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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217화 (217/260)

히힝!

“……!”

진지로 돌아가는 길, 그 도중.

갑자기 빗길에 미끄러지기라도 한듯, 타고 있는 말이 주저 앉으려 하자 페르젠은 흔들리는 몸의 균형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큭!”

허리를 낮추고, 고삐를 단단히 붙들어도.

말 위에서 튕겨져 나가려는 몸을 사수하려는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백작 각하!”

그에 주변의 부대원들이 두 눈을 크게뜨며 놀란 목소리로 페르젠을 부르나, 다행히도 그가 낙마하여 다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말 위에 올라타 있는 페르젠이 대처를 잘했다기 보다는, 애초부터 주저 앉던 말이 그 와중에도 주인이 다치지 않게끔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

그렇게 불규칙적인 숨을 고르며 말위에서 내려온 페르젠은 앞쪽으로 걸음을 옮겨 말의 상태를 확인했다.

푸으.

푸흐……

숨을 내쉬고 있는 콧구멍 사이로 검붉은 피가 진득하게 흘러 나온다.

유난히 바르르 떨고 있는 오른쪽 앞발을 확인 해보니, 빠른 속도로 부어오르고 있었다.

전장에서 당장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를 입고, 지금까지 악착같이 버텨왔으나 그 한계에 도달한 것일까.

“……고생했구나.”

수의(獸醫)에 정통하지 못한 페르젠이더라도, 가문에서 데려온 이 말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건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때문에 그 갈기털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며 자신의 제단을 통해 이사벨을 꺼내든 페르젠은 따뜻한 얼음판을 만들어 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쏟아지는 비에 맞지 않게끔 그 위를 상냥하게 가려준다.

말하지 못하는 짐승으로 태어나, 인간의 손에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분명 드넓은 초원을 노다니며 생을 마감했겠지.

그러니 이것은 인간의 욕심에 좌지우지 당한 삶에서, 마지막 정도는 편하게 가라는 배려.

“가지.”

이윽고 페르젠이 걸음을 내딛는다.

하지만 그의 뒤를 따르는 부대원들 중, 리지만큼은 그 모습을 좋게 볼 수가 없었다.

비참한 자신의 모습이 확연히 대비되었으니까.

그렇기에 페르젠의 등을 쫓는 보랏빛 눈동자는, 그 원망감이 더욱 짙어질 뿐이었다.

* * * * *

진지에 도착했을 때, 페르젠의 말은 숨을 거두었다.

고작 한낱 짐승이 자신의 가족들보다 편히 이승을 떠난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찌 이리도 실소가 저절로 흘러 나오는지.

그리고 죽은 말의 시신을 묻어 주기 위해 홀로 자리를 뜨는 페르젠을 보며, 리지는 입술을 까득 깨물었다.

연민과 애도라는 감정을 저런 짐승에게도 품을 수 있으면서, 자신의 가문과 가족에게는 그러지 않았다는 지독한 이중성──그 자체에 형용할 수 없는 구역질이 치민다.

“……”

하기야 겨우 장난감 따위가, 짐승보다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일까.

결코 합리화 될 수 없는 사실을, 스스로 합리화하여 체념하는 자신의 처지에 리지는 이제 진절머리가 났다.

자신의 움막으로 들어오고 나서도, 그 감정은 좀처럼 쉬이 가라앉지가 않았다.

유리엘은 왜 저런 남자를 사랑하는 것일까.

이 제국의 황실과, 이 제국의 백성들은 왜 저런 남자를 의지하는 것일까.

왜 세상은 저런 남자를 편애하는 것일까.

분명 자신의 기준에서는 확실한 근거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데.

모두가, 이 세계가 그것을 부정해온다.

그에게 육신이 박살나고.

그에게 인생이 짓밟히고.

그에게 가문이 멸문 당하고.

그에게 가족이 죽임 당했어도.

사실은 그 모든것이 합당한 것이었나?

“아, 니야……”

으스러지듯, 주먹을 쥐는 리지가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 짜낸다.

“아니야……!”

하지만 그 목소리가 닿을 대상은 이 세상에 없었다.

결코 나갈 수 없는 독방에 갇혀 그곳을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처럼, 발악을 하듯 내지른 목소리는……

벽을 두드릴 때 아파오는 주먹과도 같이, 자신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고.

밖에서 추적추적 쏟아지는 빗소리에 점차 묻혀질 뿐이었다.

“하아…… 하아……”

한참 뒤, 그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자 리지는 숨을 헐떡이며 가슴 부근을 꼬옥 움켜 쥐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감정이 가라 앉았다고 표현하는 것도 틀린 것이리라.

정확히는 이 냉혹한 세상이 자신의 그러한 감정을 붙잡아 고개를 들지 못하게끔 억지로 바닥에 처박았다고 봐야겠지.

표현하는 게 용납되지 않는 감정이라는 건, 정말 잔인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각자의 그림을, 각각의 색으로 칠해나가는데.

오직 자신에게만 그것이 허락 되지 않아, 영원한 무채색으로 남는다.

“아……”

일순간 찾아오는 미약한 현기증.

전신의 힘이 타악 풀려 버리는 느낌이라 리지는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주륵.

그러자 뒤늦게 코에서 피가흐르는 감촉을 느끼고, 주섬주섬 자신의 손등으로 닦아낸 리지는 조용히 그 흔적을 내려다보았다.

“……”

산채로 사람이 썩고, 곪아 가는 듯한 느낌.

그 날 이후로 페르젠은 자신에게 별다른 말도, 손길도 뻗어오지 않았지만.

그가 자신에게 선사해준 세계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 만으로도 전신의 생기를 앗아 가는 것 같았다.

물속에서 물고기를 꺼내어 바닥에 내던진 뒤,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폭력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바닥에 내쳐진 물고기가 서서히 숨을 거두듯, 자신이 죽게 된다면.

페르젠은 오늘처럼 그 가식적인 감정을 자신의 시신에게 선보이며 모든 매듭을 마무리 짓겠지.

그래,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그런 속편한 결말만큼은 페르젠에게 절대 건네주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게 된다면, 다짐과 별개로 결말은 이미 정해진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기에 리지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 뜯었다.

바닥에 내쳐진 물고기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펄떡거려도, 그것은 제살을 깎아 먹는 짓 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두웅──!

“……”

어느덧 빗소리를 꿰뚫고 울려 퍼지는, 점심의 배급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리지는 자신의 곁에 있는 시신의 품에 안겨든 채, 식사를 받으러 가지 않았다.

바닥에 내쳐진 물고기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펄떡거려도, 본래 살던 강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잠시라도 목숨을 연명할 수 있는,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까지는 갈 수 있지 않겠는가.

설령 그것이 썩은물이라 하더라도, 리지는 기꺼이 아가미를 뻐끔 거릴 수 있었다.

* * * * *

투두둑.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사역하는 시신의 품에 안겨든 리지는 비교적 느슨해진 병사들의 시선을 피해 앞으로 나아갔다.

페르젠이 어디에 말의 시신을 묻었는지, 그 어렴풋한 장소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장소를 알아도, 쏟아지는 비에 젖어든 황무지가 바닥을 파낸 흔적을 지워버리기에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것이 힘들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인의 기준이었고.

원소 마법사의 시신을 사역할 수 있는 리지의 경우, 대지에 간섭을 하면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아니나 다를까, 피부를 훑던 손가락이 무언가를 느끼고 움찔하며 멈추어 서듯.

자신의 마력을 머금은 대지가 다른 곳과 선명히 대비되는 차이점을 알려오자, 리지는 그곳으로 걸음을 옮겨 자신의 마력을 집중했다.

그러자 젖어든 대지가 마치 모래더미처럼 좌우로 움푹 파이며 갈라지더니, 그 아득한 밑에 위치한──브뤼테인 가문에서 데려온 페르젠의 말을 드러낸다.

그에 리지는 입가에서 실소를 내뱉으며 저 말에게 자신의 마력을 방사했다.

이미 죽어버린, 고작 한낱 짐승의 시신이라도 처절하게 훼손하지 않으면.

이 풀어낼 수 없는 악에 바친 감정은 끝끝내 페르젠보다 자신을 먼저 집어 삼킬 것 같았다.

투득.

자신의 마력 아래에 통제 되는, 페르젠의 말이 이윽고 그 몸을 일으킨다.

생각해보면 그가 자신의 가문을, 가족을,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는 와중에도.

자신은 그의 티끌조차 건드려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설령 가식적이라고 한들, 연민과 애도를 건넨 저 말의 시신을 훼손한다는 건……

“아핫……”

처음으로 리지에게 희열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가 자신의 가문을, 가족을,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으며 느꼈던 쾌락이라는 것이 이러했을까.

“아…… 하, 하……”

하지만 그 웃음조차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점차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한낱 짐승의 시신을 훼손하려 드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스스로의 모습에 환멸을 느껴서가 아니라……

“……”

올라오기 편하게끔, 깎아내린 대지에 단 한발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처절하게 쓰러져 뒷발만을 바둥거리는 말의 시신이 두 눈에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무어라 해야 할까.

그래, 마치 페르젠에게 왼쪽 다리가 분질러져 처절하게 울부짖던……

8년전의 자신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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