 틀릴 가능성은 한없이 낮으리라.

물론, 시체 위를 짓누르는 대지의 토사물들이 압박해 부러진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원인이었다면, 상완골이나 늑골이 먼저 부러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개골 다음으로 단단한 곳이, 다리 골격에 위치한 뼈일테니까.

애당초 아직 육체의 부패는 시작도 안했는데, 삭지도 않은 뼈가 부러진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렇다면 남은 추측은……

유일하게 남게 되는 추측은, 저 말을 묻었던 페르젠이 직접 왼쪽 앞발을 부러트렸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 결론에 도달한 리지는 자신도 모르게 “왜?” 라는 반문을 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게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어 보였으니까.

그러나 머잖아 리지는 자신의 삶이, 그 인생 전부가.

내던진 반문에 답변 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자신의 가문이.

가신의 가족이 그에게 짓밟힐 때도, 타당한 이유라는 것이 존재했었냐고.

“……”

그래, 그곳에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이라는 남자는, 원래 그런 인간이었을 테니.

하지만 이제는 그 사실에 위화감이 든다.

8년전에 왼쪽 다리가 분질러진 자신이.

한달전에 양 손가락에 화상을 입은 자신이.

저 구덩이에 처박혀 앞발이 모두 부러진 채, 뒷발로만 발버둥 치는 말의 시신이……

연속된 세 개의 사건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말을 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리지는 그 사건들을 자신의 뇌리에 나열하고, 불필요한 점을 소거한 뒤 명확한 공통점을 간추려 나갔다.

그러자 그 끝에 남게 되는 것은, 오직 좌우대칭이라는 결론 하나.

“대, 칭……”

그 결론을 끝없이 머리에 곱씹으며, 리지는 흙바닥을 여린 손으로 움켜쥐었다.

시신을 사역했을 때, 구현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건 다름아닌 페르젠이다.

철천지 원수일지라도.

그의 경지와 경험은 거짓이 아닐테기에, 리지는 그 가르침을 등한시 하지 않았다.

그리고 덕분에, 그녀는 틈틈히 읽어 두었던 의학계의 논문과 지식을 토대로 도출된 결론을 하나의 정답으로 이끌어 나갔다.

불합리하다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인지 상태와 무관하게 생기는 어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하여 특정 행동이나 사고를 자기 자신에게 강요하는 병.

정확히는 신경증의 일환으로 분류된, 학술명으로는 OCD.

일반적인 명칭으로는……

“강박증……”

이라고 불리운다.

* * * * *

사역되고 있는 말의 시신 때문에, 자신의 마력이 계속해서 고갈되고 있음에도 그런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

망부석처럼 한참을 제자리에 주저 앉아 있던 리지는, 비틀비틀 옆의 시신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페르젠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가문에게 했던 일에는 정당화 될 수 있는 이유가 없으리라 믿었다.

명확한 이유가 존재했다면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테기에.

“하, 아하하……”

하지만 이제와서 정신병이라는 원인이 그에게 있었다고, 도출된 정답은 가려진 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천재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재능을 지닌채, 어째서 그가 브뤼테인의 가주가 되지 못했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그러나 강박증이라는 요인이 이 악연의 원인이라 한들, 정당화 되기에는 너무나도 멀리 와버렸다고 리지는 생각했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시킬 것이었다면.

그날, 자신의 다리를 분지른 그 시점에서 그는 모든 것을 털어 놓고 사과를 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은 건 분명 브뤼테인이라는 가문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일 테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건드릴 수 있는 역린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리라.

시간이 흘러 아이에서 어른이 되고 나서도.

아마 동일한 이유 때문에, 그는 끝까지 해당 마인드를 고수한 것이겠지.

“그러니……”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당신은 결코 피해자가 될 수 없었다.

안타까운 사연이 존재했다는, 그런 악당이 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죄와, 자신의 약점을 이 세상에서 감추기 위해.

한 여인과.

한 가문과.

한 가족을 짓밟고, 외면하기로 「 선택 」 했던 것이 아닌가.

“……”

일말이나마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던 그의 말은, 그래 아주 틀리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적어도 천성적으로 그런 것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돌이켜말하자면, 목숨을 끊지 않고 비참한 자신의 말로를 그에게 보여주는 것이 잘못된 길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리지는 시신의 품에 안겨 진지로 천천히 돌아갔다.

그가 지은 죄를 외면하고, 드러나지 못하게 묻어.

황실을 떠받드는 기둥이자, 제관의 핏줄이옵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귀족으로 살아가려 한다면.

자신은 그것을 마주보게 만들고, 다시금 파내에 그에게 각인 시킨 뒤.

한 여인의 인생을 망치고, 한 가문을 파멸시키고, 한 가족을 몰살한 죄인으로 끝까지 살아가게 만들 것이다.

페르젠.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오빠들이라면 해결해줄지도 모른다고, 그런 식으로 떠넘긴 채 이렇게 비루한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자신처럼.

아무리 이 세상이 당신을 편애하더라도.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어……’

* * * * *

움찔!

배급 받은 식사를 먹고 있던 페르젠 휘하의 부대원들은, 쏟아지는 비에 잔뜩 젖은 채로 들어서는 리지를 보며 놀라 몸을 떨었다.

제대로 씻지 못해 산발이 된 머리가 빗물을 머금고 축 늘어져 엉겨붙은 흙먼지와 피를 흘리고.

그 사이로 드러난 특유의 보랏빛 눈동자는 광기를 머금고 있는 것 같아, 시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그들이라도 으스스한 오한이 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백작님은 안에 계신가요.”

스윽, 주변을 훑는 리지가 작금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 그래……”

그에 그녀를 불편해하던 이들도, 조용히 침만을 꼴깍 삼키며 대답을 해주었다.

“다행이네요.”

짧은 단답.

그 이후, 사역하는 시신의 품에 안겨 걸음을 내딛는 리지가 움막의 안쪽에 마련된 페르젠의 천막을 거두고 들어가버린다.

그리고 식사를 하고 있던 부대원들은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얌전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잠시 말을 걸거나, 팔목을 붙잡아 멈춰 세우기에는……

손잡이 없이, 모든 면이 날로 되어 있는 칼 같아 도저히 어디를 붙잡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기에.

* * * * *

“……”

“……”

아무 예고 없이 안으로 들어서니, 식사를 하고 있던 페르젠이 수저를 내려 놓고 자신을 바라본다.

그가 강박증 환자라는 확신이 들어서일까.

주변 물건의 배치 같은 것 또한, 명확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무슨 일로 찾아 왔느냐. 그리고 언질 없이 자리를 비우는 것은……”

툭.

“……”

말을 끊으며, 리지는 여린 손에 쥐고 있던 흙더미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당연히 리지의 그 행동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페르젠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순히 자신에게 화풀이를 하기 위해 온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싶으면,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을 보아라.”

“……”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한 말을 하라.”

“철학적 논쟁이라도 하자고 온 것이냐.”

“얻고자 하는 것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인데…… 당신은 그러지 않았어.”

황실을 떠받드는 기둥이자 제관의 핏줄, 모든 이의 선망이 되는 귀족.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사랑을 받는 남편.

“그것을 위해…… 당신이 지불한 것이 뭐가 있어?”

24년.

그 시간 동안, 당신이 해 온 것이라고는 저지른 죄를 묻어두고 도망친 것 밖에 없는데.

불합리한 세상은 그런 당신에게 낙원을 선사해주었다.

“그러니…… 이제는 다시 돌아올 시간이야.”

오른손을 들어 올리는 리지가, 자신의 왼손──그곳의 중지를 붙잡는다.

뚝.

뚜둑!

“끄흑! 끄…… 끄윽……!”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뒤로 꺾어 버리기 시작했다.

그 고통은 상당한 것이었기에, 아무리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어도 그 사이로 비명이 빈틈을 비집고 새어 나온다.

그녀의 충혈된 보랏빛 눈동자 또한, 쉬지 않고 눈물을 흘려 보냈다.

뚝──!

이윽고 손가락의 골격이 완전히 비틀리는 소음과 함께, 그녀의 중지가 완전히 꺾여 버리자.

페르젠의 붉은 눈동자는 한동안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 광경만을 선명히 담아냈다.

“흐……”

그리고 이루어 말할 수 없는 통증에 자연스레 뒤로 머리를 젖히고 꺼억꺼억 거리던 리지는, 천천히 고개를 바로 잡은 채……

“아…… 하…… 아핫……!”

강제로 꺾여 바들바들 떠는 왼손을 그에게 보란듯이 내밀며, 눈물과 콧물로 얼룩진 비참한 얼굴 위로 명백한 비웃음을 그려냈다.

“……”

동시에 페르젠은 생각했다.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이라는 인간은 결심했다.

눈앞에 있는,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라는 여인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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